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5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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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네가 날 무시해?" 망상에 친구 아이들까지 살해…'2003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의 진실

강선애 기자 작성 2025.08.15 11:16 수정 2025.08.15 11:18 조회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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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4일 방송된 '2003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엔플라잉 이승협, 배우 박효주, 홍화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대한민국 최초 밀실 살인 사건

오늘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밀실 살인'으로 알려진 사건이야. 그 수법이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해. 사건을 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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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난 후 시간이 거의 20년 됐잖아요. 근데 지금도 현장에 나가서 그 보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라서 인터뷰하기가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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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싶지 않다 자료를, 너무 끔찍하다. 이건 '악마라는 말도 너무 아깝다' 싶을 정도의 상황이잖아요."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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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유일한 경험이었고, 퇴직할 때까지도 밀실 살인사건은 한 건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 이게 과연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인가."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범인은 약 10제곱미터, 3평 남짓의 작은 방에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유령처럼 사라졌어. 악마가 남긴 수수께끼의 답이 뭘지,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게.

때는 2003년 12월 29일 저녁 8시.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아파트 단지인데, 경찰들이 들락거리느라 아주 아수라장이 따로 없어. 이 아파트에서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된 거야. 현장에는 송파경찰서 강력 4팀 형사들이 출동했어. 그 중에는 조세희 형사도 있었어. 조 형사는 넉 달 전에 이 강력팀에 배정됐어. 경찰 생활 11년 만에 강력팀은 처음이라, 단단히 각오하고 현장에 들어섰어. 하지만 시신을 확인한 순간, 그대로 얼어 붙었어. 당시 현장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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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변사자는 30대 초반의 여성 장미연(가명) 씨. 다른 두 시신은 그녀의 아이들이야. 첫째 현우는 이제 겨우 3살, 둘째 하은이는 생후 10개월 밖에 되지 않았어. 게다가 시신의 상태가 너무 참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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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엄마 장 씨는 목에 올가미 끈이 묶인 채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세 살 난 아들 목에는 보자기가 둘러져 있었고, 10개월 된 딸은 얼굴에 비닐봉투가 씌워진 채 숨져 있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조사 결과, 세 사람의 사인은 모두 질식사. 4~5시간 전에 사망한 걸로 추정돼. 그런데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조 형사의 눈에, 조금 의아한 광경이 포착됐어. 집을 뒤진 흔적은 커녕, 창문이나 현관문을 훼손한 흔적이 없는 거야. 게다가 외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나 족적도 발견되지 않았어.

▲ 첫번째 용의자

얼마 후, 첫번째 용의자가 특정돼.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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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아이들의 엄마이자, 본인 역시 사망한 장 씨. 보통 타인에 의한 목졸림을 당한 경우라면, 피해자가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목에 끈 자국이 넓게 여러방향으로 남는다고 해. 또 끈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손톱으로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그런데 장 씨의 목에는, 방허흔이 보이지 않아. 장 씨의 시신을 확인한 현장감식반은, '외관상 타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라고 결론 내렸어. 누군가 장 씨에게 위협을 가했다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거세게 저항했을 거라는 거야.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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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장의 싱크대 모습이야. 장 씨는 사망 직전까지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한 것으로 보여. 아이들과 생을 마감할 사람이, 남편이 퇴근 후에 먹을 저녁식사를 마련한다? 게다가 범인은 첫째의 목에 보자기를 감고, 둘째의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워서 살해했단 말이야. 가해자와 아이들이 얼굴을 마주볼 수 밖에 없는 방식이야. 아무리 비정한 엄마라도, 굳이 그런 방법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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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아이는 수면제만 먹어도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서 (존속 살해의 경우) 가장 편한 방법을 택해야 되는데 가장 고통스러운 행위였기 때문에 그 부분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사건의 총지위를 맡은 이문국 형사과장은 감식반에 재감식을 의뢰했어. 여섯 명의 베테랑 수사관이 다음날 새벽까지 사건 현장과 시신을 살폈어. 결과는, '타살 혐의점 없음'. 이번에도 사망한 장 씨가 아이들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견이야.

