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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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성형수술 받다 사망한 아들…억울함 풀어주려 매일 거리로 나간 母

강선애 기자 작성 2024.01.05 12:15 수정 2024.01.05 14:42 조회 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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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4일 방송된 '수술실의 유령'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카라 멤버 겸 배우 한승연, B1A4 신우, 배우 이미도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중환자실에 우리 아들이

때는 2016년 9월 9일 새벽 5시. 서울 봉천동이야.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 한 어머니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아직 큰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거든. 큰아들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대기업에 입사했어. 한 번도 속 썩여본 적 없는 착실한 아들이야. 오늘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들어갈 테니, 먼저 주무시라고 하던 아들. 근데 새벽 4시에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니, 방에 없어. 큰아들이 아무 연락도 없이 안 들어온 거야.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아들인데. 문자를 했는데 답도 없고, 전화도 안 받아.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던 그때, 큰아들한테 메시지가 왔어. 근데 내용이 좀 이상해.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머니한테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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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할 준비를 하라 그러더라고요. 외출할 준비 하고 있다가 이제 자기가 어디로 오라고 하면 오라 이러더라고요. 우리 큰아들 되게 착실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얘가 술 먹고 뭐 파출소 갈 일을 할 아이가 아닌데, 술 먹고 실수를 해서 파출소에 가 있나 싶어서… 준비를 하고 씻고 옷 입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냥 대학병원으로, ㅇㅇ대 병원으로 와서 전화를 하라 이러더라고요."
-이나금, 어머니

어머니는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바로 큰아들에게 전화했어. "엄마, 3층으로 올라와"라고 말하는 큰아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3층은 중환자실인데, 그 앞에 큰아들이 서 있었어. 엄마를 본 큰아들은 충격적인 말을 꺼내.

"엄마, 놀라지 마. 지금 대희가 중환자실에 있어."

대희는 대학에 다니는 이 집 둘째 아들이야. 학교가 멀어서 학교 근처 친구 집에서 지냈어. 웃으며 집을 나섰던 아이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있다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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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야, 엄마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아들, 다시 건강하게 엄마랑 집에 가자.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엄마가 얼른 일어나게 해 줄게. 조금만 더 고생해. 아이고, 우리 이쁜이. 우리 집 보배… 대희야 조금만 참아. 아이고..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아…"
-어머니가 촬영한 영상 中

대희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온갖 장비들을 달고 죽은 듯이 누워 '저체온 치료'를 받고 있어. 인위적으로 환자의 체온을 빠르게 낮추는 저체온 치료는, 심정지를 일으켰다가 소생하는 환자의 뇌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야. 전날 밤, 응급실에 실려온 대희가 심정지를 일으켰던 거야.

당시 상황은 아주 급박했어. 골든타임은 4분에서 5분. 그 안에 되살리지 못하면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게 돼.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2분 만에 맥박이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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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2분은 충분히 소생할 수 있잖아요. 골든타임은 안 넘긴 상태라서 나이도 젊고 하니까, 심정지 2분이면 잠깐 쇼크가 왔는가 보다 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일주일을 못 넘긴대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 이러고. 나중에는 뭐 '장기기증 생각하느냐' 이 정도까지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통곡을 하면서, 2분 심정지인데 왜 그 정도까지 이야기하냐 하면서… 나는 그걸 안 받아들였죠. 제가 의학 지식도 전혀 없었고 용어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걸 안 받아들이고 그냥 2분 심정지만 머릿속에 남아서, 살릴 수 있다…."
-이나금, 어머니

어머니가 평소 자주 떠올리던 속담이 있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야. 어머니는 '내가 지금 호랑이 굴에 들어왔구나, 내가 정신을 반짝 차려야만 우리 대희를 살릴 수 있다' 생각했어. 어머니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

▲ 아들의 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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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 대희의 모습이야. 나이는 스물다섯. 대희는 딸 같은 아들이었어.

"엄마한테도 그냥 엄마라는 소리 안 하고 '마미!' 이렇게 불렀어요. 그리고 이제 좀 유명한 영화, 인기 있는 영화는 꼭 대희가 엄마를 데리고 가서 영화를 보여줬어요. 거의 한 달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본 것 같아요."

