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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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100억대 자산가 부모 죽인 패륜아 박한상…범행 직전 성매매 업소까지 방문 '경악'

강선애 기자 작성 2025.08.22 12:11 조회 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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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1일 방송된 '오버킬의 살인마-강남 대저택 부부 살인 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에이핑크 멤버 박초롱, 배우 최태준, 박호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가해자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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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93년도에 10대들이 뽑은 '한국의 100대 스타'야. 오늘 '꼬꼬무'에 이 100명의 스타 중에 한 분이 직접 출연해. 바로 38위, 황산성.

이분의 직업은 변호사인데, 평범한 변호사가 아니야. 스펙이 어마어마 해.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해 20대엔 판사, 30대엔 국회의원, 40대엔 환경부 장관을 지냈어. 그리고 당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한 법륜 자문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기도 했어.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이자 여성들의 워너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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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황 변호사 프로필에 좀 독특한 이력이 하나 있어.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최악의 범죄자의 변호를 맡았거든. 왜 일까? 지금은 미국에 있는 황산성 변호사에게 직접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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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인사건을 많이 한 셈인데요. 왜 그런 사건을 맡았느냐 하고 제 3자들이 비난하기도 했고요. 심지어 목사님까지도 그렇게 비난한 사람이 있었어요. 가해자 변호를 맡았죠. 누가 맡아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끔찍한 일을 어떻게 함부로 할까 해서. 만나면 전도할 생각이었죠. 이거 한 번 뒤집어서 사람을 만들어 볼까 했는데요. 진짜 나쁜 놈이야. 섬찟하잖아. 섬찟하니까 내가 안되겠다 싶어서 '이 사건 더 이상 맡을 수 없다' 그만두기로 했죠. 아주 잔인한 놈이야. 기가 차."

-황산성, 당시 사건 피의자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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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뉘우치게 하려고 어떤 가해자의 변호를 자처했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손절했다는 거야. 도대체 어떤 범죄자길래, 당대 최고의 변호사마저 등을 돌린 걸까. 오늘은 당대 최악의 범죄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어떤 '1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게.

▲ 100억 대 자산가 부부의 죽음

때는 199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이야. 그때도 삼성동은 최고의 부촌이었어. 그룹 총수, 연예인, 정재계 인사들까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의 베버리 힐스였어. 그중에서도, 주민들 사이 꿈의 궁전이라 불리는 집이 하나 있었어. 바로 이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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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정원을 품은 3층짜리 단독주택. 실내 평수만 무려 150평이야. 당시 이 집의 가격은 얼마일까? 참고로 이때 강남의 33평 아파트가 1억 5천만 원 정도였어. 근데 이 집은 당시 가격 9억 원. 강남 아파트 6채와 맞먹는 거야. 현재 시세로 따지면 300억 정도래. 이런 곳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그런데 이 집이 사정상 한 달째 비워져 있는 상태였는데, 언제부턴가 이 집 지하실에서 웬 부부의 말소리가 계속 들려. 마치 영화 '기생충'처럼 말이야. 빈 대저택 지하실에 사는 수상한 부부. 이들이 타는 차량은 각 그렌저야. 그 시절 최고의 럭셔리 자동차지. 이걸 지하실에 사는 부부가 탄다니, 좀 이상하지? 그 부부의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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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조 씨는 평범한 가정주부고, 남편 박 씨의 직업은 한약사야. 한약재로 유명한 시장에서 규모가 제일 큰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었어. 또 우연히 뛰어든 한약재 유통사업이 대박 나서, 최근엔 '박 지부장'이라 불렸어. 회원만 3천 명이 있는 전국 한약사 모임에서 서울시 지부장에 당선된 거야.

그렇게 부와 명예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모은 자산이, 당시 돈으로 100억 원. 지금으로 치면 1조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자야. 근데 100억 대 자산가 부부가, 대체 왜 지하실에 살고 있는 걸까? 사실 이들은 이 주택의 주인이야. 근데 왜 멀쩡한 1, 2층을 두고 지하실에 사냐면, 한달 전에 이 집에 도둑이 들어서 지상층 전체에 보안 시스템 공사를 하느라 어쩔 수 없이 지하 생활을 한 거야.

