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0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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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Y] 오우삼과 하정우 그리고 이상일…10주년 'LEAFF'가 주목한 얼굴

작성 2025.10.29 11:22 수정 2025.10.29 11:34 조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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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국 런던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의 예술성과 다양성을 소개하며 양국을 영화라는 언어로 이어온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가 10주년을 맞았다.

런던아시아영화제는 런던한국영화제를 이끌던 전혜정 위원장이 2015년 독립해 만든 영화제다. 유럽 각국에서 열리는 한국 영화제는 다수지만 아시아로 그 범위를 넓혀 연간 40여 편 이상의 아시아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는 드물다. 전 위원장은 아시아 영화의 입지가 지금과 같지 않던 시절부터 한국 영화와 아시아 영화를 꾸준히 영국에 소개하며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 주요 스태프들의 장인 정신까지 알려왔다.

올해로 열 돌을 맞은 LEAFF는 '아시아의 얼굴'(Faces of Asia)을 주제로, 아시아 영화가 보여준 다양성과 창의성을 기념하고 새로운 10년을 향한 도약을 선언했다.

런던

개막작은 그 해 영화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10주년을 맞은 런던아시아영화제는 홍콩 영화계의 전설인 오우삼(John Woo) 감독의 1992년작 '하드보일드'(Hard Boiled)을 선택했다. 이번에 상영된 영화는 4K 리마스터링 된 버전으로 보다 선명한 화질과 사운드로 관객과 만났다.

오우삼 감독은 홍콩 느와르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홍콩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고 할리우드에 진출해 '페이스 오프'(1997), '미션 임파서블2'(2000) 등을 만들며 자신만의 액션 미학을 펼쳤다.

오우삼

'하드보일드'는 비교적 덜 알려진 그의 중기작으로 '영웅본색' 시리즈와 '첩혈쌍웅'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나온 작품이다. '날수신탐'(辣手神探)이라는 원제를 가진 이 작품은 개봉 당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영국과 홍콩의 역사적 관계, 영국 내 거주 중인 홍콩 혹은 홍콩계 영국인 비율을 생각하면 '하드보일드'를 선택한 영화제의 안목은 탁월했다. 게다가 홍콩인에게는 자부심인 오우삼의 숨은 보석 같은 영화가 영국 프리미어로 상영됐다는 점은 현지 관객에게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갔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를 홍콩 영화로 입문하고, 오우삼의 느와르에 심취했던 영국 관객에게도 '하일보일드'는 재발견의 기쁨을 선사했다는 후문이다.

하드

거장의 초기작을 복원해 관객에게 공개하는 건 최근 영화계의 주요한 트렌드기도 하다. 해묵은 영화의 재탕이 아닌 명작에 대한 재조명과 재평가의 장이 되고 있다. 일례로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이 16년 만에 4K 리마스터링 돼 글로벌 시장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는 무려 18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복원판 열풍은 홍콩 영화로도 이어졌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중경삼림' 등이 4K 버전으로 개봉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고 최근에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미개봉작 '마작'이 4K 버전으로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하드보일드'도 국내 극장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정우

런던

런던아시아영화제는 매년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높인 영화인에게 '리프 어너너리 상(LEAFF Honorary Award)을 수여한다. 올해 수상자는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였다. 이번 영화제에서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을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선보인 하정우는 수상까지 하며 한국 영화의 현재이자 미래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했다.

런던에서 공개된 '윗집 사람들'은 현지 관객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가디언 등 영국 유력지에 글을 기고하는 영화 평론가 이안 헤이든 스미스는 "내용과 대사 그리고 유머 코드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윗집 사람들'은 윗집과 아랫집에 사는 김선생(하정우 분)과 수경(이하늬) 부부,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 부부가 층간소음으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스페인 영화 '더 피플 업스테어스'(The People Upstairs)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원작이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아 미국에서도 리메이크가 확정된 작품이다. 하정우 감독의 위트와 센스로 완성된 작품은 원작보다 더 과감하고 도발적인 소재 활용이 돋보이며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캐릭터 간 티키타카 속에서 풍자와 유머가 반짝인다.

올해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에서 또 하나 돋보이는 것은 한국 단편 영화와 AI 영화 초청이다. 단편 영화는 영화의 뿌리이자 모든 감독의 출발점이다. AI 영화는 현재 영화계의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다.

첫여름

LEAFF는 올해 한국 영화계에는 수확인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 여름'을 초청했다. '첫 여름'은 손녀의 결혼식 대신 남자친구 학수의 사십구재(四十九齋)에 가고 싶은 영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1등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허가영 감독은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픽션을 써 내려갔고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진 개인의 얼굴과 이야기를 영화 문법으로 그려냈다. 전혜정 위원장은 이 작품을 '여자 이야기'(Women's Voices) 섹션에 초청하며 여성의 삶을 다른 관점으로 그려낸 허가영 감독의 창의적인 시선에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국보

영화제 폐막작은 이상일 감독의 '국보'다. 재일 한국인 영화 최초로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화제의 작품이다.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이 작품을 폐막작으로 초청해 영국 관객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

'국보'는 혈통과 재능이라는 타고난 운명에 저항하며 가부키 '국보'의 경지에 오르는 두 남자의 일생일대를 그린 영화다. 단순히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를 조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체성과 뿌리에 관한 심도 깊은 화두까지 던지며 한국계 일본인인 이상일 감독의 연출 역량을 집약했다. 이 작품은 영화제 초반 일찌감치 매진돼 영화제 마지막날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월 23일 개막해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제10회 런던아시아영화제는 11월 2일까지 런던 전역에서 이어진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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