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인천 상륙 작전을 둘러싼 진짜 이야기가 공개됐다.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6.25 전쟁 당시 세계 전쟁사에 손꼽히는 명작전 '크로마이트 작전'을 조명했다.
1950년 6월 28일, 6·25 전쟁이 발발한 지 단 사흘 만에 서울은 북한군에 의해 함락됐다. 이에 곳곳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중앙청에는 태극기 대신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이 걸렸고 거리 곳곳에서 무자비한 인민재판이 벌어졌다.
이에 국군은 UN군과 힘을 합쳐 북한군에 맞섰지만 북한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영토 90%를 점령했고,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이때 비밀스러운 작전이 시작됐다. 19살 영봉이는 313명의 남자들과 함께 갑자기 UN군이 되어 작전에 투입되었고, 해군 경비 사령관 연정은 미군 첩보부대 비밀요원으로 차출되어 1년 만에 다시 만난 동료에게 극비명령서를 전달했다.
'크로마이트 작전'이라 불리는 이 작전에 투입된 영봉이 몸 담았던 부대는 바로 카투사, 그는 바로 카투사 1기였다. 그리고 크로마이트 작전이 그들의 첫 임무였던 것.
크로마이트 작전의 진짜 이름은 인천 상륙 작전이었다. 세계 전쟁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 전인 인천 상륙 작전은 적의 허리를 끊어 남쪽에 내려와 있는 북한군을 차단하고자 한 맥아더 장군의 묘안이었다.
이에 전문가는 "전 세계 전쟁사에서 그 정도의 거대 병력을 완벽하게 차단해서 독 안의 든 쥐로 만들어 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맥아더 장군은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작전 성공 가능성을 두고 미 해군참모총장은 "조수가 바뀌기 전 충분한 병력을 착륙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반대했던 것.
인천항을 둘러싸고 있는 해벽의 높이도 너무 높아 수많은 사다리가 필요했고, 이에 무리한 작전이라는 것.
그럼에도 맥아더는 인천을 고집했다. 그는 "소형 보트로 상륙할 건지 상륙작전용 함정으로 상륙할 건지만 고민해야 한다"라며 자신만만해했다.
9월 8일 인천상륙작전이 승인되고 각지에서 인천을 향해 함대가 모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팔미도 장악.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었던 팔미도에서 등대를 장악하면 뱃길 확보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총격전 발생 시 북한국에 발각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무사히 팔미도를 장악해 항로를 밝히고 9월 15일 새벽 상륙정이 진격을 개시했다.
7개국 261척이 이 작전에 참여하고 병력만 7만 명이 투입됐다. UN군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 상륙작전은 북한의 허를 찔러 인천 수복에 성공했다.
낙동강 전선에 병력을 대부분 투입한 북한은 인천의 병력이 약화된 상태였고 이에 무사히 인천을 수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륙 3일째 인천 수복 성공한 UN군은 수도 서울로 진격했다. 넓은 한강과 산이 많은 지형은 UN군들에게는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UN군은 정공법을 택하고 고지전을 펼쳤다. 실패로 끝난 고지전. 하지만 공군과 야포 부대의 지원으로 아군도 힘을 내고 다시 고지를 향해 갔고 긴 시간 사투 끝에 북한군 격퇴에 성공하고 고지를 점령했다.
그렇게 9월 27일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9월 28일 서울 완전 수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9월 29일 서울 환도식 거행됐다. 3개월 만에 서울을 되찾은 것.
하지만 이후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될 때까지 3년간 전쟁이 계속됐다. 이 전쟁에 전사한 UN군과 국군이 18만 명. 이에 거리에는 상이군인, 피란민, 고아가 가득했다.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긴 6.25. 이 전쟁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렸다.
대한노인회 회장은 전쟁을 겪은 마지막 세대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잊지 말자며 절대로 다시는 그와 같은 참화를 겪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준비 없이 방관했다가는 아무 때나 당할 수 있다며 "평화라는 용어는 강한 힘이 있는 자에게 평화가 유지되지 약자에게 보장된 평화나 평등한 권리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현재 존재하는 것은 그들의 희생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UN 데이가 기념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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