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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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지옥같던 18연패…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는 이유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7.12 12:27 조회 8,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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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영원한 나의 슈퍼맨-운명을 건 세 번의 승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신소율, 개그맨 지상렬, 골프 해설위원 이보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야구장의 사진사

때는 1982년 3월, 서울이야. 커다란 건물 앞에, 한 남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어. 건물로 들어간 남자는 성큼성큼, 계단을 하나씩 올랐어. 끝까지 오르자, "와아아!!!!!" 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 뜨거운 햇살, 날리는 흙먼지. 그 안에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어. 남자가 간 곳은 바로, 서울 동대문 야구장이야. 지금 DDP 자리가 예전엔 동대문 야구장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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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야구장에선, 한 프로야구팀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어. 경기에 푹 빠져 있는 관중들 사이로, 남자가 들어섰어. 그리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어. 남자의 이름은 이광진. 사진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야. 광진 씨는 이 야구장에서 꿈을 펼치려고 해. 무슨 꿈일까? 직접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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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교육자이셨는데, 역사적인 걸 굉장히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셨어요.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프로야구가 한국에서 처음이고 그래서, 그거를 한번 욕심을 냈죠. 프로야구 선수들이 갖고 있는 어떤 감성이라든지, 주제넘지만 내면의 세계를 담고 싶었죠."
-이광진, 야구장을 찍는 대학생

1982년, 이 때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어. 광진 씨는 그해 첫 출범한 프로야구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었던 거야. 광진 씨는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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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지금처럼 S석, A석, B석이 없었고, 앉는 게 임자고, 넘버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내야도 갔다가 외야도 갔다가 그랬어요. 근데 옆에 중년 신사가 계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나를 힐끔힐끔 봐요. 그분이 이제 저한테…"
-이광진, 야구장을 찍는 대학생

한 중년 남자가 광진 씨에게 무슨 사진을 찍냐며 말을 걸었어. 광진 씨는 응원하는 팀을 찍고 있다고 대답했어. 그러자 그 남자가 광진 씨에게 명함을 내밀어.

"그럼, 그 사진들 좀 가지고 언제 한번 우리 회사로 올 수 있습니까?"

이 남자의 이름은 이혁근. 한 대기업 상무이사래. 대기업 상무가, 광진 씨를 왜 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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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광진 씨는 사진 몇 장을 인화해서 명함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어. 종로에 있는 삼일빌딩 31층이야. 고층건물이 거의 없던 그때, 삼일빌딩은 서울의 시그니처 건물이었어. 광진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갔어.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었어.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쫙 앉아있고, 저 끝에 앉아있는 남자, 이혁근 상무가 광진 씨를 맞이해.

"아, 왔는가? 자자 다들 모여봐. 이 친구가 아주 재밌는 걸 가져왔다고"

직원들이 모이고, 광진 씨가 사진을 꺼내기 시작했어. 다들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칭찬 일색이야. 어떤 사진일지, 궁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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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너무 잘 찍었지? 그동안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따라다니면서 찍은 거야.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봐봐. 선수들 유니폼에 있는 마크. 광진 씨가 찍은 야구팀, 뭔지 알겠어? 바로, 인천 '삼미 슈퍼스타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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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빌딩은, 삼미 슈퍼스타즈 모기업인 삼미 그룹의 본사였어. 이혁근 상무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단장이었던 거야. 자기 팀 사진을 멋있게 찍어주니까, 단장이 너무 고마웠나봐. 이 단장은 광진 씨에게 뭐 도와줄 게 없냐고 물었어.

"제가 학생이고 돈도 없고 그런데. 매일 경기 가서 사진 찍는 것도 다 돈이고. 그리고 지방 한 번 가려고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랬더니, 직원을 부르더라고요."
-이광진, 삼미 사진을 찍던 대학생

이 단장이 직원을 불러 뭔가를 가져오게 했어. 그리고 그걸 광진 씨에게 건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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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비표였어. 지금으로 치면 구단 직원들이 들고 다니는 ID카드야. 이것만 있으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거야. 그것도 특석에서. 거기에 한가지 더, 원정경기 갈 때 구단 버스를 탈 수 있게 해준대. 선수들과 같이 이동할 수 있는 거야.

같이 이동하고, 같이 밥을 먹고. 그때부터 광진 씨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담 사진사가 된 거야. 경기하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자는 모습, 관중과 만나는 모습,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풍경을 사진에 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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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광진 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대. '아 그게 없다, 딱 그것만 나오면 좋겠다'라고. 최초의 프로야구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장면이 없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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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사진은 이제 어떻게 보면 환희잖아요 환희. 이겼을 때의 그 환희. 근데 저는 갈등 사진이 너무 많았죠. 환희보다는 갈등 사진이 많고, 극적인 것보다는 침울한 거. 그런 게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죠."
-이광진, 슈퍼스타즈 전담 사진사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는 꼴찌의 대명사였어. 득점 보다는 실점이 많고,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했던 만년 꼴찌팀. 불꽃처럼 짧은 역사를 남기고 바로 사라진 팀.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아직도 빛나고 있는 '슈퍼맨' 같은 존재야. 그 이유가 뭘까?

