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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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장애아 21명 입양해 키운 천사 아버지? 후원금 노린 '악마'의 실체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5.24 12:02 조회 1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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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3일 방송된 '천사 아버지의 비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인순이, 배우 이준, 씨엔블루 이정신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의문의 냉동 시신

때는 2012년 5월 27일. 늦은 밤, 원주의 한 대형병원이야. 한 남자가 저벅저벅, 지하 계단을 내려가고 있어. 그 남자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병원내 가장 깊은 곳. 문을 열고 들어간 그 곳에는 수 십대의 냉동고가 가득해. 여기는 바로, 시신을 보관하는 안치실이야. 이 남자의 정체는 병원 직원이야. 그가 한 냉동고 앞에 멈추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묵념을 시작해. 이 남자가 누군가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 이 냉동고 안에 누가 있길래, 제사를 지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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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 안 망자의 이름은 장성희. 사망 당시 나이는 서른 두 살, 여성이야. 병원 직원과 성희 씨가 아는 사이였던 걸까? 아니, 두 사람은 완전히 남남, 전혀 모르는 사이야. 그런데도 남자는, 매년 잊지 않고 성희 씨의 제사를 지내왔대.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이나. 성희 씨가 사망한 건 2002년, 10년 전의 일이야. 남자는 차가운 냉동고 안에 갇혀있는 성희 씨가 너무 가여웠대.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제사를 무려 10년 동안 지내줬다는 거야.

그러다보니 병원 내에선 이 얘기가 늘 화제의 중심이야. "그 시신, 아직도 냉동고에 있다면서?", "올해는 장례를 치러야할 텐데"라는 이야기들이 나와. 그런데, 이 얘기를 우연히 들은 사람이 있어. 인근 병원 직원인 이태세 씨야. 이 소리를 듣고, 태세 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대. 태세 씨는 또 다른 냉동 시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거든.

태세 씨가 일하는 곳은 충주의 한 병원이야. 이곳에도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시신이 있었어.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장성광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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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 씨는 성희 씨보다 더 오랜 시간 냉동고 안에 있었어. 무려 12년이나. 돌아가신지가 오래돼서, 시신은 이미 미라 상태야. 그러다보니, 보관 비용만 약 2억 원이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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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죠. 대한민국에 아마 그렇게 12년 동안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망하게 되면 대개 2박 3일에서 5일? 이 정도 안치실에 있게 되지. 그런 오랜 세월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12년동안 방치가 된 겁니다."
-이태세, 당시 충주 병원 직원

원주 병원에 10년 째 안치된 장성희, 충주 병원에 12년 째 안치된 장성광. 이 두 사람, 이름이 비슷하지? 알고보니 성희 씨와 성광 씨는 남매 사이였어. 두 시신의 보호자도 같은 사람이야.

"원무과 직원들이 (보호자를) 여러 번 만났다 그러더라고요. 만나서 해결 좀 해달라… 어떤 형태로든 이거는 장례를 치러줘야 한다, 이건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다… 수도 없이 연락도 하고 했는데, 그 사람은 장례를 치를 의지가 없더라고요."
-이태세, 당시 충주 병원 직원

남매의 법적 보호자인 아버지가 장례를 거부하니, 병원 측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야. 문제 해결을 위해 태세 씨가 남매의 아버지 장 씨를 찾아 갔어. 장 씨가 살고 있는 곳은, 마을에서도 동떨어진 외딴 산 속이야. 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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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이 딱 닫혀있고 굉장히 넓어요. 그 안 쪽에 30m 정도 되는 거리에 건물이 있는데, 철문 안을 들어와서 보는 자체를 엄청 경계를 하는 걸 느낄 수가 있었어요."
-이태세, 당시 충주 병원 직원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찾아갔지만, 갈 때마다 철문은 굳게 잠겨있어. 전화도, 만나는 것도 다 싫대. 대화 거부야. 하는 수 없이 태세 씨는, 언론에 도움을 요청했어. 바로 여기, SBS 방송국에.

제보를 받은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취재에 나섰어. 제작진이 장 씨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했어. 그러자 장 씨가 흔쾌히 오라고 했어.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해. 며칠 후, 굳게 닫혔던 장 씨의 집 철문이 열렸어.

