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연상호 감독이 '사이비'로 던진 의미심장한 질문들

김지혜 기자 작성 2013.12.08 07:00 조회 4,392
기사 인쇄하기
연상호감독

[SBS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던 시기에 빚어진 일련의 사회 현상들이 있었잖아요. 사람들은 진실의 판단 기준을 본질보다는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태도와 방식에 더 신뢰를 하더라고요. '100분 토론'을 보면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는 사람과 상식적인 주장을 거칠게 이야기하는사람이 논쟁이 붙을 때가 있어요. 대다수는 전자를 믿고 싶어해요. 이런 걸 한번 이야기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영화 '사이비'는 출발했어요"

지독하다. 전작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2년 만에 더 어둡고 센 영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전작 '돼지의 왕'이 들끓는 분노로 가득 찼다면, '사이비'는 절망의 기운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사이비'는 수몰예정지역인 마을을 배경으로 기적을 빙자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장로 최경석(권해효)과 목사 성철우(오정세), 그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술주정뱅이 노름꾼 김민철(양익준)의 충돌을 그린 영화다. 

첫번째 장편 영화 '돼지의 왕'이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를 고발했다면, 두번째는 교회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선과 악에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과연 진짜인가에 대한 물음표도 남긴다. '사이비'(似而非: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라는 영화 제목이 이보다 더 절묘할 수는 없다. 

사이비

연상호 감독은 "진실을 말하는 악인과 거짓을 말하는 선한 사람의 대립을 그려보고 싶었다"면서 "종교를 다루려다 보니 공동체 마을이 있어야 했고, 어떤 상황에 몰려있어야 했다. 그래서 수몰예정지라는 물리적 설정을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그 즈음 사회 고발 프로그램에서 물만 넣어주면 돌아간다는 보일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이는 영화에서 교회에서 주는 샘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믿는 마을 사람들의 맹신으로 투영했다.

"학교나 교회는 없을 수는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필요 요건처럼 되어버린 집단일수록 안에서의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이나 기관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필요가 없으면 도태나 퇴화할 수 있는데, 그 내부에서 이미 권력을 갖고 있다 보니 갖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언뜻 보면 '사이비'는 반기독교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면 이 작품이 특정 집단과 사람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가 아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이비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상호감독

술주정뱅이 폭군인 김민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쁜 사람'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악인으로 규정지어진 사람이 말하는 진실은 힘이 있을까. 영화는 사이비에 빠진 마을 사람들이 민철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반대로 착한 사람이 말하는 거짓이 미치는 무서운 영향력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선과 악이 정반대의 기능을 하는 이 마을은 현실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지옥과 다름없다.

영화 속 배경인 마을에는 종말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희망이 사라진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어둡다. 연상호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고 있는 최규석 작가의 거칠고 투박한 그림은 영화의 주제 의식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어려서부터 뽀로로나 둘리 같은 예쁜 캐릭터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최규석 작가가 이야기에 맞는 캐릭터를 잘 만들어준 것 같다. 특히 캐릭터 디자인에 신경 쓴 캐릭터는 '민철'이었다. 일본 영화 '피와 뼈'의 기타노 다케시와 국내 배우 장항선 씨를 모티브로 탄생됐다" 

연상호감독

뛰어난 목소리 연기로 흡입력 이야기를 만드는데 일조한 배우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양익준, 오정세, 박희본이 각각 김민철, 성철우, 김영선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여기에 위선적 인물인 최경석 장로를 소름 끼치게 연기한 권해효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작품 구상 초반에는 김민철과 성철우의 대립만 생각했다. 최경석 장로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야기가 좀 더 풍부해졌다. 특히 권해효 씨가 이 캐릭터를 다양한 층위로 보이게끔 연기해주셨기에 영화가 더 잘 살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장로의 과거가 철우일수도. 철우의 미래가 장로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과 '사이비', 두 편의 장편 영화에서 모두 어둡고 비극적인 세계관을 보여줬다. 그가 보는 우리 사회는 비극이며 절망만이 가득한 세상일까.

"점점 더 희망이 없어지는 것 같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이데올로기가 존재했고, 그게 좋든 나쁘든 기댈 수 있었다. 최근에 와서는 어떤 신념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달까. 그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내가 만드는 영화에도 투영되는 것 같다"

연상호감독

영화에 대한 반응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뜨겁다. 전작 '돼지의 왕'이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영화제에 진출해 의미있는 역사를 쓴 바 있다. '사이비'는 최근 시체스국제영화제와 히혼국제영화제에서 연이어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 내년 2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선 예비 후보에 올랐다.

연상호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보고 나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그는 "우선은 '사이비'라는 영화를 관객들이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 후에 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더없이 보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차기작으로는 서울역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이 하룻밤에 겪는 대단한 사건을 그린 영화다.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감과 공포가 작품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가 될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좀비라는 장르로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