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5일(토)

방송 방송 인사이드

[빅픽처] '오겜3', '말'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냈다…황동혁의 휴머니즘

김지혜 기자 작성 2025.07.02 10:50 조회 744
기사 인쇄하기
오징어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우린 말이 아니야. 사람은..."

"456번, 아직도 인간을 믿나"라고 물었던 프론트맨(이병헌)의 조소 섞인 질문에 대한 성기훈(이정재)의 답은 이것이었다. 돈을 좇아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악다구니를 그렸던 '오징어 게임'은 인간다움을 회복하고자 한 성기훈의 선택으로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다. 이것은 황동혁식 휴머니즘이었다.

2021년 출발한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시즌3로 마침표를 찍었다. 아이들의 놀이를 데스 게임으로 활용하며 서슬 퍼런 재미를 선사하고,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까지 보여줬던 '오징어 게임'은 시즌2,3로 이어지는 시리즈화를 이뤄냈고, 4년 만에 대미를 완성했다.

오징어

성공한 작품의 후속 시리즈는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되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성공의 기준점은 전편이 될 수밖에 없고 '오징어 게임' 시즌2,3 역시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즌1과 끊임없이 비교당했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은 시즌3에서도 시즌1의 성취를 능가하지 못했다. 호불호가 갈렸던 시즌2와의 비교에서도 쉽사리 우위를 점하지 못한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재미'를 놓지 않았다. 싫든 좋든 시청자들을 화면에 붙잡아두는 힘만큼은 대단했고, 이 놀라운 몰입감은 시즌1부터 3까지 모두 넷플릭스 글로벌 1위라는 빛나는 상업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다.

오징어

◆ 극단적 전개·소비된 캐릭터·룰 파괴…메시지 위해 내달렸다

시즌1은 현대 사회의 부와 계급, 빈부격차의 문제를 짚었고, 게임과 서바이벌이라는 무한 경쟁을 통해 부의 사다리에 오르고자 한 사람들의 욕망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캐릭터는 매력적이었고, 이야기는 매혹적이었으며, 게임은 흥미로웠다.

감독의 계획에 없었던 시즌2,3는 기존의 스토리를 확장하고, 보다 포괄적인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을 이겨내지 못한 듯 보였다. 이야기가 확장됐고 인물은 많아졌으나, 서사와 캐릭터의 깊이는 되레 얕아졌다.

이해와 공감대라는 강력한 무기를 잃은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자극과 파국으로 점철된 모양새를 보였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에 함몰된 듯한 시즌3는 프로파간다처럼 메시지만 남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징어

시즌3는 황동혁식 휴머니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인간성 회복의 의지와 후세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뼈저린 반성을 성기훈의 선택을 통해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메시지를 위해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설정됐고, 캐릭터들은 무자비하게 소비됐으며, 시즌1,2까지 구축해 놓았던 게임의 룰마저 파괴하다시피 했다. 사실상 무임승차한 데다 자의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인물이 최종 우승을 거머쥔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 건 자초한 결과다.

무엇보다 시즌2부터 한국 사회를 압축하기 위해 유형화된 인물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됐지만 캐릭터의 생명력은 부여받지 못한 채 죽음의 희생양으로만 소비된 것이 가장 아쉬웠다. 시즌1의 일남, 새벽, 상우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는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

황동혁

◆ 확장된 게임 활용법…치밀한 설계로 선명해진 메타포

미묘하게 달라진 게임 활용법은 인상적이었다. 시즌1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 한국적 놀이문화를 456억 원을 건 게임으로 가져온 발상이 탁월했다면 시즌2,3부터는 '성기훈의 재도전'에 따른 더 큰 의미부여가 이뤄지며 게임 자체도 볼거리나 재미보다는 상징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강해졌다.

그러면서 게임에 투영한 황동혁 감독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돋보였다. 술래잡기는 정점에 오른 세트의 활용이 돋보였고, 줄넘기는 게임의 상징인 영희와 철수가 동시에 등장하며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줬으며, 마지막 게임인 '○△□'에서는 경쟁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까발리는 황동혁 감독 특유의 구조와 형식미가 돋보이는 세팅이었다.

황동혁

폐공사장을 떠오르게 하는 세팅에 '안전제일'이라는 문구, 그리고 탈락자를 절벽 밑으로 밀어버리는 게임의 룰은 무한 경쟁 사회, 성장 지향주의 사회에서 낙오되고 밀려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을 상징했다.

