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0일 방송된 '직업 살인마 정두영'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민재, 그룹 아일릿 멤버 윤아, 씨엔블루 강민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예비 사위의 이중생활
때는 1999년 여름, 부산 해운대의 한 카페야. 저~ 안쪽 테이블에선 차갑다 못해, 서늘한 냉기가 흘러. 미숙(가명) 씨는 오늘 딸의 남자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나왔어. 근데 기대와 달리 당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거야. 딸보다 10살이나 많고, 체격은 너무 작고 왜소해.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거 하나는 직업이야. 남자는 의류 사업을 한다는데 꽤 잘 된대.
마냥 반대하기엔, 미숙 씨의 딸 은주(가명) 씨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 엄마가 뭐라 해도, 이 남자랑 결혼 할 거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미숙 씨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어.
예비 사위의 사업체가 대전에 있어서, 미숙 씨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결혼 준비를 하기로 했어. 근데 막상 같이 지내보니, 예비 사위가 나쁘지 않아. 일단 술, 담배도 전혀 안 하고, 얌전한 성격에 일밖에 모를 정도로 성실해. 게다가 예비 사위가 계속 선물 공세를 하고, 그간 착실히 모아온 결혼자금이라며 거금이 든 통장도 내밀어. 미숙 씨와 은주 씨는 그 돈으로 해운대의 고급 아파트를 계약했어. 딸이 좋은 신랑을 만나 이제 호강하며 살겠구나 싶어. 미숙 씨는 더 바랄 게 없었지.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미숙 씨네 집으로 전화가 한 통 왔어. 전화를 건 곳은 경찰이었어. 예비 사위가 범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거야.

미숙 씨는 형사가 하는 말이 하나도 믿기지 않았어. 미숙 씨가 같이 살면서, 지켜봤잖아. 예비 사위는 절대 나쁜 짓 할 사람이 아니었어.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대낮의 인질극
2000년 4월 12일, 천안. 외근 중이던 정산희 형사에게 긴급 연락이 왔어. 천안 원성동에서 '인질극으로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대. 경찰에 신고를 한 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이야. 아내가 갑자기 연락해서 '현금 천만 원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다는 거야.

"아내가 '천만 원만 비서를 시켜서 집으로 보내달라' 이런 얘기를 했는데, 대화를 하던 중에 감이 이상하다 느껴서…"
-정산희, 당시 천안경찰서 형사
갑자기 그 큰돈이 왜 필요한 지 이유를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안 했대. 더 이상한 건, 계속 "알았지?"하고 묻더라는 거야. 마치 뭔가를 알아채 달라는 듯이. 이거, 인질극이 맞을까?
30여 명의 형사들이 현장으로 긴급 출동했어. 조용히 다가가 창문 안쪽을 들여다봤더니 아내 앞에, 누군가 서 있어. 손에 칼을 든 남자야. 인질극이 맞았어. 형사들의 계획은, 일단 비서를 들여보내 돈가방을 건네면서 내부 상황을 엿보도록 하는 거야. 인질범은 몇 명인지, 또 어떤 흉기를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안전하게 진압할 수 있으니까.
잠시 후, 남편의 비서가 천 만원이 든 돈가방을 들고 도착해. 현관 문이 열리고 비서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아내가 나오더니 돈가방만 잽싸게 받아서 들어갔어. 형사들이 허탈해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인질범이 거식 창문을 열고 나와 그 집 담을 타고 옆집 옥상으로 올라갔어. 도주를 한 거야. 정 형사는 재빨리 도주하는 범인을 쫓아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어. 그런데 그 곳에서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해.
"연립이다 보니까 2층 집이 쪼르륵 있잖아요. 범인이 이제 2층 집과 2층 집 그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뛰어넘고, 또 다른 집을 이어서 또 뛰어넘고. 이게 한 5채 6채 정도 되는 이 집을 계속 뛰어서 넘어간 거죠. 저도 그때는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겁 없이 달려서 쫓아갔던 것 같아요."
-정산희, 당시 천안경찰서 형사
정 형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공중으로 몸을 날렸어. 범인을 따라 여섯 채의 집을 연달아 뛰어 넘었어. 정 형사가 마지막 집 옥상에 도착한 순간, 범인이 시야에서 사라졌어. 옥상에서 다른 건물들을 살펴 보는데, 보이지가 않아. 그러다 스윽 밑을 내려다보는데, 계단 밑으로 뭔가가 번쩍 빛나. 범인이 들고 있던 칼이었어.
"제가 보고 계단으로 내려갔어요. 내려갔는데 걔가 이제 돌아 나오면서 순간적으로 딱 마주친 거예요. 보니까 그걸 살기라고 하는데, 눈이 돌았더라고요."
-정산희, 당시 천안경찰서 형사
다른 형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놓칠 게 뻔해. 범인은 당장이라도 정 형사를 찌를 기세야. 정 형사는 다급히 주변을 살폈어.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이 있었을까? 마당 한쪽에 삽이 한 자루 있는 거야. 그런데 그 순간, 범인의 시선도 그 삽으로 향해.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삽을 향해 몸을 날렸어. 먼저 삽을 손에 쥔 사람, 바로 정 형사였어.