일흔이 넘은 장 씨가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어. 생각보다 너무 친절해. 그래서 제작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장 씨에게 자녀들의 장례를 왜 안 치르는지 물었어. 그러자 뜻밖의 답변이 돌아와.

"저희 아이들, 너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전 장례를 치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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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는 자신을 '장목사'라고 소개했어. 교회 목사님이냐고? 아니. 정식으로 안수를 받은 게 아니야. '목사'라는 단어에는 다른 뜻이 있어. '내 자녀를 <목>숨 버릴 만큼 <사>랑해서' 장 목사래. 지금부터, 이 장 목사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 사랑의 집의 장목사

1964년 어느날, 장 씨는 우연히 길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구조한 적이 있대.

"무엇이 내 발에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순간 나는 괴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사람이었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앙상하고 처참한 몰골이었다. 목욕을 정성껏 시킨 후, 나는 아이가 사내 아이임을 알았다. 우선 이름을 지어 주어야 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거룩할 성'자에 '민'자를 써서, 장성민이라 부르기로 했다."
-장 씨 자서전 中

한 생명을 구한 이 일은, 장 씨의 인생을 뒤흔든 계기가 됐어. 이때부터 장 씨는, 장애아들을 하나 둘 거두기 시작했어. 세상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장 씨는 지극정성으로 돌봤어.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집의 이름도 지었어. '사랑의 집' 이라고. 사랑의 집은, 장애가 있어 버려진 아이들의 보금자리야. 그렇게 장 씨가 거둔 아이들은, 무려 21명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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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그를 '지적 장애아들을 입양해서 돌보는 천사 아버지'라고 소개해.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우려고 자기 호적에 올리고, 자식은 이 아이들뿐이라며 정관수술까지 했대. 보통 결심이 아니지?

그러다보니 장 씨의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장애아를 힘들게 키우는 가족들이 '이 아이도 키워달라'며 찾아와. 그렇게 식구가 늘어나니, 또 고민이 생겨. 한창 성장기 아이들이 밥을 어찌나 많이 먹는지, 항상 쌀이 모자랐대. 하지만 없는 살림에도 장 씨는 아이들 밥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았어.

그러던 어느날, 장 씨에게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와. 재개발 때문에 장 씨와 아이들이 지내는 사랑의 집이 헐리게 된 거야. 장 씨는 자녀들을 어쩔 수 없이 시립병원, 장애인 시설로 보내야만 했어. 한순간에 자녀들과 생이별을 한 장 씨는, 애타게 자녀들을 찾아다녔어. 그리고 조금 주머니 사정이 좋아질 때마다, 하나 둘 자녀들을 되찾아 왔어. 아무리 힘들어도 장 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

하늘도 감동한 걸까. 형편이 조금 나아져서,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았어. 장 씨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대. 가족이 다시 온전해 지는 것. 재개발 때문에 헤어진 자녀들을 아직 다 데려오지 못했거든.

근데, 장 씨가 두 자녀의 장례를 치르지 않는 이유, 억울하게 떠난 자녀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했잖아? 그래서 장 씨를 찾아간 제작진이 다시 물었어. 자녀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러자 장 씨는 원주 병원에 있는 장성희 씨, 충주 병원에 있는 장성광 씨 모두 의료사고로 사망한 거라 말했어. 병원들이 의료사고를 은폐하고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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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사망한 성희 씨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야. 아픈 성희 씨를 정선껏 간병하는 장 씨의 모습이 담겼어. 성희 씨는 몸이 약해서 종종 병원 신세를 져왔어. 그럴 때마다 장 씨는 아픈 딸을 정성껏 간호했대. 그렇게 겨우 살아나나 싶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선고를 받게 된 거야. 성광 씨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어. 장 씨는 자녀들의 죽음에 병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치료와 수술을 병원 측이 강행했거든. 그 이후 병원과 법적 다툼을 계속해왔대. 장례를 치르지 않는 건, 시신에 남아 있을지 모를 증거보존을 위해서래.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 아버지가, 지금 너무 억울한 일을 겪고 있다… 방송 소재로 아주 제격이지? 그런데, 장 씨를 찾아온 SBS 제작진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어.