그러던 어느날, 이들 앞에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어. 새벽 1시 30분. 119에 삼성동의 3층 단독주택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 전화가 접수됐어. 바로 박 씨 부부의 집이었어. 신고접수 후 119는 빠르게 출동했고, 다행히 불은 20분 만에 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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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다음날 현장. 외관은 폭격을 맞은 듯 하고, 지상층 전체에 남아있는 게 없는 상황이야. 지하층 역시 전소나 마찬가지고. 150평 꿈의 주택이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했어. 그럼 박 씨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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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안타깝게도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 지하실에서 까맣게 탄 시신으로 발견됐어. 한밤중에 난 불로, 100억대 자산가 부부가 사망했어. 그럼 화재 원인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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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임시로 생활하던 지하실 구조도야. 이날 부부는 안방 장롱 앞에서 엎드린 채 발견됐어. 보통 주택 화재 현장에선 시신이 창문이나 문쪽에서 발견되곤 하는데, 부부는 문의 반대 방향에 엎드러져 있었어. 불이 났을때 부부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얼마 뒤, 이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맞게 돼.

▲ 화재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같은날 새벽, 강남경찰서. 강력2반 조상복 형사가 당직을 서고 있는데 부부의 시신이 이송됐던 병원 영안실 쪽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조 형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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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사건이고 사체가 두 구가 발견됐는데, 강남 의료원 영안실에 사체 두 구를 이송했다고 우리는 보고만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당연히 화재사건으로써 관여를 안하고 있는데, 영안실 직원이 놀래 가지고 '사체에서 피가 난다'고… 그래서 '어? 피났다' 하는 소리를 듣고 우리 강력반에서 '어? 이거는 이상하다' 해서 바로 병원 영안실로 갔죠. 가서 사체를 뒤집어 보니까, 칼 찔린 부분이 벌어져서 피가 철철철 흐르고 있더라고요. 아, 이거는 살인사건이다..."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새까맣게 탄 부부의 시신에서 칼에 찔린 흔적이 발견된 거야.

'탄화 시신', 시신이 숯처럼 굳은 상태를 말해. 부부는 탄화 상태로 영안실에 옮겨졌어. 근데 수축된 피부가 온도변화로 서서히 이완되면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자상이 뒤늦게 발견된 거야.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 화재 감식 결과, 지하실에서 휘발유가 발견됐어. 누군가 부부의 집에 불을 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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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살인사건 소식입니다. 100억 대 자산가로 알려진 한약협회 서울지부장 부부가 흉기에 찔린 채 불에 타 참혹하게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사고 직후 단순 화재 사건으로 처리했으나,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이뤄진 검시 결과 박 씨 부부가 예리한 흉기로 찔린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곧바로 수사팀이 꾸려지고, 부부의 시신은 부검을 위해 국과수로 옮겨졌어. 형사들도 범인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어. 먼저 형사들은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에 무게를 뒀어. 한달 전에도 이 집에 도둑이 들었었잖아. 이번에도 부잣집을 노린 강도가 침입해서 부부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불까지 질렀다 생각했어.

근데, 막상 범죄 현장에 갔더니 1층에 금고가 그대로 있어. 현금, 수표, 다이아몬드 반지까지도 전부 그대로 있었고, 뒤진 흔적도 없어. 범인을 돈이 아닌, 두 사람을 노렸을 가능성이 커졌어.

그리고 부검 감정서가 나왔는데, 그걸 본 형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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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편의 시신에선 안면부, 복부, 등을 포함해 총 51군데의 자상이 발견됐어. 특히 남편의 심장은 구멍이 뻥 뚫릴 만큼 집중적으로 찔린 흔적이 보였대. 그 횟수만 무려 18회였어. 부인의 시신에선 총 46군데 자상이 발견됐어. 그 중에서도 턱 아래 목 쪽을 집중적으로 찔렀어. 이 정도면 머리가 분리되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래.

