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9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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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쪽지로 죽인 이유라도 알려달라"…'개구리 소년' 유가족의 처절한 외침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1.12 11:41 수정 2024.01.12 13:10 조회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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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아직 끝나지 않았다-1991 개구리 소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장혁진, 슈퍼주니어 신동, 스테이씨 시은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의문의 전단지

때는 1991년 여름, 인천 월미도. 지금은 월미도가 놀이동산처럼 잘 꾸며져 있지만, 당시 월미도에는 놀이동산이 아닌 문화의 거리가 있었어. 그리고 이곳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 남자가 있어. 남자의 정체는 각설이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장단을 뽑아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그날따라 이 각설이의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어.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남자 몇 명이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나눠주고 있어. 그 종이를 받은 한 여성이 몇 걸음 걷더니, 좀 전에 받은 종이로 자기 신발에 묻은 껌을 떼고는 바닥에 툭 버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가던 길을 갔어. 각설이는 이 광경이 눈에 밟혔어. 그래서 종이를 나눠주는 그 남자들에게 향했어. 그리고 자기도 그거 한 장 달라고 했어. 각설이가 받은 종이를 유심히 살펴본 후, 다시 그들에게 가서 "한 오백장 정도 달라"고 말했어. 왜 각설이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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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껌을 많이 뱉고 다녔잖아요. 껌을 많이 씹고 그 시절에는. 그러다 보니까 하이힐에 붙어서 껌이 찍 늘어나고 찐득거리니까 그걸 전단지로 닦아서 버리는 그런 모습을 봤죠. 저희가 테이프를 파는 게 주로 시장통, 그리고 5일장, 그런데를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죠. 저는 전국으로 다니는 직업이니까, 이렇게 전단지를 나눠주면 저분들한테 좀 도움을 주지 않을까..."
-나주봉, 당시 월미도 각설이

전국을 다니는 직업 특성을 활용해 그 남자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는 거야. 대체 그 종이가 뭐길래, 왜 각설이가 도움을 주려 한 걸까? 바로 이 전단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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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실종됐던 다섯 명의 소년. 우리가 '개구리 소년'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아이들이야. 월미도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남자들은 개구리 소년의 아버지들이었어. 대구에서 실종된 아이들을 300km나 떨어진 인천까지 와서 찾고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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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찾아 헤맨 수많은 시간들. 그리고 말로 할 수 없는 슬픔, 원망, 절망. 2024년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33년 간의 이야기를, 오늘 들려줄 거야.

▲ 그날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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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은 다섯 아이 중 가장 맏형인 철원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어. 철원이 아버지는 지금도 철원이의 모습이 눈이 선해. 노을이 내린 골목길에 들어서면,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던 철원이가 힘껏 뛰어와 아버지한테 확 안겨. 이렇게 아들이 품에 파고들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살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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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야. 아들 둘 가운데 막내였던 철원이는, 집안의 비타민 같은 아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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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철원이가 골목길에 있다가 '아빠~' 하고 뛰어와 끌어안으면서 '아버지, 돈 100원만' 이라 하던 그런 생각이 나곤 합니다. 철원이가 스케이트 타러 가자고 많이 했습니다. 자기 형하고 같이 저하고 셋이서 즐겁게 스케이트 타는 그런 모습도 있고. 여름이면 해수욕장 가는 거. 홀딱 벗고 뛰어노는 거 그런 걸 좋아했습니다. 딸 같은 아이였습니다. 애교도 많고 재롱도 많이 부리고요. '원아~ 원아~' 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원이 어디 가나?' 이렇게요."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철원이는 딸 같은 아들이었어. 그리고 또 다른 아이, 호연이도 그런 아들이었대. 초등학교 5학년인 호연이도, 역시 아들 둘 중 애교 담당이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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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나갔다 들어오면 애교 부리고 그런 기억이 납니다. 큰 애는 애교도 없고 무뚝뚝했고. 호연이는 집에 오면 막 달려들어서 애교 부리고 그랬습니다."
-조남환, 조호연 군 아버지