하지만, 30년 넘게 현장을 누빈 이문국 과장은 이대로 사건을 종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 반드시 확인할 게 있었거든. 당시 장 씨의 손 사진을 보여줄게. 장 씨가 손에 움켜쥔 것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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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한 점이 보니까 피해자 손에 종잇조각이 하나 있더라고요. 주변에 종이라도 있었으면 이해가 가지만, 그런 것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장 씨가 고통 속에서 종이를 잡았다는 거는 무언가 의미가 있지 않으냐. 과연 이 종잇조각이 어디서 나왔을까."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1차적으로 현장을 살펴봤을 때, 시신 주변에 종이 같은 건 없었어. 그런데 대체 그게 어디서 난 건지, 계속 의심스러운 거야. 그리고 보통 사망하면, 근육이 이완되며 몸이 늘어진 채 굳는다고 해. 그런데 사망하는 순간에 근육에 힘을 강하게 주다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거, 그걸 '즉시성 시강'이라고 한대. 그러니까 장 씨가 마지막 순간에 사력을 다해 그 종잇조각을 움켜쥐었다는 거야.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움켜쥔 오른손에는 멍 자국도 있었대. 대체 장 씨는 왜, 그 종잇조각을 움켜 쥐었을까.

이 과장은 이 종잇조각이 장 씨가 남긴 다잉메시지가 아닐까 했어. 그래서 형사들에게, 나머지 종잇조각이 집안에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어. 그 결과, 이문국 형사과장이 송파경찰서의 다섯 개 강력팀 형사들 전원을 소집했어. 수사 방향이 완전히 뒤집힌 거야.

"온전히 진짜 자살이라면 그 나머지 종잇조각이 어딘가 집 안에는 있을 것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 종잇조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종잇조각이 외부의 것이 아닌가. 만약 종잇조각이 외부의 것이라면 이거는 살인이다.."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장 씨가 손에 쥔 종잇조각의 나머지 부분은 집안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어. 현장에 있어야 할 물건이 없다? 누군가 현장에 있었다는 반증이라는 거야. 누군가 세 사람을 살해한 뒤 연기처럼 증발해 버린 거야.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란,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고, 모든 출입구가 내부에서 잠긴 채 발견된 사건을 말해. 추리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이런 밀실 사건이 벌어질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해. 밀실의 특성상, 그 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제한적이라, 범인이 용의선상에 오를 확률이 높아.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잡한 밀실 살인을 계획할 이유가 없는 거야. 이 사건이 대한민국 최초의 밀실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

▲ 두번째 용의자

전대미문의 밀실 살인사건. 경찰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이자 유족, 장 씨의 남편 김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어. 30대 중반의 김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 사건 당일 김 씨는 저녁 7시쯤 귀가해 현장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어.

신고 접수시간: 19시 53분 38초.
신고내용: 부인이 목을 매고 아이들이 죽어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불과 10분도 안 돼 현장에 도착했어. 그런데 남편의 신고 내용과 현장 상황은 조금 달랐어. 아내가 목을 매고 있다는 신고와 달리, 미연 씨의 시신은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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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갔을 때는 현장이 다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목을 매고 있는 현장이라든가 아이들이 죽어있는 상태, 이런 부분이 이미 많이 건드려져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거는 남편이 다 훼손했습니다. 구조 차원에서라도 바로 줄을 자르고 눕혔을 것이다, 그래서 유족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사건 현장을 처음 발견한 남편 김 씨는 응급조치를 위해 가족의 위치를 옮기고, 줄과 비닐봉지를 풀었다고 진술했어. 이건 유족이 최초 목격자일 때 종종 생기는 일이라 해. 당장 내 가족이 위급한 상황인데, 어떻게 현장 보존을 신경 쓰겠어. 근데 유족이라면, 제일 먼저 119에 전화해 구조요청을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은 119 구급대원을 보지 못했어. 남편은 왜 119에 연락하지 않은 걸까?