-이나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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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도 아주 열심이였어. 졸업 후를 대비해 각종 자격증을 따놓고, 각종 대회에서 여러 가지 상도 탔어. 대학교 홍보대사를 맡아 활동도 열심히 했대. 외모, 성적, 인싸력까지 갖춘 인재였어. 그야말로 엄마의 자랑이었지. 하지만 대희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하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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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희가 원래는 입이 좀 나왔었어요.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사진을 찍잖아요. 사진을 찍으면 항상 턱 쪽을 포토샵을 해서 싹 깎는대요. 한번 두번도 아니고 항상 그렇게 한대요. 그래서 너무 이상해서 '거길 왜 자꾸 깎냐' 이러니까, '고등학교 때 본인이 입이 나와서 친구들한테 집단 왕따를 당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은 꼭 서울 간다', '인 서울 하면 제일 먼저 성형수술부터 할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랍니다. 본인한테는 집단 왕따를 당한 게 트라우마였던 거 같아요."
-이나금, 어머니

대희의 예전 사진을 보면, 동일하게 입을 앙 다물고 있어. 콤플렉스를 숨기기 위한 표정들이었던 거야. 대희는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웠던 걸로 보여.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치아교정부터 했고, 졸업과 취업을 앞뒀을 때 또 하나의 중요한 계획이 있었어. 바로 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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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2주일 전, 대희는 친구와 함께 강남의 한 성형외과를 찾아갔어. 여기는 안면윤곽수술 전문 성형외과야. '14년의 자부심', '무사고 병원'을 내세우는 병원이야. 대희도 그 문구를 보고 이곳을 찾아온 거야. 또 이 병원의 원장이 TV에 출연한 적 있는 유명한 사람이야. 실력과 명성을 갖춘 병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수술을 집도한대. 그래서 대희는 이 병원을 믿고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어.

수술 날짜는 9월 8일. 그런데, 엄마랑 형한테는 비밀이었어. 친구도 같이 가겠다고 했는데, 대희 혼자 갔대. 다음날이면 퇴원할 수 있다는 병원의 말을 믿었던 거지. 수술을 받기 직전, 대희는 친구에게 이걸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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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표정이지. 이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느껴져. 그렇게 깨어나면 달라져 있을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대희는 수술대에 누웠어. 마취약 기운을 느끼며 스르르 잠이 들어. 그때가 낮 12시 30분이었어. 근데 11시간이 지난 밤 11시 27분, 119센터로 신고가 접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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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실장: 여기 ㅇㅇ동 ㅇㅇㅇㅇ 성형외과고요. 저희 ㅇㅇ대병원으로 트랜스퍼(환자이송)할 거예요. 환자 의식은 있어요. 수혈하기 위해서 트랜스퍼할 거예요. 블리딩(출혈)이 심해 가지고, 수술하다가…
-119 신고 통화 내용 中

대희에 대한 신고 전화였어. 출혈이 심하니까 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는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대희는 의식이 있었어. 하지만, 대학병원에 도착하고 30분 후, 의식을 잃고 말아. 온몸에 피가 부족해서 저혈압성 쇼크를 일으킨 거야. 그리고 대희에게 심정지가 왔어. 응급처치를 받고 2분 만에 되살렸지만, 그 뒤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엄마는 알고 싶어. 성형외과에서 마취가 시작되고 119에 신고가 접수되기까지. 그 11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 11시간의 비밀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수술을 집도했던 성형외과 원장이야. 아침이 되자 성형외과 원장이 중환자실로 찾아왔어. 엄마는 물었어. 대희한테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지.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해. 만약을 위해서. 그때 녹음된 병원장 장 씨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일단은 병원 상황을 좀 설명을 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턱이 좀 컸어요. 그래서 턱을 자르는 수술을 하는데, 원래 수술 중에는 어찌 됐든 뼈를 자르니까 뼈 안에서 피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냥 쭉 수술을 진행해도 출혈이 이만큼 있는 것 가지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괜찮겠다 하고 이제 수술이 끝났는데, 저는 전혀 이런 생각을 1%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이 병원에 올 때까지 전혀 응급상황이 아니었다니까요. 아 근데 왜 갑자기 쇼크가 일어났는지… 어찌됐든 제 병원에서 전혀 위험하진 않았어요."
-병원장 장 씨