두 사람은 총 100여 차례의 다발성 자창, 즉 '오버킬'로 살해됐어. '오버킬'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이상의 과도한 살해 행위를 말해. 이런 식의 오버킬이 나왔다면, 어떤 경우일까? 이건 용의자 특정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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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으로 오버킬이 나타나는 이유 중에는 감정적 요소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원한 또는 치정, 얽히고설킨 금품 관계로 인해서 분노가 매우 크게 억눌려 있을 때 그것이 표출될 때, 피해자를 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거죠. 때로는 흥분과 격정에 휩싸여서 자기도 모르게 마구 흉기를 휘두르고 공격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다만 그 경우에는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치명적이지 않은 손상이 무척 많이 발생합니다. 마구잡이식의 난자가 이루어거든요. 반면 어떠한 한 지역에 상처가 몰려있는 현상, 그런 집중도가 높은 공격일 경우는 명확한 의식을 가진 채 목표 의식을 가지고 신체 특정 부위를 계속해서 공격한 겁니다. 단지 '싫다, 밉다, 저 사람이 나에게 부당한 행위를 했다, 저 사람 혼 좀 내주고 싶다', 이 정도로 행할 수 있는 범죄는 아니라는 거예요."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범인의 의도는,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게 아니라, 부부에게 강한 증오와 적개심을 가졌을 경우가 높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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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감정서에 있는 남편의 손에는, 맨손으로 칼을 막다 생긴 방어흔이 있어. 어쩌면 그날 남편 박 씨와 범인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을지 몰라. 이걸 바꿔 말하면, 범인에게도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이제 이 증거들을 가지고, 오버킬 살인마를 추적해 볼게.

▲ 살인마를 찾아라

형사들은 부부의 주변 인물들부터 조사했어. 근데 박 씨는 마당발이야. 조사할 사람이 어마어마하단 얘기지. 형사들은 시장 상인, 협회 관계자, 친척, 동네 주민, 하다못해 배달부까지. 강남 일대를 쥐 잡듯 뒤지며 발품 수사를 이어갔어.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이 계속 뒤지다 보니 어느 순간 수상한 사람이 보여.

사건 당일 부부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지하실 안방. 부부가 공사 때문에 지하실에서 기거했다고 했지? 근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좀 있었어. 알고보니 공사 지연 문제로, 담당자 A씨와 아내 조 씨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어.

"공사 현장에서 다툼이 있었다고 하니까 우리가 의심을 많이 했죠. 이런 부분에서 원한이 있지 않았나."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수상한 점은 또 있어. 사건 당일, 강제로 문을 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어. 범인은 이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부부가 지하실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사람일 가능성이 커. 마치 공사 담당자 A씨처럼. 그럼 A씨가 앙심을 품고 부부를 살해한 걸까?

근데 막상 A씨를 만나보니, 느낌이 영 아니야. 물론 감정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100여군데를 찌를 만큼 원한이 깊지도 않고, 알리바이도 명확해.

그래서 이번에 형사들은 박 씨가 소속된 한약사 모임에 주목했어. 공교롭게도 박 씨가 서울시 지부장으로 당선된 건, 살인 사건이 있기 일주일 전이었어. 형사들은 박 씨의 당선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닐까, 가설을 세웠어. 그런데 협회 사람들 반응이 의외야. 지부장은 명예직이라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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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라고 할 수 없어요. 그냥 원로들이 모여서, '이번에는 박 회장 한 번 시키자'. 그날 43명이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그날은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협회 관계자

그래도 혹시 몰라 조사를 해봤지. 그랬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안 나와. 형사들이 그렇게 고생했는데 건질 게 없어.

그런데 형사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대. 오히려 심증을 더 굳혔다는 거야. 사실 이유가 있어. 형사들이 쫓던 용의자가 한 명 더 있었거든. 그런데 이 정체가 정말 충격적이야.

▲ 뜻밖의 용의자

세번째 용의자의 실체가 드러난 건, 사건 다음 날인 5월 20일. 이른 아침 한 남자가 병원 응급실에 들어왔어. 이 남자의 행색이 말이 아니야. 머리는 부스스하고, 옷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이 보여. 팔과 종아리엔 진물까지 흐르고 있어. 어디서 다쳤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해.

"어제 새벽에 집에 불이 나서, 거기서 빠져나오다가 데었어요."

어제 불이 난 집. 맞아 박 씨 부부의 집이야. 그 집에서 탈출하다가 화상까지 입은 남자. 누굴까? 사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박 씨 집엔 한 사람이 더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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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학 중인 박 씨 부부의 아들이야. 이름 박한상. 나이 스물셋. 얼마 전 방학을 맞아 귀국한 아들은, 사건 당일 부모와 함께 지하실에 있었어. 그럼 이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인물이잖아? 근데 막상 조사를 해보니 좀 이상해. 아들의 진술은 이랬어.