정 형사가 삽을 들고 맞서자 범인도 움찔해. 그리고 때마침, 뒤따라오던 형사들이 도착했어. 그제야 놈은 포기한 듯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었어.
▲ 예비 사위의 진짜 정체
영화같은 추격전 끝에 검거된 인질범은, 미숙 씨의 예비 사위였어. 건실한 사업가라던 그가, 대체 왜 이런 인질극을 벌였을까. 사실 그의 진짜 직업은 따로 있어. 바로 강도. 그런데 보통 강도가 아니야. 그의 범죄가 알려지고,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얼굴을 왜 안 보여줘! 왜 도둑놈 얼굴에 모자를 씌우냐 이 말이야!"
"나는 죽였으면 좋겠어요! 바로 이웃에 사는데 너무 원통하고 분해요. 이 분함을 누구한테 말할 수가 없어요."
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화가 났을까? 미숙 씨의 성실한 예비 사위. 그의 진짜 정체는 바로, 연쇄살인범 정두영이야.

사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건, 다른 범죄자 때문이야.
"정두영의 기사를 봤습니다. 배울 점이 많더군요."

정두영을 롤모델 삼아,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 남자. 수십 명의 목숨을 잔혹하게 빼앗은 최악의 살인마, 유영철이야. 이후 정두영에겐 '유영철의 롤모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어.
근데 그를 일컫는 말 중, 최악의 수식어는 따로 있어. 바로 '직업 살인마'. 새 천 년의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악마보다 더 끔찍한 살인마의 이야기.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 직업 살인마 정두영
때는 1999년 9월 15일. 사건 하나 때문에 부산 서부경찰서가 발칵 뒤집혔어. 부산의 대표적인 부촌에서 대낮에 사람이 죽었어. 홀로 집을 지키던 가사도우미가 사망하고 2천3백만 원 상당의 금품이 사라졌는데, 단순한 강도살인사건 같지는 않았대. 시신의 상태가 말도 못 하게 참혹했거든.

"거실부터 피바다입니다. 피해자가 너무 참혹했다. 그 정도로 비참한 현장은 저도 그 당시에는 처음이었습니다."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사인은 다발성 장기손상. 근데 흉기를 사용한 흔적은 없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범인은 맨손으로 피해자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거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때려서 죽인다? 이건 좀 이상하지?
보통 살인사건의 범행 동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해. 첫 번째는 남녀 간의 치정, 두 번째는 돈이 얽힌 채무, 마지막은 원한. 근데 피해자 주변을 아무리 파봐도, 도통 나오는 게 없어. 그래서 형사들은 '맨손의 살인마가 다시 나타났다'라고 생각했어. 석 달 전, 유사한 강도살인사건이 있었거든.
대낮에 고급 주택에 강도가 침입해 6천7백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고 50대 여성을 끔찍하게 죽였어. 범인은 화장실 바닥에 피해자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친 뒤 살해한 것으로 보여. 앞서 들은 사건과 비슷하지?

