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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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부산 아동 연쇄살인 사건', 50년 만에 침묵 깬 생존자의 고백…피해자의 목소리가 만든 기적

작성 2025.12.19 17:19 조회 119

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8일 방송된 'N번째 피해자의 목소리'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정만식, 안혜경과 가수 양파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꼬꼬무'로 걸려온 제보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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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5년 5월, 서울 목동 SBS '꼬꼬무' 사무실이야. 그날 '꼬꼬무' 제작진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어.

"어제 방송된 그 사건 있잖아요. 제가 그 범인을 만난 적이 있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이 전화 한 통으로 '꼬꼬무' 사무실은 발칵 뒤집어졌어. 하루 전 방송된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은 50년 전 미제 사건이었거든. 제보자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일단 어떤 사건이었는지 말해줄게.

1975년 여름 부산.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야. 7살 여자아이가 집 근처에서 실종됐는데, 다음날 약 5km 정도 떨어진 공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목이 졸리고 손발이 묶여 있고, 성폭행 흔적도 확인됐어. 그리고 사건 4일 후, 이번엔 5세 남자아이가 집 앞에서 사라져. 안타깝게도 그 아이 역시 다음날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돼. 아이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행도 충격이었지만, 범인이 남긴 소름 돋는 흔적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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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하하 죽였다"

살해 후에 아이 배에 남긴 글씨야. 일명 '부산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이야. 지난 5월 22일 '꼬꼬무'에서 다뤘던 영구 미제 사건이야. 이 범인이 얼마나 대담하냐면, 파출소에 직접 전화해서 자신의 범행을 알린 적도 있어. 역대급 규모의 형사들이 투입돼서 현장 분석과 주변 탐문을 했지만, 며칠째 허탕이었어. 그러다 범인의 전화를 받은 거야.

"분개했죠. 범인은 잡지 못하고 어린애는 연쇄적으로 죽고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아주 분개했죠."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근데 범인에게 유괴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생존한 한 아이가 나타나며 수사는 급물살을 탔어. 아이이 증언을 토대로 범인의 몽타주까지 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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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은 이 몽타주를 들고 세 달 동안 부산을 뒤졌어. 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안타깝게도 영구 미제로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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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쉽죠. 허무하죠. 끝까지 사명을 다해 범인을 못 잡은 데에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서정우, 당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

그런데 이 방송이 나간 다음날, '꼬꼬무' 사무실로 제보 전화가 걸려온 거야. 전화를 건 제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이 방송으로 나왔다고 했어. '꼬꼬무' 방송에선 당시 범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다는 제보 내용이 나왔어. "몽타주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5세쯤 되는 아이랑 음료수 사고 약수터 쪽으로 올라갔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고, 이후 대규모 경찰 병력이 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상한 남자와 어린아이는 둘 다 발견되지 않았어. 당시 방송에선 목격된 남자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밝히지 않은 채 끝났어.

그런데 '꼬꼬무'에 전화를 건 그분이 바로, 당시 남자와 함께 음료수를 사고 약수터로 올라갔다는 그 아이라는 거야. 밤샘 수색에도 끝내 찾지 못했던 그 아이가, 50년 만에 '꼬꼬무' 팀으로 연락을 해온 거야.

▲ 50년 만에 털어놓는 그날

제보자는 그 방송을 보고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연락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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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정확하게 기억나죠. 오후였고, 맑은 날이었고,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이었죠. 그냥 올라가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양쪽 어깨를 탁 잡으면서 '누구야'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미영아' 이런 식으로. '저 미영이 아닌데요?' 하며 고개를 딱 돌리려 하는데, 옷자락이 나를 살짝 감싸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너무 자기 조카랑 닮았다는 거예요. '어디 갔다 오냐' 그래서 '심부름 갔다 오는 길이다' 했더니, '되게 착한 아이다, 엄마 심부름도 잘하고. 공부도 참 잘하겠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근처에 혹시 점방 있냐'면서 '네가 너무 착하니까 과자를 사주고 싶은데. 거기까지 같이 가자' 해서 같이 가게 됐어요. 머리가 되게 짧았고, 느낌상으로는 군인 아저씨 같은 외형이었어요. 옷을 허름하게 입지 않았고, 재킷 같은 거에 바지도 면바지 같은 걸 입었었고. 전체적으로 제가 보기에는 깔끔한 느낌이었어요."
-윤효정(가명), '꼬꼬무'로 전화 건 제보자

당시 효정 씨의 나이는 아홉 살.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었대. 1970년대에 어른이 과자를 사준다는데, 거절할 아이가 얼마나 될까. 접근하는 방법도 너무 자연스러웠어.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깔끔한 외모의 젊은 삼촌. 그렇게 과자를 사고 집에 가려는데, 그 남자가 한마디 하더래.

"가게를 나와서 제가 가려고 했더니 '이 산 너머를 자기가 가야 하는데, 혹시 길을 알려줄 수 있냐'. 제가 그 너머에 마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까지만 입구까지만 알려주면 된다고 하니까, 그냥 가게 된 거죠. 사정 조로 얘기하니까, 딱 거절하기가 어려웠어요. '어디 학교 다니냐. 몇 학년 몇 반이냐. 집이 어디냐' 그런 걸 다 물어봤는데, 무슨 말 하고 나면 계속 '착하다 똑똑하다' 굉장히 친절하게 얘기했어요. 거기서 좀 더 가면 나무가 좀 있는 숲길이 시작됐었거든요. 갑자기 캄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나 이제 집에 가야 된다'면서 '여기를 쭉 따라가면 길이 있을 거다' 했더니, '힘드니까 잠깐 앉아서 쉬었다가 내려가라' 그래서 거기 앉아 있게 된 거죠."
-윤효정(가명), '꼬꼬무'로 전화 건 제보자

