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2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대기만성, 이준혁의 시간이 왔다

강선애 기자 작성 2025.02.20 15:59 조회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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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인 대기만성(大器晩成). 연예계에는 이런 대기만성형 배우들이 꽤 있는데, 이준혁은 최근 업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그런 유형의 배우다. 2007년 데뷔해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지 벌써 18년이나 됐고 나이도 40대에 접어들었는데, 이제야 배우 인생 최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준혁은 배우로서 빠지는 부분이 없다. 말끔하게 잘생긴 외모, 옷 태가 사는 큰 키와 체형, 그의 외적 매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칭찬이 자자했던 부분이다. 이준혁이 2019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순백의 제복을 입고 왕자님처럼 등장했던 장면은 "역대급 등장신"이라며 지금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외모가 너무 뛰어나면 연기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기 마련인데, 이준혁은 연기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 '범죄도시3'의 악역 주성철과,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의 서동재 캐릭터만 봐도, 두 작품 속 이준혁은 전혀 다른 얼굴이다. 이준혁은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완벽히 동기화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이렇게 외모도 출중하고 연기도 잘하는데, 왜 배우 이준혁은 지금껏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까. 연예계에서는 뜨려면 '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갖췄어도 하늘의 기운이 닿지 않으면 힘들다는 얘기다. 시대적 흐름, 대중의 취향, 작품의 성패, 그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의 문제는, 일개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맞지는 못했지만, 이준혁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고 성실하게 걸어왔다. '범죄도시3'에서 20kg이나 증량한 악역 변신으로 배우로서 과감한 도전 정신을 보여줬고, '좋거나 나쁜 동재'로 조연의 주연화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증명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빌드업 과정을 거친 이준혁에게 비로소 도래했다. 배우로서 '빵' 뜨는 그 순간이.

이준혁

이준혁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이하 '나완비')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반열에 올랐다. '나완비'는 일'만' 잘하는 헤드헌팅 회사 CEO 강지윤(한지민 분)과, 일'도' 완벽한 비서 유은호(이준혁 분)의 밀착 케어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나완비'는 첫 회 5.2%의 시청률로 시작해 최종회 12.0%로 두 배 이상 점프했고, 방영 내내 금토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주인공 이준혁은 화제성 1위에 오르며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를 선보여온 이준혁이 '각 잡고' 처음 도전한 로맨스 드라마 '나완비'는 제대로 성공이었다.

"감사하죠. 이게 제가 감사하다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팀 작업이었으니까요. 다행인 거 같고, 마음이 놓여요. 저희가 세상에 없었던 이야기를 만들어 그걸 믿게끔 하려고 오랜 시간 노력한 걸, 시청자분들이 공감해 주신 거 같아 좋아요. 이런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유은호는 그야말로 '완벽한 비서'였다. 지나가는 여성들이 힐끔거릴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성격은 다정하고 배려심이 넘쳤다. 업무 능력은 출중했고, 요리, 살림, 육아 실력도 뛰어났다. CEO 강지윤을 섬세하게 보조하는 만능 비서 유은호는 실제로는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남자 주인공이라며 '유니콘 남주'라 불렸다. 로코 장르의 기준으로 봐도 이토록 완벽한 유은호는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인데, 이준혁은 유은호가 다른 의미로 독특해서 끌렸다고 말한다.

"제 필모그래피에 독특한 캐릭터들이 참 많아요. 그런 독특하고 새로운 걸 좋아하는 편이죠. 근데 제 필모가 어느새 독특한 인물로만 가득하더라고요. 그래서 웬만한 건 더 이상 안 독특했어요. 오히려 유은호 같은 캐릭터가 저한텐 독특하게 다가왔어요. 그때가 '범죄도시3'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는 연기를 한 시기였는데, 이런 로맨스 드라마가 저한테 왔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준혁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지만, 이준혁은 극 전체의 흐름이나 구조가 다른 장르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연기하는 유은호 캐릭터가 뻔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변칙을 주려 노력했다. 이준혁의 섬세한 캐릭터 분석이 돋보인 부분이다.