아직은 그 어떤 것도 섣불리 단정할 순 없어. 그래서 형사들은 곧바로 남편 김 씨의 사건 당일 행적을 확인했어. 미연 씨와 아이들의 사망 추정 시각은 이날 오후 3시~5시 사이. 그 시각에 남편은 어디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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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반 중 1개 반을 남편에게 집중적으로 투입해 조사하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걸로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사람을 찾았고. 또한 이 집에 싸움이 있었느냐 없느냐, 그런 것까지 다 조사를 하기 때문에 부부관계에서는 크게 문제점이 없는 걸로 파악되었기 때문에, 남편은 제외시킨 겁니다."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남편의 알리바이를 확인한 형사들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어린 두 아이가 적어도 부모의 손에 목숨을 잃은 건 아니었으니까. 근데 유일한 용의자였던 남편의 알리바이가 해결되며, 사건은 더 미궁 속으로 빠졌어. 남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평일 대낮에 미연 씨네 집에 침입해서 세 사람을 죽이고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 밀실 살인 사건의 범인

아파트 CCTV를 확인하던 형사가 뭔가를 발견했어. 사건 당일 오후 3시, 엘리베이터 CCTV에 주민이 아닌 외부인이 탑승한 장면이 있었어. 게다가 이 외부인이 내린 곳, 미연 씨 집이 있는 층이야. 이 사람,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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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집에 주 3~4회 정도 찾아갈 정도면,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었나. 그리고 애들도 이모라고 부를 정도면 거의 가족처럼 지낸 것으로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평상시에도 가니까 그날도 그냥 평상시처럼 갔던 거다'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CCTV에 찍힌 외부인은, 미연 씨의 동창생 한 씨였어. 한 씨는 평소에도 그 집을 자주 방문해서 아이들과도 자주 놀아주고, 미연 씨의 말동무가 되어줬다고 해. 그래서 그녀의 방문 자체를 의심할 수는 없었어. 그런데 참고인 조사를 받는 한 씨의 태도가 좀 묘해. 절친한 친구와 조카 같은 아이들이 죽었는데, 슬퍼하는 기색이 전혀 없어. 시종일관 무표정한 말투와 얼굴에, 형사들은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대.

"슬퍼한다든가 이런 건 전혀 못 느꼈고요. 말도 낮은 톤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게다가 한 씨의 행동도 어딘가 좀 부자연스러워. 당시 겨울이긴 했지만, 조사실 안은 따뜻했거든? 그런데 한 씨가 연신 옷 소매를 끝까지 잡아 당겨 내리더래. 형사들은 곧바로 한 씨의 손을 확인했고, 한 씨가 범인이라고 확신했어. 실제 한 씨의 손 사진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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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의 손에는 줄 자국이 있었어. 범인은 빨랫줄로 미연 씨를 교살했는데, 줄을 손으로 잡아 당겼으면 자국이 남았을 거야.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겨. 물리적인 공격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흔적을 남기게 돼 있어. 형사들은 한 씨의 손에 남은 그 자국이, 교살의 흔적이라 생각했어.

한 씨는 범행을 부인했어. 수세식 화장실에 물 내리는 줄을 고치다 다쳤다는 거야. 형사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집요하게 한 씨를 추궁했어. 한 씨는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어. 그러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더니 이렇게 말해.

"네, 제가 죽였어요. 그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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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가 범행을 인정했어. 근데 그 태도가 너무 당당해. 한 씨, 대체 왜 이렇게 당당한 걸까?

"오히려 당당한 표정, 형사들이 좀 곤란할 정도로 '그래 내가 죽인 게 맞아' 이런 식으로 나와버리니까. 자백을 하더라도 입증 자료가 없으면 결국 법원에 가서 처벌을 못 받습니다. 그리고 한 씨는 자백을 하면서 어떤 범행 도구라든가 이런 게 어디 있는지 일체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형사소송법 제310조에 이런 내용이 나와.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라고. 자백하더라도 실질적인 증거가 없으면 그 자백이 효력이 없다는 거야. 한 씨가 아마도 이 점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걸로 보여. 그래서 범행을 인정하고도, 범행도구 같은 직접적인 증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어. 만약 이 상태로 한 씨를 체포한다면, 구금할 수 있는 시간은 48시간 뿐이야. 그 안에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면 한 씨를 풀어줘야 하는 건 물론, 같은 죄명으로 다시 구속할 수도 없어.

형사들은 그녀를 긴급체포했어. 지금부턴, 사생결단. 48시간 안에 증거를 찾아야만 해.

▲ 살인의 증거를 찾아라

형사들이 생각한 아이디어는 현장검증. 제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인도, 범행현장을 다시 찾으면 감정의 동요를 보이기 마련이야. 현장에서 형사들은 한 씨를 차분히 설득했어. 그러자 한 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그때 (미연 씨가) 앞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피가 묻어서 헌 옷 수거함에 버렸어요"라고 말했어.