▲ 천사 아버지의 비밀

일단 이 '사랑의 집'이라는 공간, 부지는 꽤 넓은데 막상 자녀들이 지내는 움막 같은 공간은 너무 열악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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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형태로 되어있는 '사랑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데, 사실 제일 먼저 느껴졌던 건 '5월인데 왜 방바닥이 차갑지?' 발이 시릴 정도였거든요.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에서 나지 않는 수준의 냄새가 나서 이상하게 느껴졌죠."
-배정훈, 당시 담당PD

제작진이 장 씨와 자녀들이 지내는 '사랑의 집'에 들어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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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녀들의 모습이 좀 이상해. 자녀들 모두 머리는 삭발에,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어. 그리고 양팔에는 장 씨의 연락처와 장애인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어. 이분들이 의사표현을 잘 못한다고 해도, 문신까지 몸에 새길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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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는 "집 하나 사는 게 제일 소원이야. 집 하나 사면 애들 다 데리고 올 수 있잖아"라고 말했어.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진 게 자신의 잘못이라며 "내가 미안하다"라고 자책하고, 눈물까지 훔쳤어.

장 씨가 두 자녀의 죽음이 의료사고라고 주장했잖아? 그래서 제작진이 병원을 찾아갔어. 병원 관계자가 황당해 하며 남매의 병원 기록을 보여줬어. 먼저 장성희 씨는 사망원인이 폐렴이야. 처음엔 욕창 때문에 병원에 실려 왔어. 욕창이 너무 오래 방치돼서 합병증이 왔대. 보호자와 치료를 의논하려 했지만, 연락이 전혀 안 되더래.

동생 성광 씨는, 극심한 영양실조에 장이 막혀 있었어. 보호자도 없이 병원에 혼자 왔더래. 응급수술이 필요했는데, 이번에도 장 씨가 연락을 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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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광 씨가) 얼마나 굶었는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체력이 바닥이 나 있는 상태고 굉장히 마른 상태에서 왔는데. 아버지, 그 분한테 연락을 취했는데 연락도 안 되고 오지도 않으니까.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할 것 같으니까 바로 응급수술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태세, 당시 충주 병원 직원

하지만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성광 씨는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어. 장 씨는 그제야 연락이 닿았어. 그리고, 보호자 동의도 없이 수술을 했다고, 의료사고를 주장하며 돈을 요구해 왔어.

욕창은, 병으로 오랜 시간 누워 지내는 환자의 피부에 생기는 괴사나 궤양이야. 이런 환자는 자주 자세를 바꿔주면서 돌봐야 하는데, 방치가 의심되는 상황이지. 그리고 영양실조로 병원에 왔대. 애초에 장 씨가 자녀들은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그런데 병원의 연락을 받지도 않더니, 뒤늦게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거야. 어이가 없지. 장 씨가 하도 난리를 피우니까, 병원 측은 무료로 장례를 치러주겠다고도 했어. 그런데 장 씨는 그걸 거부했대. 그렇게 10년이 넘게 흐른 거야.

그럼 장 씨는 왜 이러는 걸까? 정말 시신에 남은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서일까? 지금부터, 장 씨와 '사랑의 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알려줄게.

▲ 천사의 탈을 쓴 악마

장 씨가 입양한 자녀는, 총 21명. 그 중 집에 있던 4명과, 병원에 있는 사망한 2명은 확인이 됐어. 그럼 나머지 15명은 어디에 있을까? 재개발로 집이 헐렸을 때 자녀들을 다른 시설로 보냈다고 했지? 그래서 제작진은 장 씨가 알려준 그 시설들에 확인을 해 봤어.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없대. 애초에 그런 사람 자체가 이 시설들에 존재하지 않았대. 그렇다면 21명의 아이들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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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본, 장 씨와 자녀들의 사진을 다시 한 번 볼게. 자세히 보면, 사진 속 인물마다 밝기가 다 달라. 전문가에 의뢰해보니, 합성이래. 이 사진은 가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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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상한 게 있어. 장 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21명의 자녀 이름이 올라와 있어. 알아보니, '장상일' 이라는 인물은 '장명훈'이자, '장상만'이야. 세 사람이 동일인물인 거야. 이중 삼중으로 출생신고를 한 거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장 씨가 다중으로 출생 신고를 한 이유는 돈 때문이야. 장 씨는 장상만 앞으로, 서울의 한 지역에서 장애연금을 받았어. 그리고 원주에서는 장명훈 이라는 이름으로 수당을 받은 거야. 같은 사람이 다른 두 지역에서 지원을 받았다면, 부정수급이지. 그리고 사망한 성희 씨의 경우, 사망하고 나서도 2년 간 수급을 받은 것으로 추정돼. 근데 이런 부정 수급은, 빙산의 일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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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말로는 생활비도 들 이유가 없었대요. 딱 맛을 본 거예요. 이 매스컴이란 위력에 대해서. 거기서 후원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여행용 가방으로 달러를 하나씩 가득 채워서 장 씨가 가지고 나갔다고 그 소리를 했을 때는…"