"끔찍하더라고요. '같은 사건이구나' 낮 시간대에 사건들이 발생했으면서 오히려 방범 시설이 잘 돼 있는 데를 노렸더라고요 큰 집을. 발각이 되면 그냥 바로 달아나고 '누구야' 하면 그냥 달아나잖아요. 그런데 이 사건은 무차별 폭행, 무차별 구타. 뭐 이렇게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현장이 너무 참혹하게 되는 거죠."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범행 패턴을 정리하자면, 낮시간에 범행이 일어났다는 점,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된 부잣집을 노렸다는 점, 마지막으로 피해자를 필요 이상으로 참혹하게 죽였다는 점까지. 두 사건이 상당히 겹쳐.
그럼 범인을 특정할 단서는 나왔을까? 사건 현장 근처에서 불에 타다 남은 옷가지와 신발을 발견하긴 했는데 너무 많이 훼손된 상태였대.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깨끗이 지운 뒤 현장을 빠져나갔어. 지금처럼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낮에 벌어진 사건인데 목격자도 없어.
"CCTV는 담장에 올라가서 방향을 돌려놓습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그 정도로 대담하게 여유를 가지고 침입을 한 겁니다."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그야말로 완전범죄야. 다음 범죄가 또 언제 벌어질지 몰라.
"야 큰일 났다. 인마 이거 못 잡으면 계속 이 사건 계속 나겠다…"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형사들이 혼란에 빠진 그 무렵, 부산의 또 다른 부촌이야. 출근시간 버스에서 한 남자가 내려. 이 남자, 바로 정두영이야. 정두영은 매일 아침, 출근하듯 범행 장소를 물색했어. 장식이 크고 화려한 집. 그리고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된 집. 정두영은 그런 집일수록 훔칠 게 더 많다고 생각했어. 당시엔 대부분 경비시스템 전원을 밤에만 켜두었대. 정두영은 이런 걸 어떻게 알았을까?

정두영은 열다섯 살 때부터 특수절도로 소년원을 오갔어. 강도질만 무려 17년 차. 이 분야의 노하우가 엄청났겠지? 그럼 왜 낮시간을 노렸을까? 그 시간엔 주로 힘없는 노인이나 여성이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거든. 아까 유영철이 정두영의 범행수법을 카피했다고 했잖아? 바로 이거였어. '대낮의 부잣집을 노려라'.
집을 정한 정두영은 담장을 단숨에 넘어 집안으로 들어섰어. 그리고 가장 먼저 주방으로 향했어. 왜? 칼을 구하러 간 거야. 정두영을 '맨손의 살인마'라고 했잖아? 그가 흉기를 사용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보통 강도들은 본인만의 범행도구를 준비해 다닌대. 하지만 정두영은 따로 범행도구를 준비하지 않았어. 그때그때 현장에서 구하거나, 급할 땐 맨손으로 범행을 저질렀지. 이유가 뭘까?
정두영이 18살 때 일이야. 범행을 목적으로 칼을 소지하고 가다가 방범대원의 검문에 걸리고 말아. 정두영은 그대로 방범대원을 찔러 살해했고 12년 형을 선고받아. 그때 정두영은 한 가지 결심을 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가 아니라, '다시는 흉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날도 맨손으로 침입한 정두영이 주방에서 칼을 챙겨 나오는데,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려. 17개월 된 아기였어. 그러자 정두영이 아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해. 한 발, 한 발. 한 발… 낯선 사람을 보고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어. 그런데 그때! 가사관리사 송 씨가 방에서 나왔어. 뒤이어 2층에 있던 40대 여성 양 씨도 내려와. 그 순간, 가사관리사 송 씨가 정두영을 막아서고 옆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들었어. 아기를 지키기 위해.
정두영은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송 씨가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빼앗아. 그리고 두 여성을 인정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해. 정두영의 폭행은 두 여성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됐어.
잠시 후, 집안에선 훨씬 더 크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져. 쾅!쾅!쾅! 하는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이웃집에선 공사를 하는 줄 알았대. 이 소리 뭐였을까? 정두영은 죽은 두 사람의 시체를 옆에 두고 금고를 부쉈어. 무려 2시간 동안 망치와 아령으로 금고를 내리쳐 그 안에 있던 현금 천오백만 원을 챙겼어. 이게 그가 사람을 둘씩이나 죽인 이유야. 단지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그래야 계속 범행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

"보통 범인이라면 그 범행을 저지른 현장에서 빨리 달아나려고 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시간을 소요하면서 이 금고를 부수려고 했던 흔적이 나오니까, 그것이 평범하진 않잖아요."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나는 일단 사람을 죽여서라도 물건을 강취를 해야 되겠다는 금품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강했습니다. 이 목격자가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자기 범행이 또 들통난다… 완전 범죄를 위해서 그 참혹하게 찌르고 한 겁니다."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아까 정두영을 '직업 살인마'라고 했잖아. 그 의미를 이제 알겠어? 정두영은 매번 목표한 금액을 악착같이 채웠대. 게다가 그 돈을 착실히 통장에 저금했어. 한번은 현금 2천3백만 원을 훔쳐 ATM기로 달려갔어. 근데 1회 입금액이 70만 원밖에 되질 않는 거야. 그래서 무려 서른세 번에 걸쳐 그 돈을 다 입금했어.