오늘의 이야기는, 이 팀이 왜 이토록 오래도록 빛을 내고 있는지,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이야기야.

▲ 삼미 슈퍼스타즈의 탄생

1981년, 정부에선 국민들의 정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만들기로 해. 당시 프로야구 창립 계획은 이랬어.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겨. 민간 기업은 홍보를 위해 야구단을 이용했어. 지역에 연고가 있는 민간 기업이 해당 지역 출신 선수들을 모아 6개의 팀을 만들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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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MBC청룡, 충청도엔 OB베어스, 대구에 삼성 라이온즈, 부산엔 롯데 자이언트, 광주엔 해태 타이거즈. 이렇게 다섯 지역의 팀이 정해졌어. 이제 한 곳만 정하면 돼. 인천, 경기, 강원을 맡을 기업이 필요했어.

KBO 관계자들은 다급해. 프로야구 출범 발표일은 이제 보름 밖에 안 남았어. 먼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에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어. 왜? 88올림픽 유치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대. 그 뒤에 제안한 건, 대한항공이었어. 다행히 처음엔 반겼어. 그런데 지금 회사가 적자라, 내년에 창단하면 안 되겠냐는 거야. 프로야구 출범을 내년으로 미룬다고 하면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그냥 다섯 팀으로 할까 했지만, 그럼 홀수라 경기수가 안 맞잖아. 프로야구 창립 관계자들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그때, 창립위원회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와.

"그 프로야구팀 말이요. 내가 한번 만들어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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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건 사람은, 김현철 삼미 그룹 회장이었어. 창립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어. 삼미는 생각도 안 했던 회사였거든. 그때 삼미 그룹은 무역업, 해운업, 특수강을 취급하는 회사였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인데, 출범 발표 보름 전에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거야. 알고 보니까, 김현철 회장이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 야구를 그렇게 좋아했대. 그런데 어느 날, 인천 지역 야구팀을 맡을 기업이 없다는 뉴스를 본 거야. 그리고 바로 전화해서, 출사표를 낸 거지. 그때 김현철 회장 나이가, 서른 살이었대. 젊은 CEO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팀이 턱!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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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창단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너무 기뻤죠. '내가 인천이니까 슈퍼스타즈를 응원해야 되는구나' 그 생각으로 슈퍼스타즈를 응원하기 시작했죠."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

기쁘기만 한 팬들 마음과는 다르게, 삼미 측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예정된 프로야구 개막은 82년 3월이야. 넉 달밖에 안 남은 거야. 넉 달만에 프로야구 한 팀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먼저 정해진 기업들은 진작에 팀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삼미는 시간이 없어.

우선 팀 이름부터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지었어. 왜 슈퍼스타즈였을까? 김현철 회장의 아이디어였어. 미국 유학 당시 봤던 한 농구팀의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팀 이름이 '시애틀 슈퍼소닉스'였어. 거기서 '슈퍼'를 따와서 '슈퍼스타즈'라 지은 거야. 마스코트는 팀 이름이랑 어울리게, 슈퍼맨과 원더우먼으로 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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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천리로 마스코트까지 만들고, 이제 팀을 이끌어줄 사령탑, 감독을 찾을 차례야. 김혈철 회장이 감독으로 점찍은 사람은, 박현식. 1세대 홈런왕. 아시아의 철인이라 불리던, 야구계의 슈퍼스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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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삼미 유니폼을 입을 선수들, 슈퍼맨들을 찾아야 해. 지금부터 네가 삼미 스카우터라 생각하고, 프로필을 한번 봐봐. 먼저, 이 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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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승관 선수는 어때? 대학야구 타격왕, 홈런왕을 석권했고,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외야 수비가 일품이야. 네가 스카우터라며 뽑을 거 같아? 이 선수는 삼미에 합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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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중견수를 보던 양승관입니다. 한국에 프로야구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프로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많이 설레더라고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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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이 프로필을 봐봐. 김무관 선수야. 2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가 좀 걸리긴 한데, 건국대, 실업팀 한일은행 시절 각광받던 타격의 달인이야. 이 선수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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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미 슈퍼스타즈 출신 야구선수 김무관이라고 합니다. (당시) 서른 정도 됐습니다. 실업팀에 있었으면 은퇴할 나이인데 프로가 생기는 바람에 그런 희망이 좀 생겼다고 할까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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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호봉, 금광옥, 조흥운, 김재현 등 인천 출신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하나 둘 영입했어. 이렇게 23명의 슈퍼맨이 삼미 슈퍼스타즈에 모였어. 근데 모인 선수들은, 걱정이 많았다고 해. 팀의 전력이 너무 약하다고 느꼈거든.