"'피의자의 물건들이 완벽하게 없어졌다' 이런 자신을 가졌는지, '사용했던 도구는 집에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고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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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가 지목한 장소를 찾아갔더니, 진짜 헌 옷 수거함이 있어. 그 안에 피 묻은 앞치마도 있었을까? 아니. 이미 내용물을 거둬간 후였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증거를 찾기 위해, 집하장까지 따라 가야할까? 형사들은 가지 않았어. 한 씨가 수사에 혼선을 주고 시간을 허비하도록 거짓말 한 걸로 판단했어.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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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대라고 있습니다. 타격대도 출동시켜서 범죄 현장과 피의자의 집 사이에 또 다른 증거물이 있나 싶어서 수색한 거죠."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한 씨는 범행 이후 자전거를 타고 본인의 집으로 귀가했다고 진술했어. 형사들은 그 길을 전부 뒤지기로 했어. 거리만 7km, 걸어가면 2시간 가까운 거리야. 게다가 인근이 전부 들판이었어. 증거를 찾기 위해 수십명의 경찰과 전경들이 그 들판을 뒤졌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야. 반나절을 꼬박 뒤졌지만, 피 묻은 앞치마는 결국 찾지 못했어.

이제 남은 시간, 만 하루도 채 되지 않아.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단서를 찾아야 해.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고 하지? 혹시 그 곳에, 우리가 놓친 단서가 있지 않을까? 2003년 12월, 사건이 벌어진 그 장소로 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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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졌던 미연 씨네 작은 방을 재연했어. 확인 결과, 아이들을 죽이는데 쓴 보자기와 비닐봉지는 원래 미연 씨네 집에 있었던 걸로 확인됐어. 단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 범인이 미연 씨네 집에서 범행도구를 구한 거지. 그럼 미연 씨는 어디서 어떻게 살해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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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는 방문 앞에서 미연 씨의 목에 빨랫줄 올가미를 걸고 방문 뒤에서 줄을 잡아당긴 걸로 보여. 그 후에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 빨랫줄을 옷장 고리에 묶어 놓았어.

근데 한 씨의 손에 선명한 줄 자국이 있었잖아? 손에도 그 정도 자국이 남았다면, 문에도 자국이 남지 않았을까? 실제로 문 위에는 희미한 자국이 있긴 했어. 근데 홈의 깊이가 얕아. 성인 여성을 억지로 매달아 당겼다면, 깊은 홈이 여러 방향으로 남아 있을텐데. 그렇게 보기엔 자국이 얕고 희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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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만약 방문 위에 무언가를 덧대고 그 위에서 빨랫줄을 당긴 거라면? 그리고 그 덧댄 무언가가 뭔지 찾는다면? 그게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않을까?

형사들은 법원에서 한 씨의 주거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았어. 그리고 곧장 한 씨의 집으로 향했어.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작은 원룸이라 수색은 빠르게 진행됐어. 그리고 화장실을 살피던 형사들이 수상한 물건을 발견해.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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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구석에서 발견된 상자. 그 안에는, 테이프, 칼, 페트병이 담겨 있었어. 페트병은 조각이 나 있었는데, 가운데 한 조각이 없었어. 혹시, 그 사라진 가운데 페트병 조각으로, 방문 위에 덧댄 게 아닐까? 당시 현장에 있던 형사에게 이야기를 들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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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방문 위에 빨랫줄을 당겼을 때, 그냥 나무에다 하면 빨랫줄이 마찰 되면서 잘 안 올라 오잖아요. 그렇지만 페트병은 좀 당기면 좀 미끄러우니까 범행을 쉽게 하기 위해 준비했던 거 같아요."
-문동필, 당시 형사

이제 사라진 페트병 조각을 찾아야 해. 형사들은 다시 한 번 집을 샅샅이 수색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 매트리스까지 뒤집어. 그리고 그 아래에서 무언가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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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 밑에서 범행 계획서, 빨랫줄이 풀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방법으로 하면 실패한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가는 그런 쪽지였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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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가 몇 차례 그림을 그려서 실습한 것도 있고 범행 상황이 다 적혀 있었습니다. 자기 집에서 범죄 현장인 친구 집에 가는 시간까지 다 체크를 하면서 꼼꼼하게 그 기록을 다 남겨놨더라고요."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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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던 한 씨가 범행을 준비한 전 과정을 기록해 둔 거야. 무려 6개월에 걸쳐 준비한 한 씨의 살인 계획이야.

