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1일(월)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암살자(들)', 꼬리를 무는 질문…날개 단 영화적 상상력과 재미

작성 2026.09.21 09:41 수정 2026.09.21 10:40 조회 7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1974년 8월 15일, 제29회 광복절 경축식.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 중인 가운데 총성이 울린다. "탕, 탕, 탕, 탕"... 잇단 뒷 좌석에 앉아 있던 영부인이 쓰러지고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린다. 이후 객석에 있던 교복 입은 소녀 한 명도 쓰러진다.

광복의 역사를 기리는 기념식장이 순식간에 테러 현장으로 돌변하고, 국민들은 이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다. 영부인은 대학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재일교포 청년. 사건 발생 넉 달 만에 사형이 확정됐고 집행됐다.

여기까지는 객관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명백한 현상이나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경찰의 수사와 정부의 발표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의혹이 다수 존재한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표적인 것이 총알의 행방이다. 현장에서 울린 총성은 6발,(실제 사건의 총성은 6발 혹은 7발 주장이 혼재하지만 영화는 6발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펼친다) 발견된 탄환은 4개다. 나머지 두 발은 사라졌다. 그중에는 영부인의 목숨을 앗아간 총알도 포함됐다. 실제 발사된 탄환의 수와 들린 총성의 수, 각 탄환의 탄착점, 영부인의 머리를 관통한 탄환의 출처 등이 혼선을 야기한다.

또한 재일교포 청년은 왜 영부인을 죽이고자 했으며, 그는 어떻게 총을 몸에 숨기고도 경축식장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암살자(들)'은 이 미스터리들을 하나하나 추적하며 영화적 서스펜스를 일으킨다.

'암살자(들)'은 미완의 사건에 작가의 시선과 영화적 연출을 더 해 완성한 작품이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건 1974년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으로도 불린다)이다. 영화는 '범인 찾기'가 아닌 시대의 억압과 국가의 폭력 속에 있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며 상상력과 재미를 극대화한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건 발생 이후 52년, 증거와 증언이 추가되며 몇몇 의혹은 선명해졌지만 여전히 누가? 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는 이 미완의 사건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며 관객들을 현장 한복판으로 안내한다.

영화의 묘미는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건 이후, 경축식장에서 경호를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사 철구(유해진)는 발로 뛰며 범인을 쫓고, 동성일보 사회부 기자 재환(박해일)과 영일(이민호)은 직업적 사명과 촉수를 세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진다.

사건의 의혹을 경찰의 추적과 기자의 취재로 한꺼풀씩 벗겨내면서 대통령의 절대 권력, 국내외 정치 역학 관계, 나라 간 이권 등 얽힌 근거 있는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이는 감독과 작가의 음모론이나 뇌피셜이 아닌 당시의 자료와 후대에 밝혀진 조사와 증언을 기반으로 한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시각의 균형과 관점의 다양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정황이 유발하는 의문점, 관계된 인물들이 남긴 미스터리를 꼼꼼하게 추적하며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을 유지한다.

역사적 비극이고,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지만 소재가 가진 흥미로움, 연출과 연기가 조성하는 미스터리는 영화 내내 작동하며 눈을 떼기 어려운 호기심과 극적 재미를 유발한다.

엄혹했던 사회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동시에 언론의 사명을 묻는 영화기도 하다. 사회부 기자 재환을 연기한 박해일의 연기가 돋보인다. 유해진의 인간미 넘치는 연기는 영화의 온기가 된다. 이민호는 스타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담백하게 신참 기자의 열정을 표현해 냈다.

특히 박해일은 직업적 사명과 완고한 소신을 펼치며 원론에 가까운 '기자 정신'을 보여준다. 정론직필(正論直筆: 바른 주장을 펴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의미)을 보여주는 기자상이지만 전형적인 연기가 아닌 때론 대쪽 같고, 때론 능글맞은 입체적인 연기로 캐릭터에 개성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부인 저격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추적하던 재환은 모든 퍼즐을 어느 정도 맞췄다고 생각한다. 질문에 답이 나오기 시작했고, 진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밖엔 기사에 빨간 줄을 그어대며 검열을 하는 기관원이 있고, 안에선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리는 편집국장이 있었다.

쓰고 싶은 기사, 써야만 하는 기사를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현실에 통탄하고 있던 찰나, 편집국장이 외친다.

"곡필천주 직필인주!"(曲筆天誅, 直筆人誅 : 왜곡된 말은 하늘의 벌을 받고, 바른 말은 사람의 벌은 받는다)

내내 진실 규명을 위해 달리기만 하던 영화는 이때 한 번 터트리고, 후에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또 한 번 터트린다.

'암살자(들)'는 시대의 공기를 재현하고, 역사의 물음표를 추적하는 영화다. 제목은 단수가 아닌 복수형이다. 수차례 시나리오의 방향과 내용이 바뀌었음에도 제목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영화의 제목에 괄호를 치고 복수형을 넣은 것은 미스터리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과 질문들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암살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는 건너뛰거나 뭉뚱거림 없이 꼼꼼하게 역사의 의혹을 추적해 관객 저마다의 해석과 판단을 돕는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 무게 추를 기울이지 않고, 감독도 재단을 유도하지 않는다. 판단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극적 고양은 있지만 속 시원한 해소가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될 만하지만, 미결에 가까운 역사를 함부로 가공하거나 결론 내리지 않으려는 것이 허진호 감독의 선택이자 태도다.

영화는 시작부터 빠른 편집과 컷전환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고, 화려한 특별출연진을 쉴 틈 없이 등장시키며 관객의 시선을 잡아둔다. 영화 열 편은 거뜬히 만들 주연급 배우들이 출연 분량과 캐릭터의 경중에 연연하지 않고 등장해 제 역할을 하고 조용히 퇴장한다.

박정민은 캐릭터의 상징성과 중요도에 걸맞게 시선을 집중시켰고, 정우성은 요 근래 어느 작품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집중도 높은 열연을 펼쳤다.

영화를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을 만들었다.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영화계에 '현대사'라는 이야기의 보고를 열어젖히며 영화적 힘과 사회적 파급력을 보여줬다.

그중 '암살자(들)'은 하이브미디어코프가 만든 현대사 소재의 영화 중 가장 큰 모호성을 뛴 작품이다. 이 거대한 미스터리가 창작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실과 진실이 혼재하는 미결의 역사는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독의 영화적 연출에 날개를 부여했다.

다만 역사의 기록과 영화의 재현은 다르다. '암살자(들)'은 보고 난 후 다시 질문이 시작될 영화기도 하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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