-장 씨에 관한 제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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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는 '천사 아버지'란 이름으로 방송에 출연한 후, 엄청난 후원금을 받았어. 그 기간이 무려, 40년이야. 그렇게 넉넉해진 형편에도 장 씨는 방송에 출연해 도움을 호소했어. 그럼 이렇게 모은 돈을, 과연 아픈 자녀들을 위해 썼을까?

의심이 짙어지던 바로 그 때, 한 시설 측에서 사라진 장 씨의 자녀 중 한 명을 찾았다고 연락을 해왔어.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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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다 벗겨요. 옷 같은 건 누가 올 때만 입혀. 남자애를 욕조에다가 물고문…그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장상수(가명), 과거 '사랑의 집' 거주

상수 씨는 장 씨가 입양한 자녀 중 한 명이야. 뇌병변 장애로 몸이 불편하지만, 인지능력엔 문제가 없어. 그러니까 이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장 씨는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대. 자녀들에겐 이름만으로도 두려운 존재였어.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장 씨에게 너무 묻고 싶은 게 많아. 그래서 처음에 제보를 받았던 제작진이 다시 '사랑의 집'을 찾아갔어. 그런데 장 씨의 태도가, 이전과 180도 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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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는 사실 관계를 묻는 제작진을 비난하고 소리치며 112에 강도가 들어왔다고 신고했어. 처음 제작진을 맞았던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지. 어쨌든 장 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어. 그럼 경찰서 상황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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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사진기를 들이밀며 제작진의 얼굴을 찍던 장 씨는, 다짜고짜 경찰 서장실을 찾아갔어. 자신은 억울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돈 3억 원이 그렇게 탐이 나냐고 제작진에게 윽박지르기도 했어. 아이들한테 미안하다며 눈물 짓던 이전 모습과 너무 달라진 장 씨.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어. 그가 전화를 건 곳은, 112. 경찰서에 와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상황이야. 참 황당하지.

▲ 친가족들의 고통

결국, 2012년 6월 8일. 40년간 감춰온 장 씨의 비밀이 방송을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났어. 장 씨의 악행을 보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어. 장 씨에게 자녀를 맡긴 가족들이야. 미순 씨도 그 중 한 명이였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미순 씨에게, 동생 유환이랑 헤어지던 그 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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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에요. 유일한 남동생이었죠. 딸 다섯에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까. 엄청 귀한 아들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 아이가 4살 때인가 5살 때인가, 몸이 많이 뻣뻣해지면서 사지가 뒤틀렸다고 그러나? 그러더라고요. (이모가) 사랑의 집 방송을 한 번 보신 거예요. 그러면서 이모가 (장 씨는)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재활을 해준다는 말에, '몇 년만 맡겨보자'는 생각으로 보내게 된 거죠. 근데 그게 끝이 될 줄은 몰랐어요. '누나 내가 올 때 사탕 사 올게' 그게 마지막 유환이의 말이었어요. 엄마가 파란 포대기에다가 업고 가는데, '누나 내가 꼭 나아서 올게. 사탕 사 올게. 누나 제일 많이 줄게'… 그 말이 마지막 말이었죠."
-김미순, 장 씨에게 아이를 맡긴 가족