참가자들이 탈락자를 정할 수 있는 룰로 인해 성기훈과 222번은 불리한 위기에 놓였다. 나머지 6명의 참가자들이 사실상 담합을 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성기훈은 늘 그러했듯 능력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측 불가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다.

사실상 3라운드로 구성된 마지막 게임에서는 인간의 추악함의 끝을 볼 수 있었다. 2라운드까지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이른바 '도시락'이라 불리는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누군가를 내몰기 위해 마련된 도시락은 옷 보자기에 싼 생명과 대비를 이뤘으며 이는 몰인간화와 최후의 인간애를 보여주는 명징한 상징으로 기능했다.

오징어 게임

게임의 세팅과 형식, 위기를 풀어나가는 아이디어 곳곳에 상징과 의미가 가득했다. 살아남은 8명의 참가자들이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은 긴장감과 공포, 경악의 감정을 선사하며 극은 클라이맥스로 치닫았다. 마지막 게임에서 명기(임시완)가 보여준 선택과 심리 변화는 놀랍도록 끔찍했지만, 가장 현실적인 악다구니기도 했다. 황동혁의 휴머니즘은 인간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는 일종의 사회 실험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창작자로서의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그의 집요함과 신랄함에 소름과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황동혁의 휴머니즘에 깔린 인간에 대한 시선은 '성악설'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가 지향한 메시지는 인간다움을 잃지 말자는 것, 그 결론은 이런 류의 작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뻔한 돌림노래다. 그러나 주제의식에 이르는 그 과정의 극단적 리얼리즘은 인간의 민낯을 가장 신랄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오징어

◆ 황동혁의 페르소나 이정재…그에게 찬사를

누가 뭐래도 '오징어 게임'은 이정재가 주인공인 우화다. 그가 연기한 성기훈은 '가장 보통의 서민'을 모델링 했다. 실제 쌍문동에서 나고 자란 황동혁 감독은 시즌은 1에서 정확히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5:5 비율로 나눠 창조한 듯한 성기훈과 박상우 캐릭터를 내세웠다. 박상우가 자신의 배경적 요소를 투영해 만든 인물이었다면, 성기훈은 자신의 내면적 요소를 투영해 만든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결국 주인공으로서 살아남아 시즌2,3까지 생명력을 발휘한 것 성기훈이었다.

성기훈은 시청자 누구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정재의 종전 세련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VIP 중 한 명에 어울리지만 시즌1의 바닥 인생에서부터 천천히 빌드업한 '성기훈'은 '배우 이정재'에게도 확장과 진화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오징어

이정재는 어리숙한 표정과 순박한 미소로 친근함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유도했고, 디테일한 감정연기와 심리묘사로 악의 없는 순진함이라는 성기훈의 강력한 매력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순수 인물만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사채빚에 쫓기고 가족에게도 외면당한 성기훈은 사실상 사회의 끝에 내몰린 소시민이었다. 그런 그는 스스로 오징어 게임에 들어가 '말'이 되기를 자처했다. 돈 앞에 눈이 먼 나약한 인간이었고, 경쟁 앞에서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며, 승리를 위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가장 보통의 사람이었다.

시즌2의 성기훈은 돈을 얻었으나 희망을 잃고,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이때부터 이정재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거진 지적은 한 가지 표정과 하나의 발성으로 똑같은 연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456억 원은 얻었지만 영혼을 판 것과 다름없는 여정을 펼친 그가 첫 도전에서처럼 범인(凡人)의 희애락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 건 어불성설이다. 죽음의 게임에 재참가한 그에게 남은 건 '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뿐이었다. 시즌2,3에서 단 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내달리는 그에게 시즌1의 다이내믹 에너지와 풍성한 연기를 기대하는 건 놓여진 상황에 맞지 않은 주문이다.

황동혁

이정재는 황동혁의 가장 충실한 '말'이었다. 감독의 세계관, 연출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충실히 수행한 그는 누가 뭐래도 '오징어 게임' 그 자체인 인물이다. 이정재는 감독의 선택과 판단에 동의하면서 '황동혁의 성기훈'을 구현하는데 집중했다. '오징어 게임'에 '말'로 들어갔으나 '인간'이 돼 게임을 마무리한 즉, 인간의 선함과 존엄을 가진 성기훈을 완성하며 이정재는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누군가는 '우리가 사랑했던 성기훈은 없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는 결국 지난한 여정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즌1의 박상우가 답답해했던 'XX, 기훈이 형'으로 남았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서 황동혁의 유일한 페르소나로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충실했다. 그런 그에게 찬사가 가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하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