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김지혜의 논픽션] '베테랑' 코믹 액션의 비밀…정두홍 감독의 '디지털 콘티'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8.13 12:41 조회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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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충무로 대표 짝패를 거론해보자. 박찬욱 감독에게 조영욱 음악감독이 있고, 봉준호 감독에겐 홍경표 촬영감독이 있고, 김지운 감독에겐 배우 송강호가 있다. 그렇다면 류승완 감독에겐? 정두홍 무술감독이 있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감독은 '액션'이라는 공통분모 아래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부딪힐 일도 많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악마로 부른다.

둘은 만날 때마다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결과로 이어지기에 서로에겐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감독은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처음 만난 뒤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 '베를린'까지 연이어 작품을 하며 충무로 액션 영화를 진일보시켜왔다. 신작 '베테랑'(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에서도 어김없이 호흡을 맞췄다. 

'베테랑'의 액션은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를린'에 비해서 스케일이 작다. 베를린과 라트비아를 배경으로 펼친 할리우드 스타일의 액션은 부산항, 밀폐된 차고지, 허름한 주택가 옥상, 명동 한복판 8차선 도로를 배경으로 하면서 충무로 스타일을 집약했다.

액션의 콘셉트도 명확하게 달랐다. '베를린'이 "최대한 고통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였다면 '베테랑'은 "유머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주문을 받은 정두홍 감독은 '때리고 맞으면서 웃겨야 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란 말인가'라고 의아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척'하면 '착'이었다. 정두홍 감독은 이번에도 류승완 감독이 상상한 '베테랑'의 액션을 제대로 만들어냈다. SBS 연예스포츠와 만난 정두홍 감독이 '베테랑' 액션의 영업비밀인 '디지털 액션 콘티'를 공개했다.

정두홍

◆ '베테랑', 액션에 유머를 입혔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감독은 무려 7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선호하는 액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 사람은 성룡 액션의 신봉자, 다른 한 사람은 실버스타 스탤론 액션의 지지자다. 정두홍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류 감독은 액션의 합을 중요시하고 자신을 전체적인 그림이나 선을 더 중요시하는 차이다.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이 작정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성룡 스타일을 표방한 영화다. 류 감독은 SBS 연예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성룡 영화의 팬인데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경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액션을 만든 적이 없었다.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이 정두홍 액션 감독에게 주문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폭력적으로 보이지 말 것, 두 번째 유머의 끈을 놓치지 말 것이다. 그것은 인위적이거나 폭력적인 액션을 배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캐릭터와 인물의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활극과 같은 액션이었다. 더불어 그런 액션 속에서 발생하는 유머들이 계속 유지되기를 원했다. 

참조한 영화는 중화권 액션 스타 성룡의 대표작 '폴리스 스토리'와 '프로젝트A' 그리고 1920년대 미국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이다.

'베테랑'의 오프닝을 여는 카체이싱 장면은 '제너럴'의 열차 추격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설계했고, 영화 중·후반부 슬랩스틱을 가미한 액션 장면은 성룡의 액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정두홍 감독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류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해 코믹 요소가 많아 부담됐다. 개인적으로는 코믹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거의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빈칸이 가득했던 시험지는 시나리오를 통해 채워나갔다. 정 감독은 "다행히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액션의 주요 공간은 확실하게 잡혀있었다"면서 "실재하는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있는 도구들을 활용하는 쪽으로 액션 디자인을 짰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차고지 액션은 카센터라는 공간을 활용해 주변 집기를 이용했고, 조선족 집 내부에서는 반찬 통, 식칼 등 생활 집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액션을 만들었다.

베테랑

◆ 액션 초짜들은 어떻게 스크린을 날았나

배우들은 연기에 있어서는 프로다. 액션은 이야기가 다르다. 운동 신경이 남다른 배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액션을 따로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다. 물론 액션 영화에는 '스턴트 더블'이라는 대역 배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현대 영화에서는 대역에만 의존할 수 없다. 배우가 어느 정도 액션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액션 아마추어인 배우들은 어떻게 촬영 현장에서 그럴듯한 액션 연기를 수행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디지털 액션 콘티'에 있다. 콘티(Continuity)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촬영을 위해 각본을 바탕으로 필요한 모든 사항을 기록한 것을 말한다. 영화의 주요 시퀀스와 신을 담은 콘티는 일반적으로 그림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액션 장면에는 '디지털 콘티'가 일반적이다. 스턴트맨들이 액션 시퀀스를 재현한 것을 담은 영상물을 말한다. 배우들은 이 영상을 보고 동작을 익히고 액션의 합을 맞춘다. 디지털 콘티의 제작 과정은 ▶시나리오 및 캐릭터 분석 ▶ 감독과 액션 콘셉트 설정 ▶ 액션 아이디어 구상 ▶ 동작 및 합 설계 ▶ 콘티 시연 및 촬영 순이다.

