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여배우라면, 일생에 한번쯤 노출에 대해 용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온다. 여배우의 테이블에 오르는 수많은 시나리오 중 한편은 여배우의 속살을 요구하고 있다. 뛰어난 연출력을 갖춘 감독과 탄탄한 시나리오가 뒤를 받추고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결정의 순간, 고민하기 마련이다. 주인공으로 분하기 위해서는 '벗어야'하는 모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의 결정이 여배우의 미래를 바꾼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배우 조여정의 결정은 아주 쉬웠다. 2년 전 '방자전'때도 그랬고, '후궁:제왕의 첩'도 그랬다. 그녀의 선택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나리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조여정의 열정은 불타올랐다. '꼭 하리라'는 확고한 욕망이 가슴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녀는 '왜 또 다시...?'라는 질문에 '확신'이라는 단어를 주저 없이 꺼냈다. 김대승 감독에 대한 신뢰, 작품의 힘, 노출의 당위성이라는 3가지 확신은 조여정을 주저 없이 '후궁'의 '화연'이 되게끔 이끌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자기 확신에 대한 선물을 관객들로부터 받고 있는 중이다.
'후궁'으로 변신한 조여정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화연'으로 살아낸 지난 4개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매일 쏟아지는 기사와 트윗, 블로그 포스트 등을 일일이 다 챙겨본다고 들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든 생각은?
A. 눈물이 났다. 진심은 통하는구나하는 생각이랄까. 우리 배우들이 촬영하면서 가졌던 인물에 대한 애정과 고민들을 정확히 관객들도 느끼고 있더라.
Q. '후궁'은 1순위 캐스팅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여배우들이 손사래를 친 시나리오였다. 김대승이라는 확고한 브랜드가 있는데도 여배우들이 거절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조여정은 기회를 버리지 않았다. 왜인가?
A. 나는 럭키한 사람이다. 이 시나리오가 늦게라도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 몇명의 여배우가 거쳐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매니저가 김대승 감독의 시나리오라며 건네는데 말을 제대로 못하더라. 그래서 '왜? 노출이 있구나? 됐어. 줘봐. 무조건 봐야 돼" 했다.
Q.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었나?
A. 영화가 품고 있는 깊이, 인물들의 치열한 감정들이 너무나 진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노출 수위가 높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배우들의 몸을 보여주는 신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나니 빨리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김대승 감독을 만나고, 더 확신이 생겼나?
A. 그렇다. 김대승 감독님은 나한테 뭔가를 끌어내 줄 것 같았다. 감독님은 '혈의 누' 이후 '연인'이란 후속작이 엎어지면서 오랜 시간을 쉬셨다. 인고의 시간을 거쳤고 '후궁'은 칼을 간 작품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나를 던져보자고 생각했다.
Q. 그렇다면, 감독과의 미팅 자리에서 선택받기 위해 '배우 조여정'을 어떻게 어필했나?
A. 오랜 기간 '조여정은 마냥 밝을 것 같다'는 이미지가 대중들에 각인돼 있었고, 감독님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감독님이 나의 다른 얼굴을 찾아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영화 '방자전' 때 김대우 감독님이 미팅 자리에서 "제가 여정씨 전작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라고 하시더라. 그럼에도 내가 끌렸던 건 널리 알려진 작품이 없는데도 스스로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좋았다고 하시더라. 김대승 감독님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으셨을까 싶다.
Q. 또 다시 노출 수위가 강한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있었을 텐데?
A. 나는 결정을 내릴 때 주변에 상의를 잘 안하는 편이다. 스스로 결정이 끝나면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이다. 단, 작품 문제는 회사하고는 이야기를 한다. 매니저한테 그랬다, "노출 이런 건 잘 모르겠고, 나는 고(Go)야. 나머지는 알아서 해줘"라고. 엄마한테는 나중에 짧게 "하기로 했어"라고만 말했다.
Q. 그러고 보니, 정작 연기를 해야 하는 당신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한 것 같다.
A. 실제로 주변에 많은 분들이 내 결정에 대해 걱정하셨다. 또 기사로도 이미 많은 걱정을 받았고.(웃음) 그럴 때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세상에 안 나올 영화가 아니잖아요"라고. 주변의 걱정과 우려들은 작품이 나오면 다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나오지 않을 영화였다면, 주변의 걱정에 대해 속을 끓였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
Q. 아무래도 사람들은 “왜 또 벗을까?”하는 의문이 컸던 것 같다. 그런 대중들의 시선이 억울하지 않았나? 개봉하기 전까지는 굉장한 스트레스였을 텐데?
A. 왜 자꾸 '벗냐'는 대중들의 시선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충무로에는 배우도 많고 작품도 너무 많다. 특히 요즘엔 노출이 있는 영화도 많았다. 그중에는 주목받은 영화도 있지만, 받지 못한 영화도 많았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의 경우는 운 좋게 두 편 모두 화제성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봤다.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이 차가워도 '왜 나한테만 이러지' 하는 게 아니라 '이 영화가 화제성이 있고, 관심이 있기 때문이구나'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Q.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렇게 초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관객의 안목에 대한 자신감이었을까?
A. 둘 다였다. 작품의 힘을 믿고 있었고 또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준을 믿고 있었다. 언론은 개봉 전까지 당연히 '노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은 똑똑하다. 언론이 바람몰이를 하더라도 “우와~”하면서 보러가야지 하는 분들은 이제 거의 없다. 영화 외적인 자극 요소보다는 영화가 풍기는 느낌과 힘을 믿고 영화를 선택한다. 그래서 자극적인 기사들과 부정적 우려 등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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