그날 아들은 안방 맞은편인 작은 방에서 자고 있었대. 그러다 새벽 1시쯤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는데 안방에 불길이 치솟고 있더라는 거야. 그렇게 불이 났다면, 부모님의 안전을 먼저 확인해보려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들은, 작은방 창문을 통해 혼자 탈출했어. 너무 큰 불이라 차마 엄두가 안 났대. 그렇게 나온 아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대.

엄마와 아버지는 100여 군데 자상을 입고 숨졌어. 맞은편 방에 있었던 아들은 그 사실을 몰랐을까? 아들의 대답이 좀 황당해.

"제가 바이오리듬이 깨져서 초저녁부터 깊게 잠들었어요.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아들 박한상

자기가 미국에서 와서 시차적응이 안돼 며칠 잠을 못 잤는데, 하필 그날 밤 9시부터 골아 떨어져서 세상 모르고 잤다는 거야. 아들을 조사한 조상복 형사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꼬치꼬치 따져 물었어. 그러자 박한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잔 자신을 탓하며 펑펑 울더라는 거야. 그래서 조 형사는 더 이상 캐묻지 못했대. 정황상 의심은 갔지만, 그래도 아들이 부모를 100번 씩이나 칼을 찔러 살해했다? 믿기 힘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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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긴가민가 했어요. 설마 설마… 어떻게 아버지가 50여 군데 칼에 찔리고 엄마가 한 40여 군데 찔렸다? 이거는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겠느냐, 사실 이런 의구심이 있었어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이런 의심을 품은 건 조 형사 뿐만이 아니었어. 강력 1반 소속의 한상희 형사. 한 형사는 박 씨 부부의 친척들을 조사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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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모부를 수사했는데요. 고모부는 우리 조카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하는데 고모가 약간… 올케가 그러는데 우리 조카가 너무 낭비가 심하다, 큰일났다고 걱정을 하더라는 거예요. 돈 문제 때문에 부모와 갈등이 있다는 걸 알아서 이제 거기에 대한 초점을 맞췄죠."
-한성희,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아들이 평소 돈문제로 부모 속을 그렇게 썩였다는 거야.

"그러다가 장례를 치르고 천안 병천(장지)을 갔는데요 버스에서 내려서 가족들이 다 올라가는데 박한상이만 안 가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예요."

-한성희,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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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건 다음날, 현장 감식 때 찍힌 사진이야. 아들의 모습이 어때 보여? 전날 끔찍한 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어. 넋이 나가있어도 모자랄 판에, 태연하게 현장을 둘러보더니 청소까지 하고 갔대. 그 모습이 영 께름칙했던 한 형사가 그때부터 이 아들을 예의주시 했던 거야.

▲ 결정적 단서

두 형사는 윗선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아들이 수상하다고 수사해봐야 한다고 했어. 하나같이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야.

"내가 의심이 간다고 말을 하니까 위에서는 '무슨 소리 하냐'.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죽일 수 있냐 그렇게 잔인하게… 아들의 마음이 부모가 저렇게 비참하게 살해됐는데 왜 괴롭히느냐고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당시만 해도 우발적 존속 살인은 가끔 있었지만, 계획적이고 잔인한 패륜 사건은 알려진 게 없었어. 두 형사가 잘못 짚은 거라면, 의심만으로도 유족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조 형사와 한 형사는 몰래 수사를 계속 하기로 했어. 주변 탐문과 동시에, 아들의 뒤를 캐기 시작한 거야. 일명 '투 트랙 수사'. 조 형사는 본격적으로 감청을 하기 시작해. 사건 이후 박한상은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어. 여자친구와 통화하는데, 느낌이 쌔하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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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청을 걸었는데 전화 통화 내역서를 보니까 여자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통화하는 걸 보니까 부모가 그 정도로 돌아가셨으면 마음이 우울하고 전화를 안 해야 되는데, 여자친구하고 통화하는 걸 보면 전혀 그런 내색이 없어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이건 도저히 부모상을 당한 아들의 태도가 아니야. 그렇다고 범인으로 단정 지을 수도 없어. 갖고 있는 건 심증 뿐이니까.