더 놀라운 건, 정두영의 통장 중엔 정기적금도 있었어. 매달 일정한 액수를 마련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는 거야.
▲ 유일한 목격자
그렇게 정두영이 두 여자를 죽이고 금고를 부수던 바로 이 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 정두영이 금고를 부수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고 했잖아? 그러는 사이, 운동 갔던 아기엄마가 돌아온 거야. 아기엄마가 들어오던 그때, 정두영은 커튼 뒤에 숨어있다가 아기엄마 목에 칼을 갖다 댔어.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한 뒤 다시 야구방망이로 때리기 시작해. 그런데 그 때, 아기엄마가 살려달라며 정두영에게 뭔가를 얘기해.
"제발 살려주세요. 사실은…"
가만히 듣던 정두영이 툭, 야구방망이를 던져. 그러고는 금품만 챙겨 집을 떠났어. 그가 왜 아기엄마는 살려뒀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정두영은 17개월 아기와 아이엄마를 살려뒀어. 그 덕에 '목격자'가 생겼어.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키는 작고 호리호리했어요."
-목격자 진술
형사들은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도 몽타주를 만들어. 바로 이거야.

그리고 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가 하나 더 있어. 바로 신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이 현장에서 발견됐어. 그걸로 어느 브랜드의 어떤 신발인지까지 알아낸 거야.
"일일이 탐문 수사를 하는 거죠. 몽타주 들고 비슷한 사람 봤느냐, 혹시 이런 신발 신고 다니는 사람 있는지 없는지. 주변에 불량배 우범자 그리고 최근에 출소했던 놈, 1대 1 탐문을 하는 거죠."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형사들은 이 수배전단을 전국에 배포했어. 하지만 좀처럼 나오는 게 없어. 장물을 파는 금은방까지 다 뒤져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대. 그렇게 야속한 시간만 흘러 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0달이 지났어. '부산 경찰 무능하다', '무서워서 못 살겠다'는 시민들의 원성도 자자해. 형사님들 심정이 어땠을까?
"그 당시에 피해자 유족들한테 상당히 경찰관이 몸 둘 바를 몰랐죠. 이걸 빨리 검거를 해가지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분들은 얼마나 또 가슴앓이를 하고 애타게… 그래도 범인을 잡아야 마음이라도 달래주고 할 건데. 경찰관은 상당히 저희도 좀 힘든 그런 상태였고."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이거 정말 진짜, 이것만큼은 내가 이 사건은 내가 꼭 범인을 잡고 싶다. 이거는 정말 내가 이 새끼는 이 새끼라 해서 죄송한데요. 이 범인은 내가 정말 잡고 싶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런…"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형사들은 이를 갈았어. 아예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정두영을 공개 수배하기로 해. 정두영의 몽타주가 TV 방송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어. 이후 몽타주와 닮은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꽤 오긴 했는데, 다 허탕이었대.
"마지막에 저희들이 몽타주를 그리게 되면, 그걸 다시 또 목격자한테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닮았어요?' 하고 물어보거든요. 근데 많이 한 50%? 반 정도 닮은 것 같다… 그래서 '야 참 몽타주 가지고 찾기 참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좀 했죠."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목격자가 보기에도 몽타주가 실물과 별로 안 닮았대. 정두영의 또 다른 몽타주를 보여줄게.

