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최민식은 영화 '인턴'에서 힘을 뺀 연기를 선보인다. 힘을 주지 않았다는 게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처럼' 연기를 한다. 이는 내공이 필요한 경지다.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불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던 이 배우는 '인턴'에서 물처럼 흐르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아는 이 배우는 영화 '인턴'을 볼 유일한 이유다.
그러면서도 최민식은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예민함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그 예민함은 배우 스스로만이 연기에 활용할 뿐 카메라에 투영되지 않는다.
'인턴'의 실버 인턴은 귀여워야 한다. 나이를 역행하는 발랄한 자기소개로 고용에 필수적인 '쓸모'를 강조해야 하고, '감다뒤'와 '어쩔티비'와 같은 기괴한 신조어까지 아낌없이 써가며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동기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영화에서 어색하거나 낯설 수밖에 없는 이 설정은 최민식이라는 명배우와 만나 관객들을 편안하게 리딩한다. '한국 아저씨'라는 특수성으로 '인턴'의 리메이크에 차별화를 뒀다는 최민식의 연기 포인트를 전한다.
Q. '인턴' 리메이크는 오래전부터 기획됐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돼 관객과 만났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다 키운 자식 밖에 내놓은 심정입니다. 설렘 반, 기대 반이지요. 최선을 다했으니 관객의 좋은 반응을 기다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워너브라더스코리아가 철수를 하면서 난항을 겪었습니다. '나하고는 인연이 안되는구나' 싶어 그 공백기에 시리즈 '카지노'를 촬영하기도 했고요. 김도영 감독을 만나 영화가 재개되는 것을 보면서 '인연은 있구나' 싶더군요. 여태까지 작품을 하면서 영화든 배역이든 '다 짝이 있다'를 새삼 느꼈습니다.
Q. 할리우드 유명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캐릭터라 부담도 적잖았을 것 같고요.
A. 그렇죠. 리메이크의 숙명은 '비교'가 불가피하니까요. 당연히 배우 입장에서는 남과 비교되는게 부담스럽죠. 더군다나 훌륭한 원작이 있을 때는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뭘 겁내지?' 싶더라고요. 단순히 생각해서 '다 리메이크 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도 리메이크가 많이 이뤄지고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연극이었지만 말론 브란도, 비비안 리 주연의 명작으로 재탄생했고, 제가 좋아하는 김민기 선생의 '봉우리'라는 노래가 있어요. 어느 날 유튜브에서 전인권, 양희은, 한영애 씨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분들이 '내가 김민기보다 잘 부를 거야'라는 경쟁의식을 가지고 그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나만 촌스럽게 그런 생각을 해야 해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오리지널과 리메이크의 차이점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원작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재해석을 가미하는 것이요.
Q. '한국의 아저씨'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셨다고 하셨어요. 최민식이 표현하는 '한국의 아저씨'는 모습인가요?
A. 원작이 주는 향기는 남아 있겠죠. 그런데 몸뚱어리가 다르잖아요. 제 외형, 제 말투도 그렇고. 그 형님을 따라가려고 해도 그게 되겠어요? 정서적으로 차별화를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우리 식의 해석을 해 나갔죠. 그건 '한국 아저씨'여야 한다는 거였어요. 세련된 서양 남자 특유의 아우라가 아닌 한국 아저씨의 느낌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한국 아저씨하고 한국 여성 CEO가 서로 화합하는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해보자 했어요. 기호와 선우의 관계를 아버지와 딸처럼 풀어내려고 했어요. 영화 후반부에 두 사람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선우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에 "정신 차려!"라고 하는 기호의 모습은 아버지 같은 면이 있죠. 사실 그 대사는 대본에는 없었는데 제가 김도영 감독에게 말해서 '요렇게 한 번 바꿔볼 테니까 소희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소희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제 대사를 온전히 받더군요. 제가 원했던 게 그런 거였어요. '이 아저씨가 미쳤나. 내가 대표인데' 할 수도 있지만 소희도 기호의 그 모습을 아버지의 감성으로 받아주더라고요.
Q. 그 장면처럼 영화에서 애드립을 할 때, 못하게 하는 감독도 있나요?
A. 그럼요. 장재현도 있고(웃음). 저도 '내가 하겠다는데 니가 뭔데 못하게 하냐' 그러지 않아요.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계급장 달고 작업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럴 거면 군대를 가야죠. 저나 제 선배들 역시 감독의 디렉션에 거부반응을 느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감독과 배우가 생각과 해석이 차이점이 있을 수 있죠. 그럴 땐 일단 감독이 원하는 걸 보여주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내가 원하는 걸 보여줄 수는 있어요. 그거 자체를 거부하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Q. 한소희 씨를 비롯해 김준한, 류혜영, 박예니, 김요한, 한지은 등 MZ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배우들과 한 회사의 패밀리가 돼 호흡을 맞췄는데 어떤 경험이었습니까?
