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7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어쩔수가없다'는 제2의 '기생충'이 아니다…박찬욱의 언어로 완성한 부조리극

작성 2025.09.27 12:18 수정 2025.09.27 12:20 조회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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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스틸컷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영화를 본 한 외신(Time Out) 기자는 이렇게 한줄평을 썼다.

"짜장면보다 더 검다"

'짜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일 것이다. 앞서 개봉한 '기생충'(2019)의 짜파구리를 염두한 비유라 할 수 있다. '더 검다'는 건 박찬욱식 블랙 코미디의 진한 개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저 검기만 한 블랙이 아닌, 피 한 방울 떨어뜨려 검붉어진 박찬욱식 부조리극의 색채를 의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신은 '해고'와 '재취업'이라는 소재가 지닌 동시대성과 공감대, '가족의 위기'라를 유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2의 기생충'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겠지만, 박찬욱은 봉준호가 아니고 '어쩔수가없다'는 '기생충'이 아니다.

어쩔

이 말은 제2의 '기생충'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간 관객들에게 '어쩔수가없다'는 의외의 배신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영화적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을 아는 만큼 잘 보이는 영화고, 박찬욱을 좋아할수록 더 매력적인 영화다. 만약 그 반대라면? 그리 유쾌하지 않고,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다. 모든 영화는 취향을 타지만, 박찬욱의 영화는 유독 취향 장벽이 높다.

봉준호는 지하실과 계단을 통해 계급의 사다리를 다뤘지만, 박찬욱은 계급의 층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중산층의 경쟁과 낙오 그 악다구니를 블랙 코미디 장르로 풀며 자신만의 영화 미학을 펼쳐놨다.

'어쩔수가없다'의 원작은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다. 박찬욱 감독은 1997년 발간된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무려 20여 년을 고군분투했다. 그 사이 세상은 너무도 변해버려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고민해야 했다. 주인공이 제지 회사 직원이라는 설정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소설이 기계화에 의해 인간이 대체되는 비극을 그렸다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은 위협인 AI 문제까지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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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2악장이 흐른다. 공들여 가꾼 나무가 돋보이는 근사한 정원이 카메라의 중심에 들어오고 장어를 굽고 있는 만수(이병헌)가 모습을 드러낸다. 미리(손예진)는 그런 남편 옆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애교를 부린다. 두 아이와 두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가 뛰어노는 이 전원주택의 풍경은 인상파 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아내와 아이들을 품에 안고 행복에 겨운 만수는 "다, 이루었다"는 말을 읊조린다. '어쩔수가없다'를 여는 이 오프닝 시퀀스는 향후 일어날 사건의 복선이자 전조다.

만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자 아빠, 성실한 회사원이다. 국내 한 제지회사에서 20년 넘게 근속한 그는 '펄프맨' 상까지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외국 회사와의 합병 소식이 들어오자, 그는 직원들을 대표해 구조 조정에 대응할 시나리오까지 짜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모가지'가 날아간 건 동료들이 아닌 자신이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그는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3개월 안에 재취업하겠다며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13개월 넘도록 무직 신세다. 그 사이 주택 대출금은 목을 졸라 오고 고액의 첼로 레슨비가 부담스러워 딸의 미래를 지원해 주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놓인다. 영혼이 불안에 잠식 당해나갈 무렵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나름의 묘수를 떠올린다.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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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누군가에게 '죽고 사는' 문제인 '해고'를,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의 발단으로 활용한다. '어쩔수가없다'에서 '해고'는 주인공이 나락에 빠지는 위기고, '재취업'이라는 희망은 살인을 모색하는 동기가 된다. 만수의 심리를 억압하는 두 외부 요인은 인물의 동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박찬욱은 인물이 맞닥뜨린 고통과 불안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살인'이라는 행위를 유발하는 기재로 활용한다.

감독은 '어쩔수가없다'를 리얼리즘 드라마로 풀 생각이 없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다. 그것도 박찬욱이라는 필터를 거친 블랙 코미디. 박찬욱 감독은 만수의 심리적 고통보다 상황의 곤경을 우화로 풀어내는데 집중한다. 경쟁자를 제거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불러일으키는 파국, 대책없이 살인을 모색하지만 벌레 한 마리도 죽여본 적 없는 인물이 겪게 되는 시행착오 등은 연신 웃음을 유발한다. 살인과 뒷일을 거대한 소동극처럼 그려 그걸 지켜보는 관객은 웃긴데 불편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질타하게 되는 묘한 상황에 놓인다.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호불호는 "도대체 왜 만수가 사람까지 죽여야 하나"에 대한 질문에 관객이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불호인 쪽은 "영화를 봐도 도무지 만수가 왜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지를 모르겠다"의 반응일 것이고, 호인 쪽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박찬욱식 언어로 즐기는 영화"라고 반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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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의도적인 '밀당'과 '거리두기'를 통해 관객이 만수의 상황에 몰입하기도, 관망하기도 하는 상황을 만들어놨다. 만수가 벌이는 살인은 어쩔 수가 없는 행위가 아닌 어떻게 해도 말이 안 되는 자기변명이자 합리화임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와 해학으로 보여준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자본주의의 난제를 장르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클리셰를 끌어안기도 하고, 뒤집어버리기도 하는 서커스까지 펼친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영화 언어를 해석하고, 영상 미학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특히 치밀하게 직조된 미장셴은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이 설계한 세계와 이야기는 촬영과 미술과 음악이 만나 완전해졌다. 공간은 사건의 토양이 되고, 미술은 대사의 서브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수염과 총, 태양과 달, 뱀과 사과나무 등 영화에 흩뿌려놓은 수많은 상징과 은유는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촬영은 인물의 내면과 시선을 담아내며, 음악과 음향은 캐릭터의 감정과 언어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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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누군가에게 영화는 생각 단순하고 가볍게 즐기는 오락이기도 해서 대중적인 소재와 만난 비정형적인 연출은 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이게 박찬욱이다. 지난 20년 간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물이 '어쩔수가없다'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향한 호불호도 어쩔 수가 없다.

오프닝이 풍요의 정원을 비현실적인 완벽함으로 담아냈다면 엔딩은 평화의 공장을 현실적인 공포로 담아냈다. 본인이 만든 분란과 난장을 이겨낸 만수는 거대한 쇳덩이로 가득한 제지 공장에 홀로 남았다. 인간 경쟁자를 제거한 그는 조만간 보이지 않는 경쟁자인 AI와의 싱거운 전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죄는 있고 벌은 없는 유일한 박찬욱의 영화인 줄 알았으나 죄와 벌을 넘어선 인간의 무력함을 예고하는 무시무시한 결말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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