"훈련하면서도 하루하루가 걱정이 많았었죠. 우리팀이 이게,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의, 한숨이 날 정도로. 진짜 선수층이 얕았으니까요. 전혀 모르던 선수들도 왔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들어온 선수들도 있었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삼성 라이온즈나 OB베어스나 이런 팀은, 굵직굵직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투수력이나 야수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조금 약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다른 구단들은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영입했어. 해태 김봉연, MBC 백인천, 삼성 황규봉, 이만수 등의 선수들을. OB베어스 구단주는, 직접 미국까지 가서 마이너리그 투수를 데려왔어. 그게 OB의 영원한 에이스, 불사조 박철순이야.

근데 삼미 슈퍼스타즈는 시간도 없고, 데려올 만한 스타급 선수도 없었던거지. 그렇게 82년 2월, 삼미 슈퍼스타즈는 슈퍼스타 없이 창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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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식이 끝나고, 삼미 선수들은 경남 진해로 전지훈련을 갔어. 막상 훈련을 시작했더니, 감독은 한숨만 쉬어. 이건 도저히, 프로에 낄 실력이 아니야. 근데 그 와중에, 누군가 한 명이 감독 눈에 들어와. 배팅볼 투수였어. 타자들이 타격 연습을 할 때, 앞에서 공을 던져주는 투수야. 근데 보니까, 공을 왼손으로 던져. 예나 지금이나 왼손 투수는 별로 없어서, 귀하거든. 게다가 곧잘 던지는 게 실력도 괜찮아 보여.

감독이 그 배팅볼 투수를 슬쩍 불러 야구를 했었냐고 물었어. 알고보니까, 고등학교 때 선수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삼미 특수강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사원이래. 실업 야구팀에 못 가서 일반 회사에 취직했는데,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직장인 야구를 하고 있던 거야. 그걸 알고 있는 회사 상사가, 삼미 선수들이 진해로 전지훈련을 온다고 하니 가서 도와주라고 보내준 거야. 전지훈련 내내 감독이 지켜보니, 성실하고 우직해. 감독은 그 배팅볼 투수에게 '마침 우리팀에 왼손 투수가 필요하니,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 이 선수의 이름은 '감사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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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왼손 투수 감사용입니다. 45일 동안 합숙을 하고, 감독님 말씀이 '감사용이는 합류해' 그래서 인천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 진해에 우리 집으로 가서 가방 하나 더 들었죠. 이불을 가지고 합류하게 되었죠. 사실 그때는 파견 근무죠. 회사 출근 안하고 야구장에 출근했죠. 너무 좋았죠."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주인공, 감사용 선수야. 그렇게 감사용까지 합류하며, 슈퍼스타즈 팀이 완성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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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 개막, 슈퍼스타즈의 첫 경기

82년 3월 27일.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 프로야구 개막식이 열렸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첫 경기는 개막식 다음 날인 3월 28일에 열렸어. 상대는, 당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강팀, 삼성 라이온즈야.

삼성의 선발 투수는 국내 에이스 중 에이스라 불리는 국가대표 출신 황규봉. 그리고, 4번 타자 이만수. 바로 어제 개막전 경기에서 시즌 제1호 홈런을 쳤어.

"(삼성이) 그때는 막강한 우승 후보죠. 이선희, 배대웅 등,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을 갖다 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게다가 그날 경기는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렸어. 삼성팬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프로로서 첫 경기. 게다가 상대는 우승 후보야. 삼미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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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아마. 저희 자신들도 이길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경기장에 들어갔으니까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드디어, 삼미의 첫 경기가 시작됐어. 1회는 양팀 득점 없이 마무리되고, 2회초 삼미의 공격. 2루에 주자 금광옥이 있고, 타석엔 양승관이 들어섰어. 양승관은 안타를 때렸고, 2루 주자 금광옥이 홈을 밟았어. 삼미 슈퍼스타즈가 1점 앞서 나갔어.

"의외의 변수가 생긴 거죠. 저희한테 일격을 당하니까, 이게 이런 경우가 있구나…"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어느덧 경기는 4회 말, 삼성의 공격이야. 삼미의 투수는 선발 인호봉. 삼성 타석엔 바로 어제 홈런을 쳤던, 공포의 4번 타자 이만수야. 이때 이만수는 솔로 홈런을 쳐서 동점을 만들었어. 이 한 방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삼성으로 넘어갔어. 근데, 시작할 땐 너무 긴장에서 공도 안 보일 정도였는데, 이제 슬슬 집중력이 돌아와.