1991년 3월 26일 오전 8시경. 호연이네 마당에 아이들이 모였어. 호연이를 비롯해 철원이, 종식이, 영규, 찬인이까지 다섯 명이야. 평소에도 이 다섯 아이들은 호연이네 마당에서 자주 놀았어. 6학년부터 3학년까지 나이 차이는 있지만, 매일 붙어 다니는 형제 같은 사이였어. 26일은 평일 화요일이었는데, 왜 학교에 안 갔을까? 이날은 30년 만에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일이었어. 임시공휴일이었던 거지.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그때, 같이 사는 옆방 청년이 나가 놀라고 한 소리를 했어.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우르르 밖으로 향했고, 그중 몇 명은 집으로 향했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던 철원이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철원이를 봤어. 철원이는 집에 와서 벽에 걸린 점퍼를 챙기더래. 잠시 후 투표하러 가는 곳에 같이 가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철원이는 다시 친구들과 놀러 밖에 나갔어.

그렇게 외투를 챙겨 입고 다시 모인 아이들. 아이들이 향한 곳은 뒷산, 와룡산이야. 와룡산은 해발고도 300미터 정도,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야. 그리고 주위에 저수지들이 몇 개 있어. 아이들이 산에 간 걸 어떻게 알았냐고? 바로 목격자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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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있는데 그쯤에서 만났거든요. 만나서 제가, 좀 기다리고 있으니까 애들이 모여서 오길래 자전거 타고 그냥 애들한테 갔는데요…."
-조호연 군 형

"큰애 때문에 거기로 간 걸 알았습니다. 산 입구에 동네가 있었습니다. 동네 거기서 애들하고 헤어졌어요. '빨리 갔다 오너라' 하고 큰애는 자전거 타고 돌아왔고요."
-조남환, 조호연 군 아버지

호연이 형이 목격한 거야. 와룡산 아래 슈퍼 앞에서 우유통과 막대기를 든 아이들을 본 거야. 그리고 목격자는 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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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에 도롱뇽 알 잡으러 간다고 하고 그러길래, 저도 여기까지 왔다가 산에 올라가는 걸 갈까 안 갈까 망설이다 집으로 갔어요. 그냥 운동장 쪽으로 해서 계단 위로 계속 가던데요."
-같은 학교 친구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와룡산 쪽으로 향한 건 맞는 거 같아. 근데 '도롱뇽 알'을 잡으러 갔대. 우리는 이 아이들을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가 실종됐다고 해서 '개구리 소년'이라 불렀잖아? 근데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채집하러 갔다는 거야. 그럼 왜 '개구리 소년'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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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은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이나 체형은 파충류인 도마뱀과 유사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도롱뇽 알'이란 용어 사용 시, 어린아이들이 공포를 느낄까 봐 '개구리'로 보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도롱뇽이란 게 낯서니까. '개구리 소년'으로 알려진 이 아이들은 당시 와룡산에서 발견되던 도롱뇽 알을 구하려 집을 나선 것으로 보여.

아이들이 간 루트는, 동네를 나와서 학교 쪽으로 갔다가, 저수지를 지나서 불미골 쪽으로 해서 와룡산으로 간 것으로 추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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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향하고 얼마 뒤,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낀 한 사람이 있어. 갑자기 엄청난 가슴 통증과 함께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을 느꼈다는 거야. 바로 종식이 어머니였어. 종식이는 9살로, 다섯 아이들 중 막내야. 종식이 어머니는 어떤 걸 느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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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이) '삼촌, 굉장히 불안하다 갑자기.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르겠다' 감이 그날 그렇게 안 좋더랍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김병규, 김종식 군 막내 삼촌

종식이 어머니가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오전 11시쯤이었어. 환한 낮, 아이들이 한참 뛰어놀 시간이야. 그런데 불현듯 불안감을 느낀 거야. 그런데 그 시절에 핸드폰이 어디 있어. 어머니는 그냥 무작정 종식이를 찾아 나섰어. 동네 여기저기를 찾아보는데, 종식이가 안 보여. 다른 집들도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점점 걱정이 되는 거야. 그렇게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다섯 아이들은 모두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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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이제 해가 빠졌는데 안 오니까. 대번에 어떤 뭐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가 빠지기 전에 집에 들어오는 애들인데. 안 오니까 '이거 뭔가 잘못됐다' 막 머리가 복잡해요 그때부터요."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 연기처럼 사라진 아이들

그날 저녁 부모님들은 파출소로 뛰어가. 맨발로 뛰어간 부모님도 계셔.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사라진 실종 신고야. 당시 경찰은,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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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 '기다려 봅시다', '애 다섯이 나갔는데, 집에 들어오지 왜 안 들어오겠어요'"

-김병규, 김종식 군 막내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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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거라고. 다른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기만 하는 거죠."

