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일)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액션 거장' 정두홍 감독이 말하는 '나의 액션, 나의 영화'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8.18 11:20 조회 4,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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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홍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베테랑'(Veteran)은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 불어다. 숙련가 혹은 전문가로도 대신할 수 있는 이 단어는 정두홍 무술감독을 지칭하기 더없이 좋다. 그는 자타공인 충무로의 살아있는 액션 거장이다.

정두홍 감독이 충무로 그것도 무술감독으로 입문한 계기가 무척 흥미롭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군 제대 후 '앞으로 뭘해서 먹고 살지?'를 고민하던 정두홍 감독은 국회의원 수행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UIP 직배 반대 투쟁'(1988)현장의 조사원으로 아르바이트했다. 그것이 영화계와 맺은 첫 번째 인연이었다.

"극장에 관객 몇 명 들었나 조사하는 게 일이었어요. 그걸 일주일 정도 했나. 그 시위의 담당자가 뉴스에 나오는 거에요. 신기하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스턴트맨 일을 하게 됐어요"

정두홍 감독은 199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했다. 스턴트맨 막내로 말이다. 이 영화엔 '부당거래', '베테랑'에서 호흡을 맞춘 황정민이 우미관 '서빙남1'로 등장하기도 했다.

타고난 체력과 몸놀림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액션에 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을 위해 중국 무술 우슈를 배웠고, '무사'(2001)를 위해 고려 창술을 배웠으며, '베를린'(2013)을 위해 북한의 격술을 익혔다. 영화를 찍으며 하나둘 무술을 배웠고, 성장해나갔다.

그로부터 25년, 정두홍 감독의 역사는 충무로 액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고 있다.

정두홍

◆ "90년대는 정체, 류승완·김성수가 나를 바꿨다"

'장군의 아들'로 스턴트맨 일을 시작한 정두홍이 무술감독으로 입문하게 된 작품은 1992년 제작된 영화 '시라소니'였다. 3년 만에 막내에서 무술감독에까지 오른 것은 그야말로 고속 승진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술감독으로 역량을 펼치기 시작했던 1990년대를 자신의 정체기라고 말했다.

"그때는 건달 영화가 많았어요. 액션의 장소도 나이트 클럽, 공장, 창고 등으로 한정돼있고 액션의 도구 역시 파이프나 회칼 같은 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태권도 품새 하듯 액션을 짰어요. '정두홍의 액션은 다 똑같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어요"

배우나 감독, 모든 스태프가 그렇지만 무술감독에게도 시나리오가 중요하다. 어떤 밑바탕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액션의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두홍 감독은 무수한 건달영화를 작업하면서 액션을 찍어내다시피 했다고 했다. 그가 기다렸던 건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좋은 시나리오'였다.

천편일률적인 액션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류승완, 김성수 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류승완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통해 당시 충무로에 신성처럼 나타난 액션 키드였다. 그가 정두홍 감독에게 두 번째 작품인 '피도 눈물도 없이'(2002)를 제안하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정두홍

"류승완 감독을 만나면서 공간과 이야기에 따른 액션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총 8편의 작품을 함께 했는데 '피도 눈물도 없이'부터 '베테랑'까지 액션이 다 달라요. 그건 그의 시나리오가 달랐기 때문이죠. 사실 첫 작품인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는 류 감독과 못 만날 줄 알았어요. 작업 내내 서로를 악마라 부르며 치열하게 싸웠거든요. 류승완 감독은 성룡 키드, 나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신봉자예요. 서로 다른 스타일이 뭉치니 얼마나 안 맞았겠어요"

서로 다른 취향이 작업에는 약이 됐다. 그 시너지가 최고치에 달했던 것은 류승완, 정두홍 감독이 공동 주연까지 맡은 '짝패'(2006)였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통해 와이어 액션의 진수를 보여줬던 두 사람은 진짜 날 것의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두 팔을 걷었다. 그리고 '짝패'는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액션 장면 중 하나인 '운당정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또 한 명의 짝패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8)와 '무사'(2001)를 함께 한 김성수 감독이다. '비트'는 X세대들에겐 '인생영화'로 꼽히는 청춘영화다. 이른바 1:17 액션을 만들어낸 것은 물론이고 정우성을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로 만들었다. '무사'의 경우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중국 로케이션을 감행하며 창술이라는 새로운 액션을 보여줬다.

