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반공 아이돌 이웅평, 화려한 수식어 뒷면 지난했던 '남한 생활' 조명

작성 2026.09.04 05:34 조회 4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자유를 꿈꾸며 남한으로 온 귀순 용사 이웅평.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라는 부제로 귀순 용사 이웅평의 그날을 조명했다.

1983년 2월 25일, 서울과 경기 일대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북한 전투기가 우리 영공으로 넘어왔다는 것.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긴장하던 그때 북한의 전투기는 조종간을 좌우로 흔들며 우리 군의 지시를 따르겠다며 그러니 공격하지 말라는 의사를 보내왔다.

이에 수원 공군비행장에 착륙하게 된 북의 전투기. 잠시 후 캐노피가 열리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조종사가 두 팔을 올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나 총에 맞지 않게 해 주시오. 나 할 말 많습니다"라고 했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서 온 그는 북한 공군 조종사 이웅평. 그는 북한이 또다시 남침을 준비하고 있다며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폭로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귀순 의사에 위장 간첩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으나 그는 일급 군사 비밀을 모두 공개했고 자신이 타고 온 미그-19기도 정부에 내주었다.

이에 정부는 역대 최고치의 보상금인 15억 6천만 원을 그에게 건넸다. 이는 당시 은마 아파트를 78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또한 그는 북한에서의 경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공군 소령으로 임명되었고 이에 성대한 임관식도 열렸다.

반공 아이돌로 스케줄이 끊이지 않았던 이웅평. 그는 북한의 상위 1% 초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손이 귀한 집 장손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친척이 남쪽으로 간 정황이 포착되며 아버지가 숙청되었고,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이제 우리 가족은 끝이다. 여기 있으면 네 앞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네 살길을 알아서 찾아라"라는 말 한마디에 체제의 부당함을 느끼고 귀순을 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음에도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계속해서 그리워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자신의 전담 과외 선생인 공군대학 교수의 딸 선영 씨에게 반한 이웅평. 그는 나이차도 꽤 나던 선영 씨에게 다가가고 싶어 소개를 핑계로 계속 연락을 했다.

이후 이웅평은 선영 씨의 부모님 허락을 받기 위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라며 장맛비 속에서 몇 시간을 견뎌냈고 결국 그렇게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러나 암살과 테러에 대한 두려움으로 항상 불안하게 살아야 했던 이웅평. 이웅평 부부는 안전을 위해 공군 관사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설치된 도청 장치를 발견한 선영 씨. 밖에서는 북한의 테러를 안에서는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었던 것. 이에 선영 씨는 도청 케이블을 모두 떼어내서 보안사령관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선영 씨는 "이런 상태에서 못 살겠다. 내가 싫어서 이혼하는 걸로 해달라"라며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반겼던 보안사와 안기부는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이에 선영 씨는 "하루를 살더라도 나가 살게 해 달라. 어떡하실래요 저희 나가서 살게 해 주실래요 아니면 바로 이혼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나가서 걷다가 총 맞아 죽는 거? 그건 운명이다, 그 대신 단 한 시간을 살더라도 편하게 살자"라며 공군 관사를 나가자고 제안했다.

결국 민간 아파트로 이사한 두 사람은 그곳에서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역시 늘 바빴던 이웅평. 그는 며칠이고 연락이 두절되었고 홀연히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많은 동포들이 귀순하길 바랐던 이웅평은 북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앞장섰던 것.

이후 공군대학 교수가 되고 대령으로 진급도 한 이웅평은 공군대학이 있는 대전에서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1997년 11월, B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로 쓰러진 이웅평. 병원에서는 선영 씨에게 국립묘지를 알아보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남편을 살려야 된다는 생각 하나로 절대 죽는다는 생각은 안 했던 선영 씨. 그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당시 이제 막 도입되었던 간 이식 수술 제안을 받은 이웅평. 이에 선영 씨는 간 기증자를 찾기 위해 장기 매매를 주선하는 불법 전단을 보고 연락까지 했다.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나타난 기증자.

하지만 기증자가 여성이라 수술 성공 확률은 단 20%. 이에 선영 씨는 연명만 할 수 있다면 좋다며 수술에 동의했고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었다.

한 달처럼 느껴진 15시간이 지나 수술이 끝나고 무균실로 이동한 이웅평. 선영 씨와 가족들은 극진히 그를 병간호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드디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건강을 회복한 이웅평은 가끔 친구와 함께 임진각으로 가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삼켰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 행동에 선영 씨에 대한 의심까지 하던 이웅평. 심지어 어느 날은 연락 두절이 되었고 이에 선영 씨는 기관에 도와달라 요청했다. 이에 병원으로 이송된 이웅평.

그는 어느 날 선영 씨에게 "나 당신이 해준 물김치가 먹고 싶어"라고 했고, 이에 선영 씨는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피를 쏟아내며 괴로워하는 이웅평은 물 한 통만 달라고 했고, 물 한 통을 다 비운 후 선영 씨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안 해도 될 고생 해서 고생 참 많았고 고마웠소"라며 아이들을 잘 길러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이에 선영 씨는 "떠나기 전 모질게 했던 행동들이 다 정 떼려고 그랬나 보다 하고 이해가 됐다"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사망하기 전 누나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식수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에 쇼크를 받았었다"라며 그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떠났던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준 보상금을 통일이 되면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쓰기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았던 이웅평. 자유를 찾아서 남한으로 왔지만 평생을 불안 속에 살았던 이웅평. 세상을 떠난 지금 비로소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 선영 씨는 남편이 정말 힘든 삶을 살았다며 그럼에도 그의 삶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울림이 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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