놀랍게도 효정 씨의 얘기는, 당시 방송에 담지 못했던 다른 생존자들의 증언과 겹치는 게 많아. 우선, 갓 제대한 군인 같은 외모에 친절한 말투, 이동할 때 아이의 어깨를 감싸서 자기 얼굴을 최대한 보지 못하게 한 거, 그리고 나무가 우거진 산속까지 유인해 데려간 거,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돌변한 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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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있다가 갑자기… 저를 한 팔로 딱 감싸고, 범인이 허리띠가 있는 바지를 입었던 거예요. 그래서 벨트를 푼 기억이 나거든요. 너무 공포스럽고 무서우니까 소리를 지르는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도망을 치려는데 안되고… 그러다 어깨를 잡은 범인 손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을 때 팔로 밀치고 발로 밀치고 몸을 돌려서 집까지 그냥 뛰어 내려왔어요."
-윤효정(가명), '꼬꼬무'로 전화 건 제보자

너무 끔찍한 내용이라 방송에 다 담지 못했던 그날. 만약 그때 도망치지 못했다면, 효정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할 수 없어. 아홉 살 효정 씨는 몰랐어. 그 남자가 그토록 잔인한, 아동 연쇄 살인마라는 걸.

집으로 간 효정 씨는 부모님께는 말 한마디 못했어. 괜히 낯선 아저씨를 따라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혼날까 봐. 효정 씨는 자기 잘못이라 생각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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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가자 했다고 내가 왜 따라갔을까. 그리고 왜 나에 대해서 다 얘기했을까. 그런 걸 하나하나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안 했으면 좋았을 행동들, 말들인 거예요. 가위눌림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됐었어요. 아예 세상 속에서 내가 안 보였으면 좋겠다…"
-윤효정(가명), '꼬꼬무'로 전화 건 제보자

그날 이후 효정 씨는 필사적으로 숨어서 살았어. 이름, 학교, 심지어 집까지 다 얘기했으니까. 언제 어디서 그 아저씨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되도록 집안, 그것도 장롱 안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았대. 그래서 효정 씨는 친구들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어. 학창 시절에 달았던 이름표는 늘 뒤집어 다녔어. 혹시라도 그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자기 이름을 알아볼 까봐. 그날의 일이 효정 씨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놨어.

성인이 된 후에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어. 심지어 부산을 벗어났고 개명까지 했는데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날의 기억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처라는 걸 알게 된 효정 씨는, 그때부터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그 기억에서 벗어나려 많은 노력을 했어. 그래서 지금은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대.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꼬꼬무'를 보는데, 자기가 겪은 일이 그대로 나온 거야. 나쁜 아저씨의 실체도, 그날 처음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이제 많이 단단해진 효정 씨는, 오히려 '꼬꼬무'를 보고 위안이 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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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프로그램을 딱 볼 때, 굉장히 막 소름 끼칠 정도로 되게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날의 상황이 그랬을 뿐인 거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거고. '꼬꼬무'를 보고 그 사실이 너무나 명확해져서 실감하게 됐어요. 그리고 방송 중에 형사님이 '너무나 미안하다, 죄책감이 든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렇게 애쓰고 노력한 것에 대해서 헛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고. 어린 그때의 저를 감싸 안는 것부터 시작해서 피해를 입었던 어떤 아이든, 어른이든 그런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거라면, 힘이 되는 일을 해주고 싶어요."
-윤효정(가명), '꼬꼬무'로 전화 건 제보자

방송을 보고 한동안 괴롭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는 거야. 그래서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땐 너무 겁이 나서 낼 수 없었던 목소리를 50년 만에 내보기로 한 거지.

▲ 부산 돌려차기 사건

그런데 또 하나의 사건을 얘기해 줄게. 부산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47년이 지난 2022년 5월, 다시 부산이야.

선자 씨는 이른 아침부터 남편과 함께 산에 가려고 분주해. 막 집을 나서려는 그때, 선자 씨의 시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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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서방님하고 저하고 산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때 저희 시어머니께서 전화가 온 거예요. '딸이 교통사고가 났다' 그래서 가보니까 응급실에 입구에 들어가니까 피범벅이 되어 있었어요 머리에. 억장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막 울었죠."

-이선자(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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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했다는 선자 씨의 막내딸은 26살 김진주(가명) 씨. 평소 엄청 밝고 씩씩한 딸이었어. 병원엔 진주 씨의 언니가 먼저 도착해 있었어. 그땐 코로나19로 가족들도 병원 출입이 제한돼 있었거든. 첫째 딸이 병원에 남겠다며 부모님을 집으로 보냈어. 선자 씨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어. 그런데 얼마 후, 병원에 있던 진주 씨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어.

"우리 큰딸이 그 동영상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보지 말라'고. 충격받을까봐. 오랫동안 안 봤습니다. 한참 오래됐어요. 제가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 건, 처음에는 봤을 때 완전 충격적이었죠. 가슴이 막 뛰는데, 패 죽이고 싶더라니까요."
-이선자, 진주 씨 어머니

진주 씨가 왜 피범벅이 되어 병원에 실려왔는지, 한 CCTV에 고스란히 찍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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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귀가 중인 김진주 씨.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한 남자. 진주 씨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그 남자는 뒤에서 돌려차기로 진주 씨의 머리를 차서 쓰러뜨렸어. 그리고 이어진 무자비한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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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야. 진주 씨는 그 사건의 피해자야. 진주 씨는 병원에 실려오고 2, 3일간 의식이 오락가락했어. 하지만 의식을 되찾은 후,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되짚고 또 되짚었다고 해.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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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 하던 친구가 있는데 개인 방송의 영상 편집을 제가 도와주고 있었어요. 채널 구독자분이 저한테 너무 감사하다고 밥을 사고 싶다고 한 날이었어요. 그래서 버스킹이 끝나고 새벽 정도가 돼서, 좋게 생각하고 훈훈하게 집에 가는 와중에 눈을 뜨니까 응급실이었던 거죠. 수사관 분들이 오셔서 그때 기억나냐, 어디까지 기억나냐, 이런 사람 마주친 적 있냐, 묻는데. 전 아무 기억이 없으니까. 그냥 '모릅니다 모르겠어요' 하는데,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늦은 밤에 시작된 약속은 새벽 4시 반을 넘겨 끝났어.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던 진주 씨. 그 후 10여 분을 걸어 집으로 가다가, 갑자기 병원에 누워있게 된 거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까 형사들의 물음에 진주 씨는 아무 답도 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진주 씨의 몸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어. 기억나지 않는 그 순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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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의식이 좀 저하된 상태로 실려 왔고, 4cm 정도의 두피 열상과 혹이 많이 나 있었죠. 그리고 안면부 왼쪽으로는 찰과상이 여러 군데 관찰됐습니다."
-당시 진주 씨의 담당 의사