모두 정두영을 그린 몽타주인데, 두 몽타주가 달라 보이지? 당시만 해도 몽타주 기술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같은 사람을 그린 몽타주도 서로 닮지 않을 정도였대.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발전되기 전이니까. DNA로도 밝히기가 어려웠고. 그리고 그 근처에 CCTV에 범인이 찍힌 것도 없었고. 10일, 20일 넘도록 단서가 없으니까. 형사들이 많이 지쳤죠."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 천안 인질범의 정체
형사들이 낙담을 하고 있던 어느날, 다른 지역의 한 형사가 연락을 해왔어. 수배전단의 몽타주를 보고 전화를 했대. 석 형사는 전화를 건 형사와 큰 기대 없이 통화를 이어갔어. "몽타주랑 닮았나?" 물으니, 그렇게 많이 닮진 않았대. "근데 왜 전화 했냐?"라고 물은 석 형사는, 대답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어. 그동안의 제보와는 좀 달랐거든. 석 형사를 소름돋게 했던 이 전화, 천안에서 걸려온 거였어.
전화가 걸려오기 몇 시간 전, 천안경찰서 감식반 이관우 형사는 서울 본청으로 출장을 갔다, 저녁이 돼서야 사무실로 돌아왔어. 근데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해. 사무실에 기자도 많고 북적북적 해. 무슨 일인지 물으니, 낮에 인질범이 잡혀 조사 중이라는 거야. 맞아. 그 인질범은 아까 옥상 추격으로 잡았던 정두영이야. 뒤늦게 사무실에 돌아온 이관우 형사가 동료 형사에게 정두영의 전과를 물었어.
"부산에서 살인전과가 있던 데요. 12년 살고 만기 출소했답니다."
이 얘길 들은 이관우 형사의 머릿속에 뭔가가 탁! 하고 떠올랐어. 뭐였을까?

"제가 본청에 갔을 때, 거기 직원 하나가 경남인가 어디 출장을 갔어요. 몽타주 그리러. 그 직원한테 전화를 해서 (몽타주를) 좀 보내줘 봐라. 부산 쪽이고 그쪽이 가까운 쪽도 그쪽이고 그래서 한번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받아봤죠."
-이관우, 당시 천안경찰서 형사
직감적으로 연관성을 느낀 이 형사는 떨리는 마음으로 팩스 단말기 앞에 섰어. 얼마 후 본청 직원이 보낸 몽타주가 팩스로 도착해. 근데 아까 목격자가 몽타주와 범인이 안 닮았다고 했잖아? 이관우 형사의 눈엔 어땠을까?
"팩스로 (몽타주를) 받아서 (인질범한테) 가서 조사받는 중에 불렀더니 고개를 처음에 안 들어요. '고개 들어봐' 그랬더니 고개를 딱 들길래 대봤죠. 눈매는 닮았어요. 그래서 됐다고, 확인됐다고 보고를 드렸죠."
-이관우, 당시 천안경찰서 형사

처음에 인질범을 잡아온 정산희 형사는 긴가민가 했어. 눈매가 닮은 거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하거든.
"저희 조사하는 형사들끼리 대화를 나눴어요. 이게 진짜 비슷하냐? 추궁을 해도 되겠냐?"
-정산희, 당시 천안경찰서 형사
그래서 한 가지를 더 확인해 보기로 해. 바로 신발! 아까 현장에서 나온 족적으로 범인의 신발을 특정했다고 했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질범의 신발을 확인해 보기로 한 거야. 정두영의 신발을 한참 쳐다보던 정 형사는, 통화 중이던 부산의 석 형사에게 이렇게 말해.
"(몽타주와) 그렇게 까지 닮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신발은 똑같네요."
그 말을 들은 석 형사의 머리에 전기가 팍 왔어. 천만다행으로 정두영이 같은 신발을 신고 있던 거야.
자, 이제 좀 더 정확히 확인해야 해. 근데 정두영은 지금 천안에 있잖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을 때가 아니니까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받아보기로 했어. 밤 10시 화물열차에 사진을 실어 보냈고, 다음날 새벽 부산역에서 기다리던 서부서 형사들이 사진을 받았어. 이제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인 아기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주면 돼. 두근 두근, 형사들이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건넸어.

"그때 그 사진 보자마자 맞다고. 진짜 이렇게 해결되는구나. 이렇게 범인 네가 잡히는구나. 천안에서 잡혀? 이렇게 네가 잡히는구나…"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마침내 부산을 발칵 뒤집은 연쇄살인범 정두영의 덜미를 잡았어.

