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뮤지컬 배우 김소현은 주위를 맑게 하는 힘을 가졌다.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이 그랬고 '알리자벳'의 엘리가 그랬다. '위키드'의 글린다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도 혼란을 느끼면서도 김소현의 글린다는 끝내 거짓이 아닐 거라는 확신을 준다.
버블 머신(bubble machine)을 타고 글린다가 무대로 내려올 때 관객들은 벌써 김소현의 미소에 빠져버린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대에서 뮤지컬 요정이었다. “여전히 무대에 오를 때마다 부담이 된다.”고 말했던 김소현의 걱정과 우려의 말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배우로 데뷔한 이래 중간에 혼자 투입이 된 경우는 '위키드'가 처음이에요. 홀로 연습을 하면서 음표를 나누고 단어를 쪼개는 등 고 3 수험시절처럼 공부를 했어요. 여전히 10cm 정사각형에 한발을 내딛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다른 배우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요.”
이미 원톱으로 여러번 무대에 섰던 김소현은 왜 '위키드'에서 긴장하는 걸까. 중간 투입에 대한 부담감만은 아닌듯 했다. 그는 작품에 대한 가치와 감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를 훼손할까 두려운 것이었다.
“'위키드' 공연을 처음 봤을 때 1막 끝나고 눈물이 나서 일어나질 못했어요. 이 뮤지컬이 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다 느낄 수 있는지에 따라서 감동의 진폭은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배꼽 빠지게 웃고 또 펑펑 울고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위키드'가 얼마나 소중한 작품인지를 잘 알게 됐어요.”
'위키드'는 글린다와 초록마녀 엘파바를 통해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선과 악 개념을 비튼다. 글린다의 선의와 엘파바의 선의는 서로 전혀 다른 것이었으나 마지막으로 갈수록 두 사람의 교감은 클라이막스를 향하고 결국 '절대 선'에 가까워진다. 김소현은 엘파바 역의 배우 김선영이 온몸으로 그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김소현은 가슴을 울리는 감동에 젖는다고 고백했다.
“(김선영)언니를 보면 눈물이 나서 연기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예요. 최근에도 스팟촬영 때문에 '포굿'을 함께 불렀는데 언니 얼굴을 쳐다보다가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왜 눈물이 나냐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언니를 보면 무대 밖에서 느꼈던 힘듦과 전우애, 동지애가 자꾸 느껴져요. 그런 현실이 더 글린다에 몰입이 되면서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김선영은 그런 김소현은 '가장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글린다'라고 지칭했다. “연기는 연기대로 해야 하고 속으로는 김소현을 응원해야 한다.”며 투정했지만 이 말 속에서 김소현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선영 언니와는 비슷한 시기에 뮤지컬을 시작했고, 같은 시기는 아니었지만 '엘리자벳'에서 같은 배역을 맡았고 '지킬앤 하이드'도 함께 했기 때문에 더 공감할 수 있는 게 있었나봐요. '위키드' 커튼콜을 할 때 언니와 손잡고 나가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요.”
'위키드'의 글린다와 엘파바는 뮤지컬을 하는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한번쯤은 꼭 도전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김소현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백기 이후 '엘리자벳'과 '태양왕'에 이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거머쥔 것에 대해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여배우들은 주로 남자배우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많이 하는데 '위키드'는 두 여배우들이 동시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서 더욱 뜻 깊어요. 동시에 후배들에게는 미안해요. 이렇게 좋은 작품을 저희가 맡아서 기회가 줄어드는 건 아닌가 해서요. 저희를 보고 더 많은 여자후배들이 꿈을 키우고 나중에 저희보다 더 큰 배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몇 년 전 김소현이 젖먹이 아이를 안고서 일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적 있다. 무대에선 언제나 여린 요정 같았던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모습도 매우 낯설었지만, 아이를 안고 일하는 현장까지 온 그녀의 열정이 놀라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이를 얻고 나서 더욱 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는 김소현은 더 강인해진 '엄마'의 이름으로 무대에서 서고 있다.
“아이를 낳고 활동하는 게 힘든 부분도 많지만 아이를 통해서 에너지와 삶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큰 선물인 것 같아요. 똑같은 24시간인데 과거에 비해서 지금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거든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계속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이 제 바람이에요.”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뒤 그녀는 더욱 단단해진 듯 했다.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김소현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녀가 무대 위의 영원한 요정으로 남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진제공=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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