진주 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멍투성이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 그런데 피멍과 찢어진 정도는 그나마 나은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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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다리가 완전 마비가 된 겁니다. 평생 못 걸을 수 있겠구나…"
-당시 진주 씨의 담당 의사

"처음에는 '6개월 정도 일단 지켜봐야 한다' 이랬는데, 한 일주일 2주일 지나니까, '장애를 얻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확정을 했었어요. 진짜 발가락조차도 안 움직이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26년간을 평범하게 걸어왔는데, 걷지를 못하니까 되게 이상하더라고요. 걷는 게 어떤 거지?"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왼쪽 머리를 크게 다치면서 뇌신경 손상으로 다리에 마비가 오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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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걸을 수 있다는 말에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내 다리를 끼워줄 수 있으면 끼워줄 수도 있을 정도로 그 마음이었는데. 운이 안 좋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서 살아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죽었다 생각하니까 더 억장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것도 생각을 한번 해 봤거든요. 참 다행이다..."
-이선자, 진주 씨 어머니

▲ 범인의 정체

형사들은 정체불명의 폭행남을 백방으로 찾기 시작해. 근데 당시는 코로나19 때잖아. 범인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탐문이나 추적이 쉽지 않았어. 그런데 인근 CCTV를 눈에 불을 켜고 찾다 보니, 꼬리가 밟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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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후에 한 600m 정도를 이동해서 범내골 교차로에 정차 중인 택시를 타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고의로 휴대폰 유심칩을 제거하고 도주 행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박철한 경위, 당시 담당 수사관

그렇게 범인이 택시를 타고 간 곳은 본인의 여자친구 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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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마 그때 해 뜰 때쯤이었거든요. 되게 다급하게 들어와서 저를 깨웠어요. '왜 깨우냐?' 지금 당장 나가야 한대요. 그래서 '이 시간에 어디를 가냐' 갑자기 자기 신발에 묻은 피를 보여주는 거예요. '무슨 일이냐?' 그러니까 서면에서 아는 동생이 싸움이 났대요. 자기한테 연락이 왔는데, 근데 내가 뭐에 홀렸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걔 머리를 한대 찼다…"
-피의자의 당시 여자친구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은 범인은 여자친구와 함께 인근 모텔로 도주했어. 모텔 안에서도 계속 창 밖을 내다보며 안절부절 했다고 해. 그러다 결국 도주 3일 만에 경찰에 검거됐어. 검거된 후 범인은 이런 말을 했어.

"며칠 후 생일만 지나고 자수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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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대의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는, 당시 30세 이준성(가명). 172cm에 88kg 다부진 체격. 그는 경호업체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런 사람이 자기 덩치의 반쯤 되는 진주 씨에게 돌려차기를 날린 거야. 그럼 왜 진주 씨를 폭행한 걸까? 둘이 무슨 사이였길래? 그가 경찰 조사 때 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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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과 제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사람이 통화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뭐라 뭐라 하길래 그게 저한테 하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막 이렇게 쳐다봤었습니다. 지나가길래 그냥, 솔직히 갑자기 좀 화가 나더라고요. 술을 먹고 이러니까 사람이 이상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준성(가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상대가 먼저 내 기분을 나쁘게 했다, 술이 문제다… 이게 일면식도 없던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친 이유라는 거야. 그날 이 씨는 낮부터 술을 많이 마셨대. 친구 돌잔치에서 시작한 술자리가 2차, 3차, 4차까지 이어졌어.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평소 자기 주량보다 많이 마셨다고 해. 소주 7~8병 정도. 그러다 새벽 3시 30분경 술자리가 끝나고, 이 씨는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거야. 속도 안 좋고, 택시도 안 잡히는데. 결정적으로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 더 이상 택시를 부를 수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PC방과 노래방을 오가며 휴대폰 충전을 조금씩 했대. 그러다가 우연히 진주 씨를 마주치고, 기분이 상해서 따라갔다는 거야.

"제가 그렇게 간이 크지 않아요. 그런 덩치의 사람에게 불만을 표할 정도로, 아무리 제가 정신을 놓고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백번 양보해서, 이 씨 말대로 지나가다가 기분 나쁜 상황이 있었고 술에 잔뜩 취했다고 쳐. 그럼 보통, 말싸움이 먼저 벌어지지. 주말 밤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야. 그런데 이 씨는 그런 흔한 취객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어. 그날 사건이 일어나기 몇 분 전 CCTV 영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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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마치 미행하듯 일정 거리를 두고 진주 씨 뒤를 몰래 따라가. 그러다 진주 씨가 멈추자 차 뒤로 숨기까지 해. 만취 상태와 다투는 상황은 전혀 없어. 진주 씨는 그런 미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야. 진주 씨가 걸어간 방향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이 씨. 그러다 그가 화면에서 사라진 시각은 오전 4시 59분. 진주 씨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린 시각은, 그로부터 2분 후야. 이 씨가 진주 씨를 폭행한 이유, 납득이 돼? 그는 분명 뭔가를 감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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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CCTV 영상을 살펴보면, 진주 씨가 돌려차기로 머리를 맞은 시각은 오전 5시 1분. 그리고 이 씨가 건물을 빠져나간 시각은 오전 5시 10분 경이야. 이 사라진 시간에 대해, 이제부터 진실 공방이 펼쳐진 거야.