그런데 정두영은 왜 갑자기 천안에 갔던 걸까? 자신의 몽타주가 공개수배 프로그램에까지 나오니까 몽타주가 닮지 않았어도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다고 해.
▲ 살인범의 자백을 받아라
얼마 후, 부산 형사들은 직접 천안으로 내려가 정두영을 호송차에 태웠어. 근데 형사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왜? 지금 정두영의 혐의가 밝혀진 건, 목격자가 있었던 사건 단 한 건뿐이야. 다른 살인사건들은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 이제 자백을 받아내는 수 밖에 없어.
부산으로 가는 동안 좀 떠보려는데, 정두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안 해. 그 때 한 형사가 툭 던지듯 한마디를 했어. 그 얘길 들은 정두영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형사님 정말이에요?"라며 관심을 보여. 무슨 얘기였길래 정두영이 관심을 보였을까?

"그때 정두영이가 엄청나게 돈에 집착을 하고 있으니까, 이 돈을 어떻게 안 뺏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압수 안 할 수도 있지' 하면서, 이제 다 얘기하고 가… 그러니까 정두영을 좀 안심을 시키고. 깔끔하게 그냥 정리하고 가자, 이렇게 된 거죠."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아까 정두영은 범죄수익을 꼬박꼬박 저금했다고 했잖아? 검거 당시 정두영 통장에는 무려 1억 3천여 만 원이 있었어. 단 10개월 만에 강도짓만으로 이렇게 큰돈을 모은 거야. 당연히 압수해야 할 범죄수익인데, 정두영도 그 사실을 알고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어. 형사들이 그런 정두영의 마음을 공략한 거야. 돈 얘기에 정두영은 모든 범행을 실토했어.
직업 살인마 정두영. 부산에서만 15건, 경남 지역에서 총 23건의 범행을 저질렀어. 열 달간 사망자만 9명. 거의 한 달에 한 명 꼴로 사람을 죽인 거야. 재판 결과는 보나 마나 중형을 면하긴 힘들어. 그런데 여전히 정두영은 돈을 뺏길까봐 불안해 하고 있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는데 정두영은 왜 그렇게까지 돈을 지키려고 했던 걸까? 어디에 쓰려고? 정두영은 이렇게 얘기해.
"혹시 그 돈, 제 여자친구에게 줄 수 없습니까?"
정두영이 훔친 돈 전부를 주고 싶다는 이 여자, 바로 미숙 씨의 딸 은주 씨야. 정두영의 범행이 시작된 건, 은주 씨를 만나고부터야. 아까 정두영이 18살에 처음 살인을 저지르고 12년 형을 살았다고 했잖아? 그가 출소한 건 99년 3월이었어. 그때쯤, 은주 씨를 만난 거야.

"여자를 한 사람 알게 됐는데, 또 장모 되는 분, 이 사람들을 만나고 하니까 너무 마음이 따뜻하더라는 거야. 그래서 뭘 해야 되겠나, 돈을 벌어야 되겠어요. 돈을 어떻게 직업도 없는데? 그래서 생각한 게, 대낮 강도를 하게 되면 빠른 시일에 많은 돈을 내가 빨리 벌 수가 안 있겠나…"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은주 씨와 결혼을 결심한 정두영은 강도짓으로 큰 돈을 벌기로 결심해. 그의 목표 금액은 바로 10억. 10억을 모아 아파트도 사고, PC방도 하나 차려서 은주 씨와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대. 결국 그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검거됐지만, 할 수 있다면 그간 모은 돈이라도 은주 씨에게 주고 싶다는 거야.
정두영이 형사들에게 부탁한 게 하나 있어. 은주 씨를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만나고 싶대.
"그것도 처음에 대면을 안 시키려 하다가 정두영이 하도 만나게 해달라 길래. 그래. 네 입으로 이야기를 해라. 내가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짓을 해놓고 지 나올 때까지 여자가 어떻게 기다리겠어요. 여자가 이제 이 실체를 다 알아낸 거예요. (여자는) 주저앉아 가지고 이해도 안 되고 신세 타령하면서 엉엉 울지요."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보통 범죄자들이 범행을 멈추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래. 정상적인 직업을 가졌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지키고 싶은 게 생기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거야. 정두영에게도 범죄를 중단할 기회는 분명히 있었어. 하지만 그 기회를 날려버린 건, 정두영 자신이었지.
▲ 살인의 이유
정두영이 저지른 아홉 건의 살인 중 칼 같은 흉기를 사용한 건 단 세 건 뿐이야. 그 외엔 맨손이나 둔기로 사람을 죽을 때까지 때렸어. 단순히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살인동기를 묻는 질문에 정두영은 이렇게 답했어.
형사: 특별히 반항한 것도 없는데 왜 죽였나요?
정두영: 피해자들이 심하게 고함을 질러 제가 격분하여 때려 죽였습니다.
형사: 언제부터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나요?
정두영: 처음부터 죽일 마음은 없었는데 아줌마가 말을 듣지 않고 고함을 질러 순간적으로 심하게 때리게 됐습니다.
형사: 들고 있는 칼로 죽이지 않고 왜 때려 죽였나요?
정두영: 그것은 저도 이상합니다.
-정두영의 진술조서 中