▲ 밀실 살인 사건의 비밀

사건 당일 오후 3시, 평소처럼 피해자의 집을 방문한 한 씨는 첫째 현우를 불러 숨바꼭질을 하자고 해.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자고 하니까, 장난기 많은 현우는 신이 났어. 그래서 이모 손을 꼭 잡고 작은방으로 향해. 현우가 어디 숨을까 고민하는 사이, 한 씨는 엄마 미연 씨와 둘째 하은이를 안방으로 데려갔어.

"현우가 엄마 위해 깜짝쇼를 보여준대, 여기서 잠깐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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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연 씨를 안심시킨 한 씨는 작은 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현우를 가장 먼저 살해했어. 전문가들은 이 범행을 준비하며 한 씨가 현우와 특히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해. 현우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는지를 관찰한 거야. 그래서 숨바꼭질로 어린 현우를 유혹한 뒤, 죽음의 개념조차 없는 세 살 아이를, 끔찍하게 살해했어.

한 씨는 현우를 살해한 후, 현우의 시신을 벽장 안에 숨긴 뒤, 작은방 방문에 올가미를 설치해. 그리고 다음 계획을 실행했어. 한 씨는 안방에 있는 미연 씨에게 검은색 치마를 건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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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면 재미 없잖아. 잘 쓰고 있어! 절대 보면 안 돼!"

미연 씨 얼굴에 검은색 치마를 씌운 뒤, 올가미가 걸린 작은방 문 앞으로 유인한 거야. 그리고 한 씨는 미연 씨가 두 손을 쓰지 못하도록, 이런 방법을 쓰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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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잔인한 범죄라고 말하는 게, 어떻게 보면 엄마의 모성을 이용한 겁니다.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아이를 혹시 놓칠까 싶어서 두 손으로 저항하지 않고 한 손으로 몸부림치다 보니까.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가 떨어지면 안 되니까. 그래서 한 손에 멍이 들어가면서까지 끝내 아이를 안 놓으려고 하는 그 어머니의 애절함. 그게 사실상 저는 이 사건의 가장 가슴 아픈 면인데. 의도적으로 연출해서 그것을 이용하는 가해자의 치밀함, 잔인함…"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한 씨는 치마를 둘러쓴 미연 씨에게 "미연아, 하은이 꼭 안고 있어"라고 말했어. 어린 둘째가 깜짝쇼를 방해할지도 모른다면서, 하은이를 안고 있으라고 한 거야. 만약 미연 씨가 품 안의 아이를 포기하고 두 손으로 올가미를 풀었다면, 그녀는 목숨을 건졌을 지도 몰라. 하지만 미연 씨는 품 안의 아기를 놓칠 수 없었어. 엄마니까. 죽는 그 순간까지 한 팔로 아이를 꼭 안은 채, 다른 한 팔로 올가미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 미연 씨의 한쪽 손에만 피멍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야.

한 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아. 엄마를 붙잡고 우는 하은이에게 다가가 마지막 범행을 저질렀어. 그런데 그때,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 첫째 현우, 그리고 둘째 하은이까지, 죽은 줄 알았던 그 아이들이 숨을 쉬는 거야. 한 씨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맨손으로 두 아이들을 다시 살해했어. 아이들의 시신에선 목과 가슴 주변에 잔혹한 폭행의 흔적이 발견됐어. 방금 전까지 본인을 이모라 부르며 웃던 천사 같은 아이들이었어.

현장을 빠져나온 한 씨는 완전 범죄를 자신했어. 미연 씨가 모든 범행을 뒤집어 쓴 채 사건은 자살로 종결될 거라 확신해. 하지만 한 씨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있어. 바로 미연 씨가 사력을 다해 움켜쥐었던 종잇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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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의 집에서 못 찾았던 페트병 조각 가운데 부분, 한 씨는 이 네모난 페트병 조각을 방문 위에 테이프로 고정했어. 근데 리허설을 해보니, 이 테이프를 떼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래서 한 씨는 테이프 끝에 종잇조각을 붙여놨어. 마지막에 종잇조각을 잡아 떼면 테이프가 한꺼번에 제거될 수 있도록. 그런데 결국 한 씨는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 완벽한 덫에, 스스로 걸려버린 거야.

