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4일(화)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정은채, 멋있다…또 다른 얼굴로 증명한 배우의 가치

작성 2026.03.24 18:02 조회 63
정은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라는 직업이 배역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 최근 정은채의 행보는 신기할 정도다. '안나'의 안하무인 부잣집 딸 현주, '파친코'의 선한 동서 경희, '정년이'의 국극 왕자님 문옥경, 특별출연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작업반장 이주영까지.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이 확 바뀌는 변신을 거듭해 왔다. 그야말로 팔색조 같은 매력이다.

그리고 정은채가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했다. 최근 종영한 ENA 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을 통해서다. '아너'는 20년 절친 관계인 여성 변호사 3인방 윤라영(이나영 분), 강신재(정은채 분), 황현진(이청아 분)의 우정과 연대를 바탕으로, 이들이 성착취 앱 '커넥트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투쟁과 회복의 여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정은채가 연기한 강신재는 여성 대상 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 L&J의 대표이자, 국내 최대 로펌 해일의 후계자다. 미모와 지성, 권력과 재력까지 모든 걸 갖췄는데 의리와 신념까지 있다. L&J와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능력자로 3인방의 리더 역할을 하는 강신재는 곁에 한 명쯤 두고 싶은 '멋진 언니' 같은 캐릭터다.

"너무 멋있는 캐릭터죠. 그 멋있음을 말로 설명하기보단 행동으로 보여주고, 든든하게 곁을 지키는 존재감이 가장 멋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컸던, 애정했던 캐릭터예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이 캐릭터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정은채

동명의 스웨덴 드라마가 원작인 '아너'는 주연 3인방을 비롯해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력과 입체적인 캐릭터 플레이, 빠르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전개, 생각지 못한 반전 등에 힘입어 시청자의 좋은 호응을 얻었다. 극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겁고 '성범죄'라는 민감한 소재를 정면에 다루는데도, 시청자는 '아너'가 펼쳐내는 이야기의 힘과 배우들의 열연에 지지를 보냈다.

"감독님과 배우들이 현장에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섣부른 이해와 무모한 응원 같은 것들을 배제하자는 거였어요. 그리고 너무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최대한 이성적이고 어른스러운 표현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피해자들을 대할 때도 작품을 대할 때도, 조심스러운 부담감이 있었죠. 그런 무게감을 항상 가지고, 그걸 잊지 않고 모든 장면에서 표현하려고 많이 신경 썼어요."

앞장서서 사건을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강신재는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여러 번 배신을 당한다. '내편'인 줄 알았던 자들의 극단적인 두 얼굴에 큰 충격을 받지만, 무너져 내리지 않고 다시 당차게 일어서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인다. 정은채는 이런 강신재 캐릭터의 절망과 성장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후반부에서 강신재가 가장 큰 내면의 갈등을 겪는데, 초반과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른 인물같이 보이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서, 그 부분을 신경 많이 썼죠. 초반부에는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통쾌하고 멋있고 쿨한,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당찬 이미지로 연기했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민낯에 가까운, 강하게만 보였던 강신재도 너무 여리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그런 인간적인 면모들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정은채

당차고 든든한 리더형의 강신재는 요즘 세대가 추구하는 워너비 여성상이다. 이런 강신재를 애정한다는 정은채는 의리가 강한 부분은 실제 자신과도 비슷하지만, 강신재처럼 철두철미한 성격은 아니라고 밝혔다.

"제가 친구들을 대할 때의 모습들, 제가 믿고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전적인 의리. 그런 쪽으로는 신재와 비슷한 거 같아요. 하지만 강신재는 MBTI로 치면 T스러워요. 이성적이고 계획적이고, 플랜 B, C까지 세울 만큼 철두철미한 인물이죠. 전 신재처럼 리더형은 전혀 아니에요. 리더보단, 성실한 구성원의 포지션이죠.(웃음)"

강신재는 윤라영, 황현진을 이끄는 리더형 친구인데, 실제 정은채는 이나영, 이청아보다 어리다. 막내가 리더 연기를 해야 했지만, 현장에 몰입하고 상대 배우들이 캐릭터를 편하게 맞춰주니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왔다. 정은채는 두 언니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모두 드라마 속 캐릭터와 실제가 달라요. 다들 부끄럼이 많고 허술하고 인간적에요. 매력적인 배우들이죠. 그래서 연기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던 거 같아요. 나영언니는 눈빛으로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연륜과 여유와 힘이 많이 느껴졌어요. 언니의 눈을 보고 연기하면, 이 사람의 감정이나 깊이가 느껴서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청아언니는 굉장히 성실하고 항상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예요. 현장이 아닐 때도 얼마나 캐릭터에 가깝게 몰입하려 애를 쓰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졌어요. 두 언니 다 정말 프로 같았고 연륜에서 묻어나는 여유가 있었죠. 많이 배웠어요. 언니들이 그 캐릭터여서 너무 좋았어요."