턱뼈가 커서 남들보다 좀 많이 잘라냈대. 출혈이 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는 거야. 그런데 그때 병원장 장 씨가 이런 말을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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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뭐 모든 상황이 있어요. 거기 CCTV가 다 있어요 저희는 수술방마다. 그건 나중에 드릴 수도 있어."
-병원장 장 씨

어머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어. 대희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달라고 요구한 거야. 수술과정이 담긴 CCTV 영상까지도. 어머니는 그 영상을 받긴 했지만, 못 보셨대. 너무 무서워서. 차마 열어볼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도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친척 중에 의학과 법률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 있어서, 대신 봐달라고 했어. 그런데 영상을 본 친척이 이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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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영상에 해답이 다 있다' '그건 이모가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돼' 하면서 이 말을 여러 번 했어요 저한테."
-이나금, 어머니

한 달 가까이 망설이던 어머니는, 결국 모니터 앞에 앉아. 수술이 시작되고 대학병원으로 실려오기 전까지, 모든 상황이 담긴 7시간 30분 길이의 영상이야. 떨리는 손으로 재생버튼을 눌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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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오후 12시 56분. 병원장 장 씨가 들어와서 수술을 시작해. 그리고 20여분 후, 턱뼈를 잘라내기 시작하자마자, 대희의 머리 밑으로 후두둑 피가 떨어져. 간호조무사는 바닥에 고인 피를 밀대로 닦아내. 한 시간 동안 여섯 번이나. 멈추지 않는 출혈, 대걸레질은 계속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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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바닥에 피가 툭툭 떨어지는 거 있잖아요. 피가 툭툭 떨어지는데 그 피들을 갖다가 밀대로 막 쓱쓱 닦아 내버리는 거. 그거를 보고 막 내가 너무 놀라서 충격받고. 피는 우리 아이 생명인데. 아이 생명을 그냥 닦아서 갖다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 영상을 보면서 막 계속 울면서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이나금, 어머니

더 무서운 건, 저 수술방 안의 사람들이 너무나 평온하다는 거야.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 진짜 충격적인 건 그다음부터야.

수술 시작 한시간 후, 병원장 장 씨가 수술실을 빠져나가. 뼈만 잘라내고 봉합도 하지 않은 상태야. 대희가 계속 피를 흘리고 있는데, 수술실을 떠나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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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가 나가고 1분 뒤, 들어와서 수술복을 입는 한 사람. 간호조무사를 대신해서 지혈을 시작했어. 수술기록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이 사람. 환자가 잠든 후 등장하는 이 사람은 '섀도 닥터'야. 또 다른 말로, '유령의사'라 불러.

유령의사가 등장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일들에, 어머니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어. 유령의사는 나머지 수술 과정을 맡아. 그동안에도 대희의 출혈은 계속되고 있어. 그런데 한 시간 후, 유령의사마저 수술실을 나가. 이제 남은 건 간호조무사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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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모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가 30여 분간 지혈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어. 아직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는 거야. 하지만 대희 옆에 의사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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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봉합을 다 마치고 나서 그 간호조무사마저도 나가버렸어. 수술실에는 대희 혼자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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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다시 들어온 간호조무사. 대희 머리맡 쪽에 앉더니, 휴대폰을 만지고. 입술 화장을 했어.

그렇다면 의사들은, 수술방을 나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대희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병원의 비밀 시스템을 알아야 해.

▲ 수술 공장

대희가 수술받던 그날, 다른 수술실에 또 다른 환자들이 있었어. 이 병원, 동시에 수술을 하고 있었던 거야. 수술을 맡은 건, 3명의 의사야.

먼저 마취전문의 이 씨는 환자를 한 명 마취하면, 다음 환자를 마취하러 나가. 수술을 맡았던 병원장 장 씨는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뼈를 잘라내는 게 그의 역할이야. 마지막으로, 유령의사 신 씨. 이 사람의 역할은 수술 부위를 세척하고 봉합해서 수술을 마무리하는 거야.