▲ 사라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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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찍힌 건 폭행 장면뿐만이 아냐. 진주 씨가 폭행으로 기절하자, 이 씨는 진주 씨를 둘러업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그 시각이 오전 5시 2분 경이야. 그리고 이 씨가 다시 나와 진주 씨의 떨어진 물건까지 챙겨 사라진 건 5시 3분. 과연 이 씨는 진주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걸까.

당시 사건이 일어난 오피스텔의 1층. 진주 씨가 현관으로 들어오고, 곧바로 이 씨가 따라 들어와. 이 씨는 CCTV를 확인하듯 천장을 빠르게 훑는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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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씨가 돌아본 현관 위에는, CCTV가 없었어. 즉, 이 씨가 진주 씨를 업고 사라진 반대편은 사각지대라서 CCTV에 잡히지 않았어. 아마도 이 씨는 이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파악을 끝낸 거 같아. 다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진주 씨를 본 순간, 여기는 CCTV가 지켜보고 있다는 건 놓친 모양이야. 형사들 역시 이 씨가 CCTV를 훑는 듯 행동한 것에 대해 물어봤어.

"그거는 제가 술이 많이 돼서 그냥 원래 이렇게 한 거지. 항상 배를 이렇게 내밀고 걷는 습관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신경 쓸 여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는 원래 술을 마시면 고개를 들고 배를 내밀고 걷는 습관이 있다는 거야. 만약 진주 씨에게 분풀이가 목적이었다면, 폭행 후에 멈췄어야 하는데, 굳이 진주 씨를 들어서 사각지대로 옮겼어. 다른 목적이 있어 보여. 그렇게 사각지대로 사라진 후 7분 후에 이 씨는 건물 밖으로 나갔어. 이 사각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씨만이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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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무서워서. 제가 그렇게 하고 나서 솔직히 제가 너무 좀 무서워서. 이렇게 다른 데 놔둬놓고 거기서 사람이 갑자기 말이 없으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막 쳤거든요. 이렇게 치는데 피가 나고 좀 그렇더라고요. 그냥 뺨을 친 거 같습니다. 안 일어나길래."

기절해서 무서웠던 게 아니라, 기절하기가 무섭게, 업고 간 게 맞지 않아? 연속 동작으로 바로 끌고 간 거잖아. 하지만 이 씨는 조사 내내, 여자를 깨우려고 데려갔다고 주장해. CCTV도 목격자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씨가 사라지고 불과 1~2분 후, 한 입주민에 발견된 진주 씨의 모습은 다른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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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엄청 많았어요. 머리 주변에 피가 진짜 많았어요. 그때 여자분 상의가 조금 올라가 있어서 배가 보이는 상태였고, 바지 버튼이 풀려서 벌어져 있었고. 지퍼가 완전히 내려간 건 아니었는데 약간 체모도 어느 정도 보였던 것 같아요. 정상적이면 속옷이 먼저 보여야 하는데 속옷이 안 보였어요. 그래서 전 속옷을 안 입은 줄 알았어요."

-최초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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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진주 씨의 착장이야. 바지 버클이 풀어져 있고 지퍼가 벌어져 있었다? 작정하고 풀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디자인이야. 그리고 속옷은 왜 안 보였냐는 거야. 그런데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던 진주 씨의 속옷을 엉뚱한 곳에서 발견한 사람이 있어. 병원에서 진주 씨의 옷을 갈아입힌, 진주 씨의 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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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는데 얘가 이미 바지에는 소변이 묻어 있었고, 바지를 벗겼는데 속옷이 없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지? 바지를 딱 벗기니까 종아리에 있는 거예요. 팬티가 정확하게 여기(종아리)에 있었어요."
-진주 씨의 언니

이 씨에게 폭행 말고 다른 범행을 하려 했냐고 물으니, 이 씨는 이렇게 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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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런 일은 안합니다. 제가 여자친구도 있고. 그 상태에서 그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진짜 말도 안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제가 그런 거 하면 진짜 제가 미친놈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야만인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이 씨의 여자친구 휴대폰에서 의미심장한 단서가 나왔어. 범행 직후 이 씨가 여자친구의 폰으로 검색한 내용이 포렌식 된 거야. 그날의 검색어를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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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묻지마 폭행', '서면 실시간 살인사건', '머리과다출혈사망' 등이었어. 아마도 자신이 폭행한 상대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 같아.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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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강간사건', '실시간 서면 강간 미수' 등도 있어. 경찰 앞에서 성범죄 의혹에 부인했던 이 씨잖아. 휴대폰으로 이런 단어들을 검색한 이유를 물었어.

검사: '부산 살인 사건', '부산 강간 치상 사건' 등을 검색한 내역이 확인되는데 맞죠? 왜 검색했어요?
이 씨: 제 사건도 그렇지만 그렇게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뜨는데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검사: 다른 피의자의 심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이런 키워드를 검색했다는 말이에요?
이 씨: 제 여자친구도 같이 보고 여자친구 폰으로 검색하고.
검사: 지퍼 내려가지고 다른 성범죄로 나아가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이 씨: 그런 건 아닙니다.
검사: 술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면서요?
이 씨: 예.
검사: 그런데 어떤 거는 명명백백 아니라고 하고, 어떤 거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어떻게 선택적으로 진술하죠? 왜 그러십니까?
이 씨: 진짜 아닙니다.

이 씨가 부인하는 한, 확실한 성범죄의 증거가 될 수는 없어.

