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9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2005년 조용필 평양 공연···첩보 영화 방불케 한 '역사적인 무대' 재조명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5.08.29 07:47 수정 2025.08.29 08:48 조회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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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음악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됐던 순간.

2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특집 : 더 레전드'를 통해 20년 전 열린 조용필 평양 공연을 재조명했다.

2004년, 북경에서 연수중이던 오기현 PD는 민족화해협의회의 실무 책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가왕 조용필을 북으로 불러달라는 요청.

최고 지도자, 최고위층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요청에 PD는 조용필과 만나 평양 공연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용필은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북한에도 조용필의 팬이 있다며 "팬이 있는 곳이라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그를 설득했고, 며칠 후 조용필은 마음을 돌려 평양 공연을 수락했다.

곧바로 조용필 평양 공연 TF가 꾸려지고 공연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남북을 연결한 단 하나의 채널인 팩스를 통해 소통해야만 하는 남북 측.

조용필의 섭외 성사 소식에 북측은 금강산 회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한미 연합 군사 훈련으로 인해 북한 측은 회의 취소를 통보해 왔고 이후에도 한동안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팩스가 도착했다. 조용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담긴 편지를 보낸 북측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해가 바뀌고 새해를 맞은 어느 날 북한은 다시 연락을 해왔다. 2005년 1월 회의를 하고 4월 공연을 추진하자는 북한. 이후 남한과 북한은 큰 틀의 합의서도 작성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그럼에도 공연을 포기하지 않은 양측. 결국 북한에서 초청장이 도착했다. 이후 회의는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절대 합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연장의 규모.

남한 공연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던 남측과 보안 문제로 소극장 공연을 하고 싶은 북한.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북한은 "남측의 잘못으로 이번 공연은 할 수 없다"라며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체육관을 공연 장소로 고집한 것이 잘못이라 지적했다.

첫 제안 후 꼬박 1년이 지난날 그렇게 공연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TF팀은 포기하지 않고 북측의 연락을 계속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관 공연에 대한 동의 의사를 전한 북측. 그렇게 조용필 평양 공연이 최종 성사되었다.

그 후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공연에 대한 기자회견까지 연 조용필. 그런데 그는 공연을 앞두고 과연 자신의 노래를 그들이 알지 고민을 했다. 가왕으로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을 하게 된 것.

이후에도 여러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로 모든 장비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북측의 출항 허가가 나지 않아 지연이 되는 등 순탄하지 않은 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막은 오르고 공연을 앞두고 북한 스태프들까지 합류하며 역사적인 무대를 함께 만들어갔다.

2005년 8월 22일, 조용필은 평양 공연을 응원하는 원조 오빠부대들의 응원 속에 북한으로 향했다. 그리고 평양에 도착한 조용필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공연장으로 바로 달려간 조용필은 악기 상태부터 점검했다. 운송 과정에서 파손된 것들도 있어 걱정이 있었던 것.

또한 생각보다 열악했던 공연장에 그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당장 리허설을 하며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싶었던 조용필. 하지만 환영 만찬이 열리며 그의 계획과는 달리 상황이 돌아갔다.

결국 조용필은 양해의 말을 전하며 식사 후 급히 공연장으로 이동해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온 홀로 아리랑이라는 곡을 급히 세트 리스트에 추가했다.

저녁 늦게 시작된 리허설. 그런데 갑작스럽게 북한 측에서 퇴장 명령이 떨어졌다.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 올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던 그때 북측은 유리로 막힌 VIP구역에 스피커 설치를 요구했고 보안 점검을 위해 모두 공연장에서 나갈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렇게 북한 최고 지도자가 정말 공연장에 올 것인지 궁금증이 남은 상태로 시간은 흘러 공연 당일이 되었다.

1년에 걸쳐 진행한 프로젝트의 완성이 눈앞에 있는 것. 조용필은 공연 직전까지 단 한 시도 쉬지 않고 완벽한 무대를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을 했다.

모든 점검과 연습이 끝나고 오후 5시 관객 입장이 시작됐다. 7천 명의 관객이 금세 공연장을 채우고 진행된 조용필의 평양 공연.

이날 방송에서는 리마스터링을 통해 4K 화질로 개선된 조용필의 평영 공연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평양 문화예술인과 주요 기관 관계자들로 채워진 객석은 조용필에게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필의 유머러스한 멘트에 공연장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고 어느새 사람들은 그와 함께 노래하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110분의 공연이 끝이 나자 기립박수까지 터지며 앙코르를 외쳤다. 조용필이 준비한 앙코르곡은 "홀로 아리랑"

함께 노래하는 북한 관객들은 다시 한번 기립박수로 최고의 공연을 보여준 조용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감동을 만들어낸 공연으로 주인공인 조용필도 역시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함께 했던 이들 역시 "꿈같던 순간, 다시 못 오는 순간이라 더욱 아쉽다"라고 기억했다. 또한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회상하며 "음악이라는 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것은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갖는다"라며 음악으로 하나가 된 순간을 곱씹었다.

그리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다시 나아가며 완성시킨 공연. 그것이 바로 통일의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당시 공연을 마치고 15만 명을 수용하는 공연장에서 두 번째 공연을 꿈꿨던 조용필.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줄어든 지금. 그럼에도 우리는 작은 소통과 교류가 단단한 장벽을 넘게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에 언젠가는 높이 쌓아진 장벽이 허물어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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