이렇게 역할을 나눠 수술하는 걸, '공장식 수술'이라 불러.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 물건 다루듯 환자를 수술하는 거야. 그날 세 명의 환자가 동시 수술을 받았어. 대희는 그중 두 번째 환자였대. 대희 옆에 의사가 없었던 이유야. 병원이 이런 방식으로 수술하는 이유는, 보다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서야. 돈 때문인 거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 병원장 장 씨는 이런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CCTV 영상을 왜 제공한 걸까? 이 공장식 수술이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병원장은 처음부터 이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어. 다른 병원들도 다 이렇게 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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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술하고 뼈를 자르고 나가면 부원장이 와서 꿰매고 쭉 오고 이제, 간호사가 마지막에 드레싱 쭉 하고. 이렇게 시스템이 되어 있거든요…"
-병원장 장 씨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의사는 환자의 혈압, 출혈 등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해야 해. 그런데 병원장 장 씨는 자기 역할을 마치고 다른 방으로 가버렸어. 대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체크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심지어 유령의사 신 씨는 전문의도 아니야. 의사 면허 따자마자 이 병원에 고용된 사람으로, 경력은 6개월에 불과했어.

대희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을 때의 상태를 적은 기록지가 있어. 보통 이런 수술을 했을 때의 출혈량은 200~400cc 정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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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희의 출혈량은 3500cc 정도였대. 체중이 45kg인 여성의 전체 혈액량이 3500cc 정도야. 대희 몸 속 피의 약 70%가 빠져나간 거야. 피가 없으면 혈압이 떨어지지. 수축기 혈압(SBP, 혈압의 변화 중 가장 높은 압력)은 70대까지 떨어졌어. 정상 혈압은 110~130 사이야. 대희 혈압이 떨어지자, 의료진은 혈액대용제를 투여해. 혈액도 아니야. 그렇게 혈압이 일시적으로 회복되니까, 의사들은 모두 퇴근했어. 그리고 대희는 회복실로 옮겨졌어.

회복실로 옮겨진 대희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어. 혈압이 다시 떨어졌어. 빨리 수혈을 해야 해. 하지만 대학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수혈이 이뤄지지는 않았어. 그에 대해 병원장은 이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앰뷸런스가 오고 피가 바로 도착했어요. 그러니까 피가 도착하고 한 5분이나 10분이 있었으면, 서로 이제 크로스매칭을, 그러니까 (피를) 줘도 되는지 테스트를 하고 줬을 텐데. 앰뷸런스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피가 오고 그러다 보니까 서로 매칭할 시간이 없었어."
-병원장 장 씨

수혈하려고 혈액원에 혈액을 요청했는데, 그전에 119가 먼저 도착해서 수혈을 못했다는 거야. 그런데, 병원장 장 씨의 말은 사실과 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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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이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29분이야. 그런데 병원 사람들은 혈액 가방은 뒤에 놔둔 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눠. 119 구급대원이 도착한 건 그로부터 4분 여가 지난 후였어. 그동안 의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대희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그렇게 버린 거야.

▲ 엄마의 마음

어머니는 그렇게 대희에게 일어났던 11시간 동안의 일들을 모두 알게 됐어. 화가 나고 분하지만, 지금은 대희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해.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던 대희는, 18일 후에 중환자실에서 26번째 생일을 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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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낸 케이크를 두고 생일을 축하했어. 하지만 대희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때는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기적을 일으킨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그래서 빅파이브 대형병원에 보호자 진료를 계속 받으러 다녔어요. 의무기록지하고 영상 들고, 살릴 수 있으면 대희를 옮겨서 살리려고 다 다녔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회생하기 어렵다 그러더라고요. 어렵다 해도 저는 그게 내 귀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는 나는 기적으로 우리 아이를 살린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나금, 어머니

뇌의학 전문가가 있다면 다 찾아가셨대.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 어머니니까… 매일 밤 병원에서 주무셨대. 중환자실은 보호자가 같이 묵을 수가 없어서, 3층 복도에 침낭을 깔고 누우셨어. 그렇게 9월이 가고, 10월도 저물어 갈 때..

