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주연만 고집할 생각은 없어요.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비중과 상관없이 할거에요"
배우 문소리는 일찌감치 대표작을 만들어버렸다. 2002년 영화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고, 이듬해 '바람난 가족'을 통해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줬다.
데뷔 초 관객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영화들을 한 탓에 이후 행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그러나 대중의 만족도를 높이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방극장에 데뷔했을 때 빚어진 때아닌 연기력 논란만 봐도 그렇다.
문소리는 서두르지 않았고, 차분히 제 갈길을 갔다. 영화든 드라마든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모든 특급 여배우가 주인공만을 고집할 때 문소리는 작품에서 다른 가치들을 봤다. 작품이 좋고 함께 작업하고픈 감독이라면 배역의 크기를 따지지 않았다.
지난 13일 개봉한 '관능의 법칙'(감독 권칠인)도 그런 선택의 일환이다. 문소리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고 이야기가 재밌었다"고 단순 명쾌하게 말했다. 그중에서도 본인이 연기한 '미연'이라는 캐릭터에 처음부터 눈이 갔다고 했다.
미연은 성과 사랑에 과감하고 솔직한 40대 주부.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 같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 문소리는 40대 부부가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발랄하게 연기해내며 관객의 웃음을 자극했다.
"베드신의 경우 프리 프로덕션에서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따로 날짜를 잡아서 리허설도 많이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도 상당했다. 나 또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재밌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미연은 40대 주부들의 욕망을 극대화한 캐릭터였다. 남편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면서 동시에 일주일에 세 번은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간 큰 아내'였다.
"사실 일주일에 세 번 자체가 무리가 있다.(웃음) 하지만 연기함에 있어서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고하기도 하고 언젠가 우리 부부에게도 저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문소리는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 등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온 권칠인 감독에 대해 "여자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것 같다. 진심으로 여자를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시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엄정화, 조민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 문소리는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나에게도 극중 (조)민수 언니처럼 자궁을 덜어낸 지인이 있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마음 아프면서도 이해가 갔다. 우리 영화가 성과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공감한 부분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정신 없이 살면서 우정에 대해선 소홀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우정도 사랑의 한 방법인데 말이다"
세 여배우가 한 작품에 모인만큼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문소리는 "(조)민수 언니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했는데, 난 전혀 몰랐다. 내가 눈치가 없었나 싶더라"면서 "다만 선배님도 맘 편히 오신건 아니었구나 싶더라. 그런데 특별히 여배우 셋이라 더 긴장감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들 베테랑이라 별 리허설 없이도 포지션만 잡아주면 갈 수 있는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고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문소리는 지난해 중앙대학교 첨단대학원에 진학해 연출 공부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영화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영화가 궁금해서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대학원 과제로 단편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지만 "좋은 경험이었을 뿐. 연출은 내 분야는 아닌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의 말과 다르게 문소리는 최근 몇년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여러가지 역할에 도전해왔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와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해 특유의 섬세한 연기력을 보여줬는가 하면, '스파이'와 '분노의 윤리학'과 같은 상업영화에서도 활약했다. 또 박찬경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만신'에서는 무당으로 출연해 문소리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사람 욕심이라는 건 끝이 없는 것 같다. 혹자들은 나에게 확실한 대표작들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대표작을 만들고 싶다. 30대와 비교해 작품 보는 눈이 달라진 부분은 없다. 작품이 좋고, 같이 일할만한 감독이라면, 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할 것이다"
'관능의 법칙'이 40대 여성의 성과 사랑을 그린 영화인만큼 실제 40대로서 20~30대 여자들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백날 얘기해봐야 다 각자 사는건데...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40대가 되어도 그렇게 우울하지 만은 않다는 거다. 40대에도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인생의 다양한 맛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길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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