사건 발생 4일 째 아침을 맞았어. 아주 뜻밖의 여성에게서 의미심장한 제보를 듣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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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전화가 왔어요. 형사님 빨리 와 보시라고. 형사님 이상합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좀 이상하던데. 머리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머리에 상처가 있는 줄 알고 머리를 보니까 머리에 상처는 없는데 핏덩어리가 많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상하다… 왜 머리에 피가 있었을까?"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사건 직후, 아들의 화상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 간호사가 제보를 해온 거야. 처음엔 탈출하다가 머리에 상처를 입었나 했대. 핏자국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다친 흔적은 없었어. 어쩌면 이게, 피해자의 혈흔일 지도 몰라. 조 형사의 촉이 발동했어.

근데 당시 병원에선 화상 치료만 하고 돌려보내서, 대조할 혈흔이 남은 게 없었어. 그렇게 또 한 번의 찝찝함만 남은 채 병원을 나서려던 그때였어. 간호사가 "이것도 단서가 될까요?"라며 뭔가를 얘기했는데, 조 형사의 머리에 스위치가 켜졌어. 드디어 결정적인 단서를 캐치한 거야.

간호사의 얘기를 들은 조 형사는 그 길로 박한상이 머무는 친척집을 찾아갔어. 조 형사는 박한상에게 말을 걸며 슬쩍 그의 종아리를 살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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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흔. 피해자와 범인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다는 바로 그 상처가 박한상의 종아리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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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이 박한상을 데리고 내 방으로 오게 그래서 그게 진료실이나 이런 데서 감정한 게 아니고 내 방에서 했습니다. 종아리에 있는 '치흔'을 감정하는데 종아리도 아주 튼실했고요. 치흔은 표피 박탈 정도가 아니고, 좌열상 찢어지는 거죠."
-김종열, 사건 담당 법치의학자

간호사가 박한상의 종아리 쪽에서 누군가가 문 흔적을 발견했고, 그걸 의심한 형사들이 박한상 몰래 확인한 거야. 그럼 이 치흔, 누가 남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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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칼에 찔리면서 붙들고 종아리를 물었던 모양이에요. 종아리 치흔과 어머니의 치열이 일치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자기 엄마가 다리를 잡고 애원하는데도, 그걸 또 무시하고 찌르고 엄마가 고통을 못 이기고 다리를 물어뜯는데도 찌르고 했을 때는 이미 인간의 심정을 다 포기한 상태죠."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이제, 박한상의 자백을 받아야 해. 이번엔 한상희 형사가 나섰어. 한 형사는 박한상을 집 밖으로 불러냈어. 박한상은 여전히 자신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눈치야. 한 형사는 슬쩍 담배를 건네며,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거야?"라고 물었어. 그러자 훅 들어온 질문에 박한상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해. 이때다 싶은 한 형사는 그간 수사한 내용을 들이 밀며 추궁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박한상이, 드디어 얘기를 시작했어.

▲ 오버킬의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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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협회 서울지부장 박 씨 부부 살해 방화 사건은 박 씨의 맏아들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박 씨의 맏아들 박한상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증거를 확보해서 오늘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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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은 곧장 경찰서로 연행됐어. 경찰서에 몰려든 취재진들. 박한상은 고개를 돌리며 카메라를 피하기에 급급했어. 취재진들이 부모를 죽인 이유, 흉기로 그렇게 많이 찌를 이유를 묻자 박한상은 이렇게 대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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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건 기억이 안나요… 아무 정신이 없었어요."
-박한상

집 인근 공터에서 범행에 쓰인 칼이 발견되고. 갈아 입은 옷에선 아버지의 혈흔이 발견됐어. 부부에게 무려 100여차례 칼을 휘두른 오버킬 살인마. 바로 아들 박한상이었어.

한 형사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자백을 받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섬뜩한 기분이 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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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조서 받을 때 담배도 주고 '이야기를 사실대로 해라' 했더니, 그 정신머리 나간 놈이 여자친구한테 전화 한 번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친구한테 전화를 해 달라고 하는 거 보니까, 정신머리가 완전히 제대로 박히지 않은 애라는 것을 느꼈죠. 반성도 안 하고 성공 못했다는 그런 느낌만 있는 거예요. 웃고 그러더라고요. 여자친구와 통화하며. 내가 잘했으면 (완전범죄가) 됐는데, 잘못했다는 실패한 인생을 하고 있지. 반성의 의미가 1도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얘가 무서운 애구나.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한성희,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차라리 변명이라도 했으면 나았을텐데, 오히려 완전범죄를 저지르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대. 그런 모습을 보며 한 형사는 인류애가 부서지는 기분이었대.