A. 재밌게 놀았어요. 물론 '논다'라는 것 자체가 작업을 대충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어서 이 친구들과 세대 차이는 꽤 납니다. 이젠 어느 현장을 가도 후배들과의 작업이 9할이거든요. 전 현장에서 물이 되려고 했어요. 네모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 세모 그릇에 들어가면 세모가 되려고 했죠. 재밌게 놀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신조어도 많이 알았습니다. '감다뒤', '어쩔티비'는 이제 확실히 알게 됐고, 줄임말이 수도 없이 많더더라고요. 처음엔 '감다뒤가 뭐냐. 줄이지 좀 말어'했는데 생각하면 우리 때도 '뻐꾸기 날린다'라고 하면 어른들이 '그게 뭐냐'고 혼냈던 기억이 나요. 언어도 시대와 더불어 변해가니까 그러려니 했죠.
(김)요한이와 핸드 셰이크 하는 장면도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즉석에서 배워서 한 거죠. 김 감독이 그걸 보더니 좋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익숙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죽이 척척 맞더라고요. 캐릭터나 관계의 빌드업도 되는 장치고요. 그런 과정들이 소소하고 재밌었어요. '허투루'는 아니었습니다. 항상 더듬이를 세우고 레이더를 작용하려고 했죠. 각 잡힌 작품을 하든 말랑말랑한 작품을 하든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예민함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건 더하고 어떤 건 덜하고 이런 건 없습니다.
Q. 대중에게 각인된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세고 강렬한 캐릭터잖아요. 이번 연기를 보는 관객도 즐거울 테지만 스스로가 본 나의 편안한 모습은 어땠나요?
A. 이건 맛뵈기예요. 이젠 센거 좀 대충 하려고요. (과거 출연작이) 밈으로 계속 돌고 허참.(웃음) 농담입니다. 고맙죠. 배우 입장에선 캐릭터나 연기가 각인이 됐다는 거니까요. 관심의 한 방식이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이번 작품이 나름의 도전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 새로운 옷을 입은 거죠. 이럴 때 묘한 쾌감이 있어요. 대중이나 미디어의 평가를 차치해 두더라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그걸 어떻게든 해내려는 노력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제 직업이 이런 것을요. 정서적으로나 외피나, 구도 자체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때는 설렘이 있어요. '파묘'할때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어갈 때 나오는 설렘, 기대감, 전투력이 뿜뿜... 그 맛에 연기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보여드릴게 많으니 주변에 얘기 좀 해주세요. 최민식이 아직 보여드릴게 많다고요.(웃음)
Q. 최근의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쓰임'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십니다. 중년의 배우로서 활동에 어떤 어려움을 느끼시나요?
A. 드니로 형님은 '인턴'을 노년에 하신 거지만, 저는 아직 청년입니다.(웃음) 많은 나이도 아니고요. 표현을 해내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영화계가 이 나이의 배우를 효율적으로 써먹느냐'는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예요. 저도 새로운 얼굴로 대중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싶거든요. 외국이 참 부러운게 다양한 작품이 기획이 되고, 다양한 나이대의 배우가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좀 협소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나이 먹는 게 좋아요. 철 모르고, 이해의 폭이 얄팍할 때의 표현 방식과 지금의 저의 표현 방식은 다르죠. 어떤 영화는 예전에 본 것과 지금 본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예전에는 그 맛을 이해 못 했던 거죠. 배우의 눈, 가슴이 이렇게 숙성 돼 있을 때, 이게 장점이 있거든요. 물론 젊음을 뽐내고, '제 멋짐을 좀 봐주세요' 하는 것도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라는 게 우리네 삶을 그리고 애환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면 이렇게 나이 먹은 배우들이 그 깊이를 표현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주변에 많이 좀 얘기해 주세요(웃음)
Q. 이번 작품은 물 같이 임했다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이번 작품의 연기에서는 그 '내려놓음'과 '힘 뺌'이 하나의 경지처럼 느껴졌습니다.
A. 오히려 우투투(Woo22) 식구들에게 제가 유연함을 배웠어요. 우리 때는 필름 시대라 NG 두 번 이상 내면 욕이 날라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세상도 달라지고 현장도 유연해졌죠. 내추럴함을 배웠달까요. 제가 예민해지다가도 그 친구랑 핸드 셰이크 한번 하고 나면 제가 김요한이 되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받았어요. 제가 그 친구들에게 뭘 맞춘다기보다는 그 친구들이 제게 준 게 많아요. 전 잘 섞여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Q.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오신 최민식 배우에게 현재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죽을 때까지 좋은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좋은 작품의 개념이 예술영화만이 아니라 오락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철학적 화두를 던질 수도 있고, 오락성이 극대화된 영화를 할 수도 있겠죠.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러니 주변에 최민식이 있다고 얘기 좀 해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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