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3일(화)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얼굴'이 새로운 제작 모델?…누구나 연상호가 될 순 없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5.09.23 16:11 수정 2025.09.23 20:19 조회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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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이 놀라운 흥행 성적을 보여주며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얼굴'은 23일까지 누적 관객 75만 1,885명을 기록했다. 누적 매출액 78억 원을 돌파했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권해효 분)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박정민과 권해효, 신현빈 등이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의 흥행에 언론은 '저예산의 기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은 2억 원의 제작비, 13회 차의 촬영, 20여 명의 소수 정예 스태프로 완성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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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역시 영화 개봉 전후부터 '얼굴'의 제작 방식에 큰 의미 부여를 했다. 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그 사이의 어떤 지점을 구축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이런 제작 방식이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게 되면 투자배급사들도 앞다퉈 시도해 볼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획기적인 시도와 의미 모두 주목할 만하다. 다만 '새로운 제작 모델'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그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우려점도 적잖다.

'얼굴'은 배우들의 노개런티뿐만 아니라 제작 스태프의 최저 시급이라는 희생이 있었기에 완성할 수 있는 저예산 결과물이다. 박정민, 신현빈 등 주요 배우들은 대부분 무보수로 출연했다. 다만, 지방을 오가는 촬영이기에 매 회차 기름값 정도의 거마비는 받았다. 헤드 스태프들의 경우에도 '막내' 수준의 최저 시급을 받고 영화 작업을 했다. 이런 희생이 가능했던 건 지분 할당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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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 따라 차이(배우별 계약 조건 상이)는 있지만 제작사의 지분을 많게는 10% 이상, 적게는 10% 이하로 받는 계약을 했다. 최저 시급으로 인건비를 받았던 주요 스태프 역시 지분 계약을 맺었다. 지분 할당 계약은 상업 영화에서 톱배우들이 왕왕하는 방식이지만 대략 5% 내외로 한다. 그러나 '얼굴'은 주요 배우와 헤드 제작진에게 그 이상의 지분을 할당했고,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인해 고위험을 감수한 고수익을 안길 수 있게 됐다.

'얼굴'은 소재의 비상업성으로 인해 투자배급사를 오랫동안 찾지 못했다. 상업 영화 규모로 제작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린 연상호 감독은 사비를 투자해 저예산 영화로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은 제작비는 투자하지 않고 배급만 맡았다. 이 는 연상호 감독에겐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 됐다.

한국 영화는 통상적으로 매출을 극장과 나눈 후 손익분기점 돌파 시점부터 투자사와 제작사가 수익을 6:4로 배분한다. 그러나 '얼굴'의 경우 연상호 감독이 이끄는 제작사인 와우포인트가 제작비 전액을 부담했다. 다만 '얼굴'은 저예산이기는 하지만 홍보마케팅비용(P&A)에 제작비 이상을 투입했다. 와우포인트는 플러스엠에 배급 수수료와 P&A 비용을 정산하고서도 최소 2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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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초저예산 제작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연상호'라는 브랜드 덕분이다. 배우, 스태프 입장에서는 천만 흥행 감독인 데다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연상호였기에 흥행 혹은 영화제 초청을 기대하고 한 선택이다.

연상호라서, 연상호이기에 가능했던 시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같은 성공이 단순하게 '신화'나 '기적'으로 조명된다면 매번 2,3억 원의 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진짜 독립영화'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 제작비 비교 대상이 '얼굴'이 되고, 배우 캐스팅 기준이 박정민과 신현빈급이 될 수 있다. 또한 국내 5대 배급사의 배급력을 등에 입는 것도, 상업 영화 방식으로 홍보마케팅을 펼친 것도 일반적인 독립영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상업영화계의 스타로 발돋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누구보다 독립영화 제작 환경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얼굴'을 두고 "새로운 제작 방식"이라고 강조하고, "마음의 빚 갚으려면 천만은 들어야 한다" 등의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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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만난 한 영화 제작자는 "'얼굴'의 흥행에 대해 고무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연상호도 2억 원으로도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드는데 너넨 왜 안 돼?'라는 투자사, 관객들의 인식이 생길까 봐 걱정스럽다"라고 성토했다.

새로운 제작 모델을 마련하려면 예산에 맞는 제작이 이뤄져야 하지 노개런티로 예산을 줄인다는 걸 어불성설이다. 이런 제작 형태가 일반화된다면 '열정 페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독립영화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은 영화계의 제도적 개선이나 정부의 예산 지원이라는 보다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문제다.

영화의 흥행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고, 흥행 보너스인 러닝개런티 혹은 지분 할당은 받을 확률보다 못 받을 확률이 높다. '선 노동, 후 보상'은 그 결과가 성공적이라 해도 '모범 사례'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70년대가 아니지 않은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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