▲ 아들의 범행 동기

오버킬은 오랜 시간 쌓아온 분노와 증오의 표출이라고 했잖아? 대체 박한상은 왜 부모의 목에 칼을 겨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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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럽지 않은 재력가 집안. 그 가족 안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부터였어. 삼형제 중 장남인 박한상은 아버지 박 씨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다고 해. 메이커 옷에 음식도 최고급만 먹이고 아낌없이 사랑을 쏟았어. 그 중에서도 아버지 박 씨가 가장 신경 쓴 게 있어. 아버지 따라 한약사가 되는 것. 하지만 박한상은 공부에 영 소질이 없었어. 60명 중에 잘해야 40등. 한약대는 커녕 인 서울도 어려워. 지방 소도시에 있는 한 토목학과에 겨우 입학했어. 그럼 대학생활은? 그는 학교를 거의 안 가고 계속 서울에 와 있었대. 박한상은 당시 유명한 '오렌지족'이었거든.

오렌지족. 부모님 돈으로 유흥을 즐기는 90년대 부유층 자제나 유학파 출신을 일컫는 말이야. 100억대 자산가 아버지를 둔 박한상도 그중 하였어. 공부는 뒷전, 부유층 자제들과 어울리며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살았어.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그냥 두고 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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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박한상만 보면 성질이 나는 거죠. 하라는 공부는 안 하니까. 매일 오면 나가 죽으라든지. 이런 잔소리를 많이 한 거죠. 엄마가 옆에 붙어 있다가 하도 안 되니까 외국으로 보낸 거예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그렇게 박한상은 9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의 생활도 풍족했어. 번듯한 집에 차도 사주고 용돈도 두둑하게 줬어. 당시 돈으로 매달 용돈만 200만원 씩 보냈대.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어. 박한상은 미국에서 유학생들과 어울려 술에 여자에 매일 방탕한 생활을 즐겼어.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몰래 귀국해서 카드대출을 받았어. 그리고 다시 흥청망청 놀아.

그러다 터질 게 터졌어. 아버지가 모든 걸 다 알게 된 거야. "너 이럴 거면 호적에서 나가! 이 자식 당장 호적 파버려"라며 아버지가 화를 냈어. 이때가 사건 발생 이틀 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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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동기는 아버님의 좀 심한 저에 대한 질타, 그런 게 기본적인 원인이 됐다고 생각을 하고요. 예를들면, 넌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놈이라고. 어떤 일을 해도 못하는 놈이라고…"
-박한상

아버지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은 박한상은, 결심해.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 부모를 살해한 그날

다음날 오전 11시. 느지막이 잠에서 깬 박한상은 대문을 나서. 첫 목적지는 잡화점이야. 범행에 쓸 칼을 구입했어. 다음 행선지는 주유소. 휘발유 8리터를 구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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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은 시장에 들러 2천원을 주고 칼을 샀어. 일명 람보칼을 콕 짚어 달라고 했대. 사실 박한상은 범행을 결심하며, 완전 범죄를 다룬 미국 영화를 봤어.

"패륜아 박한상 군은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폭력비디오를 본 뒤 이런 범행을 계획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녁 6시. 사건이 벌어지기 약 6시간 전이야. 박한상은 또 한 번 집을 나서. 그가 집을 나선 이유? 정말 황당 그 자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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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갔다가 청량리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청량리는 왜?') 성매매 업소 앞에 갔다 왔습니다. ('누굴 만났어?')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가서 뭐 했어?') 가서 한 번 할 생각이었습니다."
-박한상

부모를 살해할 계획을 실행하기 전, 성매매 업소를 찾아갔다는 박한상. 그렇게 집에 돌아온 박한상은 자신의 방침대에 누웠어. 그리고 때를 기다려. 어느덧 밤 12시. 집안이 고요해. 박한상이 안방 문을 열어.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마, 자?"라고 말해. 잠이 깊게 든 부모님. 아무런 대답이 없어. 그 모습에 안심했는지, 박한상은 또 한번 기괴한 행동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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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밤 12시 10분경 거실에 나와 옷을 모두 벗어 소파 위에 놓고, 팬티와 운동화 만을 착용하고 범행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입고 있던 팬티는 범행 후 칼과 함께 공터에 버렸습니다."
-박한상의 자필 진술서 중

