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7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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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김영삼 前대통령,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 고쳐버리겠다"···'조선총독부' 철거 염원한 이유는?

작성 2026.07.17 05:59 수정 2026.07.17 06:01 조회 5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조선총독부 철거의 그날을 추적했다.

1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조선총독부 철거의 날을 조명했다.

지난 1995년 여름, 광화문 일대에 5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한해 중 가장 무더웠던 날이지만 누구 하나 짜증을 내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이 기다린 것은 바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 조선총독부의 첨탑 철거였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지만 조선총독부 철거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 철거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고 특히 철거 반대에 대한 의견이 과반 이상이 되기도 했던 것.

치욕적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일제 만행의 증거로 보존하자는 의견부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철거이니 만큼 건물 하나 부순다고 아픈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국민 혈세를 사용해도 되냐는 등 여러 이유로 철거를 반대했다.

또한 70년 동안 4번 주인이 바뀐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단호했다. 그는 취임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대한 조속한 철거를 지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보존해야겠지만 민족적 치욕의 상징물도 문화재라 할 수 있냐"라며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개혁할 수 없다"라는 모토로 조선총독부의 철거를 주장했던 것.

조선총독부는 공간 자체로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가 명확한 일본 제국주의의 의도성이 굉장히 짙게 깔린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조선 왕조의 상징적인 경복궁 앞을 가로막고 세워진 이 건물은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를 끊어버리려는 의도가 엿보여 분노를 자아냈다.

건설 기간 11년, 건설 비용 1800억 원.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조선의 자재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조선총독부. 우리 손으로 식민 지배의 본거지를 짓게 한 것이었다. 또한 일본은 막대한 건설 비용 마련을 위해 우리 문화재를 매각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벌이기도 했다.

그 한 예로 조선왕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선원전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의 부엌 겸 창고로 팔려나갔고 이러한 과정에서 경복궁은 계속 훼손되며 일제강점기 전 건물수 총 509동이었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친 후 남은 건물수는 고작 36동, 90%가 넘는 건물이 모두 매각, 철거되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 앞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광화문도 없애버렸다. 그리고 경복궁의 중심축과 총독부의 중심축을 어긋나게 설계해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지워버리고자 했다.

3.75도를 틀면 남산을 향했는데 당시 남산에는 일본의 신을 모시는 조선신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위에서 바라봤을 때 일본을 뜻하는 한자 날 일 자처럼 보였는데 이는 마치 대한민국 한복판에 날 일 자 도장을 찍어버리겠다는 일본의 진짜 의도가 담긴 것 아니었을까.

이런 치욕의 역사인 조선총독부. 그런데 철거가 결정되고 가장 먼저 첨탑이 제거된 후에도 1년간 철거는 진행되지 않았다. 철거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특히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용했던 조선총독부. 이에 많은 유물들을 훼손 없이 없이 옮겨야 했는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50미터 거리의 고궁 박물관으로 임시 이전이 결정되었지만 생명보다 유물이 먼저였던 관계자들에게 유물 옮기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지하에서 충격적인 것이 발견되었다. 철문 두께가 무려 14cm에 달하는 감금 시설이 발견된 것. 밖에서 거는 잠금장치와 감시창까지 존재한 이 공간은 당시 일본이 조선이라는 공간을 어떤 시스템으로 통치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공간 곳곳에서는 고문의 흔적들이 발견되어 또다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조선총독부 철거가 결정된 후 일본인들은 조선총독부가 사라지기 전 이를 보겠다며 앞다퉈 우리나라로 왔다. 그리고 "그 시절이 그립다, 역사적으로 귀한 건물을 왜 부수냐" 등 망언을 쏟아냈다.

특히 일본 총무성 장관은 "일본은 한일 합방을 통해 한국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창씨개명도 강제로 진행되지 않았다"라는 망언으로 공분을 자아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을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버리겠다"라고 맞섰다. 그는 "역사에 대해 내가 관용을 베풀 이유는 없다"라며 확실한 입장을 밝혔던 것.

시간이 흘러 첨탑 제거 11개월 후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었다. 한 층 한 층 한 겹 한 겹 철거가 진행된 조선총독부는 1996년 11월 13일,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가장 상직적인 공간이 된 광화문 광장. 만약 지금도 조선총독부가 있었다면 그곳은 현재의 의미였을까?

조선총독부가 사라지고 다시 쓰인 역사. 1995년 8월 15일 그날의 파괴는 대한민국을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한 건설적인 파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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