-조남환, 조호연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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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끼리 야생마처럼 돌아다니다가 온다, 두고 봐라.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부모님들은 절대 이 말을 수긍할 수가 없었대. 아직도 안 돌아올 아이들이 아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 확신했어. 그리고 그날 낮에는 예정된 일정도 있었어. 아이들이 태권도 도장을 다녔는데, 임시공휴일인 이날도 태권도 수업은 있었다는 거야. 아이들의 학원 결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일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태권도 수업을 너무 좋아했기에 빠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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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선거일이고 해서 하루 쉰다' 하니까 애들이 '내일도 해요'. 그럼 하고 싶은 애들 손들어봐라 하니까 영규, 철원이 그쪽 애들이 다 손들고. '내일도 운동하자' 이러니까 좋다고 펄펄 뛰었죠. 그 전날."
-김명기, 태권도 관장

하지만 아이들은 그날 도장에 나타나지 않았어. 여러 가지 정황이 이상해. 경찰이 돌아올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해도 부모님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아이들이 올라간 방향 부근 불미골도 찾아봐. 작은 흔적이라도 있을까 구석구석 손전등을 비추며 정신없이 뛰어다녔어.

"전화받고 나온 게 한 7시쯤 됐지 싶은데, 와룡산을 밤새도록 헤맸다니까요. 찾아다녔어요."
-김재규, 김종식 군 둘째 삼촌

"자식 잃고 찾으러 안 다니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밤새도록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산에 찾으러 다녔습니다."
-조남환, 조호연 군 아버지

그렇게 자정이 다 되도록, 동네부터 불미골까지 싹 다 뒤졌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어. 1991년 3월 26일, 다섯 아이들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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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아이가 실종됐어. 상상조차 힘겨운 일이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부모님들은, 다음날도 새벽부터 아이들을 찾아다녔어. 이곳저곳을 다니며 목이 터져라 아이 이름을 불렀어.

▲ 이름 모를 발신자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들은 속이 타들어가. 그런데 아이들이 사라지고 며칠 뒤,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말에 숨이 턱 막혀. "애들을 데리고 있으니 400만원을 준비해서 대구역 철길에 갖다 두라"는 협박 전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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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협박을 하더라고요. 돈 내놓으라고. 자기가 애들을 데리고 있는데 돈 400만원 준비하라, 이런 식으로요."
-김철규, 김종식 군 아버지

이 전화는 종식이의 외갓집으로 온 전화였어. 종식이 외갓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종식이가 알려줬을까? 부모님들도 종식이한테 알아냈을 거라 생각했어. 심각한 상황이지만, 부모님은 한 편으로 희망을 가졌어. 이 놈만 잡으면 아이들을 찾을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

대구역 어두운 선로. 경찰들이 여기저기 잠복에 들어갔어. 부모님들도 근처에서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어.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어두운 선로에는 조용한 적막만 흘러.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거야. 희망에 부풀었던 부모님은 고개를 떨구고 집으로 돌아왔어.

전화를 건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유괴범일까? 그건 알 수가 없어. 이 유괴범이란 사람의 전화가 더 이상 오지 않았거든. 근데 이 전화뿐만이 아니야.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엄청나게 많은 전화들이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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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원만 요구합니다. 꼭 갖고 오셔야 돼요."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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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뭔데?) 김종식. (장난 전화 하면 안 돼 알았지?) 되는데예"
장난전화까지.

이런 장난 전화와 허위 제보로 전화통에 불이 나는 거야. 심지어 '범인은 누구다'라고 말하는 전화도 있었어. 경찰이 확인해 보니, 자신에게 돈 빌리고 도망간 사람을 찾으려고, 채무자를 유괴범으로 허위 제보한 거였어. 이참에 경찰을 통해 찾으려는 심보로.

그러던 어느 날,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전화가 와. 종식이 집에 걸려온 전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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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엄마~"
"니 종식이가?"
"응"

그러고 끊었어. 종식이 엄마는 이 목소리가 종식이 같았대. 실종되기 전에 종식이 노래를 녹음한 게 있는데, 그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렸거든. 이 전화 목소리를 전문가가 성문 분석을 해봤는데, '판단 불가'야. 유사성은 있으나, 단서가 너무 짧아서 확인이 어렵다는 거야.