정두홍 무술 감독에게는 디지털 콘티가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작업이다. 서울 액션 스쿨이 주인공이 된 영상 콘티를 만든 후 자체 편집을 하면서 액션의 리듬감을 점검한다. 이후 실제 촬영에서 감독과 배우의 의견에 따라 액션을 더하거나 빼는 과정을 거친다. 

"디지털 콘티는 한 번에 오케이를 받자는 주의다. 초반에 설계한 결과물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베를린'때는 총 27번의 콘티를 짰다. 마지막 콘티를 류 감독에게 보여줬더니 그때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 "다시 만들어 볼까요?"하니 "아니에요. 두 번째 콘티로 결정했어요"라고 하더라. 다행히 '베테랑'은 라스트 액션 시퀀스를 5~6번 정도 고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1~2번째 콘티로 촬영이 진행됐다'

베테랑

◆ 액션, 캐릭터를 입다…4인 4색 디자인

'베테랑'에서 액션을 수행하는 주요 배우는 황정민, 유아인, 오달수, 장윤주다. 이들은 촬영 두 달 전부터 '서울 액션 스쿨'에서 훈련을 받았다. 가장 집중적인 훈련이 들어가는 시기는 디지털 액션 콘티가 나온 직후다. 기초 체력 훈련이 끝난 배우들은 영상 콘티를 보며 액션의 합을 맞춰나간다.

베테랑의 액션은 캐릭터별 특징이 뚜렷하다.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액션도 다르게 설계됐다는 말이다. 우선 서민의 홍길동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힘이나 기술보다는 노련미로 승부하는 액션을 만들었다. 정두홍 감독은 "주변의 소품을 이용하는 등 지략을 발휘해 싸우는 인물로 설정했다. 서도철은 범인의 손목을 꺾거나 수갑을 이용해 옭아매는 등 실제 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연행술, 호신술을 바탕으로 액션신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조태오(유아인)는 액션에서도 배운 티, 있는 티가 나게끔 액션을 짰다. 정 감독은 "극 중에서도 조태오가 프로페서널한 전문가로부터 이종 격투기을 배우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영화 후반부 서도철이 조태오와 싸운 후 "이 새끼 싸움 존나 잘해"라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숙련된 느낌의 액션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베테랑

가장 공을 들인 액션 디자인은 뜻밖에 오팀장(오달수)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말한 슬랩스틱과 유머가 가미된 액션은 오팀장의 액션 시퀀스에서 두드러졌다. 전소장이 숨어 있는 조선족의 집을 습격해 의외의 싸움 실력을 보여줬다. 오 팀장은 좁은 공간에서 갖은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악당들을 무찔렀고 액션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웃음도 자아냈다.

정두홍 감독은 "처음 디지털 콘티는 더 길고 웃겼다. 하지만 과한 것 같아 덜어냈다. 사타구니 사이에 칼 꽂히는 장면의 경우 오달수가 실제로 연기하면서 웃음 포인트가 더 살았다.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미스 봉(장윤주)의 경우 팔다리가 긴 신체적 특징을 고려해 발차기가 특기인 인물로 설정했다. 정두홍 감독은 "거제도에서 '해무'를 작업하면서 틈틈이 '베테랑'의 액션을 설계했는데 미스 봉과 오 팀장의 액션을 살려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윤주 씨는 애초 분량보다 많이 편집됐는데도 2단 옆차기 등 특징들이 잘 살았다. 신체조건이 좋다 보니 그림이 근사하더라"고 만족스러워했다.

* 디지털 콘티 1mm

디지털 액션 콘티에도 엔딩 크레딧이 존재한다. 한 편의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은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촬영 협조 공간 등이 표기되지만, 영상 콘티에서는 실제 액션 촬영 시 필요한 도구들이 명시된다.

베테랑

ebada@sbs.co.kr

<사진 및 영상 = '베테랑' 스틸컷, 정두홍 감독이 제공한 디지털 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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