정두홍

◆ "아저씨·존윅·미션 임파서블, 나를 자극한 영화"

정두홍 감독은 지난 25년간 100편이 넘는 한국 영화의 액션을 책임졌다. 그리고 2013년에는 이병헌의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2'(2013)를 통해 미국 무대에 데뷔하기도 했다. 미국은 체계적인 분업이 돼 있는 선진 영화 시장이지만 그만큼 텃새도 심하다. 정두홍 감독은 실력으로 텃세를 극복했고 '액션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으로 이병헌의 액션을 빛냈다.

액션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영화도 많이 보는 편이다. 정두홍 감독은 자신을 자극한 액션 영화로 '아저씨'(2010), '존윅'(2014), '미션 임파서블'(2015) 시리즈를 꼽았다.

'아저씨'는 박정률 무술감독이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특공무술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올초 개봉한 '존윅'은 화려한 권총 액션은 물론이고 주짓수와 같은 브라질 유술을 이용한 타격전이 백미인 작품이었다.

존윅

"'존윅'의 경우 권총 액션이 판타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화려하게 구현됐더라고요. 사실 최근 '존윅'의 제작진으로부터 '존윅2'를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했어요. 아무리 할리우드 영화라 해도 서브보다는 중추적으로 액션을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병헌 씨가 출연하는 '황야의 7인'(감독 안톤 후쿠아)의 경우 정식 계약은 안 하고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왔어요"

'미션 임파서블'을 인상적으로 꼽은 것은 톰 크루즈 때문이었다. 그는 최근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의 홍보차 내한한 톰 크루즈의 기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압박감도 특권"이라고 한 말을 들으며 공감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인상적이었고요. 그 기사를 보면서 톰 아저씨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가 말하는 압박감은 제가 25년간 영화를 하면서 늘 느껴온 것이었거든요. 그런 프로페셔널한 자세를 보니 정말 멋진 톰 아저씨가 맞더라고요"

정두홍

◆ "서울액션스쿨의 미래…후배들 통해 배운다"

알려졌다시피 정두홍 감독은 서울액션스쿨을 이끌고 있다. 1998년 만들어져 1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한국 액션 영화의 허파와 같은 공간이다. 보라매 공원에 문을 열었던 서울액션스쿨은 현재 파주로 옮겨와 2막을 열었다.

이곳의 운영 시스템은 독특하다. 서울액션스쿨은 정두홍 감독이 만들었지만, 그는 대표가 아니다. 2년 주기로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액션팀이 있었는데 리더가 사고로 죽었어요. 그러고 나서 헤게모니 싸움 때문에 1년 만에 팀이 붕괴하더라고요. 난 필드에서 뛰는 걸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내가 사고가 나면 서울액션스쿨은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회장 선출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약 60명의 서울액션스쿨 팀원들이 투표해서 회장을 선출해요. 단 재선은 안 되고요. 재선을 시켰더니 비리가 생기더라고요"

서울액션스쿨은 오래 전부터 영화 제작을 준비해왔다. 정두홍 감독은 "10년 전부터 추진해온 계획이에요. 예순이 넘은 선배 중엔 아직도 스턴트를 하러 다니는 분도 있어요. 아니면 택시 운전을 하거나. 우리 직업이라는 게 일반 회사처럼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뭔가 안정적인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액션 영화 제작을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부연했다.

정두홍

실제로 후배인 허명행 무술감독이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두홍 감독은 "세팅 단계인 것으로 알아요. 액션스쿨의 영화 제작을 시스템화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홍콩의 성룡이나 태국의 토니 자 같은 액션전문배우가 나오길 염원하거든요. 우리 조직을 스턴트협회가 아닌 서울액션스쿨로 이름 지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라고 원대한 계획을 밝혔다.

서울액션스쿨의 팀원들이 모두 선의의 경쟁자이자 스승이라고 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지난 날의 나는 그저 육체의 훈련만 했을 뿐 정신의 성장이 없었어요. 지금도 액션 스쿨에서 후배들을 보면서 하나씩 배웁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정두홍 감독은 연륜과 경력이 많다고 현장에서 뒷짐 지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현장을 사랑하는 액션 키드다. 최근 나이가 들어서인지 찾는 사람이 적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장의 겸손일 뿐이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다.

ebada@sbs.co.kr 

<사진 = '짝패', '비트', '무사' 스틸컷, 퍼스트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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