정은채

'아너'는 주인공 3인방의 연대가 중심인 작품인 만큼, 세 배우의 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은채, 이나영, 이청아는 20년 지기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아너'의 중심축을 단단히 잡았다. 무섭고 지독한 현실 속에서 세 캐릭터의 유대는 따뜻한 힐링이었다. 세 배우는 캐릭터들의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20년 지기 친구 같은 오랜 관계들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그런 대화를 많이 했어요. 촬영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여러 번 만나 리딩도 하고 식사도 하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억지로 하는 것보단 담백하게 가는 게 20년 지기 친구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장에서도 과한 표현력이나 스킨십보다는, 오히려 툭툭 농담을 내뱉으며 자연스럽게 하려 했어요. 억지 노력이 아닌, 서로 배려하고 기다려주고, 상대가 내 연기에 집중해 주고 리액션 해주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끈끈한 정들이 느껴졌어요. 전 그게 진짜 마음이라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촬영을 하며 점점 깊어졌죠. 긴 말보다는 여백의 시간에서 느껴지는 촘촘한 공기, 그런 게 훨씬 더 밀도 있게 느껴졌어요. 휘황찬란하진 않아도, 서로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배려해 준다고 항상 느꼈어요. 두 언니에게 너무 감사해요. 드라마는 끝났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더 오래 지속이 될 거 같아요."

정은채는 윤라영, 황현진 같은 친구들이 실제 자신에게도 있다고 했다. 피보다 더 진한 느낌, 우정을 넘어 가족 같은 존재인 그들을 통해, 극 중 세 사람의 관계성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특별한 관계인 한 사람에 대한 질문에도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현재 공개 열애 중인 미술작가 김충재에 관해서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친구인데, 제가 출연하는 작품은 꼬박꼬박 열심히 챙겨서 봐줘요. '아너'도 너무 재밌게 잘 보고 있다며, 앞으로의 전개를 궁금해하면서 제게 좋은 피드백을 줬어요. 제가 그 친구 SNS에 '좋아요'를 누르면 사람들이 '럽스타'라고 하던데, 그냥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자연스러운 거죠."

정은채

'아너'를 비롯해 '안나', '파친코', '정년이' 등 최근 출연작들이 여성 서사 중심의 드라마인데, 정은채는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추구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끌리는 키워드는 '메시지'와 '새로움'이었다.

"여성 서사나 장르적인 것보단, 대체적으로는 큰 이야기 줄기라든지,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의 메시지에 더 흥미를 느껴 작품을 선택해 왔어요. 캐릭터적으로는 새로운 시도, 새로운 얼굴을 꺼낼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그렇다고 생각하면 도전해 보는 쪽이고요. 시나리오를 보면 '내가 이걸 연기하면, 편안하고 쉽게 할 수 있겠다' 하는 캐릭터보단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알아보고 싶어 해요. '이 인물은 새롭게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는 지점을 만났을 때 설렘이 커요. 물론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어려워서 배워가는 것도 있고, 발전할 가능성이 열리는 거라 두려움보단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에요."

남녀를 편가르고 젠더갈등이 심각한 요즘 사회에, 여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들만 연이어 한다는 건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정은채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쿨하게 대답했다.

"그런 걸 신경 쓰기 전에, 작품이 잘 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서요. 작품이 잘 되고 캐릭터가 사랑받는 게 쉬운 게 아니라서, 잘 되면 그저 감사할 뿐이죠. 혹여 제게 그런 이미지가 생긴다면, 그걸 또 타파해 나가는 게 저의 숙제라 생각하고요. 다른 작품을 통해서 또 다른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인정받는다면, 그게 더 감사한 일일 거 같아요."

정은채가 여성 중심 서사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한 건 맞지만, 그 프레임 안에 갇힐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차기작은 전혀 다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올해 하반기 방송 예정인 SBS 새 드라마 '재벌X형사' 시즌2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너'를 끝내고 일주일 뒤에 바로 '재벌X형사2' 촬영에 들어갔어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색채의 작품이에요. 이렇게 반대되는 느낌의 드라마를 연달아한다는 게 재밌어요. 두 작품 모두 수사를 해나간다는 건 비슷한데, '아너'는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써서 조심스럽게 접근해 나가며 연기했다면, '재벌X형사2'는 훨씬 더 날 것 같은 현장이에요. 이 세계관의 재미와 통쾌함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현장 분위기도, 연기의 톤이나 강약 조절도, '아너'와는 너무 달라서 더 좋은 거 같아요. 즐겁게 촬영 중이에요."

정은채

[사진제공=KT스튜디오지니, project hosoo]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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