삼미는 5회초에 곧바로 점수를 냈어. 스코어 2대 1로 다시 리드를 잡았어. 그리고 6회초, 삼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와. 무사 주자 만루의 기회가. 타석엔 5번 타자 김호인이 들어섰어. 김호인이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은, 3유간으로 빠지는 안타로 이어졌어. 3루와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어. 스코어는 4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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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만루의 기회는 계속 이어졌어. 타석엔 오늘 2타수 2안타를 기록 중인 양승관이 들어섰어. 양승관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추가했어. 스코어 5대 1. 최약체로 꼽혔던 팀이, 우승 후보팀을 상대로 팽팽한 경기를 펼치고 있어.

하지만 삼성은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야. 7회말 삼성의 공격. 2아웃 주자 1루 상황에, 4번 타자 이만수가 타석에 섰어. 투수 인호봉의 공을 받아친 이만수. 이만수는 2점 홈런을 쳤어. 연타석 홈런이야.

엎치락뒤치락,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해. 마침내 경기 종료야.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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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2천여 야구팬이 지켜본 가운데 열린 오늘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 팀은 삼미 슈퍼스타즈 팀에게 5대 3으로 패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창단도 급하고 준비도 어설펐지만, 첫 경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를 이겼어. 삼미 선수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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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보였던 삼성을 이겨서, '어? 한번 해볼 만한데?' 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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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뭐 말도 못했죠. 축제 분위기죠. 제가 야구하면서 그렇게 희열을 느껴본 게, 몇 번 안 되는 것 같아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야구는 기세다'라는 말이 있어. 삼미는,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 슈퍼맨의 비애

삼성과의 경기가 끝나고, 82년 4월, 삼미는 한 달 동안 11번의 경기를 치렀어. 그중 몇 번이나 이겼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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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11번의 경기 결과가, 2승 9패.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 이유는 너무 얕은 선수층 때문이야. 특히 투수가 너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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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날 이선덕 코치님이 '사용아 내일 선발 나가라' 그러면, 체력이 안 좋은데 못 나간단 소리도 못하고. 공이, 공이 아니고 쇠덩어리예요. 쇳덩어리. 어제 던지고, 또 대기하고. 어제 나가서 잘 던지면, 오늘 괜찮은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체력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나는 80경기에서 41경기 나간 거예요."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어제 잘 던졌다, 체력이 돼 보인다, 싶으면 계속 경기에 내보내는 거야. 오늘 선발로 출전하면, 내일은 구원투수로. 그리고 모레는 또 선발로 나가곤 했어. 완전 혹사지. 그럼 야수들은 어땠을까? 이걸 한 번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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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상황 같아? 타석에 서 있는 남자, 이름 보여? 이춘근, 당시 삼미의 타자 코치였어. 하도 답답하니까, 코치가 대타로 나간 거야. 오죽하면 그랬을까. 선수들 사기가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져?

슈퍼스타즈의 사진사 광진 씨가, 이겼을 때의 환희를 찍고 싶다고 했잖아. 이맘때쯤 광진 씨가 찍은 사진들을 한번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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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기 하나 없이 넋이 나간 표정들에서, 그때 분위기가 느껴지지?

"스포츠는 이기고 봐야 영웅이 되는 거지, 지면 다 역적이거든요."
-이광진, 슈퍼스타즈 사진사

이후 삼미는 계속 패만 쌓여가. 지고 있어도 지고, 이기고 있어도 나중에는 져.

"창피했죠. 어디 돌아다니다가 밥 먹으러 나가도 그렇고, 술을 한잔 먹으러 가도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구나' 매일 손가락질 당하기 바빴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너무 지다보니까, 기억나는 부분들이 없어요. 그게 떠올리기 싫은 거예요. 자꾸 너무 많이 지니까. 그런 게 자꾸 삭제되지 않았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안 좋은 부분들이."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결국 그해 삼미는 6개 구단 중 6위. 이변 없이 꼴찌를 했어. 이 때 사람들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삼미 슬퍼스타즈'로 불렀대. 최소 득점, 최소 안타, 최소 홈런, 최다 실점. 이 처참한 기록들의 주인공이 바로 삼미였어. 그해 열린 80경기 중 삼미가 이긴 횟수는 단 15번. 승률은 0.188. 이 승률은 프로야구 42년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은 최저 승률 기록이야.

