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3일(화)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답없는 질문→곡해된 논란→냉철한 판단…'암살자(들)', 300만 돌파의 의미

작성 2026.10.13 13:02 조회 4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20일 만에 전국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첫 주말 전국 111만 명을 동원하며 추석 연휴 승자가 됐지만, 동 시기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며 생각지 못한 악재에 직면했다.

이 영화를 둘러싼 비판과 논란은 단순히 관객 평가에 그치지 않았고, 보수 진영의 반발과 공세로 이어졌다. 이들은 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출석, 영화의 상영 금지 및 수익 환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또한 국민의 힘 국회의원 전원은 한데 뜻을 모아 '암살자(들)'의 개막작 취소를 위한 서한을 싱가포르 국제영화제에 보냈고, 영화제 측이 "예정대로 상영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영화계를 넘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된 '암살자(들)'은 300만 고지를 넘어 손익분기점(약 370만 명) 돌파를 내다보고 있다. 가열된 논란이 영화 흥행의 지렛대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답 없는 질문이 일으킨 파장

'암살자(들)'은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피격 사건이 남긴 의문과 의혹을 하나하나 다뤘다. 영화는 질문을 통해 의혹과 가정을 제시할 뿐 답을 내리진 않는다. 이 점은 개봉 전만 해도 그저 영화의 모호성으로 지적됐지만, 개봉하고 나자 역사 왜곡 논란으로 확산했다.

감독과 배우,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영화가 남긴 모호성은 논란의 빌미가 됐다. 영화는 의혹 제시, 다양한 시선, 꼬리는 무는 질문으로 관객의 사유를 유도하고자 했으나 이는 곡해된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영화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배후가 박정희 대통령 혹은 국가 권력기간이라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고, 이는 역사 왜곡이라는 정치권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 관계자는 "이 영화에서 대통령이 등장하는 장면은 1분이 채 안 된다. 대사도 없고, 초반 연설 장면이 다다.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 배후설에 무게를 실으려 했다면 그렇게 연출을 했겠느냐"고 성토했다. 무엇보다 억울해한 것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 특정 방향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제작진은 "작품을 향한 어떤 비판에도 열려있다. 다만, 영화를 보고 평가를 내리고 판단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암살자들 스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실제로 이 영화를 두고 '역사 왜곡'이라 주장하는 정치인 중 실제로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TV나 유튜브, SNS에서 이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부분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볼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건전한 담론이 형성되려면 그것을 이끄는 사람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콘텐츠 자체를 외면하고 논란을 확산하는 데만 집중하는 양상을 띠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이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영화가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한 영화인은 "영화가 좀 더 명확한 선을 그었어야 했다. '중정의 위선'이라는 표현을 비롯해 몇몇 대사가 논란의 빌미를 선사한 셈이 됐다"면서 "팩션이라는 것을 활용해 영화 안에서 인과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거나 아니면 논란이 될만한 표현은 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유해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역사 왜곡과 영화 왜곡 사이"…배우들을 향한 낙인찍기까지

'암살자(들)'이 던진 의문과 의혹은 처음 나온 것들이 아니다. 앞서 허진호 감독이 밝혔듯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2005년 M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문세광과 육영수 편을 기반으로 한다. MBC는 최근 'PD수첩' 유튜브 채널에 '영화 암살자(들) 논란? 이 다큐를 보고 이야기하라'라는 제목으로 해당 다큐를 재업로드 했고 2주 만에 200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2005년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2021년 방영된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과도 비슷한 방향성을 보인다. 그러나 같은 주제라도 어떤 매체, 플랫폼을 통해 다루느냐에 따라 파급력은 다르다. 영화의 힘과 파장은 다큐의 그것과 비할 것이 아니었다.

'암살자(들)' 사태는 여, 야의 공방으로 번졌고, 보수 시민 단체들의 집단 움직임을 야기하기까지 했다.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싼 평가는 호와 불호 모두 나올 수 있다. 이건 지극히 정상적이며 건강한 반응이다. 영화는 만드는 과정까지는 감독과 배우의 예술이지만, 개봉하는 순간 관객의 오락이 된다. 대중문화는 소비하는 사람의 뜻대로 향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건전한 담론을 넘어 의도치 않은 논란을 빚어낼 때도 있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암살자(들)'의 역사 왜곡 논란은 이상한 방향으로, 예상치 못한 여파를 내며 확산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출연한 감독과 배우들을 낙인찍기와 인신공격이 자행됐다.

특히 배우 유해진을 향한 공격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폭력적인 방식이었다. 모델로 활동하는 브랜드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보수 단체 회원들이 배우 자택으로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거듭했고, 한 정치인은 유해진의 외모를 비방하며 '북한상'이라는 인신공격을 가했다. 또한 논란의 본질과 상관없는 제작자의 개인사가 보도되고 영화계의 불문율이라 할 수 있는 배우들의 러닝 개런티 내용이 공개되는 초유의 상황으로 번졌다.

그러다 보니 해외 언론도 '암살자(들)'의 국내 상황에 주목했다. 미국의 '버라이어티', 영국의 '스크린 데일리',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 타임스', 인도의 '힌두스탄 타임스' 등 외신들은 '암살자(들)'을 둘러싼 한국의 기현상에 대해 보도했고, 영화인들의 연대를 집중 조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찬사를 받던 K-콘텐츠의 본산에서, 영화 한 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괴한 사상 검증과 정치적 외압이 가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영화 보고 판단할 것"…관객은 극장으로 향했다

'암살자(들)' 사태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기보다는 집단 광기와 유사하게 전개됐다. 한 편의 영화가 불러일으킨 논란과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영화에 크게 관심 없던 대중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논란의 목격자로 그치는 것이 아닌 영화의 관람자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암살자(들)'의 주간 관객 수는 2주 차(66만 명)보다 3주 차(75만 명)에 증가하는 역주행 현상을 보였다. 물론 '암살자(들)'은 개봉 첫 주 추석 연휴, 2주 차 개천절 연휴, 3주 차 한글날 연휴라는 흥행 호재가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격렬한 논란에 휩싸인 작품이라면 초반에 큰 타격을 입고 경쟁에서 낙마하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암살자(들)'의 논란은 거대한 홍보 효과를 발휘했다. 영화를 몰랐던 사람조차 영화를 인지하게 됐고, 세간의 떠들썩한 현상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 왜곡이라는 경계에 놓인 이 작품에 대해 관객들은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로 논란 이후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관적 평가를 SNS에 공유하며 영화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살자(들)' 논란은 '영화적 상상력은 모든 논란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미 있는 질문을 남겼다. 여기에 파생돼 '영화적 상상력의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어떤 기준을 설정해야 하나'라는 영화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도 주어졌다.

확실한 것은 '암살자(들)'들 사태가 향후 영화계와 영화 제작에 끼칠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만난 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우리도 시대극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나리오를 다시 점검하게 되더라"고 전했다.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이 엄격해지는 건 작품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까,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자칫 창작자들의 창작 활동과 창작의 폭을 위축시킬 수 있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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