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연쇄 살인마 정두영이 가진 최악의 수식어는?
2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직업 살인마 정두영의 그날을 추적했다.
천안에서 벌어진 한 인질극의 범인이 추격전 끝에 검거되었다. 그는 바로 미숙 씨의 예비 사위.
건실한 사업가인 줄만 알았던 그가 인질범이라는 사실에 미숙 씨와 그의 딸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단순 강도가 아닌 연쇄 살인범 정두영이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다른 범죄자 때문이었다. 바로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유영철 때문인데, 그가 정두영을 롤모델 삼아 범행을 했다고 했던 것. 이에 정두영에게는 유영철의 롤모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사실 그에게는 그것보다 더 최악인 수식어가 있었다. 바로 직업 살인마 정두영.
지난 1999년 9월 15일, 부산 서부 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부산의 부촌인 대신동에서 강도 살인사건이 일어나 2300만 원 상당의 금품이 도난당하고 가사 관리사가 살해된 것.
그런데 현장은 단순 강도 살인 같아 보이지 않았다. 범행 현장이 너무나도 참혹했던 것이다. 흉기를 사용한 흔적 없이 맨손으로 폭행을 해 살인을 저지른 범인.
이에 경찰들은 "맨손의 살인마가 다시 나타났다"라고 했다. 석 달 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직감적으로 같은 범인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낮 시간대에 방범시설이 잘 된 곳을 노려 피해자를 무차별 폭행해 살인한 범인. 이에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나 치밀한 범인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대낮에 부잣집을 노리는 정두영의 범행 특성은 유영철이 카피했던 점이었다. 그는 소년원을 오가며 체득한 노하우로 범행을 했는데 범행 도구는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구해 범행을 저질렀고, 급할 땐 맨손으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날도 침입하자마자 주방에서 칼을 챙긴 정두영. 그런데 이때 거실에서 17개월 된 아기의 인기척이 들렸다. 정두영이 아기를 향해 다가가던 그 순간 가사 관리사 송 씨와 40대 여성 양 씨가 등장했다.
이때 가사 관리사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정두영을 막아섰다. 이에 정두영은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송 씨가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두 여성을 인정사정없이 폭행했다. 결국 두 여성 모두 숨을 거두었다.
이후 정두영은 망치와 아령으로 무려 2시간 동안 금고를 부숴 현금 1500만 원을 훔쳤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금품을 강취해야 하는 금품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던 정두영. 그는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매달 자신이 정한 목표액을 채우고 그 돈을 착실하게 저축했다. 매달 목표액을 훔치겠다는 의지와 확신이 있었던 것.
그런데 이날 사건은 하나의 변수를 만들었다. 금고를 부수는 도중 아기의 엄마가 돌아온 것.
정두영은 아기의 엄마도 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폭행 도중 아기 엄마는 정두영에게 한 마디를 건넸고, 이에 정두영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그대로 두고 현장을 떠났다.
그렇게 정두영의 계획과 달리 목격자가 생존했고 목격자의 진술대로 몽타주가 작성되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으로 그가 어느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특정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사는 답보 상태. 이에 시민들의 원성은 높아졌고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의 분노도 더욱 깊어졌다. 결국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는 염원의 경찰들은 방송을 통해 정두영을 공개 수배했다.
그리고 얼마 후 타 지역 형사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담당 형사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경험했다.
천안 인질극의 범인을 잡은 형사들은 그가 부산에서 살인으로 12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 부산 연쇄 강도 살인사건이 떠올랐던 것.
이에 천안서의 형사는 해당 사건의 몽타주를 전달받았고 몽타주와 정두영의 얼굴을 비교했다. 몽타주와 정두영의 얼굴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진 형사들. 그런데 이때 한 형사가 정두영의 신발을 보았고 공개 수배 사건의 범인과 동일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부산 서부 경찰서에 "몽타주를 그렇게 닮지는 않았다. 그런데 신발은 똑같다"라는 말은 전한 천안 경찰서의 형사. 이에 부산 서부 경찰서는 즉석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야간 화물 열차에 실어 보내진 사진을 다음 날 새벽에 받아 바로 목격자에게 갔고 그렇게 연쇄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졌다.
공개 수배 사실을 알고 사건 무대를 부산에서 천안으로 바꾼 정두영. 단 1건의 증거만 확보했던 형사들은 정두영의 자백이 필요했고 돈에 집착하고 있던 그를 돈으로 흔들어 자백을 유도했다.
10달 만에 강도짓으로 현금 1억 3천만 원을 모은 정두영. 그는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모든 범행을 실토했다. 그가 벌인 범죄는 총 23건, 그중 부산에서만 15건의 범행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9명을 살해했다. 한 달에 한 명 꼴로 사람을 죽인 그의 목적은 돈이었다.
30세에 출소해 얼마 안 가 미숙 씨의 딸인 은주 씨를 만난 정두영. 그는 은주 씨와의 미래를 꿈꾸며 범행을 저질렀다. 목표 금액 10억 원. 그 돈이면 아파트도 사고 PC방도 차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
그러나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붙잡힌 정두영은 그간 모은 돈만이라도 은주에게 주고 싶다며 형사들에게 이를 여자친구에게 줄 수 없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주 씨를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한 정두영. 그는 은주 씨에게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남자친구의 추악한 정체를 알게 된 은주 씨는 신세타령을 하며 오열하고 말았다.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살인을 한 정두영. 그는 그렇게까지 무참하게 살인을 저지를 필요가 있었냐는 질문에 "피해자들이 심하게 고함을 질러 내가 격분하여 때려죽였다. 처음부터 죽일 마음은 없었는데 말을 듣지 않고 고함을 질러 순간적으로 죽였다"라며 자신도 왜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때려죽였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질문에 정두영은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그랬다. 피해자님들에게 죄송하다. 그런데 마음은 홀가분하다"라며 "내 마음 자체가 악마였는지 모른다"라는 말로 공분을 자아냈다.
그런데 자신이 검거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목격자. 아기 엄마를 살려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기가 있다는 말에 그를 살려주었던 것.
이후에도 그는 엄마라는 단어만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는데 프로파일러는 이것이 그의 트리거가 아닐까 생각했다.
프로파일러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 그것이 사회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불만을 가졌는데 자기가 공격했던 피해자들이 나를 버렸던 세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죄책감을 덜 느끼며 범행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분석했다.
정두영은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고아원으로 보내졌는데 이에 어머니와 사회를 원망하며 살았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폭력성이 어머니에 대한 결핍 때문으로 보인다는 것.
결국 사형 판결을 받은 정두영. 그런데 그는 지난 2016년 8월 8일 오전 7시 36분 탈옥을 시도하다 8분 만에 붙잡혔다. 마지막으로 은주 씨를 한번 만나고 싶어서 탈옥을 준비했다는 정두영.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지만 사실 그의 모든 불행을 불러온 것은 본인의 선택 때문이었다. 소년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던 15살 이후 그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것은 1주일도 안 되는 시간뿐. 결국 그는 10억이라는 목표를 채우기 위해 강도 살인을 저질렀고 스스로 "직업 살인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희생당한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땀을 흘렸던 이들이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정 씨는 홀로 세 아들을 키웠는데 그중 둘째 아들은 뇌성 마비 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에 당시 담당 형사였던 이재길 형사는 직접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피해자의 가족들이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무려 10년간 사비로 유족을 도왔다.
이재길 형사는 "이 사건에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라며 빨리 검거를 못해서 피해자들에게 항상 죄짓는 기분이었다고 미안함을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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