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0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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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명동의 랜드마크가 한순간 화마에 덮인 이유는?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4.05.03 07:54 수정 2024.05.07 14:29 조회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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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청춘을 노래했던 노래 속에 담긴 안타까운 사연이란?

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마천루를 덮친 화마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라는 부제로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조명했다.

1971년 12월 25일 오전 10시. 명동 중부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소방서에서 불과 700미터 떨어진 대연각 호텔.

그리고 소방관들은 도착한 현장을 보고 충격으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21층짜리 초고층 빌딩인 대연각 호텔이 성냥갑 마냥 활활 타고 있었던 것.

명동의 랜드마크로 불리던 대연각 호텔은 하루 숙박비가 당시 공무원의 월급과 맞먹는 수준으로 서민들에게는 그저 꿈의 공간 같던 곳이었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상상 이상의 화재 규모에 어떤 구조 활동도 섣불리 하지 못하던 그때 호텔 7층과 연결된 중간 옥상에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들은 복도 끝과 연결된 야외 옥상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최신식 고가 사다리차를 가지고 있던 중부소방서는 사다리를 통해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조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때 소방관들의 머리 위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또다시 펼쳐졌다.

1000도가 넘는 열기와 유독 가스를 견디지 못한 고층의 투숙객들이 침대 매트리스와 이불 등을 끌어안고 지상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가 사다리차의 최대 높이가 32미터로 7층까지 밖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던 것.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추락과 동시에 사망했고, 이를 보던 소방관들은 눈물을 머금고 다른 이들의 구조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때 군 헬기가 구조 활동에 합류했다. 헬기 조종사는 옥상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 헬기의 로프를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서 로프는 사정없이 흔들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밧줄 끝을 잡았다.

엘리베이터 수리공이 이를 붙잡은 것. 그리고 그는 기적같이 밧줄을 붙잡고 옆 건물까지 무사히 이동했다. 또한 이를 보던 시민들은 밧줄에 구조용 줄사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6명이 추가로 구조되었다. 그러나 기적은 이것이 끝이었다.
이어 로프를 잡고 구조를 기다리던 이들이 밧줄을 놓치거나 밧줄에서 손이 미끄러지며 추락하고 말았던 것.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더 이상 로프를 잡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가장 먼저 구조된 엘리베이터 수리공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했다.

화재가 시작된 지 3시간째. 여전히 불길을 잡히지 않은 그때 11층 창가에 담요를 뒤집어쓴 한 노신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를 구조하기 위한 여러 구조 방법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소방관들이 직접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가 있던 방으로 향했다.

종이박스로 열기를 막으며 노신사가 있던 방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들은 욕조 안에서 물을 틀어놓고 이불을 덮어쓰고 있던 노신사를 발견했다. 주한 자유중국 공사 여선영 씨는 일 년 전 한국에 부임해 해당 객실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화마 속에서 7시간을 버틴 그는 무사히 구조되었고,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었다.

완전히 불길이 잡힌 호텔 내부로 들어가는 소방관들은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현장을 마주했다. 옥상으로 가는 문 앞에는 무려 23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옥상의 문이 자물쇠로 잠겨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호텔 안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얼굴이나 신체 일부가 없는 시신이 즐비했다. 그리고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훼손된 시신을 직접 보며 자신의 가족을 찾아야만 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인지 어른인지도 분간이 안 됐던 당시 유족들이 가족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1층의 프로판 가스통의 폭발이 원인이었던 이 사건. 낡은 가스통을 방치한 채 내압 검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무려 4년간 방치했던 호텔. 특히 호텔 내부에는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이 가득해 화재의 규모를 키웠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설치가 의무였던 방화문도 비용 절감의 이유로 설치되지 않았던 것.

이에 대연각 호텔 사장과 시공무원들이 소환되었다. 관계자들은 호텔 사장과 결탁해 준공 검사서를 허위로 작성했던 것이다. 참사 44일 만에 고혈압이라며 들 것에 실려 공판에 참석한 호텔 사장. 그는 공판을 5분 만에 끝내고 피해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특실에 다시 입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려진 결론, 재판부는 사장에게 책임을 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말도 안 되는 판결에 유족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열흘 만에 기도에 남은 심한 화상으로 결국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사건 발생 6년 후 MBC 대학 가요제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출연자가 등장했다.

당시 공짜 숙박권이 생겼다며 행복하게 호텔로 향했던 서울대학생 희준과 병무는 호텔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유품을 정리하던 병무의 동생과 친구들이 악보를 하나 발견했는데 이 곡은 바로 서울대 트리오가 불렀던 '젊은 연인들'이었던 것이다. 병무와 희준이 만들었던 곡은 그렇게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 친구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거대한 사건 전 무수한 전조 증상들이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 아마 대연각 호텔 사건은 이후 벌어진 거대한 사건들의 무수한 경고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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