이별은 가슴 아팠지만, 가족들은 '재활치료를 해주겠다'는 장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어. 유환이를 맡길 때, 장 씨는 조건을 제시했대. 바로 '면회금지'. 가족들이 면회를 가거나 하면 아이들이 적응 못하고 흔들릴 수 있으니, 가족 입장에선 의심 없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인했어. 그렇게 유환이를 보냈지만, 부모 마음이 편했겠어? 미순 씨 가족들은 장 씨와의 약속을 어기고, 몇 번이고 사랑의 집을 찾아갔대. 하지만, 유환이와 만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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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 씨도 마찬가지야. 32년 전, 장 씨의 명성을 듣고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 광동이를 맡겼어. 그런데 몇 년 뒤, 아들을 찾으러 간 영실 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 사랑의 집이 이미 철거되고 없어진 상태였거든.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찾을 수 없었어. 그리고 세월은 야속하게 흘렀어. 그러던 중에, 장 씨의 소식을 TV로 본 거야.

가족들이 애타게 찾아온 유환이랑 광동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사랑의 집에 있던 네 명 중에 있었을까? 아니, 없어. 이건 두 가지 가능성을 의미해. 행방이 묘연해진 자녀들 중 한 명이거나, 이미 죽었거나.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야. 영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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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첫날 방송을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혹시 병원에 있는 (냉동시신) 애가 우리 애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내가 기르다 죽었으면 그냥 내 가슴에 묻었다고 하고 잊어버릴 텐데. 어디 가서 매맞지 않나, 밥 못 먹고 있지 않나. 그게 걸려서 지금까지도 내가 못 잊고…"
-조영실, 이광동 어머니

방송에 나온 냉동시신이 내 아들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눈물만 흘리셨대. 이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래, 유전자 검사. 사망한 시신의 유전자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대조해 보기로 한 거야.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영실 씨가 병원을 찾았어. 그리고 병원 측은 이런 결과를 들려줬어.

"지금 유전자 시험 성적표를 보니까, 100% 일치를 하네요.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2년 동안 냉동고 안에 있던 장성광 씨는, 영실 씨가 찾던 아들이였어. 본명은 이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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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내 새끼. 네가 왜 여기 누워있어. 엄마 찾아오지…."
-조영실, 故이광동 씨 어머니

광동 씨는 사망한 지 12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았어. 차가운 냉동고 안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긴 세월 엄마가 찾아와 주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냉동고 아들의 시신 앞에서,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

영실 씨가 할 수 있는 건, 이제라도 아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 것 뿐이야. 그런데,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어. 호적상 광동 씨는 아직 장 씨의 아들이야. 장 씨의 허락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거야. 너무 분하지만, 법이 그렇대.

▲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잖아? 장 씨에게 아이들을 맡겼던 엄마들이 뭉쳤어. 다같이 사랑의 집을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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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된 대화 요청에도, 장 씨는 요지부동. 무조건 다 모른대. 자녀들의 생사라도 알기 위해 찾아온 엄마들을 오히려 침입자 취급하며, 또 카메라로 찍어. 현장은 아수라장이야. 장 씨 부부는 소리치고 폭력까지 행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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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 집으로) 들어간 거죠. 들어갔는데 어처구니 없었던 게, (장 씨가) 갑자기 바지를 벗는 거예요. 바지를 벗으면서 고래고래 '이 사람들이 옷 벗긴다'고 이러면서. 팬티바람으로 막 이렇게 저항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그래서 어이가 없었죠."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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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치고 때리고 막 저희 뺨 맞고 이랬거든요. 저희가 엄청 맞았는데 저희는 오히려 정말 손끝 하나 그분들에게 뭔가 하지 않았는데… 우리한테도 이러는데 '몇 십년을 같이 사신 이분들에게 어떻게 대했을까?' 이런 생각이 좀 많이 들기는 했어요."

-김은애,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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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엄마들이 직접 본 사랑의 집은 충격 그 자체였어.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 그런 곳에서 자녀들만 생활했어. 장 씨는? 움막 옆에 번듯한 2층 집에서 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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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사진도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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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의 사진. 한눈에 봐도 큰 부상처럼 보이지. 정상적인 부모라면 병원부터 데리고 갔을 거야.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사진을 먼저 찍는다? 이 사진을 본 엄마들의 마음은 어땠겠어.