10월 24일 밤. 병원장 장 씨가 중환자실로 찾아왔어. 어머니를 만나러 온 거야. 장 씨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어.

"이 모든 상황을 변호사하고 상의를 했어요 이미. 일단은 대희가 안 좋은 상황과 쇼크가 일어난 위치가 어디냐면, 우리가 트랜스퍼(환자 이송)한 이후에 ㅇㅇ대병원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ㅇㅇ대병원에도 물어봐야 하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는 거죠. 이제 ㅇㅇ대 응급실에서 좀 조치를 잘 취해줬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지는, 않았겠느냐는 그 답답함이 있는 거죠 저한테도."
-병원장 장 씨

그럼 소송을 하라는 거냐 묻자, 병원장은 이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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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변호사 만나본 결과는 두 가지가 있대요. 첫째는 법적으로 해결하는 거예요. 이제 법으로 판정하는 거예요. 형사(소송)는 하시면 무조건 져요. 병원이 이기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형사는 고의가 들어가야 해요. 제가 고의로 그런 거 아니잖아요. 형사에서는 의사가 이기거든요. 두 번째는 법으로 안 하고 합의를 하셔야 할 것 같아. 저는 충분히 합의는 하는데, 조건이 있다니까요. 무엇이냐 하면, ㅇㅇ대병원 책임까지 저한테 다 합의하라고 하면 제 나름대로도 억울한 부분이 있잖아요. 일단은 제가 100% 합의는 안 되죠. ㅇㅇ대병원이 있으니까."
-병원장 장 씨

대학병원에 와서 심정지를 일으켰으니, 그쪽에도 책임을 물으라는 주장이야. 어머니는 대희를 살릴 생각뿐이지, 소송이나 합의,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어. 법도 잘 모르고 의학은 더더욱 몰라. 얼마나 힘든 싸움이 될지 엄두가 안 났어. 그런데 이 장 씨의 태도를 보고 나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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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드십니까? 네? 나 지금도 너무 힘들거든요? 네? 우리 대희 지금 뼈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 죽어가는 거를 보고 있어요 지금. 그것도 그냥 죽어가는 게 아니고, 시들어가고 있잖아요 지금. 원장님 여기서 힘겨루기 하지 마세요. 정말 부탁입니다. 더 이상 짓밟지 마세요. 못 견딥니다. 정말 못 견딥니다. 법이 아무리 좋고 좋아도, 못 견딥니다. 아시겠습니까?"
-병원장과 대화 당시 어머니

지금 우리 아들은 시들어가고 있는데, 겨우 숨만 쉬고 있는데. 그 수술을 했던 의사는 자기 혼자 책임지는게 억울하다는 거야.

"(병원장 장 씨가) 그 ㅇㅇ대병원을 우리 보고 고소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었거든요. 내가 너무 앞이 캄캄해서 그때 대성통곡을 했거든요. 병원이 울려 퍼지도록 대성통곡을 했거든요. 근데 그 소리를 대희가 들었나 봐요…"
-이나금, 어머니

다음날인 10월 25일 새벽. 대희의 심장이 멈췄어. 급히 심폐소생술을 받고 맥박은 돌아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담당의사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며,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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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보니까 심폐소생술을 했다는데, 막 양 주변에 피가 낭자하고 너무 끔찍스러운 거예요. 식구들이 전부 다 이제 거기서 밤을 새우면서 있었는데, 26일에 또 심정지가 온 거예요. 그때는 심폐소생술을 또 할까 묻더라고. 하지 말라 했거든요. 그래서 26일에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대희가 이제 엄마가 막 그렇게 울고 하니까. 엄마가 우는 소리 다 듣고 더 이상 엄마 이제 힘들지 않게 하려고. 엄마 이제 고생 그만 시키려고. 엄마 통곡소리 듣고 갔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나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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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고 49일이 지난, 10월 26일. 어머니는 대희를 떠나보내셨어. 아들 얼굴 마주 보고 '사랑한다' 말을 전하지 못한 게, 어머니는 큰 한으로 남으셨대.