이제 마지막 수수께끼만 남았어. 한 씨는 어떻게 범행 현장을 다시 밀실로 만들었을까. 한 씨는 사건 당일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으로 들어왔고, 범행을 마치고 집을 빠져나갈 때도 현관문을 이용했어. 그렇다면, 한 씨가 현관문으로 나가 밖에서 문을 잠갔다는 건데, 열쇠는 집 안에서 발견됐어. 그것도 미연 씨의 가방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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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는 평소 미연 씨가 가방에 열쇠를 보관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가방을 들고 나가서 열쇠로 현관문을 잠갔어. 그리고 복도쪽 창문으로, 열쇠를 넣은 가방을 다시 집안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어. 이것이 한 씨가 무려 반년에 걸쳐 계획한 밀실 살인의 전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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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살인이란 게 그만큼 추리가 더 들어가는데, 그만큼 환경을 꾸밀 만한 살인자의 능력도 안 되고요. 이 사건의 본질이 잘못 알려진 것이고, 그냥 밀실 살인, 사람들의 호기심에 그치잖아요. 이거는 밀실 살인이 아니고, 오히려 피해자의 신뢰를 배반한 사이코 범죄입니다."
-이문국,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

사실은 이 사건의 본질도, 밀실은 아니었던 거야. 지금부터는 어디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를 최초 공개할게.

▲ 잘못된 생각이 초래한 끔찍한 범행

한 씨의 집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마지막으로 범행동기를 밝혀내기로 해. 하지만 쉽게 입을 열 한 씨가 아니지. 그래서 최고의 전문가를 투입해. 바로 권일용 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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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마치 '당연히 해야할 일을 시원하게 마무리했다'는 느낌.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자랑하는 범죄자도 만났었고, 숨기려는 범죄자도 만나봤지만. 이렇게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 마치 상대방에게 다른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범죄자를 처음이지 않았나."
-권일용 프로파일러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당황할 만큼, 한 씨는 당당하고 태연했다고 해. 대체 왜 미연 씨를 살해했냐는 질문에 한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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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잘해주는데 뒤로는 무시했어요."
"(애들은 왜 죽였냐 묻자) 걔(장미연) 옆에 있으니까."
-범인 한 씨

범행동기는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야. 미연 씨가 어떻게 자신을 무시했는지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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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 성향이 상당히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나보다 굉장히 못했던 친구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내가 없는 곳에서 날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아주 편집증적인 이런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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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의 살인 충동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굴욕감이에요. 자기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어느 순간 자기가 우위에 서지 않았다거나 상대가 자기를 조금 하찮게 여긴다거나, 이럴 때 그걸 못 참아요."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나르시시즘. 이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존감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대. 본인이 평범해지는 순간,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월감에 대한 억지 집착을 갖는다는 거야. 한 씨와 미연 씨의 동창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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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되게 무서웠어요. 근데 선생님도 한 씨는 건들지 않았어요. 할 수가 없죠 선생님도. 한 씨 포스가 굉장히 남다르거든요. 왜 삐뚤어지면 안 되는 거 있잖아요. 누가 내 선을 침범하면 안 되고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정장 바지에, 허리에 벨트 딱 매고. 난방 빼입지도 않았고 안으로 넣어서 딱 단정. '여름에는 더운데, 왜 쟤는 저러고 다니지?' 싶을 정도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어요."
-동창생A

"제가 기억나는 게, 한 씨 눈빛이 좀 날카로웠다는 기억을 했는데 또 그런 기억을 하는 친구가 있더라고요.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막 웃고 떠들고 그런 게 없었던 거죠."
-동창생B

어쩌면 한 씨는 이 때부터 본인을 또래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겼을 수 있어. 굳이 친구들과 가까이 지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거야. 동창들에 따르면 한 씨는 미연 씨와도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해.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났을까? 한 씨와 미연 씨가 가까워진 건, 사건이 있기 2년 전이었어. 동창찾기 사이트에서 미연 씨를 발견한 한 씨가 먼저 연락해서 적극적으로 접근했대. 한 씨처럼 병적인 자기애를 가진 경우, 칭찬과 관심, 존경과 같은 자기애를 끊임없이 보급해줄 존재를 찾는다고 해. 아마도, 한 씨는 그런 존재로 미연 씨를 선택한 걸로 보여.