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때 그 시절, 옛날엔 팬들이 상당히 과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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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야구장을 갔다 와서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게 뭐냐면, 야구장은 어린이들이 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이에요. 왜냐면, 어른들이 관중들이 욕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철망에 매달려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러는 게 일상다반사였죠. 옷을 다 벗고 하얀 팬티 바람으로 그물망 타고 넘어가고 그랬어요. 과격하기가 말도 못해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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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한테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쓰레기를 던지고, 그물망을 타고 넘어가고, 경기장에 난입해 항의하고, 선수가 말리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아이들 사이에서 삼미 팬들은 놀림의 대상이 됐어. '꼴찌팀 팬'이라고. 삼미 어린이 팬들은 창피해서 삼미 유니폼도 못 입고 다녔대. 그래도 팬들은, 맨날 지기만 하는 이 팀을, 이 약골 슈퍼맨을 계속 응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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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할 수 밖에 없는게. 오늘도 지고 어제도 지고 했는데, 만약에 내일 내가 야구장에 안 왔는데 그날 이기면 어떡해. 이걸 봐야 되잖아. 내가 삼미가 이기는 걸 한번 봐야 되잖아. 그래 갖고 내일도 또 야구장을 찾는 거예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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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팬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시니까, 거기에 많이 힘을 얻은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 1억 황금팔 장명부의 등장

83년도 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가 시작됐어. 삼미는 감독부터 다시 세팅해. 새 사령탑은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감독이야. 김진영 감독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로, 등번호도 그해 년도인 83으로 달았어. 그리고 기존 선수 중 11명을 단칼에 방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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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 꼴찌의 혜택으로 1차 선수 지명권을 가진 삼미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이 선수를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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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장명부. 재일 교포 선수였어. 일본 프로야구에서 소속팀인 히로시마 도요카프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 투수였어. 당시엔 일본 야구가 우리보다 먼저 시작해서, 수준이 월등히 높았어. 그래서 당초 KBO는 85년부터 재일교포 선수를 영입하려 했었어. 그런데 팀간의 전력차이가 너무 나니까, 계획을 앞당긴거지.

그럼, 장명부 선수를 얼마에 데려왔을까? 작년 OB 박철순의 계약금과 연봉이 합쳐서 4,400만 원이었어. 그런데 장명부는, 계약금 4천에, 연봉 4천만 원. 무려 박철순의 두 배였어. 거기에 아파트 묻고, 더블로 자동차까지. 약 1억원을 주고 데려왔어. 당시 강남 은마아파트가 약 3천만 원이었어. 1억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와? 그렇게 1억짜리 투수 장명부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돼.

"기대를 엄청 했죠. 어마어마한 선수가 온다는 걸 알았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저 선수가 오면 한국을 뒤집어 놓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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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부가 처음 훈련장에 나타났어. 키 182cm에 몸무게가 90kg이 넘는 거구야. 다들 몸은 훈련을 하고 있지만, 신경은 온통 장명부로 향해 있어. 장명부가 드디어 훈련을 하기 시작하는데, 선수들이 술렁이기 시작해.

"운동장에 재일 교포라고 왔는데, 나가서 슬쩍 몇 바퀴 어슬렁어슬렁 다니더니, 몸 풀라는데 티 배팅을 치고 있더라고요. 이거 뭐, 몸도 안 풀고, 저런 선수가 왔냐 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막 그냥 전력을 안 하는구나, 그냥 대충대충 하는구나. 그래서 진짜 유명한 선수 안 같았지."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곧, 그의 실력을 확인해 볼 기회가 왔어. 정규 시즌에 들어가기 전, 롯데와의 시범 경기가 있었거든. 그 경기에 장명부가 중간 투수로 올라갔어. 어땠을 것 같아?

"시범경기 첫날 롯데와의 경기에서 선을 뵌 삼미의 장명부는 5회에 1점 6회에 3점을 허용하는 부진을 보였다. 1억 원짜리 투수 장명부는 연습경기에다 준비없이 갑작스런 구원 등판 탓인지 소문대로의 위력적인 투구내용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다음 경기에선 더 심각해. MBC청룡과의 시범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는데, 타자들에게 안타를 계속 맞아. 장명부는 2경기 동안 피안타가 17개, 무려 11 실점을 했어.

모두가 장명부의 실력을 의심하는 가운데, 83년 4월, 드디어 두번째 정규 시즌이 시작됐어. 삼미의 첫 경기는, 첫 시범경기 상대였던 롯데야. 선발 투수는, 장명부. 1회 말, 장명부가 마운드에 섰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 투구를 선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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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스윙 삼진! 묵직하게 날아오는 장명부의 공에 롯데 타자들이 얼어 붙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장명부 선수가 1억 원짜리 황금팔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10대 4로 슈퍼스타즈를 승리로 이끕니다."

의심을 날려버린 장명부의 첫 투구. 시범경기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타자를 가지고 놀아.

"타자를 그냥 요리를 하는 거예요 요리를. 자기 마음대로. 이제 우리가 놀란 거예요 전부 다."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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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삼진 7개를 기록하며 경기를 압도했어. 그럼 시범경기 때는 어떻게 된 걸까? 일부러 안타를 맞았던 거야. 공을 맞으면서, 타자들의 전력 분석을 하고 있었던 거지. 정규 시즌에 들어간 장명부는, 완벽한 최고의 투수였어. 그리고 경기에 안 나오는 날이 없어. 계속 나오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나오기만 하면 이겨.