▲ 전과 18범이었던 가해자

이 씨는 조사 내내 CCTV에 찍힌 폭행만 인정했어. 진주 씨를 따라온 이유도, 사각지대로 데려간 이유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둘러댔어. 증거가 없었으니까. 사실 이 씨는 누범기간 중에 범죄를 저지른 거였어. 누범기간이란, 금고(교도소 수감) 이상의 형을 받은 후 3년 안에 다시 금고 이상의 죄를 지었을 때 가중 처벌되는 걸 뜻해. 이 씨는 2년 전 상해, 특수절도, 사기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어. 형을 마치고 출소한 지 불과 3개월도 안 된 시점에 진주 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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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씨는 전과 18범이었어. 겨우 15살 때부터 강간, 특수절도, 폭행 등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했고 6차례나 소년부에 송치됐어. 소년원에서 대부분의 청소년기를 보낸 셈이야. 성인이 된 후에는 강도상해, 사기, 성매매 등 범행이 더 다양해졌어. 22살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6년. 그때도 출소하자마자 누범기간에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형을 살았어.

범행-징역-출소를 반복하며 이 씨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총 11년. 나이 서른 살에,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산 거야. 진주 씨는 그의 N번째 피해자였어.

하지만 과거의 범죄 이력과 현재 사건은 별개야. 담당 검사는 경찰에서 중상해 혐의로 넘어온 진주 씨의 사건을 편견 없이 처음부터 꼼꼼하게 들여다봤어. 그랬더니 이 씨의 범행이 다르게 보이더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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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피해자가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팔을 늘어뜨리는 장면이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의식을 잃었다는 것인데, 가해자 본인이 그걸 확인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피해자의 눈을 바라보면서 한 번 더 가격하기 때문에, 공격했던 부위가 피해자의 머리로써 급소인 부위가 확인이 되고, 다시 한번 공격을 나아갔다는 점에서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상대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공격을 이어갔다는 거야. 이 씨도 이 부분에 대해 인지했던 거 같아. 여자친구 휴대폰으로 '살인' 키워드를 넣어 몇 번이나 검색했다는 걸 보면. 김세희 검사는 이 씨와 대면조사를 하면서 이 사건의 죄명이 바뀌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대. '중상해'가 아닌, '살인 미수' 혐의로.

"살인미수 죄명으로 제가 기소를 하게 되면 전자장치 부착 명령 청구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재범의 위험성이나 차후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같은 부분에서 살인 미수로 기소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실익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그가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거든. 재발 위험성이 크다고 느낀 거야. 그래서 반드시 전자장치 부착 명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대. 실제로 일명 '사이코패스 검사'로 불리는 'PCL-R 검사'를 이 씨에게 진행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

"재범의 위험성이 있을 거라는 정도는 판단을 했지만, 그 점수가 역대급이라고 제가 전해 들었기 때문에, 강호순 연쇄살인범과 동순위라고. 그렇게까지 높은 점수가 나왔다는 걸 듣고, 저도 좀 놀라긴 했었습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거든요. 그래서 그런 범행을 저질렀던 게 아닌가."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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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성: 뭐라 하는 그게 눈빛이나 그런 것도 불편했어요. 눈도 제가 봤던 눈빛이 째려보는 듯한…
검사: 실제로 째려본 거는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이준성: 그거는 저도 거의 만취 상태여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몰랐습니다. 처음엔 진짜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검사: 머리가 이렇게 긴데?
이준성: 머리가 길었는지 안 길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 이준성 씨 주장을 제가 믿을 수가 없어요. 조사받으러 나올 때마다 이렇게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리고, 피의자 인생도 이렇게 망치고. 뭐하는 건지 제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준성: 죄송합니다.
검사: 저한테 죄송할 필요 없어요. 피해자 그리고 피의자 본인에게 죄송해야지. 그런데 왜 노력을 안 합니까?
이준성: 노력을 하려고 했습니다
검사: 변명하지 마세요 결과로 책임지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씨의 진술을 잘 보면, 만취 상태였다, 자수하려 했다, 피해자를 구조하려 했다 등 감형에 도움이 되는 진술만을 하는 것 같았다는 거야. 김 검사는 이준성의 사건 전후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봤을 때, 그날 범행이 그의 욕구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어.

"전혀 어떠한 일면식도 없는데 피의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자를 뒤따라 갔다는 부분에서도, 피의자와 피해자 단둘이 있어야 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는 부분은 성범죄 여지가 있는 부분으로 판단했었습니다. 해당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었다는 부분에서 의심하게 됐고 그 기록을 계속 넘기다 보면 피의자가 계속 도망 다니던 중에 '강간' 검색어를 찾아보고 검색했다는 부분도 본인이 생각했던 다른 범죄의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게 판단했었습니다."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김 검사는 DNA 감정에서 범인이 꼼짝 못 할 증거가 나올 거라 확신했어. 그런데 진주 씨 속옷에 대한 감정 결과, 이 씨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어.

"피의자의 DNA가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고, 나오지 않은 것 자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비록 성범죄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검사는 이 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했어. 이 씨는 가만 있지 않고, 여러 차례 장문의 반성문을 제출했어. 그 내용 중 일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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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 제 자신에게도 의문이 남습니다. 가끔은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검사님은 사람을 미워하더라고 말입니다. 제가 31살이라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제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은 충분히 다 받았고, 법정에서는 가해자, 피고인이지만 저도 사람입니다. 과거의 죄를 덧붙여 보지 마시고, 지금의 저를 찾아보시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존경하는 부장판사님, 살인 미수가 어쩌면 살인을 못했기 때문에 미수에 그친 거 아니겠습니까. 상해에 대한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살인미수는 검사님의 무리한 기소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잘 모르는 저도 기본적인 상식은 가지고 있는데, 공권력 남용하시는 것이 진짜로 강자가 약자를 대하듯 막 하시는 게, 저로서는 그저 지켜봐야 하니 압박이 됩니다."