"미연이는 되게 잘 웃는 애였다는 기억이 나거든요. 지금도 웃는 모습이 기억나고. 잇몸이 다 보이게 웃고 그랬었거든요."
-동창생C

"미연이가 성격이 되게 좋아요. 착해요. 전 미연이 되게 좋아했거든요. 한 씨는 어려웠던 아이고, 미연이는 잘 웃으니까."
-동창생D

미연 씨는 학창시절부터 웃음이 많고 주변을 잘 챙기는 친구였다고 해. 2년 전에 한 씨를 다시 만났을 때도, 그녀가 별다른 직업 없이 홀로 지낸다는 이야기에 더 마음을 썼던 것으로 보여. 오죽하면 가족 휴가를 갈 때도 한 씨를 챙겨 함께 갔을 정도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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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워낙 배려하는 성격이라서 가해자의 성향을 참아줄 수 있는 캐릭터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가해자의 그 냉담함을 사람들은 불편해하는데, 피해자도 불편했을 수 있겠지만, 가해자가 외롭고, 혼자 있고,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면 느낄수록 피해자가 배려해줬을 가능성이 있어요."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한 씨는 본인과 달리 단란한 가정을 꾸려 사는 미연 씨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들에게 가장 큰 불안요소가 '패배'라고 해. 과도한 흑백논리에 빠져서 패배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전문가들은 한 씨가 참을 수 없는 좌절과 굴욕감을 느끼고 살인과 같은 공격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해.

그럼 한 씨가 이런 공격성을 보인 게,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사건 1년 전, 한 씨가 잠시 골프장에서 캐디로 근무할 때였어. 당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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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 씨는 결혼을 안 했고, 그 옆에 있는 친구가 결혼한 여자였대요. 둘이 카풀인데 뭐 안 나와 있었다고 그랬다나? 약속을 안 지켰다고 그랬다나. 골프화 알죠? 신발 밑에 스파이크, 눈에도 미끄러지지 않게 징을 박아놓은 스파이크가 있어요. 그걸로 머리를 찍어서 피가 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 정도로 하냐?' 했더니, 한 씨가 쟤는 맞아도 싸다고 하면서 '쟤는 결혼했어요. 저 애는 결혼했으니까 맞아도 싸다'라고 했어요."
-한 씨 전 직장동료

▲ 드러난 또 다른 진실

그럼 미연 씨가 자신을 무시해서 살해했다는 한 씨의 주장, 어떻게 생각해? 범행 동기가 정말 이거 때문이었을까? 혹시 한 씨가 숨기고 있는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건 아닐까? 수사기관은 한 씨에게 또 다른 범행 동기가 있을 거라 판단했어.

한 씨가 유치장에 있을 때 일이었어. 친오빠가 유치장에 찾아와도 그냥 돌려보낼 정도로, 모든 면회를 거부한 한 씨가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 있었어. 바로 미연 씨의 남편 김 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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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에 들어간 다음 날이죠. 저희도 이해가 안 되지만, 아이들을 죽인 피의자를 남편이 면회를 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의자가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 이런 부분까지 나오는데요. 그 부분이 저희로선 좀 께름칙했습니다."
-조세희,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

본인의 처와 자식을 살해한 범인과의 면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 게다가 한 씨는 유일하게 미연 씨의 남편 김 씨의 면회만을 수락했어. 그리고 '모든 걸 내가 안고 가겠다'는 한 씨의 말. 무슨 의미일까.

이후 남편의 핸드폰에선 이런 수신 메시지가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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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처럼 괜찮은 남자가…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는지 모르겠어요…"

남편 김 씨에게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한 씨였어. 조사 결과 두 사람은, 내연 관계로 밝혀졌어.