옷에 혈흔이 튀면 증거가 남으니까. 완전 범죄를 계획한 거지. 맨몸에 하얀 침대커버를 뒤집어 쓴 그는, 한 손엔 람보칼, 다른 한 손에는 과도를 든 채 부모님이 잠든 안방으로 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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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은 안방 문과 가깝게 누워있던 어머니를 먼저 공격했어. 그 소리에 놀란 아버지가 눈을 떠. 그러자 박한상은 손으로 아버지의 눈을 가린 채 공격을 이어갔어. 아버지는 맨손으로 칼을 막으며 저항했고.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종아리를 깨물며 아들을 말렸지. 하지만 박한상은 멈추지 않았어.

"자기 아버지를 죽였을 때도 몸부림 칠 거 아닙니까? 한 방에 바로 죽지는 않으니까. 계속… 그때는 정신이 없겠죠 부모를 죽이는데. 엄마가 움직이니까 엄마도… 오죽하면 엄마가 살려달라고 종아리를 물었겠어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그런데 박한상이 살인을 결심한 이유. 아버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고 쳐. 그럼 왜 어머니까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걸까?

박한상은 미국에서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댔어. 바로 도박. 근데 그 정도가 지나쳐. 하룻밤 사이에 두달치 용돈을 날리는가 하면, 부모님이 차 사라고 보낸 1,500만원을 앉은 자리에서 탕진하기도 했대. 빚과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지만, 박한상은 멈출 생각이 없었어. 박한상은 오히려 자신이 도박에 빠진 게 사회탓이라며 궤변을 늘어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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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가봤던 모든 사람들이라면 라스베이거스라든지 그런 곳에 한두 번씩은 가봤을 거예요. 미국에 유학 가는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다 한 번에 목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오고 한 달에 2천 불 생활비 받는 것도 거의 한 번에 받고요. 목돈 만질 기회가 많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가장 큰 미끼가 되겠죠.(도박으로 잃은 돈?) 대락 2만 불 정도 됩니다.
-박한상

그렇게 도박에 돈을 다 탕진하고, 더 이상 돈 나올 구멍이 없자, 박한상은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해. 유산을 상속받으면 되지 않겠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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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면, 제가 제 손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한상

상속을 위해서 엄마도 없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야. 결국 부모를 100여차례 찔러 살해하고 불까지 지른 비극의 시작은 바로 도박 자금, 돈 때문이었어.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부모를 잔인하게 살인한 아들은, 처음 계획대로 화장실에 가서 피를 씻어냈어.

"화장실을 루미놀(혈흔 감식 용액)로 전부 점검하니까"
-한상희,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거기가 막 번쩍번쩍 하더라고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근데, 간호사는 당시 박한상의 머리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했잖아? 근데 박한상은 샤워를 했단 말이지. 어떻게 된 걸까? 사건 현장엔 피해자의 한이 서려있다고 해. 이 사건, 그의 계획대로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었어. 근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날 박한상은 머리만 감지 않았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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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피가 온몸에 다 묻었어요. 근데 머리를 안 감았어요. 얼굴은 씻고 몸은 다 씻었는데, 머리를 안 감으니까 그 핏덩이가 머리에는 남아 있었던 거예요."
-조상복,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

아들의 손에 죽어가는 그 순간,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남긴 치흔은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됐어. 이 두가지 스모킹건. 잘못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천륜을 저버린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니 이제라도 참회를 하며 살라는 부모님의 마지막 충고 같은 건 아니었을까.

▲ 국내 1호 패륜범

그렇게 그날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어. 유산을 노리고 부모님을 끔찍하게 살해한 패륜아 1호. 지금껏 본 적 없는 괴물의 등장에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어.