이 씨는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데 익숙하고, 그로 인해 감형을 받은 경험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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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구차하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변명해요. 그게 그 사람의 성향인 거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기가 어떻게 조금만 노력하면, 벌을 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끝까지 놓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위해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죠."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 피해자의 용기 낸 목소리

사건 후 5개월이 지난 10월 28일. 1심 판결 선고의 날이야. 법정엔, 이 사건의 피해자 진주 씨가 자리하고 있었어. 병원에서 영구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몇 달 후 진주 씨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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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나 발이 움직여! 발가락만 움직였는데 그것마저도 되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계속 영상 찍어서 지인들한테 돌리고…"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엄마 발이 움직여! 애 아빠도 저도 좋아했죠. 이 정도면 됐다. 진짜 더더욱 없이 감사하다고. 하늘 보고 절했다니까요 고마워서."
-이선자, 진주 씨 어머니

기적처럼 발이 움직이고 다시 걷기 시작한 진주 씨.

"지금은 멀쩡하게 다시 걸을 수 있는 상태.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해서'라는 생각으로 항상 살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다…"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가족의 도움과 많은 사람들의 응원 덕분일까. 얼마 후 극적으로 다리 마비가 풀리게 됐어. 당시 의료진도 이건 기적이라고 했어. 진주 씨는 그날을 다시 태어난 날로 정하고, 그달의 탄생석인 '진주'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진주 씨는 날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도 있었대. 자신의 회복이 가해자에게 감형 요인이 될 까봐.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됐을 무렵, 1심 판결 선고가 있었고, 진주 씨는 용기를 내서 그 자리에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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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라', '웬만하면 가지 마라' 이렇게 다 말리셨어요. 그 와중에 아빠가 전화 와서 '이거 해봤자 한 2~3년 받는다더라. 그럼 안 보는 게 낫지 않겠냐'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2, 3년 받을 거면 제가 그 사람 얼굴을 알아야지 피하잖아요. 그래서 결국 재판장에 가게 됐었고, 거기서 처음 CCTV 영상을 보게 된 건데, 사실 그 무서움은 처음에는 계속 있었는데, 오히려 처음 본 그 순간부터는 좀 사라졌던 것 같아요. 내가 생각했던 소설이 아니었거든요 그 사람은. 거의 두 배가 되는 거구의 남자가 피해자인 저를 그렇게 때리는데, 그러고 나서 되게 없어 보이게 구두를 주워서 가방을 주워서 사각지대로 가는 모습이, 어디에서도 봤을 때 무섭지 않았어요. 조금 한심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줄어들었어요. 무서움이라는 게."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진주 씨는 이 사건의 피해자인데도 들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이 없었어. 범인이 누군지,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결정적으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한 건지도, 언론으로 접한 게 전부였어. 형사사건은 피의자와 수사기관 간의 싸움이잖아. 게다가 신체적, 심리적 상처를 회복하기도 버거운 피해자가 많아. 그러다 보니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야.

진주 씨는 달랐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고 싶었어. 가족들까지 고통에 빠뜨린 가해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길 원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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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는 이미 1천만 원 후반대로 넘어가고 있었고, 엄마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되게 그러려고 애쓰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하나도 안 힘든데, 그래서 가해자가 너무 미웠어요. 우리는 아무 잘못을 안 했는데, 우리 가족이 이렇게 상처 입고 힘들어해야 하지? 경제적인 부담, 그리고 심리적인 부담. 왜 우리 가족이 이렇기 피해를 봐야 하지? 그리고 그 원인도 알지 못하니까. 왜지? 계속 질문만. 결국엔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그때 터졌어요. 감히 자기가 뭔데, 우리 가족을 이렇게 아프게 하지?"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진주 씨는 사건을 잘 아는 게 나와 가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어. 그 후로는 매번 공판에 참석해 이 씨의 주장이 뭔지, 검사 측의 주장이 뭔지 파악했어. 그리고 이 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도 진행했어. 그 과정에서 구한 1,600 페이지가 넘는 사건 자료도 하나하나 다 살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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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절차별로 느꼈던 피해자로서의 답답함, 제도의 한계에 대해서 몰두하면서 오히려 저는 그래서 더 좋았었어요. 이런 데 오히려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진주 씨가 피해자 입장에서 하나하나 다 점검해 가는 모습이, 저를 되게 부끄럽게 했었고. 그렇게 일을 추진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손보경, 민사 소송 담당 변호사

심지어 진주 씨는 공판장에서 가해자 이 씨가 보는 가운데, 피해자 진술도 했어. 자신과 가족이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가해자에게 왜 강력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지 눈물로 호소했어.

그렇게 드디어, 1심 선고날이야.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주문. 피고인 이 씨를 징역 12년에 처한다. 위 징역형의 집행 종료일부터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한다."

이에 대해 검사는 형이 적다고 항소했고, 이 씨는 형이 많다며 항소했어. 재판은 2심으로 넘어갔어.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누구보다 진주 씨야. 12년 후면 다시 그 사람을 마주칠 수 있다는 거니까.

"차라리 죽었어야 했나? 그러면 조금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을까, 그 생각을 했죠. 결국 내가 살아서, 보복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지게 만드는 이 사회가 되게 많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그래서 진주 씨가 생각한 건, 공론화였어. 진주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긴 글을 올렸어. 글의 제목은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 진주 씨는 이 글에 사건이 일어난 그날부터 1심 판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적었어.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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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전히 길을 걸으며 뒤를 보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2시간 만에 깹니다. 치약을 샴푸로 오해하거나, 방금 먹었던 약도 먹었는지 헷갈립니다. 저는 10kg 정도가 빠졌는데, 재판정에 올 때마다 몸집이 커져가는 범인을 보면 아직도 화가 납니다. 범인은 12년 뒤 다시 나옵니다. 고작 40대입니다. 피해자인 저는 숨이 턱턱 조여옵니다. 사회악인 이 사람이 평생 사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 대한 반응은 엄청 뜨거웠어. 조회수와 댓글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주요 언론사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해. 그렇게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지.