"나도 없이 살아서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피해자님들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이 말로 다 풀 순 없는데, 갚을 길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금 마음은 홀가분하고요…. 제 마음 자체가 악마였는지 모릅니다. 그것밖에 표현을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표현해주십시오."
-정두영
'내 안에 악마가 있다', '그건 저도 이상합니다'… 정두영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게다가 그의 범행에는 원칙도 기준도 없어. 목격자를 남기지 않겠다면서 아기엄마는 살려줬잖아? 만약 그 아기엄마를 살려두지 않았다면, 목격자는 한 명도 없었을 거야. 그것도 이해하기 힘들어. 형사들은 정두영의 살인동기를 알아내야만 했어.
1990년대 들어, 이상동기 범죄가 증가하기 시작했어. 묻지마 살인, 연쇄 살인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무차별 범죄들. 그래서 수사기관에서도 범죄자의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연구하기 시작해. 우리가 잘 아는 '프로파일러'가 정식 출범한 것도 바로 이때야. 하지만, 너무 초기단계라 정두영 사건에선 도움을 받을 수 없었대.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일명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회'.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 교수 같은 외부 전문가들로 꾸려진 자문위원회야. 자문위에서 정두영의 면담은 범죄심리를 연구한 곽대경 교수가 맡았어. 정두영을 만나 그의 심리를 파헤쳐야 해. 곽 교수는 처음 5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했어.

"초반에 그 사람이 나를 믿고 마음을 움직이고 이끌어내 주면, 그러면 상대적으로 좀 수월하게 진행이 되는데. 그래서 정두영 같은 경우는 초반에 그런 라포, 정서적인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던 거죠."
-곽대경, 당시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회
곽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조사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는 정두영을 편안한 소파로 옮겨.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저는 경찰이 아닙니다. 학자로서 연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꼭 필요합니다."
편안한 소파에 마주앉아 곽 교수의 이야기를 듣던 정두영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 곽 교수가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져.
곽 교수: "아이 엄마는 왜 살려줬나요?"
정두영: "아이가 있다고 했어요."
아기가 있다는 말에, 아기엄마를 살려줬다는 거야. 그 뒤로도 정두영이 '엄마'라는 말만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어. 곽 교수는 혹시 이게 정두영의 '트리거'가 아닐까 생가했어. 이해할 수 없는 정두영의 살인동기.

"어머니에 대한 원망 그것이 결국은 커 가지고는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나 불만으로 확산이 된 게 아닌가. 그래서 자기가 그렇게 불우하게 어렵게 힘들게 살았음에도 세상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그런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자기가 이제 공격했던 피해자들, 나를 버렸던 세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가 어떤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공격을 했던 게 아닌가…"
-곽대경, 당시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회
사실 정두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고아원에 보내졌어. 이후로 쭉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았다고 해. 은주 씨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집착했던 것도, 과도한 폭력성을 보였던 것도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결핍때문인 걸로 보여.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비겁한 자기변명일 뿐이야. 불행한 과거가 절대 면죄부가 될 수 없어.
▲ 직업 살인마에 대한 판결
며칠 후, 정두영의 현장검증이 진행됐어. 그는 태연하게 범행 순간을 재연했어.


"제가 이불을 덮으라고 하니까 이 아주머니가 덮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아주머니가 (이불) 끌어당기는 것 같더라고요. 이 아주머니는 발로 밟고 이 아주머니는 방망이로 휘두르고. 두 사람 다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분노한 유족들이 현장에 찾아와 아수라장이 됐어.