"그때 당시에 진짜, 자기가 던지다가 뒤에 중간 투수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지 말라고 내가 계속 던지겠다고. 그리고 다음날 내가 던지겠다고 또 던질 정도였으니까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장효조 선수가 그 당시 최고 타격을 자랑하는 선수인데, 장명부가 장효조는 아주 안타를 거의 안 주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투수력으로 탄력을 많이 받았죠. 성적도 좋았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장명부는 좀 잘 친다 싶은 타자에겐, 거침없이 빈볼을 던져. 일부러 타자 몸에 공을 던지는 거야. 공을 맞춰놓고, 시치미 떼는 장명부의 모습에 사람들은 '너구리'라는 별명을 붙여줬어. 속을 알 수 없다고. 지금은 그러진 않지만, 그땐 빈볼도 타자의 흐름을 빼앗는 전략 중 하나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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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부는 고도의 심리전을 주무기로, 차곡차곡 승을 쌓아갔어. 그만큼 삼미도 장명부를 등에 업고 순풍에 돛을 단 듯 승리했어. 4월에만, 15경기 중 9승. 5월은 19경기 중 12승. 벌써 21승이야. 작년 꼴찌팀이 순식간에 전체 1위. 언더독의 반란이 시작된 거야.

"선수들 자체적으로 사기가 충만해 있었으니까."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진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작년 게 많이 잊혀지더라고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제일 좋아하는 건 팬들이야. 삼미 어린이 팬들은 창피해서 유니폼도 못 입었다고 했잖아?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이게 웬일이냐. 삼미가 맨날 이기고 그러니까, 특히 언론에서 장명부 얘기가 나오니까. 전에는 잡지책을 봐도 슈퍼스타즈 선수가 별로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장명부로 도배가 되는 거예요. 친구가 소풍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반에, 남자 아이들의 반 정도가 삼미 슈퍼스타즈 점퍼를 입고 간 거예요."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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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팬 훈희 씨가 어릴 적 소풍을 갔을 때 사진이래. 삼미 모자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 보여?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자신 있게 삼미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거야.

▲ 오래가지 못한 슈퍼맨의 반란

이제 팬들과 슈퍼맨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우승'이야. 이때는 우승을 정하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어. 전반기 1위 팀과 후반기 1위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거야. 삼미는 5월까지 1위였고, 2위는 해태 타이거즈였어. 두 팀 간의 승수 차이가 크지 않아. 이제부터 전반기 1위를 위해 남은 경기가 매우 중요해. 그리고 6월 1일, 슈퍼맨의 운명을 바꾼 경기가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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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서 삼미와 MBC의 경기가 열렸어. 스코어 0대 1로, 삼미가 1점 뒤지고 있는 가운데, 8회 초, 삼미의 공격이 시작됐어. 2번 타자 이영구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3번 타자 이선웅의 안타가 터졌어. 4번 타자 김진우도 볼넷으로 출루했어. 그렇게 8회초 2아웃, 주자 만루의 기회가 왔어.

"타석엔 삼미의 최홍석이 들어섭니다. 최홍석이 공을 때립니다! 때린 공이 왼쪽으로 큼지막하게 날아갑니다! 좌익수 쪽으로 떨어지는 안타!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옵니다!"

삼미가 2점을 내며, 2대 1로 역전했어. 근데, 갑자기 경기장이 술렁이기 시작해. 다들 전광판에 뜬 스코어를 보고 어리둥절해. 스코어가 1대 1이야. 삼미 점수가 1점 밖에 안 올라간 거야. 어떻게 된 걸까?

아까 상황이, 투아웃 만루였잖아. 땅! 공이 날아가고, 주자 세 명이 동시에 뛰었어. 3루에 있던 주자가 들어오고, 스코어는 1대1이 됐어. 그리고 주자는 A와 B가 남았어. 근데 A가 다다다다 뛰어서 홈을 밟는 순간, 뒤에서 뛰고 있던 B가 아웃 처리된 거야. 이 상황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어. 뭐가 먼저인지 애매해. A가 먼저 홈을 밟았으면 1점 인정인데, B가 먼저 아웃 된 후에 A가 홈을 밟은 거라면, 점수 인정이 안 돼.