▲ 판이 뒤집히다

자연스레 이 씨에 대한 다양한 제보도 이어졌어. 그중에 진주 씨와 가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부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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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서면 돌려차기 사건 아냐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는 지금 살인미수로 12년을 받았고, 자기는 언제든지 틈만 보이면 탈옥할 거다, 나가면 피해자를 찾아갈 거라고 하면서 피해자 주민번호랑 이름이랑 집 주소를 알더라고요. '죽여버리고 싶다', '자기는 나가서 그때 맞은 거 배로 때려주겠다' '나가서 찾아가서 죽여버릴 거라고'"
-가해자 이 씨와 구치소 동기

손으로는 죽을죄를 졌다고 반성문을 쓰면서, 입으로는 피해자를 죽이겠다며 보복을 다짐했던 거야. 이 내용이 방송되고 법무부에서 곧장 이 씨의 주변 조사를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게 한 두 명이 아니었다는 거야. 피해자 주소와 인적 사항을 주변 사람들이 외울 정도로 말하고 다녔대.

"진짜 그때부터 소름이 돋았죠. 이 사람이 보복을 계획하고 있었구나. 그걸 들었던 다른 범죄자가 '그만해라'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 정도로 계속 쉴 새 없이 떠들고…"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결국 이 씨는 독방에 갇히는 금치 30일의 조치를 받았어. 교정시설 수용자에게 내리는 가장 무거운 징벌이래. 하지만 진주 씨는 그가 재판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길 바라. 1년이라도 덜 불안하게 살고 싶으니까. 진주 씨는 항소심 재판부에 몇 차례에 걸쳐, 'DNA 재감정'을 요청해. 1심에서 DNA가 나오지 않아 사라진 7분의 의혹이 풀리지 않았잖아. 그런데 국과수에서 한 번 나온 결과를 재감정하는 건 쉽지 않아. 받아들여진 적이 거의 없어. 하지만 진주 씨는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탄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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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일 텐데 7만 8천 장인가 모인 거예요. 그게 말이 안 되는 숫자일뿐더러, 지인들한테 빌면서까지 탄원서를 써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고 껄끄러워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뭐라고 이걸 해주지? 그래도 아직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응원해 주기 싫었던 게 아니라, 응원해 주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검찰에서도 DNA 재감정을 강하게 요청했어. 그 결과, 재판부는 증거물에 대한 DNA 재감정을 결정했어. 이번엔 대검찰청 유전자 감식실에서 감정을 진행하기로 했어.

"보통 증거 조사는 1심 단계에서 거의 다 끝마치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한 번 더 DNA 감정에 대한 요청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사례입니다. 그런데 진주 씨가 이렇게 이례적인 사건을 또다시 이례적으로 이렇게 만드는 게 굉장한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이번 감정을 표본의 범위부터 달랐어. 1차 감정 땐 피해자 속옷 상단을 닦은 면봉 3개만 의뢰했는데, 이번엔 진주 씨가 입었던 바지, 속옷 등에서 121개 표본을 채취해 세밀하게 감정했어. 그리고 이번엔 이 씨의 유전자가 검출됐어. 청바지 안쪽 3곳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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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의 핵심은 이제 성범죄 여부야. 우선 검사는 공소장부터 변경했어. '살인미수'가 아니라 '강간 살인미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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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노력으로 공소장이 변경되는 게 거의 전무후무한 사건이 아닐까 싶거든요. 사람의 힘이 이렇게 강하구나, 한 사람이 이렇게 강하구나…"
-손보경, 민사 소송 담당 변호사

항소심 구형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해. 그 결과, 이 씨에 대한 구형은 35년. 검찰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지. 그럼 항소심의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이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어. 형량 증가의 주요한 영향을 준 건, 2심 재판에서 새롭게 파악된 성범죄 정황이었어. 재판부는 "피해자를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보이지 않았다"며 이 씨를 질타했어.

검찰은 양형 부당의 이유로 상고할 수 없어서 상고하지 않았고, 이 씨는 항소심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기각됐어. 징역 20년이 확정된 거야. 진주 씨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어.

피해자 진주 씨의 노력으로 1심에 비해 형량이 8년이나 늘어나게 된 건, 법조계에서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해.

"피해자가 먼저 이렇게 주도적으로 공판 과정을 이끌어 나간 게 굉장히 신선했고, 그 결과가 굉장히 기념비적이었기 때문에. 피해자인 진주 씨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았으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세희, 당시 담당 검사

진주 씨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로 해. 다시 주어진 시간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그 무렵, 진주 씨 눈에 들어온 한 사건이 있었어.

▲ 또 다른 목소리

"어느 날 기사를 봤는데,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기억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기사를 남기면서, 피해자인 김혜빈 양의 실명을 공개하는 기사가 뜬 거예요. 그걸 보고 '이렇게 대단한 부모님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들과 연락이 됐고. 그 일과 관련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어요."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끔찍한 범죄로 하나뿐인 딸을 잃은 부모님의 목소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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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새내기 대학생이 된 20살 故 김혜빈 양. 평소 혜빈이는 집, 학교, 알바 밖에 몰랐대. 그날도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커피를 사러 잠시 밖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차량이 돌진한 거야. 그날 이 차에 치인 사람은 혜빈 양을 포함해 5명. 그런데 피해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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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의 한 백화점 안에서 20대 남성이 시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마구 휘둘렀습니다. 이 남성은 백화점으로 가기 전에 사람들이 있던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차를 몰고 돌진하기도 했습니다. 이 범행으로 열 명 넘게 다친 걸로 파악됐고, 이 남성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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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범인은 당시 22살 최원종. 경찰은 최원종이 피해망상에 빠져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어. 누군가 자기를 스토킹하고 죽이려 해서 먼저 공격했다는 거야. 최원종은 10대 때 분열성 성격 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어. 하지만 '심신미약 감경' 검색까지 해가며 이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드러났어. 결국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 없이, 최종 무기징역을 받게 돼. 이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자 14명. 혜빈이는 뇌사 상태로 25일을 버티다 끝내 부모님 곁을 떠났어.