"네가 사람이냐 일로 와!!"
"사형 좀 시켜줘요! 왜 그런 사람을 살려가지고 몇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게 해요. 그런 사람들을 왜 사형을 못 시켜요. 여러 사람 죽이고 이 모양을 만들어놔."
정두영이 세상을 원망하며, 할 수 있는 게 도둑질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때, 피해자들은 악착같이 일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들이야.

"우리 딸이 남편도 없고 벌어 먹고 산다고 그래 걔가 그런 변을 당하고. 어쩌다가 이런 일이 돼 있는 건지. 아무 놈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피해자 어머니
자신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며 남의 재산과 목숨을 빼앗은 직업 살인마 정두영,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피고인은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부녀자들 및 고령자들을 무참히 살해하여 그 살해수법이 너무나 잔혹하고 피고인의 진술대로 범행동기가 행복한 가정을 가지기 위해 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피고인이 사건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극형을 피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위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판결문 中
정두영에겐 결국 사형이 선고됐어.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게 아니지. 유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는 했을까? 정두영은 경찰에서 이렇게 얘기했어.
"지금까지 여러 사건들 때문에 여러 가정이 무너진 데 대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은 홀가분한데 정말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된 것 같습니다."
-정두영
이 말은 진심인 것 같아? 진짜 반성했을까? 어쩌면 정두영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은 건지도 몰라. 왜냐하면 죗값을 받겠다는 그 말을 어기고, 또 상상도 못 할 짓을 저지르거든.
▲ 또 다시 담을 넘다
2016년 8월 8일 오전 7시 36분. 대전교도소에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려.
"비상 상황 발생! 재소자가 탈옥을 시도했다!"
정두영이 교도소 담장을 넘었다는 거야. 교도소 작업장에서 일하던 그는 플라스틱 파이프와 전선을 몰래 훔쳐서 직접 사다리를 만든 거야. 당시 대전교도소에는 총 3개의 담장이 있었는데, 그는 비상벨이 울리는 동안 2개의 담장을 손 쉽게 뛰어넘었어. 이제 4미터 짜리 마지막 담장만 넘으면 돼. 어떻게 됐을까?

"희대의 연쇄 살인범 정두영이 탈옥을 하려다 붙잡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두영은 교도소 3차 담벼락에서 직접 만든 사다리가 휘면서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무부 측은 센서가 울린 직후 교도관이 출동해 곧바로 정두영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그렇게 정두영의 탈옥 소동은 8분 만에 끝이 났어.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지? 정두영에겐 도주미수 혐의로 징역 10개월이 추가됐어. 근데 16년을 조용히 살다가 정두영은 대체 왜 갑자기 탈옥을 시도한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기사에 이런 글이 실렸어.
"정두영의 탈옥극이 일어난 이후 이를 조사를 한 법무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가 살인으로 구속되기 이전에 같이 살던 동거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싶어서 치밀하게 탈옥할 계획을 세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사 中
어긋난 욕망으로 수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린 직업 살인마 정두영. 세상을 탓했지만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 진짜 이유는 스스로에게 있다는 걸. 이젠 깨달았을까?
정두영이 처음 도둑질로 처벌을 받은 게 15살 때라고 했잖아? 그 이후, 그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있었을까? 막노동 3일, 방문판매원 1일, 페인트공 2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졌던 기간은 다 합쳐도 일주일이 안 돼. 그러면서 정두영은 10억이라는 목표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도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어.

"아들만 셋이 있는데 아직 결혼도 안 하고 하나는 또 장애인이거든요. 맨날 그리 걱정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 저리될는지 꿈에도 없는 일이지."
-피해자 어머니
사망한 피해자 정 씨는 홀로 세 아들을 키웠어. 그중 둘째 아들에게 뇌성마비 장애가 있었대. 사건 이후 그 아들을 찾아간 사람이 있어. 바로 이재길 형사님. 직접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비로 생활비를 대주시기도 했대. 무려 10년동안이나.

"이 사건에 대해 가지고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빨리 검거를 못 해서, 피해자들께 지금도,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항상 죄지은 그런 기분입니다. 아직도…"
-이재길,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최고 안타까운 게 이제. 사람이 아홉 분이나 돌아가실 때까지 빨리 조기에 잡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경찰로서 형사로서 최고 마음이 죄송스럽죠."
-석봉구,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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