이렇게 쏟아지는 제보들에 시달리기 한 달째.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해. "애들이 가출한 거래", "제일 큰 애가 동생들 데리고 나갔다던데?"라며, 다섯 아이 중 가장 큰 아이였던 6학년 철원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집단 가출을 했다는 이야기가 퍼진 거야. 부모님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문이지. 한 번은 철원이 어머니가 그 당사자인 줄 모르고, 면전에 대고 이 이야기를 한 사람도 있었어. 그 얘기를 들은 철원이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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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제일 큰 애 엄마입니다. 우리 철원이 절대 그런 애 아닙니다. 애들 끌고 가출할 애 아니에요. 착한 아이예요 우리 철원이…"

욕을 하고 악다구니를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대.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조용히 항변할 수밖에 없었대. 아이들이 실종된 이후, 부모님들은 죄인이고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야.

▲ 도로 위의 아버지들

경찰의 수색도 이뤄졌어. 만화방, 오락실, 빈집, 농수로, 500개가 넘는 맨홀, 화장실 정화조까지 수색했어. 특히 와룡산은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졌어. 와룡산 주변 저수지에는 잠수부가 투입됐고, 와룡산 상공으로는 헬기 수색도 진행됐어. 당시 와룡산 나무들이 키가 작고 숲이 우거지지 않은 상태라, 위에서 보면 아래가 잘 보였대.

"형님한테 물어봤어요. 헬기 타니까 잘 보이던가요 물으니까, 밑에 다 보이더래요."
-김종식 군 막내 삼촌
"담뱃갑 껍질이 바람에 펄럭이는 거까지 다 보이더래요. 낮게 날아 돌아다니니까요."
-우철원 군 아버지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어.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아이들에 대한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자, 부모님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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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같은 존재가 없어졌으니까. 우리는 우리 자력으로, 우리 아이들을 찾고 싶다. 제보가 오면 자다가도 어디로든 간다."

-우철원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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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우린 자식 찾겠다고 돌아다녔죠. 다섯 부모들이 다 그랬습니다. 생업을 다..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자식만 찾겠다고 돌아다녔죠."

-조호연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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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그만두고 트럭을 한 대 구했어. 전단지와 아이들 사진을 크게 뽑고, 꼼꼼히 코팅해. 우리 아이들 얼굴이 비에 젖으면 안 되니까. 이 트럭을 타고 아버지들이 전국을 다니기 시작한 거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역전, 백화점, 터미널, 가리지 않고 차를 세워. 우리 아이들 꼭 좀 찾아달라고, 제보해 달라고 부탁하며 전단지를 나눠줬어.

사람들은 전단지를 잘 받아주기도 하지만, 아까 처음에 말한 것처럼, 전단지로 신발에 붙은 껌을 떼어 버리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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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전단지를 주면은 돌아다니다가 구겨서 던지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곳은 주면은 이걸로 쓰레기를 싸서 버리는 것도 있고, 그냥 뭉텅이로 버려진 데도 있고요. 속상한 일이 많았죠."
-우철원 군 아버지

어떤 날은 이런 일도 있었어. 트럭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보니까 뒤에서 택시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쫓아오는 거야. 그리고 창문 밖으로 트럭을 세우라고 손짓해. 급하게 갓길에 트럭을 세웠어. 그러자 택시기사도 따라서 차를 세우더니, 트럭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리고 뭔가를 쓱 내밀었어. 만 원짜리 다섯 장, 돈이었어.

"얼마 안 되지만, 이걸로 어디 가서 뜨끈하게 식사라도 하세요. 힘내십시오!"

고생한다면서 그 마음 알 거 같다고 손을 잡아 주시는 분. 그런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어.

