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말많은 영화 번역 논란…"못하는 것vs안하는 것"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5.10 09:09 수정 2018.05.14 09:47 조회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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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Mother...Fu.."→ "어머니..."

"She's pretty if you like that sort of thing"→"예쁘네요 된장녀 같지만"

"Water,wet"→"물난리가 났다"

닉 퓨리 국장은 일순간에 효자('어벤져스:인피니티 워')가 됐다. 제임스 본드는 예쁜 여자를 된장녀('007 스카이폴')에 비유했다. 고담시에는 홍수('배트맨 vs 슈퍼맨:저스티스 리그의 시작')가 터졌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최근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모 번역가의 오역 사례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어벤져스3')가 개봉과 동시에 역대 개봉영화 최고의 오프닝, 2018년 최고의 흥행 영화 등 신기록을 세우며 13일 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마블 10주년 기념작답게 최고의 볼거리와 재미로 무장한 영화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화제작은 관객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게다가 국내 팬들의 충성도가 남다른 마블 히어로 영화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히어로 올스타전으로 불리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1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어벤져스3'도 연속 천만을 노리고 국내 개봉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핵심인 대사에서 눈에 띄는 오역이 발생해 관객들을 경악하게 했다. 단순한 오역에서부터 다음 편의 중요한 힌트가 될 대사까지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되자 관객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인간이 하는 일은 언제라도 실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실수가 한 사람에게서 반복된다면, 그 실수는 더이상 당사자만의 것도 아니다. 반복된 실수를 파악하고도 묵인한 회사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유독 마블 영화만 오역 사례가 잦다. 최근 불거진 오역 논란의 쟁점을 보면서 드는 두 가지 의문을 쫓아봤다.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어벤져스

◆ 개봉 후 자막 변경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안 고치는 겁니까? 못 고치는 겁니까?"

많은 관객이 묻는다. 개봉 후라도 문제점이 발견됐으면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말처럼 쉽지만 않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막 수정은 DCP(Digital Cinema Package: 극장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포맷)를 내려 인코딩 걸어놓으면 반나절이면 된다. 틀린 자막을 고치는 것도 실질적으로 10분이면 가능하다. 문제는 기존 판을 회수하고 각 극장에 재배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최소 2~3주가 소요된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전했다.

'어벤져스3'가 전국 900만 관객을 모으는데 걸린 시간은 단 13일이다. 1천만 돌파까지는 20일이 채 안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역된 자막을 수정해 전국 극장에 뿌리는 시간보다 1천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한 번씩 볼 시간이 더 짧게 걸린다는 의미다.

게다가 자막을 수정할 경우 심의도 다시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도 추가된다. 개봉일에 맞춰 모든 프로세스를 가동한 직배사에서 이런 수고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개봉 영화에서 오역이 발견돼도 수정을 하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엎질러진 물이다. 다 된 밥에 뿌려진 재를 먹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마블 히어로 무비를 사랑해 마지않는, 언제라도 기꺼이 주머니를 열 준비가 되어있는 팬들이 감내해야 할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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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가 교체는 왜 못하나?…사실상 전담제 

그렇다면 '번역가 교체는 왜 안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닌 반복된 실수를 저지른 담당자에게 계속해서 일을 맡기는 이유에 관한 순수한 호기심마저 들 정도다. 직배사들은 말을 아꼈다.

다만 한 관계자는 "어차피 100점짜리 번역이라는 건 없다. 경험이 많고, 평균치가 높은 사람을 신뢰하기 마련이다. 박지훈 번역가는 최근 들어 오역으로 논란이 됐지만, 과거 수년간 안정적으로 작업을 해온 업계 베테랑이다." 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내부의 판단일뿐이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직배 영화의 경우 10년 가까이 몇몇 번역가가 독점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논란이 된 박지훈 번역가는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의 마블 영화와 워너브라더스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UPI도 한 번역가가 50% 이상의 작품을 도맡아 하고 있다.

과거 박지훈 번역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번역일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맥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최근 회자돼 관객의 화를 돋웠다. 1천 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는 대작의 번역 작업이 인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번역이라는 것은 책 번역과는 또 다르다.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상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매체다. 게다가 마블 히어로 무비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젊은 관객들의 기호와 취향에 맞춰 제작된다. 마블 영화의 번역가라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다라면 '어벤져스4'의 중요한 힌트가 될지도 모르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 "We are in the end game"이 "가망이 없다"고 번역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번역가가 얼마나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는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어벤

◆ 번역 실명제 왜 안 하나

최근 잇따른 오역 논란으로 '번역 실명제'에 대한 요구도 뜨겁다. 국내 개봉하는 외화의 경우 번역가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번역업계 관계자는 "번역가의 크레딧을 넣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특정 영화사에서는 최근 들어 번역가 이름을 크레딧에 안 넣는 추세를 보인다. 아무래도 관객들이 번역에 예민해 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논란이 커질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박지훈 번역가는 '어벤져스3'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영화의 크레딧마다 본명을 넣었다. 그러나 '토르2', '배트맨 대 슈퍼맨', '클로버필드 10번지' 등에서 아비가일, 지유 등의 필명을 쓰더니 최근부터는 아예 이름을 뺐다. 

크레딧은 창작물에 대한 자기 존재 증명인 동시에 수용자에 대한 신뢰의 징표다. 가명도 모자라 유령 번역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벤져스

번역은 피드백도 중요하다. 인간이 하는 일인 만큼 완벽이란 없다. 게다가 영화 자막은 일반적으로 두 줄, 한 줄에 15자 내외로 맞춰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직역보다는 의역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번역가의 실력과 센스를 엿볼 수 있지만, 자칫하면 창작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오역이 나올 수도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번역가가 나서 관객과 소통할 필요도 있다. 적어도 영어 실력이 모자라 의역을 남발하거나 일부러 오역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벤져스3'의 개봉 초와 동시에 오역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정작 작업을 한 담당자의 해명은 없었다. 개봉 후에라도 번역가가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홍보사를 통해 "마블 영화는 해석의 차이라 그 부분은 해답이 없다. 답은 '어벤져스4'에 있을 것 같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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