2024년 4월 20일(토)

영화 핫 리뷰

[빅픽처] 김윤석의 '미성년'vs에단 호크의 '퍼스트 리폼드'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4.12 14:46 수정 2019.04.12 15:36 조회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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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의 이름이 영화의 신뢰도까지 높여주는 경우가 있다. 배우가 걸어온 길, 보여준 안목이 보증수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성년'과 '퍼스트 리폼드'가 그렇다.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이 연출과 출연을 겸한 영화다. 여기에 염정아, 김소진이라는 베테랑 배우가 출연하고 김혜준, 박세진이라는 발견의 재미를 선사하는 신인이 등장한다.

'퍼스트 리폼드'도 추천할만한 영화다. '죽은 시인의 사회', '청춘스케치',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 등을 통해 국내에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 에단 호크가 내공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에단 호크도 연기는 물론 제작과 연출에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로서의 본분에만 충실했다. 지난 3월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에단 호크가 지명되지 못한 것은 할리우드에서도 큰 화제였다. 그만큼 뛰어난 연기였다.

미성년

◆ '미성년', 당신은 아름다운 어른입니까?

고등학생 주리(김혜준)는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인 윤아(박세진)를 학교 옥상으로 불러낸다. 최근 자신의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 사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윤아는 당돌하게 주리의 전화기를 뺏어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에게 남편의 불륜 사실을 폭로해버린다. 아빠와 엄마의 일탈로 위기에 놓인 두 소녀는 가족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미성년'이라는 제목이 지칭하는 것은 두 소녀가 아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지목하고 있다. 가족의 붕괴는 아이들에게 세계가 무너지는 재난과 같다. 무책임한 어른으로 인해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은 자신의 눈높이에서 어른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고자 한다. '미성숙한 인간', '아름답게 나이 들지 못한 어른'을 향한 똑 부러지는 일침이 검은 유머와 함께 영화 전반을 아우른다.

배우이기 전에 대학로의 실력파 연출가였던 김윤석이 감독 본색을 드러낸 첫 영화다. 꼼꼼한 프리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대학로와 충무로를 뒤져 끌어 모은 연기 선수들, 걸출한 신인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부끄러운 어른과 똑 부러지는 아이가 어우러진 웃픈 가족 드라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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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붕괴'라는 해묵은 소재를 김윤석은 '아이스 스톰'(감독 이안)의 냉철한 시선, '가족의 탄생'(감독 김태용)의 따듯한 포옹을 넘나들며 완성해냈다.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한없이 무른 중년 여성의 내면과 순수하지만 예민한 10대의 감수성을 남성 감독이 이토록 섬세하게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학로에서 발굴한 이보람 작가의 섬세한 대본 덕분이다.

좋은 작품은 기초 공사가 잘 된 이야기, 단단한 캐릭터가 만들어낸다는 단순한 지론을 보여주는 영화다. 감독 스스로는 '신인 감독의 패기'라고 표현했지만 선수가 만든 데뷔작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연극과 영화라는 매체를 두루 소화하며 쌓은 내공으로 만들었다. '감독 김윤석'의 순조로운 출발이다.

퍼스트

◆ '퍼스트 리폼드', 참회와 사랑으로 완성한 일기

교회보다는 관광지로서의 명성이 더 높은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목사인 툴러(에단 호크)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이라크전 입대를 권유한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툴러는 손글씨로 인생의 참회록에 가까운 일기를 써 내려간다. 어느 날 임신한 신도 메리(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찾아와 우울증에 걸린 남편 마이클을 만나 달라는 부탁을 한다. 마이클은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가 종말 할 것이라고 믿는 극단적 환경주의자다. 두 사람의 만남 이후 마이클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메리는 무너져 내린다. 이 사건은 툴러의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툴러가 써 내려가는 일기는 1인칭 내레이션으로 쓰인다. 영화 초반, 자살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의 공기를 형성하던 영화는 중반 이후 환경 문제와 종교의 역할을 고찰하는 사회 드라마로 확장되고, 후반부 삶의 역경과 고통을 이겨내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점철되는 것처럼 보인다. 폭넓은 주제와 깊이 있는 사유를 요하는 철학서 같은 영화다.

'퍼스트 리폼드'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각본가로 유명한 폴 슈레이더가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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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신과 종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적 시선이 영화 전반을 아우른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병든 지구와 타락한 인간을 장면 장면으로 시각화하며 신의 뜻과 인간의 해석에 대한 모순, 불협화음을 강조한다.

종교적 각성과 감정적 깨달음까지 얻은 툴러가 삶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감독은 후반부 판타지 장면을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는데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불균형이지만, 독특한 분위기로 체험의 순간을 선사한다. 4:3의 답답한 화면비나 카메라 앵글 의도적 변형을 통해 툴러의 복잡한 내면을 형상화했다.

청춘스타에서 시작해 연기파 배우로 발돋움한 에단 호크의 열연이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세월이 낳은 주름에도 묻히지 않는 진한 감정선으로 인물의 고통, 번뇌를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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