그리고 아버님들이 특히 고마워하는 사람이 한 분 있어. 거리로 나선 아버지들과 동행해 준 사람. 바로 처음에 말한 월미도 각설이 나주봉 씨야. 각설이 공연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면, 아버지들은 전단지를 나눠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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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당시에 세 살짜리 아들이 있었거든요. 그 당시엔 '산아 제한'으로 인해서 대부분 아이들이 많은 집이라고 해봐야 두 명, 한 명 이랬거든요. 그 아이들 중의 하나를 잃어버렸으니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나도 저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손을 댔으니까 이 일을 끝까지 한 번 해보자…"
-나주봉, 당시 월미도 각설이

그렇게 서로를 의지한 채 전국을 누빈 아버지들의 트럭. 한편으론, 집에 있는 가족도 너무 걱정이야. 어머니들이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리고는 있지만, 그것조차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집에 오는 제보 전화를 받아야 하니까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할 형편이 안 되는 거야. 전화기 앞을 떠날 수가 없으니까.

아버지들이 전국을 돌 때 특히 많이 들어온 제보가 있어. 90년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앵벌이' 소년들. 어느 역에서 앵벌이 소년들을 봤는데 개구리 소년들 같다는 제보, 어느 버스 터미널에서 신문을 파는 아이들을 봤다는 제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버지들은 무조건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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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앵벌이'라고 하는게 많았습니다. 시장통에서 다리 묶고 질질 끌고 다니면서 동냥하는 거요. 사람들 말이 멀쩡한 애들을 잡아다가 그렇게 만든대요. 다리에 고무줄 칭칭 감아서 놔두면 안 펴진대요. 그런 이야기까지 쫓아 돌아다녔거든요. 안 나타나니까… 그런 소릴 듣고 안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요만한 거라도 누가 제보를 주면은 갑니다. 우리가 자다가도 가요."
-우철원 군 아버지

거의 일상이 됐는데도,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날은,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들기가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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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온다카이~' 하면서 사투리를 쓰면서 숙소에 들어와서는 물을 따라서 먹는 게 이제 수면제예요. 이걸 안 먹으면 잠이 안 온대. 처음에는 한 알, 두 알 이렇게 드셨는데 나중에 어느 날 보니까 세 개, 네 개씩 먹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커튼 사이로 햇볕이 들어왔는데, 얼굴이 파란색으로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어요. 잠을 제대로 마음 편하게 이루질 못했죠."
-나주봉, 동행한 각설이

하지만 부모님들은 당시에 대해 '물론 너무 허탈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때, 그건 고통이 아닌 희망이었다'라고 말하셔. 계속 잘못된 제보가 왔지만, 그조차 관심이라고 생각하신 거야.

▲ 국가적 사건의 아이러니

지금도 '개구리 소년'이라 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많잖아? 당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점차 관심이 커지면서 국가적인 사건이 돼.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이 '대구 개구리 소년 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고, 여러 기업들이 전단지 제작을 도왔어. 담뱃갑, 공중전화 카드, 어린이 만화 등 생활용품 곳곳에 아이들 사진이 인쇄됐어. 게다가 유례없이, 개구리 소년에 대한 광고, 노래, 영화까지 나왔어.

어떤 날은, 한 무속인이 아이들이 있는 장소를 안다고 연락이 왔어. 아버지들은 이 무속인과 함께 급히 전남 무주로 향했어. 근데 가는 도중에 무속인이 갑자기 앞을 가리키며 말하더래. 애들이 저기 있다고. 무속인이 가리킨 곳은 쓰레기차야. 쓰레기차 속에 아이들이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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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은 온갖 쓰레기를 꺼내고 썩은 음식물을 헤치면서 그 쓰레기차를 뒤졌어.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 근데 사실,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무속인의 말을 믿지 않았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 아이들이 어디 있는 줄 안다고 연락 온 무속인들. 족히 200~300명은 될 거래. 각양각색 사람들이 엄청나게 찾아오는 거야. 참 아이러니한게,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는 많이 알려야 하는데, 많이 알려지니 별의별 일이 다 있는 거야. 부모 입장에선 이런 사람들을 무시할 수도 없어. 아이에 관한 건 믿든 안 믿든 무조건 확인해야 하는 거지.

한 번, 두 번, 열 번, 수십 번, 허탕을 치는 횟수가 늘어만 가. 가끔 아버지들이 너무 힘이 들어 술 한 잔 하는 날은, 아주 구석지고 으슥한 곳을 찾으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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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좋아서 술 먹는다고… 흉을 볼까 봐, 그래서 사람들 안 보는 가게에서 사서 우리들끼리 먹고. 남 앞에서는 웃지도 못했습니다. '자식 잃고 뭐가 좋아서 저리 웃어'라고 하니까. 아이를 잃어버린 게 죄입니다."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아이들이 사라진 봄이 지나고, 더운 여름, 추운 겨울, 시간은 쉼없이 흘러갔어. 그렇게 실종 3년째가 되던 해. 거리를 돌던 아버지들은 결심을 해야 했어. 그리고 수사본부에 모여 이렇게 말했어.