삼미 측은 A가 먼저 홈을 밟았다고 봤어. 근데 심판은, B가 아웃된 뒤에 A가 홈을 밟았다고 본 거야. VAR이 없던 시절, 삼미 측과 심판, 누구도 의견을 좁히지 않아. 그때! 김진영 감독이 마운드로 뛰어 나갔고,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기 시작해. 김진영 감독은, 심판 위원장도 몸으로 밀치며 거칠게 항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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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굉장히 화나셨죠. 뭐 그냥 뭐 펄쩍펄쩍 뛰고 그랬으니까… 근데 저렇게라도 못했으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요. 만약에 감독님이 아무 액션도 없었다면, 저희는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결국 판정은 그대로 유지됐고, 9회에 1점을 내준 삼미는 경기에서 졌어. 억울하지만, 어쩌겠어. 남은 경기 잘해서 한국시리즈 가자고, 마음을 다잡았어. 그리고 내일 있을 경기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어.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알지 못했어. 이 일이,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서막이었단 걸 말야.

다음 날인 6월 2일, 부산에서 롯데와의 원정 경기야. 선발 장명부를 필두로, 4대 1로 경기를 이겼어. 근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덕아웃이 시끌시끌해. 경찰들이 덕아웃에 들이닥쳐서, 김진영 감독을 연행해가는 거야. 그리고 다음날, 그대로 구속 됐어. 사유는 '많은 관중 앞에서 욕설과 폭행으로 청소년과 시청자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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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날 경기를, 전두환 대통령이 보고 있었대. 김진영 감독이 항의하는 모습을 보고, 전두환 대통령은 "쯧쯧쯧. 저러면 되나?" 한마디를 했대. 그게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다음날 서울 경찰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현직 감독을 구속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거야.

"진짜 그냥 멍하고, 큰 공백이죠 공백."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우리로서는 진짜 치명타를 받은 거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야. 하필 이때 삼미는, 2위 해태와의 3연전을 앞두고 있었어. 여기서 한 경기라도 지면, 삼미가 2위로 떨어질 수도 있어. 사령탑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치르게 된 거야.

결과는, 삼미가 세 경기 모두 졌어. 감독 없이 기를 쓰고 했지만, 결국 해태에게 1위를 내주고, 전반기를 2위로 마무리했어. 후반기에서도, 삼미는 2위를 했어. 모두가 꿈꿨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한국시리즈행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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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했죠 그때는. 운동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야구하면서 우승 한 번 해보는구나' '한국시리즈 나가보는구나' 그랬는데, 꿈의 무대였었는데 그것마저도 안 되고 나니까. 진짜 허탈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하지만, 작년에 고작 15승을 했던 삼미가 83년에는 52번의 승을 올렸어. 꼴찌라는 오명을 달았던 팀이, 1년 만에 전반기 후반기 2위까지 올라간 거야. 게다가 최고의 에이스 투수 장명부를 보유하고 있잖아. 83년에 세운 장명부의 '시즌 30승' 기록은, 프로야구 역사 42년 동안 지금도 깨지지 않았어. 이땐 100경기인 시절에 혼자 30승을 기록한 거야. 더 이상 삼미는, 꼴찌만 하는 최약체팀이 아냐.

"내년에는 진짜 상위권에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선수들이 단단해졌던 것 같아요. 내년이 기대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즌을 마쳤던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 무너진 에이스, 18연패의 늪

84년, 세번째 시즌이 시작됐어. 구속됐던 김진영 감독도 다시 복귀했어. 84년, 삼미의 성적은 어땠을까? 전반기는 6위, 후반도 또 6위. 꼴등을 차지했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에이스 장명부가 무너진 거야. 장명부는 100경기 중 60경기에 나가서, 427과 1/3이닝을 소화했어. 1년 동안 던진 공이 5,886개였어. 요즘 선발 투수가 한 경기에서 던지는 투구 수는 평균 90개, 한 시즌당 약 2,200개 정도야.

"(장명부가) 자동차 타이어 튜브를 한 뼘 정도 되는 넓이로 해서 허리에 압박을 해서 차고 할 정도로 허리도 안 좋고. 마지막에는 진짜 힘들게 운동을 했어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장명부가 무너지니까, 팀 자체가 무너진 거야. 그렇게 84년도 시즌이 허무하게 지나갔어. 그래도 팬들은 꼴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삼미를 기억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하지만 삼미는, 뭐에 홀린 것마냥, 경기만 했다 하면 졌어.

"연패하는지도 저희는 몰랐었어요. 연패하는지도 모르고 '어어어' 하다 보니까 뭐…"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어느새 10연패가 됐고, 그 뒤로도 연패는 계속 이어졌어. 무려 18연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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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패를 끊으려고 노력은 무던히 했는데, 그때는 사실 절망이죠 절망. '올해는 이제 야구 끝이구나' 고참들도, '끝나는구나' 했어요."
-감사용, 슈퍼스타즈 투수

"트라우마가 온 건지 유니폼을 보는 자체가 두렵기 시작한 거예요. 연패에 들어가니까. 경직되고, 경기장에 나가는 게 두렵기 시작하고. 이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선수단 분위기는 완전히 뭐 최악이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그렇게 질 수 있나? 아무리 못해도 그렇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지옥이었던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정말 지옥 같은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때는 1985년 4월 30일, 인천 도원 야구장. 상대는 MBC청룡이었어. 다행히 2회 말, 삼미 정구선의 솔로 홈런으로 먼저 1점을 냈어. 현재 스코어는 1대0.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선수들은 이닝이 바뀔 때마다 10년은 흐른 것 같아.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점수차라 불안한 거야.

