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계 원로 김기덕 감독이 폐암으로 별세한 가운데 살아생전 남긴 말들이 조명받고 있다.
1961년 '5인의 해병'으로 데뷔한 김기덕 감독은 '맨발의 청춘', '용사는 살아있다', '124 군부대', '친정어머니', '대괴수 용가리' 등 전쟁영화, 스포츠영화, 괴수물, 멜로 등을 오가며 '장르 마스터'로 존경받았다.
특히 자신만의 확고한 연출 철학과 실험 정신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자신의 영화 업적을 기리는 자리에서 촌철살인 말로 큰 박수를 받았다.
지난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 참석한 그는 "제작 현장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는데 명함에는 여전히 영화감독이라고 적혀있다. 영화를 통해 교수와 대학 학장을 했지만 나의 뿌리는 영화이고, 나는 죽어서도 영화감독이다"라고 전하며 영원한 영화감독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나라는 권력자들이 문화를 점령했던 안타까운 시절을 안고 있다. 영화계에는 그 시대에 대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신구와 좌우의 갈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정부의 문화압력과 영화계 내홍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다.
또한 같은 해 가진 매체 인터뷰에서는 예술가의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던 중 "평생 '딴따라'라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언행에 조심했다"며 "그 덕분에 스캔들 한번 없이 살 수 있었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자신의 대표작인 '맨발의 청춘'의 표절 시비와 관련해서도 "일본 것을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1964년이면 한일국교 정상화가 안 됐을 때여서 일본의 DVD, 비디오테이프도 볼 수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 20~30대 영화 팬들은 김기덕 하면 '악어', '섬', '피에타'를 만든 동명이인을 생각하겠지만 50대 이상의 영화 팬들은 '맨발의 청춘' 김기덕을 떠올릴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감독이었다.
<사진 = O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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