"그동안 생업도 포기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들을 찾는데 한계를 느낀 데다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워 이제 직접 찾는 일을 포기합니다. 이제 아이들을 찾는 일은 국가기관과 기적에 맡기겠습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들이 눈물의 포기선언을 한 거야. 무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국을 3바퀴는 돌았어.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가정이 버틸 수가 없는 거지. 경찰이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아버지들은 가정으로 돌아갔어. 그럼, 다시 모인 가족들의 생활은 어땠을까?

"네모 반듯한 상에 넷이 마주 앉아서 '오늘 뭐 했냐' 묻고 '뭐 하고 놀았다'고 하고.. 이렇게 얘기하면서 밥 먹고 이랬는데요. 어느 날 한 자리가 빈단 말입니다. 나 혼자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아내도 가만히 있고, 큰아들도 그러고 있어요. 가족끼리도 대화가 없었어요. 말 잘 못하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이렇게 되거든요 결국은.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이잖아!' 한 명이 잘못되는 바람에 온 집안이 다 벙어리가 된 거죠."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아이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어. 풍족하진 않았지만 즐겁고 따뜻했던 가정이 부서졌어.

▲ 범인을 알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이 실종된 지 5년이 흘러.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나. 범인을 안다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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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야. 미국에서 이 사건을 접했고, 몇 년에 걸쳐 이 사건을 혼자 조사했다는 거야. 그리고 범인이 누군지,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대. 이 심리학자가 주장한 범인은 바로 이 사람, 종식이 아버지 김철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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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식이네 집으로 돈 400만원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고 종식이 부모가 얘기했습니다. 과연 아홉 살 종식이가 외갓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겠는가. 가족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유도하기 위한 조작이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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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저희 형님이라고... '동생아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한다 교수가' 해서 '뭐 어째서 그렇다고 합니까' 물으니까, '집에 아이들이 묻혀있을 수 있다'고…"
-김재규, 김종식 군 막내 삼촌

"김철규 씨 집에 아이들이 묻혀있다… 엉터리 박사도 그런 엉터리 박사가 어디 있어요. 우리가 맨날 같이 어울려 지냈는데 언제 땅 파고 아이들을 묻는다는 말입니까."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심리학자는 꾸준히 종식이 아버지를 의심했고, 경찰에도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어. 그래서 결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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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어린이 가운데 한 명인 김종식 군의 집입니다. 지난 91년 3월 실종된 어린이 다섯 명이 모두 이곳에서 살해돼 암매장됐다는 주장에 따라, 취재진과 주민 5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인부 10여 명과 전기 드릴을 비롯한 굴삭 장비를 동원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뉴스 내용 중

"'부엌에 묻혀 있다' 해서 부엌도 다 파 뒤집었어요. 자기들 원하는 대로. 형님은 스트레스가 말도 못 하죠. 얼굴 표정부터가… 그 교수를 진짜 어떻게 해야겠냐고 하면서. 쓸데없는 짓 한다…"
-김재규, 김종식 군 막내 삼촌

온 집을 다 파헤쳐서 난리통 속, 화장실 오물을 퍼내는데 뭔가가 나와. 아이 신발이야.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종식이 아버지로 향해. 종식이 아버지는 그냥 묵묵히 이 상황을 지켜봤어. 하지만 더 이상 나온 건 없었어.

"뭐 더.. 무슨 할 말이 없죠. 파봐서 안 나오는데 어떡합니까?"
-심리학자 A씨

심리학자는 도망가듯 현장을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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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찾는다고 3년 동안 울먹울먹 하며 다닌 게 지금 뭐… 명예가 다 먹칠 돼버렸잖아요. 왜 마음 잡고 사는 사람을 자꾸 괴롭히려고 합니까."
-김철규, 종식 군 아버지

아이가 없어진 지 5년. 생사조차 모르는데, 부모님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이 박혔어. 그 황당한 주장을 한 심리학자는 나중에 벌금형을 받았대.

