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현장

[인터뷰] ‘아수라’ 정우성 “‘이기는 편이 내편이에요’ 독백의 의미는…”

강경윤 기자 작성 2016.10.05 13:02 조회 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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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영화 ‘아수라’는 수컷의 향기가 진한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전체적인 폭력성의 수위 때문만은 아니다. 어두운 폭력이 잠식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악의 축 박성배 시장, 그리고 그 뒤의 경찰 한도경 등은 모두 남자들이다. 영화의 초반부터 중간까지 그려지는 한도경(정우성 분)과 문선모(주지훈 분)의 관계도 친형제 같은 우정으로 표현된다.

‘아수라’는 추악한 권력의 뒷모습, 그리고 그 먹이사슬에서 발버둥치는 수컷들의 초라한 단면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암에 걸린 부인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박성배 시장의 더러운 칼잡이 역할을 자처하는 한도경의 "이기는 편이 우리 편입니다,"는 내레이션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이 영화가 끝날 때쯤 다시 한번 들려오는 한도경의 독백은 결말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를 떠나서, 매우 거칠지만 오랜 울림을 준다.

영화 ‘아수라’ 개봉 전날 만난 정우성은 기대반, 부담반이었다.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터라 정우성의 눈빛에는 두 가지 감정이 엇갈리고 있었다.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함께 한 김성수 감독과의 오랜만의 작업, 그리고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동료배우들과 치열하게 고민했던 끈끈했던 촬영 현장은 정우성에게도 남달랐던 경험이었음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Q. 한도경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궁금한데요.

"시나리오를 받고 당황했던 게 ‘주인공 같지도 않은 인물을 통해서 감독님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라는 물음 때문이었어요. 텍스트 뒤에 감춰진 무언가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죠. 50대 감독님이 투영하려 했던 건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했어요."

정우성

Q. 그래서 그 답을 찾았나요? 아니면 찾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나요?

"확답을 바라진 않았어요. 질문도 하지 않았고요. 현장에서 촬영에 임하다보면 어떤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럼 그 때 수정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걸 찾는 방법이 바로 한도경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었어요."

Q. 영화에서 매우 피곤해 보였어요.

"진짜 피곤했어요(웃음)."

Q. 한도경 그 자체로 이해했다는 얘기죠?

"현장에 카메라가 존재했지만 공기처럼 움직이려고 했어요. 근접은 했지만 절대로 배우들이 의식 안되게 하려고 노력했거든요. 어떤 연기를 주문하는 건 없었어요. 그냥 그 상황에서 한도경이 느꼈을 것 같은 것에 충실했어요."

Q. 추격신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정우성 씨의 감정이 폭발하는듯 보였거든요?

"한도경이 경찰인데 그 중요한 순간에 엄하게 총이나 뺏겼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폭발했겠어요. 촬영할 때 별에 별 소리를 다 하면서 좇아갔어요. 감독님이 ‘다 좋은데, 욕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제가 그렇게 욕을 했는지도 몰랐어요. 감당하기 힘든 폭발이었던 것 같아요."

Q. 그럼 영화 촬영할 때 이 장면은 싫었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어요?

"있었는데, 최종본에서는 편집 됐더라고요."

Q. 맞는 장면이 특히 많았어요. 수사관 도창학(정만식 분)에게 고문에 가깝게 맞는 모습은 보는 사람이 다 아프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심리적으로 더 압박하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물리적 가해 보다는 상황적, 심리적인 것에 대한 공포가 관객들이 더 크게 느끼니까요."

Q. 한도경이란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GV(관객과의 만남)을 할 때 그 얘기가 나왔어요. 제가 촬영하다가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방으로 좀 와주세요’해서는 ‘힘들어 죽겠어요’라고 했다고요. 한도경의 스트레스에 빠져있다 보니까 너무 피로했었나봐요. 감독님은 제 얘기 다 듣고 방으로 돌아가실 때 너무 기쁘셨대요.(웃음) 이후 스케줄이 있어서 조금 빠져나올 수 있었지, 안 그랬다면 계속 한도경의 잔향에 취해 있었을 것 같아요."

정우성

Q. 한도경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한도경의 내레이션은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자기회고 같은 것이었어요. 감독님이 구체적으로 요구한 부분이 있었어요. 한도경이 정말 삶에 찌들어서 푹 꺼진 의자에 앉아서 앞에 있는 여자에게 힘없이 얘기하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촬영이 끝나고 꽤 시차를 두고 내레이션을 했는데, 다시 한도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버둥거리게 되더라고요. 결국 12시간 동안 수정하고, 수정하며 끈질기게 작업을 했어요."

Q. 그 내레이션 때문이었을까요. 마치 잔혹한 어른들의 동화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반성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거죠. 아주 솔직 담백하게 반성을 한다거나 또 대놓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 때 상황으로 돌아갔을 때의 반성이나 후회의 느낌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기는 편이 제편이에요’라는 부분은 결국 안남시란 도시에서는 누구를 이길수도 없다는 ‘반성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거죠."

Q. 결말이 좀 충격적이었는데, ‘반성해야 한다’는 메시지에서 ‘아수라’의 결말도 이해하면 될까요?

"그 메시지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정우성

Q. 문선모와 한도경의 관계의 변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시장 골목에서 변변찮은 국밥을 먹으며 반찬을 올려주던 ‘친형제’ 같은 사이에서 질투와 갈등을 겪게 되는 모습이요.

"문선모는 ‘아수라’의 인물관계를 비추고 있는 거울 같은 역할이었어요. 한도경은 문선모를 보면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게 된 거죠. 아주 선해보이지도, 약해보이지도 않는 그런 모습. 불안함과 위태함을 가진 과거를 돌아보는 느낌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은, 출연한 배우들끼리 촬영장에서 정말 끈끈해졌겠구나란 생각이었어요. 

"신 하나 끝나면 술도 먹고 그랬죠. 성과에 대한 짜릿함이 있었으니까요. 모여서 그 신에 대해서 얘기하고 촬영과 작업 방식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신뢰와 애정이 쌓였던 것 같아요. 정말 힘들고 지쳤지만 그런 교감이 있어서 ‘우리 영화가 잘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그게 보약이 됐던 것 같아요."

Q. 이런 류의 작업을 다시 하자고 제안이 들어온다면요?

"할 거예요. 그런데 좀 쉬었다가. 또 한도경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어떤 캐릭터든지 질퍽하게 빠져 들어가면 성취가 따라오고 그게 보약이 돼요. 그 짜릿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감독님이 찍어놓은 걸 보여주시면 배우들끼리 ‘야, 우리꺼 좋다’라고 얘기하고 그랬어요."

정우성

Q. 내년이면 정우성 씨가 마흔 다섯이더라고요. 지금 현재 정우성 씨의 모습을 비유하자면 어떤 것 같아요?

"음. 선셋(sunset)인 것 같아요. 해질무렵. 지기 시작하면 빨리 어두워지잖아요? 그만큼 체력도 빨리 소진돼요.(웃음)"

Q. 재밌네요. 어떤 느낌인지 더 설명해주세요.

"일 욕심 보다는 어떻게 하면 일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부터는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20대 때는 영화배우가 됐고, 일을 잘해야지란 마음이 컸어요. 30대 초반에는 ‘어느정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30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돌아보니 그게 관습적인 태도였던 것 같아요. ‘아수라’를 하면서 한도경이 매우 고단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한도경을 한 건, 외적인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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