사건이 벌어지기 약 1년 전, 아내 미연 씨가 둘째를 임신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던 때야. 그 때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거야. 이후 한 씨는 더 자주 미연 씨의 집을 찾았고, 안주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해. 주방 식기들의 위치를 본인의 방식대로 바꾸고, 심지어 남편 김 씨의 속옷도 정리했다고 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연 씨가 남편의 휴대폰에서 한 씨의 문자 메시지를 발견한 거야. 한 씨는 "잘못 보낸 거야, 내가 네 남편한테 이런 걸 왜 보내겠어"라며 둘러댔어. 착한 미연 씨는 끝까지 친구 한 씨의 말을 믿었어.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남편 김 씨가 한 씨를 멀리하기 시작한 거야. 뒤늦게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 한 걸로 보여. 그래서 수사기관은, 한 씨가 조바심을 느끼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그리고 또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어.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는 남편 김 씨라고 했잖아? 근데 현장에는 한명이 더 있었어. 바로 한 씨였어.

남편 김 씨는 아내가 집을 비웠다고 생각했어. 남편은 열쇠가 없었대. 그래서 한 씨에게 연락해 아내와 함께 있는지 물었다는 거야. 그 연락을 받고 도착한 한 씨는, 마치 현장을 처음 목격한 사람처럼,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까지 했다고 해.

경찰은 남편이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현장을 훼손했다고 판단했잖아? 근데 최초 발견자가 범인이었다면, 훼손한 현장을 어떻게 봐야할까? 남편이 공범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지. 하지만 경찰은 남편과의 공모 사실은 없는 걸로 판단했어. 남편 김 씨가 본인의 친자식까지 해칠 이유는 없잖아. 그렇다면 한 씨는 왜, 어린 아이들까지 죽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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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 진술은 어차피 그 피해자가 사망하고 나면 아이들이 힘들게 자랄 것으로 생각해서, 자기는 '배려해주었다'는 주장을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 했을 때 제가 느끼는 면담 시에 태도와 표정은, 상당 부분 이 범인은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판단했어요. 이 피해자 남편이 가지고 왔던 삶의 무거운 짐들을 '내가 다 해결해주는 거야'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의 처벌

한 씨는 세 사람의 목숨을 잔혹하게 앗아간 살인범이야. 그 중엔 한 살도 안 된 어린 아기도 있었어. 재판부는 한 씨에게 어떤 처벌을 내렸을까.

"피고인은 자신에 대한 피해자1의 우정을 이용하고, 평소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던 피해자 2의 행동양식과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는 피해자3의 연령을 교묘히 악용하였다. 아무리 정상을 살피더라도 전혀 참작할 바가 없고 극형을 고려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수 회에 걸쳐 자해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특이행동을 보이고, 비로소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적어도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할 것인바, 피고인에게 교화와 개선의 가능성이 미약하나마 남아있는 것으로 참작하여 형을 선고한다. 주문,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1심 판결문

한 씨가 보였다는 '특이행동'은 뭐였을까? 한 씨가 당당한 태도를 보여 왔잖아? 그런 한 씨가 갑자기 과호흡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어. 그리고 구치소에서 극단적인 시도를 여러 번 했대. 1심 재판부는 한 씨의 이런 행동들을 범행에 대한 후회로 받아들인 거야. 게다가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범죄라며 재범의 가능성도 낮다고 판단해. 그래서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 거야.

그런데 한 씨는, 이 판결에 항소했어. 한 씨의 변호인은 그녀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기억해.

"접견을 하면 계속 '자기는 죽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럼 '왜 항소를 했냐'고 물어도 계속 자기는 '죽어야 한다'고만 했어요. 이후에도 접견을 가면 계속 엉뚱한 동문서답을 했어요. 자기는 '처음부터 감옥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한 씨의 변호인

한 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기징역이 확정됐어. 그리고 현재까지 20년째 무기수로 복역 중이야. 교정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 씨는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과도한 죄의식을 보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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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욕이 없다고 해야 되나, 지나친 죄책감이라고 해야 되나. 방에서 거의 안 나오던 사람이에요. '어떻게 죄를 짓고 나가서 밥을 먹고 운동하냐 그건 벌 받을 짓이다' 이런 식의 얘기를 했어요."
-교정본부 관계자

한 씨는 일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식사도 거부하다가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고 해. 게다가 거기서 얼마나 많이 우는지, 눈물을 닦은 수건을 짜면, 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였대. 부디 한 씨가 지금은, 본인만의 밀실에서 나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길 바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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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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