암매장 소동 몇 년 후, 종식이 아버지와 가족들이 집안 제사로 모인 날. 근데 종식이 아버지의 형이 보기에, 종식이 아버지가 좀 이상한 거야. 배가 너무 볼록해. 형이 동생의 배를 만져보는데, 뭔가 딱딱한 느낌이야. 이상하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 그리고 얼마 후, 종식이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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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 있다가 나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대수롭지 않게 '형님, 내가 간암이라는데요' 이러는 거예요."
-김병규, 종식 군 둘째 삼촌

건장한 체격에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던 종식이 아버지. 술, 담배도 거의 하지 않으셨대. 하지만 이 모든 게 변해버렸어. 아이가 사라진 후, 제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술을 마셨다는 거야. 그렇게 아이가 실종된 지 10년이 지난 2001년 10월. 종식이 아버지는 40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어.

▲ 이별과 만남

그런데 종식이 아버지가 떠나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2002년 9월 26일.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 아니 어쩌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소식이 부모님들께 전해져. 아이들을 찾은 것 같다는 소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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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해골' 같은 게 하나 있는데 '아저씨 저거 확인 한 번 해보겠어요?' 말하더라고요."

-최초 신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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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도토리를 주우려고 하다가 이렇게 보니까 뼈다귀 같은 게 있고 옷도 보이고 해서 당기니까 유골이 나온 거죠. 그래서 옆에 또 보니까 유골이 또 있고. 그래서 신고가 된 거죠."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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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확인을 위해 현장에 모인 가족들. 흙바닥에 놓인 옷가지, 신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깨달아. 이제 우리 아이와 영원한 이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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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크기, 그다음에 청색 운동복 한 벌 있고, 그다음에 애들 입고 있던 옷.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대로 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맞을 확률이 80% 정도는 맞는다고 봅니다."

-김현도, 김영규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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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세월은 부모도 자식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어. 반짝이던 눈망울, 통통했던 볼살. 내 아이의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그토록 찾아 헤맨 아이가 유골로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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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구나. 우리 철원이, 만날 길이 없구나. 아이들하고는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그런데 백골이 된 아이를 만난 슬픔 말고도,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게 있어. 유해가 발견된 장소, 아이들이 사라진 바로 그 와룡산이었어. 경찰이 전국적으로 수사하고, 부모님도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결국 사라진 곳에서 아이들이 발견된 거야.

"와룡산은 우리가 평떼기 수색이라고 해서, 탐침봉으로 찔러가며 수색을 다 했고요. 그 외에도 와룡산을 벗어나 다른 산에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와룡산 옆에 궁산, 대덕산, 팔공산, 하여튼 대구 시내 근교 산악은 전부 우리가 수색을 다 했습니다."
-당시 수색 경찰

주변 산이란 산은 다 수색했대. 연 인원 30만 명이 넘는,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의 인원이 투입됐어. 그런데 정작, 도토리를 줍던 등산객에 의해 아이들이 발견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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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새방골'이라 불리는 장소야. 경찰 수색은 '불미골' 근처에서 거의 이뤄졌어. 유해가 발견된 새방골은 집중 수색지역에서 빠졌어. 불미골과 새방골의 거리는, 채 1km가 안 돼. 그 사이 능선 하나를 안 넘어간 거야.

▲ 아이들은 왜 죽었나

유가족은 또 기막힌 일을 마주하게 돼. 현장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자, 경찰이 사망 원인을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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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드러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는 저체온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최저 기온이 3도로 되어 있지만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린 날에는 산에서 훨씬 더 체감 온도가 낮습니다. 사실 어린 학생들한테는 비도 맞고 이러다 보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추정됩니다."
-당시 사건 담당 경찰

경찰이 추정한 사망 원인은 저체온으로 인한 사고사. 유골에 대한 어떤 조사도 검사도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렇게 발표한 거지. 실종 당일 날씨는 최고 기온 12.3도, 최저 기온 3.3도. 오후 6시부터 5.8mm가량의 비가 내렸다고 해.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아이들이 산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게 아니라, 내려왔을 거라 말해.

