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궁금했다. 어떤 신인 감독이 '변호인'이라는 위험요소가 큰 영화를 대담하게 한다고 했으며, 이렇게 담담하게 완성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광속으로 흥행하는 가운데도 양우석 감독은 인터뷰를 고사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900만 관객을 돌파한 시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그동안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에 대해 "영화를 보기 전에 오해와 편견들이 생기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을 만든 진지한 태도가 인터뷰에서도 이어졌다. 노무현과 송우석, 원칙과 상식, 논란과 오해, 테러와 토론 등 영화와 함께 거론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키워드들에 대해 그는 진심을 담아 성실하게 답했다.
Q. 그동안 국민배우 송강호보다 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왜 인터뷰를 고사해왔나?
A. 최근 몇 년간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게 우리 사회 전체에서 문맥이나 행간을 이해하기보다는 문장이나 단어 몇 개를 뽑아내 진영 논리로 접근하는 양상이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개봉 전부터 영화의 모티프가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지뢰밭에 들어서는 심정이기도 했다. 많은 분께 감독보다는 영화로 먼저 다가갔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선 영화와 배우들이 관객과 먼저 만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또 입봉작이다 보니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도 있어서 나는 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Q. 데뷔작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궈내고 있다. 남다른 기분일 것 같다.
A. 더욱 놀랐던 건 단순히 소비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호응해주고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또 찍으면서도 새삼 느낀 건 분노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성찰, 회의,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금방 휘발된다.
송우석이라는 인물을 보라. 한때 부산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던 사람이 부조리한 사건을 변호하며 분노했고 변화했다. 그 힘이 뭘까. 결국은 신념이다. 단순히 신념을 지니고만 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전파했다. 자신이 가지게 된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성찰하고 반성했고 공감대를 넓혀갔다. 이 영화의 실질적 목표도 이해와 성찰이었다. 그런 점을 관객들이 공감해주신 것 같아 기쁘다.
Q. 팩션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변호인'의 모티브는 엄연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사후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영화화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88년 5공 청문회부터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고 출신의 초선 의원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서울대 법대 출신의 5공 실세들을 혼내는데 통쾌하게 느껴지더라.
한국 고전소설 '춘향전'을 보면 교육을 통한 입신양명, 코리안 드림 같은 것들이 압축돼 있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을 보면서 이몽룡이 떠올랐다. 80년대 법조인으로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고, 정치인이 된 뒤 동서화합, 지역주의 타파 같은 목표를 가지고 보여준 행보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분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 이야기는 용도폐기 되었다. 그 시기에 만들었다면 그저 용비어천가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
Q. 소위 말하는 '센'소재라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컸다. 애초에는 웹툰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영화로 발전한 과정은?
A. 웹툰으로 연재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우연히 위더스 필름의 최재원 대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런데 최 대표께서 "영화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라고 하시더라. 영화화가 결정되고 나서도 내가 직접 연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연출을 맡아줄 기성감독을 찾는게 쉽지 않았다. 몇 개월 후 대표님께서 직접 연출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감독직을 수락한 뒤에는 독립영화 규모를 생각했는데 송강호 씨가 캐스팅되면서 상업 영화로 탈바꿈하게 됐다. 영화 자체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완성도를 높여서 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노력했다. 그 긴장감으로 내내 촬영해서인지 지금과 같은 흥행 성적에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 같다.

Q. 1980년대 이야기로 한정시킨 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이 영화가 한 인간의 성장 영화로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A. 지금의 20~30대 대다수 젊은이들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분에게 있어 대통령으로서의 삶이 인생에 있어서 크게 중요했을까. 내 생각에는 80년대가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더 중요하고 특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기에 개인으로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깊은 성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시기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Q.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았다. 감독이 꼽는 이 영화의 결정적 장면은 무엇일까?
A. 송우석 변호사가 기자가 된 고교 동창과 식당에서 싸우는 신이다. 그를 통해 인물의 각성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시나리오 구성상으로는 상당히 위험한 신이었다. 신도 길고 대사도 많았다. 영화 중반부에 그것도 한 장소에 6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신이었다. 연기하는 사람도 또는 사람도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퀀스 만큼은 덜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걸 배우들이 지켜주셨다. 한국 영화에 그렇게 말 많은 시퀀스는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은 따로 있다고 들었다.
A. 후반부 송우석 변호인이 취조당하는 신이다. '국민이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조인이 맨 마지막에 서야죠'라는 대사를 특히 좋아한다.
Q.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해서인지 관객들이 실재인물과 영화 속 인물의 싱크로율에도 관심이 많다.
A. 영화는 허구라는 바탕 아래, 영화가 영화적 가치를 가지려면 인물은 아이콘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호인'을 보신 많은 분들이 허구와 실제의 싱크로율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싱크로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Q. 거기에서 나아가 송우석 변호사와 대척점에 섰던 판사와 검사 캐릭터의 실재인물 찾기도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다.
A. 지양됐으면 하는 부분이다. 과거의 인물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원치 않는다. 우리 영화 서두에 허구라고 명시한 것은 내가 비겁해서가 아니라 오해와 편견을 재생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사이렌 역할을 할 뿐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들이 주위를 환기한다. 행동하는 건 사이렌을 울린 사람이 아닌 들은 사람이다. 이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오해와 편견을 확대, 재생산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해와 성찰,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문맥과 행간을 읽으려는 노력을 통해 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 실천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Q. 원칙과 상식은 영화 '변호인'을 가장 잘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감독이 생각하는 '상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A. 정상과 비정상, 우와 좌, 여러 가지 로직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상식이다. 정상인이 가질 수 있는 것만 상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비정상인이 느끼는 것도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상식에 대한 우리의 끊임없는 성찰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 싶다. 컴먼 센스(common sense)의 반대말은 넌센스(nonsense)다. 둘은 큰 차이다.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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