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5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대배우' 석민우 감독을 안심시킨 박찬욱의 한마디

작성 2016.03.30 10:32 조회 915
석민우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대배우'는 세상의 모든 배우를 위한 헌사다. 최정상의 톱스타에게도 무명의 시절은 있고, 무명의 배우에게도 스타가 될 열정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상기시킨다.

무명의 연극배우 장성필(오달수)의 고군분투기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보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또 한 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영화감독 '깐느박'(이경영)이다.

'깐느박'은 실존인물인 동시에 고유명사에 가까운 캐릭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감독이자 칸영화제 단골손님인 박찬욱을 지칭한다. 더불어 이 인물은 작품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어떤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충무로의 거장 박찬욱 감독의 캐릭터를 거침없이 영화에 끌고 온 간 큰 감독은 누구일까. 영화를 보노라면 연출을 맡은 석민우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올드보이'(2003)를 시작으로 무려 4편의 영화에서 박찬욱과 호흡을 맞춘 그다.

박찬욱의 애제자로 알려진 석민우 감독은 데뷔작의 주요 인물에 은사의 캐릭터를 입혔다. 창작의 주요 원천은 경험이고, 모델은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대배우

◆ "박찬욱 감독, 시나리오 읽고 재밌다고…"

"나쁜 의도를 가지고 '깐느박' 캐릭터를 만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다. 감독님이 '스토커' 작업 끝내고 연출부를 불러서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근황을 물었다. 냉큼 "시나리오를 하나 쓰고 있는데 한 번 봐주세요"했다. 얼른 보내라고 하시더라. 그 때 "감독님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 나옵니다"라고 처음 말씀드렸다"

시나리오를 본 박찬욱 감독의 피드백은 석민우 감독을 안심시켰다. 석민우 감독은 "첫 마디가 "야, 재밌더라"였다. 그러면서도 상업적으로는 조금 우려된다고 하셨다. "다른 것보다도 못 나가는 연극배우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까"라고 하시더니..."아냐. 그래도 재밌으니 됐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자신을 딴 캐릭터에 대해 한 마디 할 법도 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자신과 호흡을 맞춘 애제자의 데뷔를 응원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깐느박' 캐릭터는 석민우 감독이 10년 이상 지켜본 박찬욱 감독의 특징적인 모습을 투영해 만들었다. 영화에 대해서 만큼은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이며,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젠틀한 매너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에 트레이드 마크인 네이비색 재킷에 정갈한 머리, 철테 안경을 쓴 외모까지 형상화했다. 더불어 와인 애호가로서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경영에 대해서는 "얼굴이 닮아서 캐스팅한 것은 아니다. '깐느박'은 실제로 박 감독님을 알고 있는 분이 연기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알고 연기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 단순한 행동 묘사가 아니라 성품이나 생각까지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하면 잘 살릴 것 같았다. 이경영 선배님은 과거 '삼인조'를 통해 박찬욱 감독님과 인연을 맺었기에 적역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석민우 감독은 이경영의 캐스팅에 노심초사했지만, 이경영은 "내가 언제 깐느박 역할을 해보겠냐"며 출연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석민우감독

◆ "'대배우', 꿈을 향해 정진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

'대배우'는 배우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감독에 관한 영화 그리고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로 오프닝을 열고 연극, 영화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을 펼친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현장을 재연한 신들은 디테일이 뛰어나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장성필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등장하는 '악마의 씨'는 '박쥐'에 참여했던 석민우 감독의 기억을 떠올려 만들어낸 신들이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했던 장성필은 관객이 아닌 카메라에 시선을 맞춰야 하는 것에 허둥지둥하고, 한 번의 라이브 연기가 아닌 수십 차례의 테이크가 반복되는 촬영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배우의 관점에서 겪어보지 않고서는 쉽게 묘사하기 어려운 신이다. 석민우 감독은 조연출 생활 당시 영화로 넘어온 연극배우들이 겪은 혼돈을 많이 봤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시퀀스라고 했다.

대배우

"연극을 오래 하다가 영화로 넘어온 분들은 굉장히 의욕적이다. 그 의욕이 리허설 때부터 넘쳐서 에너지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와 연극은 차이가 있는데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연극은 현장 예술이고, 영화는 카메라에 촬영된다. 여러 테이크 중 가장 좋은 컷을 쓰는데 초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다가 뒤에선 지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뽐내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연기를 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분들이나 나나 '꿈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 아닌가' 하는 동질감을 느끼곤 했었다. 언젠가 이 사람들에게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장성필의 마음은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장기간 활동하다 영화계의 '천만 요정'으로 자리매김한 오달수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맞춤에 가까운 오달수의 출연과 진심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는 석민우 감독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 "장성필은 나의 자아를 투영한 캐릭터"

석민우 감독은 주인공 장성필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했다.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했던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는 의미였다.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지만,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확신은 없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장편 영화 한 편만 참여해 보자고 생각했다. 수많은 영화의 연출부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메이킹 필름을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그때 첫 작업이 '지구를 지켜라' 메이킹 필름을 찍는 일이었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올드보이' 연출부에 들어가게 됐다"

이후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까지 연달아 박찬욱 감독 작품의 조연출을 하게 됐다. 그 사이 김지운 감독의 '쓰리 몬스터', '악마를 보았다'에도 참여했다.

대가와의 작업은 석민우 감독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터다. 석민우 감독은 "영화를 잘 찍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예술이라는 게 단순 복사나 복제가 되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와 배우 등 환경과 조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단 작품에 임하는 태도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건 감독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했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어떤 원하는 것이 안 됐을 때 절대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게 있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냐.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안 될 때 차선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다. '대배우'를 찍으면서 흔들리고 약해질 때마다 '이때 감독님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석민우감독

영화 속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꿈을 포기하려는 장성필에게 그의 아내가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라고 말하는 신이다. 석민우 감독에게 "당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감독 준비를 하면서 두 편의 영화가 엎어졌다. 그사이 결혼해 한집안의 가장이 됐고, 아이 둘을 낳았다. 나 역시 내 꿈을 합리화하기 위해 "가족을 위해서 하는 거다"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은 내가 좋아서 해온 일인데 말이다. 자성의 목소리를 담은 장면이다"

데뷔작을 통해 자신의 감각과 가능성을 보여준 석민우 감독은 "'대배우'가 복합 장르였다면 차기작은 명확한 장르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새로운 장르 영화나 실화 영화 이 두 가지에 큰 관심이 있다"고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과 포부를 밝혔다.

아직 무엇도 결정된 것 없지만, 첫 발을 내딛은 그는 넓게 멀리보며 나아갈 예정이다. 석민우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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