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정 에디터] 은진 씨를 보호할 방법은 없었나?
3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에서는 故 김은진 씨 사망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지난 5월 12일 오전,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에 놀라 밖으로 나온 주민들은 아파트 통행로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여성을 발견했다.
케이블 타이로 양손이 결박되고 머리에는 검은 천주머니를 뒤집어쓰고 있던 여성. 흉기에 습격당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은 사망하고 말았다.
사망한 여성은 서른두 살의 김은진 씨. 그를 살해한 범인은 그의 전 남자친구 이준호로 밝혀졌다.
은진 씨를 무참하게 살해한 이 씨는 도주 후 과거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씨는 컴퓨터에 유서를 남겼다. 12장의 유서에는 은진 씨가 다른 남성에게 금전적, 정신적 지원을 받으며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며 이를 막아 달라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이 씨가 지목하고 있는 이 남성은 자신이 은진 씨가 사망할 당시 남자 친구라고 밝혔다. 은진 씨가 일하던 식당의 손님으로 만난 조 씨는 올해 2월 은진 씨가 자신에게 비밀을 처음 털어놓았다고 했다.
남자 친구 이 씨가 자신을 폭행하고 협박하며 가족까지 해치려 한다는 것. 이에 조 씨는 은진 씨가 이 씨를 고소하도록 조언했고, 은진 씨는 이 씨가 자신에게 가한 폭행, 폭력 등의 증거를 하나둘씩 모았다.
조 씨는 은진 씨가 남긴 그 증거 중 하나인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음 파일 속 이 씨는 은진 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이를 거절하자 폭행을 했다.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은진 씨에게 가혹행위를 하는가 하면 사기를 강요하며 이를 거절하자 또 폭력을 가했다.
이 씨는 은진 씨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세 사기를 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이를 은진 씨가 거절하자 다른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했던 것.
은진 씨는 전세 사기를 안 치는 대신 3년 동안 이 씨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빌미로 이 씨가 은진 씨에게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온갖 알바로 돈을 벌어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 씨는 은진 씨에게 아이템을 현금화할 수 있는 게임을 밤새도록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며 협박을 계속했다.
또한 이 씨는 은진 씨에게 조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허위 신고를 하라고도 했다. 이를 거부하자 반려견을 학대하고 또다시 가혹 행위를 가했다.
이후 조 씨의 신고로 겨우 이 씨와 분리되어 접근 금지 신청과 함께 스마트 워치를 받은 은진 씨. 그는 조 씨가 마련해 준 오피스텔에서 숨어 살며 4월 1일, 이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런데 4월 13일, 이 씨가 은진 몰래 통신사와 카드사에 접속했고 은진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며 협박 메일과 협박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결국 심부름센터로 은진 씨의 거처 알게 되고 납치 후 살해한 것.
전문가는 이 씨에 대해 "기생충, 주인인양 하는 기생충이다. 숙주가 없으면 기생충 혼자 살 수 없다. 협박하고 폭행하면 피해자가 자신을 따라올 거라고 생각, 안 되면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도망갔으니 참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런 특성은 자기애성 인격장애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가해자의 범행 모든 동기에는 피해자는 나를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이게 깔려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은진 씨는 수차례 경찰에 이 씨를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미온적인 대응을 했고, 사실혼 관계가 되어야만 보호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은진 씨는 어쩔 수 없이 이 씨와 사실혼 관계라고 밝힌 후 접근 금지 조치를 하고 스마트 워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제대로 된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고 결국 은진 씨가 사망에 이른 것. 이에 경찰은 자신들이 지정한 임시 거처에 머물기를 은진 씨가 거부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이 지정한 임시 거처는 일반 숙박 업소였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두려웠던 은진 씨가 조 씨의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설 경호 요청을 하는 것도 들어주지 않았던 경찰. 이에 제작진은 경찰에게 은진 씨가 가해자의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자신들은 신이 아니라며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없다는 말을 해 분노를 자아냈다.
계속해서 협박이 가해지고 있음에도 보호 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을 들여 사설 경호를 써야만 했던 은진 씨. 경찰은 은진 씨의 신고에 바로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했지만 여러 이유로 수사는 진전이 없었고 이 씨에 대한 구속 영장도 계속 늦어졌다.
이에 전문가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며 경찰의 대처를 지적했다. 또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의 앞부분만 봐도 상당히 위험하다. 못 알아차렸으면 무지한 것이고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놔뒀다면 고의적인 것이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사건 진행이 늦어진 것은 경찰서에서 경미한 사건으로 미뤄둔 것이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다 놓쳤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의무체포 제도가 반드시 제도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의무체포 제도는 현장에 도착하면 반드시 이유를 불문하고 가해자를 반드시 체포해 온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만이 피해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의무체포 제도로 일단 분리해 내고 그다음에 법적인 어떤 분리 판단을 받고 그다음에 가해자 GPS 추적 장치로 정말 접근하는지를 감시하고, 이러면 피해자가 살 수 있다"라고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27일, 화성동탄서장은 피해자의 부모님께 직접 사과했다. 그리고 다음날, 브리핑하며 고개를 숙였다.
화성동탄서장은 "피해자가 112 신고 후에 고소장과 피해 상황 관련 녹취록을 제출하였고 가해자 접근 시도 정황을 경찰에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가해자 재범 위험성을 간과하여 추가 안전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으며 사건 수사 역시 신속히 진행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경찰의 약속이 지켜질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제2의, 제3의 은진 씨가 탄생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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