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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윤기자의 TV감수성] ‘밀회’ 클래식으로 비틀고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끝났다

강경윤 기자 작성 2014.05.14 10:21 조회 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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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시작은 어찌됐든 불륜이었다. 그게 누군가에게 사랑이든 아니면 상처뿐인 일탈이든 불륜의 본질은 관계의 파괴에 있기에 위험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를 인정하고도 '밀회'(연출 안판석 극본 정성주)를 불륜 드라마로만 치부할 순 없었다. 정성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를테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불륜은 파괴로 인한 지독한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불륜이 끔찍하고도 더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는 혹은 우리에겐 그보다 더 끔찍하고 더러운 일이 널려있다.'

스무 살 나이차가 나는 제자 이선재(유아인 분)와 유부녀 스승 오혜원(김희애 분)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불륜은 그 속성이 정반대인 클래식 음악과 부딪치면서 더욱 강렬하게 대비된다. 둘은 첫 만남에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를 함께 연주하고 오르가슴보다 더 강렬한 감정을 경험한다. 혜원이 선재의 고백을 애써 외면할 때도, 둘이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사랑을 할 때도, 관계가 발각될 위기에 놓였을 때도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는 불륜이라 칭하는 선재와 혜원 뒤로 흐르고 있었다.

밀회


클래식은 단순히 둘의 불륜을 대비시키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클래식 선율은 혜원의 남편인 강준형(박혁권 분), 민학장(김창완 분) 등 속물적 욕망의 비뚤어진 분출구인 음악대학, 자본의 괴물들이 마작을 두며 온갖 가증과 위선으로 검은 비리를 자행하는 서회장(김용건 분) 일가에도 흐른다. 혜원을 위해서 허겁지겁 걸레질을 하던 선재의 초라한 집에서도 어울리지 않게 클래식이 연주된다. '밀회'에서 클래식은 누군가에겐 더러운 욕망의 중심이자 누군가에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순수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40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던 혜원은, 음악적 재능 외엔 부모도 돈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선재에게 점점 더 빨려들었다. 그럴듯한 차를 타고 번듯한 집에 살던 혜원이었지만 영우(김혜은 분)의 술집 호스트 애인 우성(김권 분)보다, 서회장이 하룻밤 품어주려고 마음먹은 식당 여종업원 보다 더 미천하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자각했을 때부터였다.

혜원이 느낀 깊고 뼈아픈 자각은, 혜원을 변화시켰고 미래를 각성시켰다. 마지막 회에서 혜원은 자신이 오랜기간 몸담았던 서한재단의 비리 사실이 담긴 자료들을 들고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날렵한 정장대신 푸른 죄수복에 초췌한 몰골을 한 김희애는 법정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고백했다. “덕분에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다. 멋진 고백은 없었지만 나를 위해 걸레질을 해주는 남자를 보고 깨달았다. 나 자신까지도 성공의 도구로만 여겼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를 학대하고 불쌍하게 만든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밀회


자기반성을 남기고 혜원은 모든 걸 잃은 채 철창 안에서 결말을 맞았다. 신문 사회면에서 보던 불륜의 파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이었지만 이는 새드앤딩이라고 부를 수 없다. 철창 안에서 코를 드르렁 골며 편안하게 지내는 혜원에게 지옥의 그림자는커녕, 지옥에서 빠져나온 이의 안도와 행복이 진하게 배어 있다. 다른 죄수들의 손가락질과 괴롭힘을 받아도 혜원은 더 이상 스스로 손가락질하고 괴롭힐 이유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재와 혜원의 사랑의 결론은 열려 있었다. 선재의 말대로 1, 2년 살다가 그만둘지 아니면 그 어느 동화처럼 두사람이 행복하게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혜원은 선재로 인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용기를 줬고 가장 중요한 걸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존재다. 사회통념에 반하는 불륜이 중심이 됐지만 '밀회'는 클래식으로 사회과 계급을 비틀었고, 스스로 거짓뿐인 인생을 살면서도 누군가의 인생을 사회 통념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의 위선과 비겁함에 통렬한 반성을 안겼다.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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