그리고 얼마 후, 아이들 사인에 대한 법의학팀의 발표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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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들이 타살된 것으로 법의학팀에 의해 잠정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우철원 군의 두개골에 난 구멍들은 인위적으로 생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연적인 풍화나 부패로 형성될 수 없는 'ㄷ'자와 사각형 모양의 예리한 손상이 좌, 우측에 일정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 뉴스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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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구의 유해 중 3구 이상의 두개골에 있는 소견은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며 생긴 시기는 사망 당시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아이들이 타살당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수십 회 이상 내려쳤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박정식, 경북대 법의학 단장

범행 도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실험이 이뤄졌어. 그리고 다양한 가설이 나와. 유골이 발견된 장소에서 탄두와 탄피도 발견됐지만, 인근 군부대에서는 사건 당일이 임시공휴일이라 사격은 없었다고 발표했어. 그리고 유골 발굴 후에 진행된 수사에서도 범행도구는 특정하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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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 장례식을 미뤘던 유가족들은 어떤 결론도 얻지 못한 채, 2004년 3월 26일,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했어.

아이들의 유골은 화장해서 낙동강에 뿌렸대. 물 따라 흘러가면서 세상 구경하라고. 하지만 단 하나, 물 따라 흘려보내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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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이들의 두개골이야. 사건이 언젠가 해결될 거라 믿으며, 두개골을 증거로 남겨둔 거야. 근데 그 마음이 닿지 못했는지, 2006년 3월 25일에 개구리 소년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됐어.

▲ 유가족의 마지막 바람

철원이 아버지는 여전히 가끔 와룡산에 오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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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조그마했습니다. 내 키보다 조금 컸는데, 수십 년이 되다 보니 이제 숲이, 나무 숲이 됐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셀 수 없이, 수도 없이 왔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 쪽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쪽에 와서 몇 년 있다 보니까 아이들이 여기서 나타났어요. 집 뒤쪽에서. 똑바로 잰다면 300m 정도 되겠네요. 기가 찹디다 기가 차. 내가 사는 집 뒤에서 우리 아이가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게 너무.. 참 기가 차서.."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실종된 상태로 11년의 시간을 보냈어. 그 긴 시간 동안 현관문을 항상 열어놓았대. 혹시라도 아이가 돌아올까 봐. 그리고 그 후 22년은,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간 시간이야.

"이제는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죄도 안 받아요. '내가 그랬습니다' 이러기 뭐 하면 어디 쪽지를 하나 써 붙여 놔도 되고. 쪽지를 하나 써서 차에 던져놔도 되는 거고요. 우리는 그런 양심고백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기다리는 거죠. 왜 그랬는지 이유만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는 거…"

-우종우, 철원 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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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때문에 다섯 애들을 데려갔느냐 그것만 묻고 싶지 우리가 뭐 이제… 더 이상 뭐, 뭘 바라겠습니까."
-조남환, 호연 군 아버지

이유라도 알고 싶은 부모의 마음. 유가족들은 몇 년 전 이춘재 사건이 해결됐을 때 엄청 기쁘셨대. 우리 아이들 사건도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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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범행도구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하나 있어. 버니어 캘리퍼스라고, 길이나 너비 등을 측정하는 자야. 그 자가 범행에 쓰였을 거란 가설이 나왔거든. 결국 이것도 범행도구로 밝혀지진 않았는데, 유가족들은 이런 가설이 계속 나오는 것에 희망을 본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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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예측한 사진이야. 그대로 자랐다면, 이제 40대야. 실종 당시의 아버지들 나이와 비슷해진 거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 아이들의 삶이 왜 멈춰야 했는지, 지금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 아직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을 온전히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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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이, 호연이, 영규, 찬인이, 종식아. 미안하구나… 누가 너희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내가 죽기 전까지, 누가 너희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확인할 것이다."
-우종우, 우철원 군 아버지

의미 있는 선례가 하나 있어. 호주에서 1974년에 발생한 '세 모녀 살인사건'이란 게 있어. 30대 어머니와 13살, 11살 두 딸이 살해됐는데,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진 사건이야. 그런데 이 사건 범인이 주변 사람들한테 범행을 털어놨다가 덜미가 잡혀 43년 만에 해결된 사건이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아버지들을 도왔던 월미도 각설이 나주봉 씨. 지금도 부모님들과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해 애쓰고 계셔. 부모님과 나주봉 씨가 하는 이야기가 있어. 만일 누군가의 보물 같은 존재가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주위를 살펴봐 달라고. 아이들은 절대 없어져서도, 범죄로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기억의 시효는 끝나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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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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