전문가들은 긴급 간담회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섰고, 오렌지족과 무분별한 도피성 유학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어. 시민들 사이에선 '유산 남기지 않기' 캠페인도 벌어졌대. 애당초 부모 자식 간에 돈 문제를 만들지 말자는 취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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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온 나라가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이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어. 바로 처음에 만난 황산성 변호사야. 황 변호사는 처음 사건을 접하고, 이런 생각을 했대. '죄를 돌이킬 수 없다면 죄를 뉘우치는 방법이라도 알려줘야겠다'라고. 독실한 종교인인 황 변호사는 범죄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도록 무료 변론을 도맡아온 분이야. 그래서 박한상의 변호를 자처했던 거지.

그럼 박한상은 자신의 변호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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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찰서로 갔죠. 박한상을 만나고 싶다 했더니, 경찰서도 조금 놀랬죠. 그런데 박한상을 보면요. 정상적으로 보여.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네가 사실대로 말해야지 정상 참작이 된다고 그래도, 그냥 안 죽였다 소리만 하는 거죠. 아주 태연스럽게 안 그랬다고. 자기가 안 죽였다 이거지요. '제3자가 죽였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아무나 범인으로 지명하는 거예요."
-황산성, 당시 박한상 변호인

나는 부모를 죽이지 않았다, 갑자기 무죄를 주장하는 거야. 그러면서 형사들이 고문을 해서 거짓 자백을 했다는 말도 덧붙여. 이런 말을 들은 황 변호사는, 일단 좀 혼란스러웠대. 태도를 보니 거짓말 같긴 한데, 한편으론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황 변호사는 박한상이 지목한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했어. 그리고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확인해.

달라지는 건 없었어. 범인은 박한상이 맞아. 황 변호사는 계속 그를 타일렀어. 그리고 첫 공판이 열려. 법정에 선 박한상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을까?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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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전 저녁 9시 20분 경 방에서 잠들었습니다. 그 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정원으로 나왔는데 누군가 제 입을 막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제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고, 손엔 등산용 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칼을 찔려 살해된 것을 알게 된 저는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는 생각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갑자기 보일러실에서 불길이 번져 불이야 하며 뛰쳐나간 것입니다."
-박한상

박한상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내며 무죄를 주장했어. 무죄를 받아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의도였을까? 유일하게 손을 내밀었던 황산성 변호사도 이날 재판을 끝으로 변호를 포기했어. 더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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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저렇게 거짓말 하면서 자기 변명을 하는데. 자기 과오를 모른다 우리 손 떼자, 내 손 뗀다. 아무래 노력해도 안 된다고 느낄 따름이지. 실망과 좌절을 느꼈죠."
-황산성, 당시 박한상 변호인

최종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재판부는 이렇게 결론 내렸어.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을 찾기 위해 고심했으나, 고작 피고인의 부모가 살아있을 경우 아들의 사형을 원치 않았을 거란 추측 뿐이다.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리고 욕해도, 유일하게 내 편이 돼주는 부모님. 그런 부모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 아들에게 재판부는 따끔한 일침을 건네고 싶었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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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한상 피고인에게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상속인 결격자로 판정돼서 유산을 단 한 푼도 물려받을 수 없게 됩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한때 강남을 주름잡던 오렌지족 박한상. 그는 결국 자신의 덫에 걸려 패륜아 1호라는 낙인을 얻고 몰락하고 말았어. 박한상은 여전히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야. 1997년 이뤄진 마지막 사형 집행. 시기상 박한상은 그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어. 현재 우리나라에선 두 번째 장기 복역 중인 사형수야.

31년이 지난 이제는, 자신이 저지를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을까? 사건 이후에 교도소에서 박한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어. 6년 동안 박한상의 상담을 담당한 교화위원이야.

"부모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까지 해버린 강남의 또라이 박한상. 이 아이를 6년 이상 상담하면서 느꼈던 참담한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부모를 살해하고 세상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리고도 끝까지 태연했던 아이. 반성은커녕 살아서 더욱이 범죄 사실을 끝끝내 부인하면서 오히려 다른 이에게 누명까지 씌우려고 했다. 사형수 상담 30년 동안 이 아이 앞에서만큼 참담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끝내 용서하고 포용할 마음을 내지 못했다."
-교화위원

이 사건은 당시 학교, 사회, 가정 모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겼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가. 90년대 초 유행처럼 번지던 해외 유학과 스펙만을 좇던 사회분위기 속에 무너진 인간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어. 그리고 이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인성보단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 윤리와 도덕보다 속도와 경쟁이 앞서는 사회.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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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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