"'나완비'를 하면서 로코 장르 작품들을 많이 봤는데, 결국 같다는 걸 느꼈어요. 비슷한 리듬감, 동일한 타이밍이 있더라고요. 장르물에서는 중요한 임팩트에 사람을 죽인다면, 로코에선 남녀주인공이 뽀뽀를 해요. 제가 어렵게 느낀 건, 1화가 지나면 유은호는 목적을 상실한 캐릭터가 된다는 거예요. 취직도 성공하고, 딸도 우울한 게 없어졌으니까요. 그 이후부터 은호는 계속 대상화될 뿐이에요. 다른 인물들의 목적에 은호가 리액션하는 구조죠. 그래서 전, 은호가 모든 신의 조연인 주연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은호가 계속 뻔한 얘기만 하는 게 아닐까, 너무 매력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중간중간에 개그적인 장면들을 넣어 변칙을 두려 했어요."

이준혁은 요리를 따로 배우는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유은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유은호의 슬림한 이미지를 위해 체중관리에도 특별히 신경 썼다. 무엇보다 전작 '좋거나 나쁜 동재'의 영향이 남아 있는 바람에, "눈을 무섭게 뜨지 않기"라는 독특한 주문도 넣었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유은호를 만들어간 이준혁의 노력은 통했다. '나완비' 속 이준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났고, '이준혁 비주얼이 곧 개연성'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부끄럼이 많은 이준혁은 이런 외모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범죄도시3'나 '좋거나 나쁜 동재'는 저의 이상한 부분을 찾으려 했는데, 멜로는 찍을 때 카메라가 저의 장점을 잡으려 노력해요. 어떻게든 좋게 보여주려 하고 영상도 뽀사시하게 하죠. 원래도 밖에 잘 안 돌아다니는 성격인데, 이거 어떡하나 싶어요.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거 같아요. 혹시라도 밖에서 절 만나 (드라마 속 모습과 달라) 실망하시더라도, '연기를 잘한 거구나'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웃음)"

외모 칭찬에는 선을 뒀지만, 유은호는 그동안 이준혁이 맡았던 캐릭터들 중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준혁이 억지로 다른 톤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편안하게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는 캐릭터였다.

"제가 어릴 때부터 노안이라(웃음) 실제 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주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목소리를 두껍게 만들어 내곤 했죠. 서동재 같은 캐릭터는 많이 변조했던 거고요. 이번엔 그러지 않아도 됐어요. 극 중 은호는 저보다 어리긴 하지만, 그냥 저로 나가도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중년이 돼서 생기는 중후함 같은 게 있을 테니 그런 부분도 걱정 안 했고요. 유은호가 그래도 보통의 사람이라, 싱크로율은 괜찮은 편 같아요. 평소에 제가 ('범죄도시3' 캐릭터처럼) 사람을 죽이거나 하진 않잖아요.(웃음)"

이준혁

로맨스 드라마인 '나완비'의 성공 비결로 이준혁과 한지민의 사랑스러운 커플 케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이준혁은 어릴 적 연기학원을 다닐 때부터 이미 스타였던 선배 한지민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며, 칭찬을 쏟아냈다.

"제가 요새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중요한 건, 일하면서 리스크가 생길 때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지민 씨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고 듬직해요. 현장에는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 버팀목이 되는 멋진 동료이자 선배였어요. 또 너무 아름답고 연기도 잘하잖아요. '나완비' 4화에서 지윤이 잠든 은호를 보며 '잘생겼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대본을 보며 이걸 어떻게 해낼까 궁금했어요. 근데 그걸 해내고 설득시키더라고요. '역시 다르구나' 싶었죠. 바로 눈앞에서 그런 장면을 보는 게, 누군가의 연기를 고화질 아이맥스로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 어려운 걸 이겨내고 해준 것이, 멋있고 감사했어요."

극 중 유은호와 강지윤은 사내 비밀연애를 하다가 어느 순간 회사 사람들에게 연인 관계임을 밝힌다. 이준혁은 실제 자신이라면, '공개연애'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는 그는 "세상에 내 생각을 말하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이다. 확성기에 대고 크게 소리 지르는 느낌"이라며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 스타의 삶을 살다 보면 원치 않아도 사적 영역들이 대중에 노출되곤 한다. 이에 대해 물으니 이준혁은 "그건 스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스타 친구한테 물어보겠다"라는 엉뚱한 대답을 들려줘 주변을 웃음 짓게 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남배우로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는데, '스타'라는 수식어가 어색한 이준혁이다.

