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김희애, 우아함 너머의 녹진한 인간애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6.19 15:09 수정 2018.06.19 15:48 조회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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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민규동 감독님은 이 영화의 시작이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게 부끄러워서'라고 하셨잖아요. 감독님은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저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으니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것으로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어요."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 이후 4년 만에 나온 인터뷰 자리였다. 그간 마음처럼 영화와 인연이 잘 닿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쏟은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의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깊은 드라마와 만났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 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김희애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관부 재판을 이끈 여성 사업가 문정숙으로 분했다. 실제로 6년간 관부 재판을 이끈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을 롤모델로 한 캐릭터다.

허스토리

영화를 선택한 계기에 대해 "관부 재판이라는 것을 시나리오를 읽고 알게 됐어요. 할머니들과 단장님이 고군분투하신 끝에 처음으로 일본을 상대로 일부 승소를 이뤄낸 실화하는 점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촬영하면서도 이쯤 하면 됐다 할 것도 실제로 그분들이 겪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영화를 준비할 때는 단장님을 만나 뵙지 못했기 때문에 신문 기사나 당시의 기록을 찾아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어요. 부산 출신에 일어도 능통하신 분이라 사투리와 일본어를 익히는데 많은 공을 쏟았어요. 외적으로는 영화에서 보셨듯 멋진 커리어우먼이세요. 그분의 사진을 보면서 컷트 머리에 볼드한 악세서리, 안경, 스카프 등으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을 패션으로도 보여주려고 했어요."

연기도 연기지만 가장 큰 숙제는 낯선 언어로 된 대사를 익히는 것이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외국어만큼이나 익숙지 않았던 부산 사투리였다. 김희애는 사투리 선생님과 몇 개월간 일상을 공유할 정도로 오랜 기간 연습에 매진했다.

"선생님이 녹음해주신 사투리를 듣고 따라 하기를 반복했어요. 또 미국에 잠시 머물 때에서도 사투리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흐름은 잃지 않으려고 했고요.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분의 가족들과도 통화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혔어요. 우아한 버전, 센 버전, 애교 버전 등 다양한 버전의 사투리를 들으면서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

사투리를 익힐 때쯤에는 영화에 등장한 다양한 감정신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실화인 데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인 만큼 연기할 때 더 세밀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감정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법정신은 산이었다.

허스토리

"재판장에서는 절제된 연기를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상황과 감정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선배들도 하루하루 자기 몫이 있었어요. 서로 감정을 흩트리면 안 되니까 "잘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다가 서로의 연기가 끝난 뒤에는 손뼉 쳐주고 그랬던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냐고요? 어떤 배우들이나 작품에서 힘들지 않나요? 배우는 캐릭터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게 숙명이니까요."

'허스토리'는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관록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성 영화 기근인 충무로에서 '허스토리'의 기획과 제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여성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여자들은 누구의 아내, 엄마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여성이기 전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에 더 와닿았나 봐요. 어찌 보면,연약하고 배우지도 못한 약자인데, 당당하게 자신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지고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 단장은 관객의 눈과 가슴을 대변한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 행복만을 위해 살던 문정숙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정길(김해숙)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를 위해 관부 재판을 이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우리의 아픔이고 상처임을 인지하고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는 문정숙의 모습을 보며 영화를 보는 이들은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 일등 공신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김희애다.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못했겠죠. 못했을 것 같아요. 단장님도 처음부터 사명감을 가진 게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할머니들의 상황과 사정을 알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되잖아요. 그런 과정들이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과정들을 과장되지 않고 사실적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낀 것들을 관객들과도 나누고 싶었거든요."

김희애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로 "이겨야죠. 할머니들 분이 풀리려면 이겨야죠"라고 재판의 결의를 다지는 대사와 "할머니가 기사님 어머님이라도 그렇게 말씀하실 겁니까?"라고 위안부 할머니를 비하하는 택시기사에 윽박지르는 대사를 꼽았다. 통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희애는 자타공인 우아한 여배우 이미지의 대명사다. 나이가 들수록 우아함과 세련됨이 빛나는 배우지만 스스로는 "우아하지 않다. 나 역시 생활인이고 누구의 엄마고 똑같다. 어쩌면 생활이 더 심플하다. 바빠서 꾸밀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허름하게 입고 돌아다니고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개봉을 앞둔 김희애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나약하고 힘없고 한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부 승소를 끌어낸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제가 그랬듯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작은 변화, 성숙함을 느끼면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큰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이 영화를 하면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연기하는 것뿐이었어요. 저 자신으로서도 조금 더 인간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작은 걸음이었어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라고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따뜻한 덕담을 건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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