수비하는 삼미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기도해. '공아, 제발 내 쪽으로 오지 마라' 라고. 선수 입장에서 '만약 나의 실책으로 또 연패를 한다면' 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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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실책 하나 하면, 그걸 빌미로 또 질 수 있다… 18연패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을 거예요. 수비수 입장에서는 '나한테 공 오지 마라'라는 생각도, 지금 와서 얘기하지만, 했던 거 같아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그리고 8회 말, 불안함을 날려버리는 영화 같은 삼미의 공격이 시작돼. 2번 타자 김우근이 안타를 치고 나가. 다음 타석에 이선웅이 들어서자, 감독과 코치진이 사인을 보내느라 바빠져. 기습 번트 사인이 나왔는데, 작전은 성공했어. 1아웃 주자 2루. 다음 타자 금광옥은 볼넷으로 출루했어. 1사 주자 1, 2루가 됐어. 다음 타자 정구선은 안타를 쳤어. 현재 상황, 1아웃 주자 만루야.

이번에 점수를 내면, 연패를 끊을 수 있어. 관중석엔 삼미의 승리를 기원하는 팬들로 가득해. 중압감을 어깨에 지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불꽃 타자, 양승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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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설렜어요. 억누를 수가 없을 정도로 흥분되더라고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양승관은 이 타석에서, 3타점 3루타를 때렸어.

"3루에 딱 도달했을 때는, 영화에서 보면 필름이 좌르륵 돌아가잖아요? 2루 베이스까지 가는데 연패하면서 그냥 그 과정들이 순간적으로 그냥 필름처럼 쫙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뭐 힘든 과정이었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그 후 더 이상 실점을 없었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렇게 지옥 같았던 18연패 수렁에서 탈출했어. 선수들은 그제서야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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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끝났다' 이게 아니고, 허탈했어요. 우리는 동굴인 줄 알았는데 터널을 지나갔구나. 동굴에 갇혔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사실. 너무너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까. 힘들었죠."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드디어 길고 길었던 18연패가 끝났어. 그런데,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지? 바로 다음 날,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소식이 전해져.

▲ 슈퍼맨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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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처럼 기구한 슈퍼스타즈"
"청보식품서 70억 원에 인수"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가 부실한 운영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풍한그룹 청보식품으로 넘어갔다. 슈퍼스타즈가 18연패의 치욕적인 늪에서 겨우 헤어나와 청룡에 1승을 거두던 30일밤, 서울시내 모처에서 야구위원회, 슈퍼스타즈, 풍한 실무자 등 3자회담에서 매도가 확정된 때였다."
-당시 신문 보도 中

"전혀 저희는 눈치 못 챘죠."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이제 좀 분위기 좋아지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야? 선수들 잘리고 감독도 잘리고 변화가 있는 거 아니야? 불안했죠.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사실."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18연패를 끊고 모두가 기뻐하던 그 날 밤에, 삼미 김현철 회장은 회사 적자 때문에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청보식품이라는 기업에 구단을 넘긴 거야. 그것도 시즌 도중에 구단이 사라진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감독도 선수도 그대로 유지되고, 팀 이름만 '청보 핀토스'로 바뀐대.

85년 6월 21일, 인천 홈구장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경기가 열려. 마지막 경기에서, 삼미는 졌어.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대로 사라졌어.

3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삼미 슈퍼스타즈는 최저 승률, 최다 연패, 특정팀 상대 전패 등 지금까지 회자되는 기록들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어. 예상대로 꼴찌를 하고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도 했지만,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뛴 슈퍼맨 구단. 그 슈퍼맨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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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추억도 많지만 좋은 추억도 많고 팬들하고 쌓인 그런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팬들의 그런 성원이나 이런 거는, 지금도 가끔 문득문득 생각이 나요."

-김무관, 슈퍼스타즈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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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과정을 겪고 나니까, 그 사회에 나가서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는 걸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양승관, 슈퍼스타즈 중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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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도 있었지만, 삼미는 인천 팬들한테는 애증의 구단이거든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팀. 삼미가 아무리 연패에 빠져 있어도 인천 구장 내야석은 꽉 차 있다는 거.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거야, 하면서 계속 야구장을 찾았다는 거…"

-김훈희, 당시 슈퍼스타즈 어린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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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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