보통 이런 강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이니셜로만 알려지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혜빈이 부모님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길 바랐어. 혜빈이라는 예쁘고 소중한 아이도, 그 아이가 잔혹한 범행에 희생됐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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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부모가 다 똑같죠. 내 딸인데. 그냥 혜빈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죠. 친구 같고, 애인 같고, 어떨 때는 언니 같기도 하고 그런 딸이었죠. 혜빈이는 범죄 피해자니까, 그냥 안타깝게 죽은 애 그게 아니거든요. 범죄 피해자들은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라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그리고 혜빈이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거, 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처음부터 없던 애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피해자 故 김혜빈 양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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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친구들은 1주기 때부터 혜빈이를 함께 추억하고 있어. 혜빈이 사진과 혜빈이를 생각하며 만든 친구들의 작품들을 전시해. 그리고 혜빈이가 좋아했던 노래, 혜빈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들로 공연도 해.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행복한 시간이에요. 저희를 위로해 주고 기억해 주고 주변에 도움을 주고 하는 분들이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저희는 혜빈이 덕을 봤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아픔이 다 낫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농도가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행복해요. 혜빈이가 그냥 있는 거 같아요."
-피해자 故 김혜빈 양 부모님

혜빈 양 어머니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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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빈아 엄마는, 너랑 삼겹살에 소주 먹기로 했는데 그것도 못했고. 타투도 같이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못해서 그게 제일 아쉬워. 너 막걸리 싫어했는데, 엄마는 막걸리 마시고 싶거든. 너랑 같이 막걸리도 먹고 싶어. 너, 엄마랑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한꺼번에 얘기하지 말고, 하나씩 얘기해줘. 엄마가 여기서 다 할게. 사랑해 혜빈아."

추모 행사 때마다 진주 씨도 함께 했어. 혜빈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해.

"진주 씨에게 고마운 게 좀 많죠. 공판하면서 탄원서 쓸 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진주 씨가 먼저 공판을 치렀잖아요. 거기서 느꼈던 점, 불합리한 걸, 그런 것들의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피해자 故 김혜빈 양 어머니

▲ 우리의 붉은 인연

진주 씨가 올해 혜빈이 추모 행사에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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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타래. 혜빈이가 좋아하던 '홍연'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가사에 이런 게 있어.

"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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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다 같이 부르면서, 서로가 서로의 손목에 붉은 실을 감았어. 나와 같은 상처와 그리움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로 이어졌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대.

진주 씨는 사건을 겪고 나서 다른 범죄 피해자들을 만나며 느꼈어.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이 내 옆에 버티고 있다는 걸. 그 존재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다고.

이준성의 N번째 피해자 진주 씨는 사건 이후 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냈어. 왜 이렇게 피해자가 사건 자료에 접근하는 게 어려운지, 왜 이렇게 피해 회복을 지원받기가 어려운 건지, 왜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권리가 많은지. 문제 제기만 한 게 아니라, 개선 방향성까지 싹 정리해서 전달했어. 진주 씨가 이렇게 목소리를 내자, 놀랍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 피해자가 사건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지받게 됐고, 범죄 피해 지원금을 받는 방식도 조금 수월해졌대. 작년에는 범죄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도 통과됐어.

진주 씨는 이런 변화가 절대 자기 때문이 아니래. 그동안 이 일에 목소리를 내온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거야. 하지만 주변 관계자들은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 그 힘은 남달랐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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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씨가 살아난 것에 되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기본적으로 되게 따뜻한 사람이고. 그래서 이 감사함을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해서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힘들어하는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 지금 계속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힘을 실어주지 않나 싶기도 하고, 저도 굉장히 옆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손보경 변호사

최근 정부에서도 범죄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어. 범죄 피해 구조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모 사망 시에는 1억 6천만 원, 자녀나 손자녀 사망 시에는 8,1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거야. 또 긴급 생활 안정비라는 제도도 만들었대. 5주 이상의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339만 원을 긴급 지원하는 거야. 시행일은 2026년 1월 1일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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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씨나 혜빈 씨 부모님 같은 피해자분들이 목소리를 내주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 씨 덕분에 저희도 내년부터 온라인 피해자 지원 플랫폼 구축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피해자분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피해자분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회복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유선 부장검사, 법무부 인권구조과 과장

끝으로 '꼬꼬무' 사무실에 전화해서 50년간 꺼내지 못했던 말을 해준 효정 씨.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손으로 꾹꾹 눌러쓴 네 장의 편지야. 이 안에 N번째 피해자 효정 씨가 다른 N번째 피해자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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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아동성폭력 피해자로 생존해 계신 분들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그 사람들이 너에게 나쁜 짓을 한 거야.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거 같지? 그래도 찾아보면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야. 꼭 찾아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해. 네가 살아있는 모든 시간 동안 그 일이 너를 잡아먹지 않게'. 이 말은 그때 아홉 살이었던 제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더라면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숨어 있어서 미안해. 너무 무서웠어. 그리고 살아있어서 고맙습니다."

이 목소리가 다른 피해자에게 용기와 힘을 내라는 강요로 느껴지지 않길 바라. 그저, 세상과 연결된 가느다란 붉은 실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어. 오늘 나온 피해자들 모두,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가 있어. 세상엔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거야. 자신들은 비록 나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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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김진주,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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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혼자 울지 마시라고. 그런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잘 이겨내시라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 다 손 내미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잘 견뎌 내시라고요."
-피해자 故 김혜빈 양 어머니

이 분들이 어렵게 낸 목소리, 더 멀리,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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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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