장 씨는 이번에도 경찰에 신고를 했어. 그래서 또 다 같이 경찰서에 갔어. 장 씨는 엄마들 앞에서도 아주 당당해. 당신들이 버린 아이를 수십년간 기른 게 바로 자신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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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야. 그저 장례라도 치르게 해달라는 거야. 그런데 장 씨는, 유전자 검사 결과마저 다 가짜래. 그러면서 결과지를 찢어 버려.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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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생을 찾으러 온 미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대. 어린 시절 미순 씨가 동생을 업고 나가면, 항상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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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동생을 업고 나가면 '네 동생 왜 그래?' 그런다든지. '너랑은 못 놀겠다'라든지, 그런 놀림을 자꾸 받아서. 어린 마음에 '유환이가 가면 내가 너무 자유롭고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죠."
-김미순, 김유환 누나

이런 미순 씨에게, '동생을 왜 갖다버렸냐'는 장 씨의 말은 비수처럼 꽂혔어. 그 말에 뭐라고 변명을 할 수가 없었대.

그런데, 이런 생각해본 적 있어? 가난한 집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떤 일일까. 그리고 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회에서 키운다는 건, 또 어떤 일일까. 지금도 힘든데, 과거엔 오죽했겠어? 제대로 된 시설도, 정부의 지원도 미비하던 시절이야. 장애가 있는 아이를, 한 가정이 온전히 책임지기는 버거웠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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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랑의 집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있어. 장 씨가 자녀라고 데리고 있던 네 분. 이 분들을 먼저 구출해야 해. 원주 가정폭력상담소와 장애인 단체가 나서서, 자녀들을 곧장 시설로 옮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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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이후, 자녀분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나' 물었더니, 절대 아니래. 표정도 너무 편안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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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 직후에 건강검진도 진행했는데, 진료를 보던 의료진이 깜짝 놀라. 주민등록상 남자인 분이, 실은 여자인 거야. 장 씨가 이중, 삼중으로 호적에 올린 거. 서류상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제멋대로 자녀들의 성별과 이름을 바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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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돈인 거죠. 고정된 수입이 들어오잖아요. 한 사람에게 몇십만 원의 국가가 보조해 주는 지원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장 씨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은애,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근데 참 이상한 게 있어. 이게 막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장 씨는 무슨 수를 쓴 걸까? 사실 이건 미스터리야. 우리나라 제도가 이렇게 허술한 걸까? 놀랍게도 이 사랑의 집, 행정기관의 조사를 받아 본 적이 없대.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왜냐하면, 정식으로 인가 받은 시설이 아니었으니까. 제도와 관심의 사각지대 안에서, 사랑의 집이라는 곰팡이가 자라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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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난리가 나고, 석달이 흘렀어. 한 장례식장이야. 12년 동안 냉동고 안에 있던, 장성광 씨. 아니, 이광동 씨의 장례식이야. 엄마 영실 씨가 친자확인소송을 걸었거든.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법원이 영실 씨의 손을 들어줬어.

좋은 소식은 또 들려왔어. 장 씨의 악행을 증언해 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거야. 이름은 장상진(가명). 청각장애가 있는 상진 씨는 아홉살 무렵 장 씨에게 보내졌대. 집이 너무 가난해서 여관방을 전전하던 처지였거든. 하지만 1년 후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

상진 씨는 장 씨의 학대를 피해 여러 번 도망갔었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진 씨 몸에 새겨진 문신 때문에 다시 붙잡혀 오기가 일쑤였어. 잡혀온 뒤로는 끔찍한 기억 뿐이야. 장 씨는 도망쳤다고 상진 씨의 손톱을 뽑고, 바늘로 눈을 찌르기도 했대. 온몸엔 아직도 학대의 흔적이 남아있어. 살기 위해 상진 씨는 계속 도망쳤어. 그리고 드디어 완전히 탈출하는데 성공해. 그 뒤로는 계속 숨어 살았대. 또 다시 잡혀갈까봐.

그렇게 24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TV에서 엄마를 보게 된 거야. 장 씨 집에 항의하러 갔던 엄마들 중에 상진 씨의 엄마가 있었던 거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아들은 엄마의 얼굴을 한 눈에 알아봤어.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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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이었던 아들은 마흔 한 살이 되어, 다시 만난 엄마한테 큰절을 올렸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어떻게 잊겠어. 그리워도 꿈에서만 볼 수 있던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이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났어.

