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선약국을 아세요?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사라진 지 수십 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선약국에 대해 조명했다.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준 희대의 명약, 선약국의 화상연고. 사라진 지 30년이 된 선약국. 약국이 자리하고 있던 서울 왕십리 행당동에서는 이 약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고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990년대 유난히 많았던 화상 사고, 이에 선약국의 화상연고는 그 시절 사람들에게 필수 상비약이었다. 이에 제주도에서까지 이 화상연고를 사기 위해 날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선약국의 화상연고에 대한 간증글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선약국에 대한 취재가 진행되며 이에 대한 제보는 무려 200건 이상에 달했다.
지금도 누군가의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선약국의 화상연고. 보물단지처럼 모셔둔 이 약의 성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선약국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의약 분업이 전면 시행되어 약국 자체적으로 약을 조제하는 것이 불가했기에 이에 따른 영향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남기고 사라진 선약국. 내부 사정으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공지에 소위 말하는 오픈런까지 발생했었다고.
제작진은 선약국과 화상연고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고 추적 끝에 선약국 약사님의 이름을 알아냈다. 최근까지도 선약국 약사님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데 약사님의 이름은 신제선.
또한 방송은 선약국에 관련된 기사도 찾아내 눈길을 끌었다. 뚝심 있는 연구 끝에 화상연고 만들어낸 약사님은 늘 돈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자신의 약학 지식으로 타인을 보살핀 약사님.
한 제보자는 심한 화상으로 피부 이식까지 생각해야 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선약국을 찾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약사님은 환자의 상태를 보고 걱정하며 그 자리에서 화상연고 한 통을 듬뿍 발라주었고 돈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화상은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나았다고. 이에 제보자는 약사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화상뿐만 아니라 욕창, 골수염, 동상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제보자들. 그리고 일부 제보자들은 경기도 양주 일영에서 약사님을 봤다는 제보를 했고 이에 제작진은 일영으로 약사님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과거 일영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진 약사님. 하지만 더 이상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던 가운데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약사님의 흔적을 찾아냈다.
2009년, SBS로 제보 전화를 받은 박성호 카메라 감독. 그는 한국전쟁 당시 컬러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당시 해외에 거주 중이었던 제보자에게 메일로 사진을 받은 박 감독.
하지만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훗날을 기약하며 취재를 미루었다. 그리고 2024년 제보자와 다시 연락이 닿은 박 감독.
그는 마침 한국에 들어온다는 제보자를 만났다. 해외에서 친해진 미국인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컬러 사진을 받게 되었다는 제보자. 특히 제보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지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제보자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잡힌 민간인 포로로 이후 석방이 되고 한국 군대에 갔다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약사를 했었다고. 제보자의 아버지가 바로 선약국의 약사 신제선 약사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박 감독은 꼬꼬무에서 선약국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해왔고 이에 제작진은 선약국 약사님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 시애틀까지 날아갔다.
신제선 약사의 아들인 제보자 신윤환. 그는 제작진과 박 감독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제작진이 건넨 선약국의 화상연고를 보며 "저한테도 큰 기념품이 되겠다"라고 감격했다.
지난 2008년 11월, 사망한 신제선 약사님. 그의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와 선약국, 화상연고를 그리워하고 찾고 있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쟁이 한반도로 할퀴었던 시기,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화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약을 언젠가 꼭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던 신제선 약사.
북에서 약학 공부를 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남아 약학 공부를 했고 두 번만에 약사 고시에 합격해 1970년 1월, 서울시 행당동에 선약국을 열었다.
늘 환자들에게 선의를 베푼 신제선 약사님. 약국 앞에는 늘 손님이 줄을 섰지만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고. 1990년대 연고 한 통 가격은 단돈 3천 원. 오랜 시간 약값을 유지하며 돈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살았다.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상처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약사님. 이에 환자들은 약사님의 따뜻한 위로에 이끌려 선약국을 방문했다.
과거 의약 분업으로 화상연고를 더 이상 조제할 수 없게 된 것은 진실이나 정말 선약국이 문을 닫았던 이유는 약사님이 앓고 있던 지병의 악화 때문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약국 운영이 힘들어 경기도 일영으로 이사를 갔던 것.
그리고 약사님은 어떻게 알고 집 앞으로 몰려온 환자들에게 마지막 남은 약까지 다 내어주었고 지난 2008년 하늘로 떠난 것.
화상연고에 대한 특허증을 입수한 제작진. 방송은 약의 성분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무성했던 여러 소문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약의 성분을 혼합해 바르면 습윤 유지와 2차 감염을 차단하고 피부의 재생 능력을 높이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방송은 화상연고의 가장 중요한 원료가 다른 무엇도 아닌 약사님의 선한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치유만을 바란 신제선 약사. 그리고 환자가 낫는 게 기뻐서 그 낙으로 살았던 약사. 그의 그 착한 마음은 또 다른 착한 마음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먼 훗날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세상을 온기로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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