"모르겠어요. 이 나이에 스타라니. 그런 말은 낯간지러워요. 그냥 저한텐 똑같은 거 같아요. 다만 더 책임감이 주어지고, 더 해결할 것들이 많아지겠죠. 현장에서 제가 듬직하게 있어야 할 부분들도 많아질 테고요."

이준혁

이준혁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독특한 게 많다고 한 것처럼, 그가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은 평범하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데뷔한 지 18년이나 됐는데도 남들은 쉽게 필모에 추가하는 로맨스 드라마 하나가 없었다.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않아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잘 해왔던 거 같아요.(웃음) 새로운 걸 좋아해요. 예전에 봤던 영화들, 선배 배우들한테 영향을 받아 반했던 것들을 제가 해보는 거예요. 크리스찬 베일이 20kg을 증량했던 걸 보고, '나도 배우라면 해보자' 하는 마음에 도전해보는 거죠. 그러면 제가 그분이 겪었을 고통을 이해하고, 팬으로서 좀 더 가까워진 마음 같은 게 생겨요.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건 두렵지 않아요. 배우로서 저한테 고정된 이미지가 있는 거 같진 않으니, 얼마든지 절 변주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준혁은 배우로서 한 가지 이미지에 고착되지 않은 자신을 "업종 변경을 많이 했다"고 표현했다. 배우에게 대표 이미지 하나가 굳건하게 있으면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조금 더 수월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이준혁은 "하나를 잘하는 게 부럽기도 하다. 20년 국밥집처럼,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는 맛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조금은 더 편할 수 있을 거 같다"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이내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거 같다. 난 업종 변경을 계속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거 같다"라고 빠르게 수긍했다.

이준혁은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배우가 자유자재로 '업종변경'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멜로 전문 배우', '악역 전문 배우'도 좋지만, 멜로도 악역도 둘 다 할 수 있는 게 더 이득이지 않은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전 정말 안 가리고 다 봐요. 완전 B급도 보고요. 그런 거에 나름 애착이 있어요. 제가 다 좋아하니,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데 겁이 없는 거 같아요. 물론 실패를 할 수도 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계속 이것저것 다 하면서 '실패를 해도, 그걸 버티면서 하는 선배가 있구나'하는 모델이 되면 좋겠어요."

이준혁

연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남들의 시선에서 "좀 숨고 싶다"며 부끄럼을 드러낸 이준혁은 MBTI로 따지자면 '파워I'의 성격이다. 그런데 이번 '나완비' 방영 초반에 홍보를 위해 SBS '틈만나면', 유튜브 '핑계고', '살롱드립2' 등의 예능형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그런 경험이 자신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예능은 거기만의 문법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어려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예능하는 분들의 그 에너지가, 엄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제 언어가 어딘가로 나가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릴 땐 싸이월드도 안 했어요. 그런데 예능을 하려니, 그게 쉽지는 않았죠. '살롱드립2' 촬영하며 엄청 긴장하고 떨어서, 끝나고 좀 아팠어요. 제 눈에는 얼마나 떨었는지 그게 다 보이더라고요. 제가 떠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동재 캐릭터 같은 건 열심히 대사 암기해서 연기해내는데, 실제 이준혁은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까요."

지난 18년간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맡아 왔지만, 이준혁은 여전히 도전해보고 싶은 연기가 많다. 로맨스 장르 경험이 부족한 이준혁에게 이번 '나완비'도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준혁은 현재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를 촬영 중이다. 여기서는 강력계 형사로 변신한다. 이준혁의 또 다른 도전, 드디어 도래한 자신의 전성기를 이어갈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제 삶은 늘 '오징어 게임'처럼 생존게임 같았어요. 인생이 그림 그리는 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더 잘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해요. 배우로서 못해본 게 너무 많아요. 최근에는 오컬트 장르나, 깊은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제게도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 스튜디오S·이오콘텐츠그룹]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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