상진 씨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엄마들이 모였어. 다른 아이들의 생사를 상진 씨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미순 씨도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왔어. 혹시 유환이가 기억나는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지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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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이는 죽었어요. 토하고, 장 씨가 때려서 몸이 안 좋았어요.

-장상진(가명), 17세에 '사랑의 집'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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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도망 나오신 분 얘기로는, 이미 유환이는 들어온 지 3일 만에… 욕조에서 죽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바늘로 찌르고 우니까요. 근데 우리 유환이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그렇게 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김미순, 김유환 누나

유환이에게 가해진 끔찍한 학대. 그 어린아이가 바늘에 찔리고 물고문을 당한 이유는, 단지 울었기 때문이야.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가족들은 평생 유환이를 그리워하고 기다렸던 거지.

"엄마가 지금 한 곳에서 유환이 보내고 평생을 사시거든요. 애가 엄청 야무지고 똑똑했기 때문에, (엄마는) 혹시 괜찮아지면 찾아올까 싶은 생각이신 것 같더라고요."
-김미순, 김유환 누나

그런데, 상진 씨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줘. 한 명이 아니었다는 거야. 장 씨 집에서 죽어나간 아이들이. 총 6명이래. 그럼 시신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상진 씨 말에 의하면,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땅에 묻었대.

상진 씨의 증언에 따라, 아이들이 매장됐다고 추정되는 곳을 알아냈어. 그런데 재개발로 아파트들이 들어섰어. 그럼 혹시, 공사과정에서 뭔가 발견된 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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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공사를 진행하던 인부들이 일곱 점의 무연고 유해를 발견했어. 이 중에 미순 씨의 동생 유환이가 있었을까? 몰라. 알 수가 없어. 당시 무연고 시신에 대한 공고를 냈지만, 찾는 가족이 없어서 화장했대. 안타깝지만 진실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어.

▲ 끝내 밝혀지지 않은 진실

결국, 검찰이 나섰어. 4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의 집이 행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 거야. 수사결과, 계좌로 확인된 후원금만 5억여원. 현금으로 받은 건? 알 수 없대. 게다가, 국가보조금 1억 9천만원도 살뜰히 챙겼어.

더 중대한 범죄들도 밝혀내야지. 냉동고에 있던 두 명, 그리고 유해로 발굴된 일곱 명. 살인죄, 최소 유기치사죄라도 물어야 해. 하지만 수사가 쉽지 않아. 왜? 너무 오래전 일이라 증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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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사랑의집 앞마당에 뭔가를 태운 흔적이 있어. 그나마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증거들이 다 훼손된 거야. 이대로 진실이 묻혀지는 걸까.

아니, 이번엔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어. 국민들은 집회를 열고, 장 씨에 대한 처벌과 진상조사를 촉구했어.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조사를 시작해. 결국 2012년 12월, 장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 6개월 만이야. 그럼 장 씨는 반성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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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췌장 때문에 죽겠어! 배정훈(담당PD)이 3억 안 준다 그래서! 빨리 빨리 가자고. 아파 죽겠어!"

휠체어를 타고 난데없이 자신이 췌장암에 걸렸다고 주장해. 물론, 자가진단이야. 그런 사실 없대. 장 씨는 결국 감금, 폭행, 횡령, 사체유기,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어. 그럼 형은 얼마나 받았을까?

"피고인을 징역 3년 6월에 처한다."

고작, 3년 6개월이야. 장 씨의 혐의 중 가장 중대한 범죄는, 살인 및 유기치사죄야. 하지만 애초에 기소도 할 수 없었어. 상진 씨의 증언 말고는 증거가 없었으니까. 무연고 시신들은 누구인지, 장 씨의 사라진 자녀들은 어디에 있는지, 진실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어.

그럼 살아남은 자녀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일단, 구출된 네 자녀 중 성별이 바뀌었던 분. 이름을 '성아'로 바꾸고, 새 삶을 꾸려나갈 준비를 해나가던 중,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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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5분 단위로 화장실을 갔거든요. 그래서 밤새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느라고,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고. 계속 혈변을 보기도 하고 그래서.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 라고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나요."

-김은애,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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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워 보이는 성아 씨. 직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 병이 이 정도 진행됐으면, 최소 1년 전부터 혈변이나 설사 등의 증상이 있었을 거래.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텐데. 안타깝지. 결국 2013년 1월 26일에 성아 씨는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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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전해서 같은 차로 장례식장에 내려갔었어요. 나머지 세 분이 상복을 입고 상주 역할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 짠하더라고요. 그 긴 세월은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한명이 떠나게 돼서. 그 모습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 연구소

그럼 장 씨는 그때 뭘 하고 있었을까? 수사와 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심지어 교도소에 있을 때에도 빼놓지 않고 한 일이 있어. 본인이 입양했던, 그 '자녀들'을 찾는 일이었어. '자녀들이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단체를 고소하기도 했어.

그래서 사랑의 집에 있었던 분들은 세상에 나와서도 내내 숨어 지내야만 했어. 성아 씨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제대로 자유를 누려보지 못했어. 장 씨가 불시에 찾아올까봐, 늘 조마조마했거든. 근데 더 끔찍한 건 뭔 줄 알아? 죽어서도, 장 씨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왜냐, 호적상으로는 여전히 장 씨의 자녀였거든.

▲ 사랑의 집, 그 이후

2016년, 장 씨는 출소했어. 출소 후 어떻게 지냈을까? 장 씨의 소식은 의외의 곳에서 전해졌어. 바로 유튜브. 팔순의 나이로 유튜브 세계에 등장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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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온 인류 여러분,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빨리 대통령한테 대한민국 방송국에 신문사에 종교계에, 빨리 연락 좀 해 주세요. 내 자식 만나보게."
-유튜브에 등장한 장 씨

장 씨는 경찰과 시민단체, 언론이 결탁해 자신을 모함했다고 주장했어. 자신은 억울해서, 재심에 헌법소원까지 냈대. 장 씨의 이런 행동들, 가장 두려운 사람들이 누구겠어? 장 씨가 자녀들이라 부르는 그 분들. 자기들을 찾아올까봐 너무 무서워했대.

그런데, 올해 2월. 뜻밖의 소식이 전해져. 장 씨가, 지병으로 사망했어. 그는 죽기 2주 전까지도 집요하게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다녔대.

장 씨가 유튜브랑 재심 청구 등의 활동을 했다고 했잖아? 이 모든 걸 혼자 했을까? 그 일을 돕던 지인들이 아직 남아있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장 씨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본 분들한테 연락을 드려봤어. 그리고 만나도 괜찮다는 의사를 확인했어. 장명훈(가명) 씨와 장민아(가명)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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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명훈(가명) 님은 여러가지 지역사회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면서 지내시고 대인관계도 아주 잘 하시고. 또 민아(가명) 님은 지금 고등학교 과정에 있어요. 특수학교 입학하셔서 그렇게 아주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민선, 장애인 가정상담소

네 자녀분 중 이제 이 두 분만 생존해 있어. 큰형 성민 씨가 2015년 작고하셨거든. 세월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떠난 형제들을 그리워하고 계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 故 장성아 님의 묘를 이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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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그때 당시에 (장 씨에 대한) 재판을 진행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임시로 공동묘지에 매장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11년된 지금에 와서. 저희가 있는 동안에 이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민선, 장애인 가정상담소

이분들에게 '천사'는 장 씨가 아니라, 두려울 때마다 서로를 지켜준 형제자매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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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런 상상을 해보고 싶어. 이 곳은, 먼저 떠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야. 누군가, 성아 씨를 마중 나와 있어. 광동 씨, 성희 씨, 성민 씨, 유환 씨. 그리고 이름 모를 또 다른 형제들. 성아 씨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해. 서로가 서로의 손을 꼭 잡아. 남매들 모두 활짝 웃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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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하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살아있다면 사탕 사서, 아니 그냥 사탕 내가 많이 사줄 테니까 오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김미순, 故김유환 씨 누나

평생을 그리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온 미순 씨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동생 유환이가, 지금은 혼자가 아닐 거라고.

장 씨가 운영한 사랑의 집은 미신고 시설이었어.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인권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진 거지. 문제는, 이런 곳들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는 거야. 왜냐? 제도권 밖에 있으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갖고 있는 무의식의 편견. 마음을 열고 바라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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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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