▲ 세상에 알려진 권대희 사망사건

대희의 죽음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어. 스물다섯 젊은 청년이 성형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그럼 대희를 수술한 병원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영업을 했어. 게다가, '14년 무사고'라고 홍보까지 했어. 성형외과 홈페이지에 올려진 광고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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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내 모든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장XX 대표 원장"
"쉐도우 닥터가 없는 믿을 수 있는 병원"

그뿐만이 아니야. 어떤 사람이 그 성형외과 상담실장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더 분노가 치밀어. 이 사람은 뉴스에 나온 환자 사망사건이, 이 병원에서 일어난 게 아니냐 물었어. 그랬더니 상담실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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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병원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요즘 소문이 자꾸 이상하게 나서 저희도 알아보고 있어요."

이 사람은 메일을 통해 대희의 형에게 이 사실을 알렸어. 대희의 형은 바로 성형외과를 찾아갔어.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아. 병원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가 가득했거든.

대희 형: 왜 소비자한테 거짓말해요? 제 동생이 수술받은 다음에 '이 병원에서 수술한 거 아니에요?' 물어봤잖아요. 다른 소비자분들이 SBS 뉴스 보고. 근데 이 병원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왜 아니라고 해요? 왜 그렇게 환자들한테 거짓말을 해요? 맞아요 아니에요, 대답해요. 그것만 확실히 해요.
병원장 장 씨: 할 이야기 있으면 이쪽으로 오시고, 아니면 거기 서 계세요.
대희 형: 여기 있을게요.
병원장 장 씨: (병원 직원에게) 경찰에 전화해.
-대희 형과 병원장의 대화-

대희 형이 왜 거짓말을 하냐고 따져 묻자, 오히려 병원장은 대희 형을 경찰에 신고하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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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무 세상이 불공평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때부터 큰아들이 계속 술만 먹더니 알코올 중독 진단받았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거든요. 아들이 3년을 방황했어요."
-이나금, 어머니

평온했던 한 가정이 한순간에 무너진 거야. 그렇게 대희를 떠나보내고 한 달 후, 어머니는 성형외과 의료진을 고소했어.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힘든 싸움을 결심하신 거야.

▲ 천 번의 죽음

어머니는 모든 것을 걸기로 했어. 대학강단에 서기 위해 10년째 공부해 왔던 것도, 앞으로의 계획도, 전부 버리고 소송에만 매달렸어. 의료소송은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해. 피해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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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대희의 마취 기록지를 봐도, 알 수 있는 게 없어.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의미를 알기도 힘들지. 이런 상황에서 의사의 잘못을 입증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모든 걸 건 어머니는, 의무기록지 감정 결과를 수십 번 정독했어. 그리고 수술실 CCTV 영상도 하나하나 분석했어. 사소한 행동 하나도 놓치면 안 되니, 분 단위, 초 단위로 수도 없이 돌려봤어.

처음에는 그 영상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어.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니까. 자꾸 눈물이 터져서 보기 힘들어. 하지만 수백 번 영상을 돌려보며 분석표를 만들었어.

"내가 어림 잡아서 500번 이상 봤다고 했는데, 500번이 아니라 1000번도 더 봤을 거 같아요. 처음에 볼 때가 힘들었고, 이걸 내가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니까. 이성적으로 보니까 굉장히 냉정해지더라고요. 계속 영상 보면 볼수록 분노가 끓어오르는 거예요. 분노를 자극해 주니까, 견딜 수 있는 자극제가 아니었나. 아픈 자극이죠 그러니까."

-이나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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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그 시간을 견뎌내면서 만든 CCTV 영상 분석표. 처음 수술방에 들어갔을 때부터, 분 단위, 초 단위로 수술실 상황을 다 기록했어. 판사가 봤을 때 분, 초가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신뢰를 떨어뜨릴까 봐, 초 단위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 1000번 가까이 보시면서 만든 분석표라고 해. 뭐가 문제였는지, 뭐가 부족했는지, 일일이 분석해서 정리해 둔 거야. 어머니의 노력에 고개가 숙여져. 동시에 이런 분석표를 피해자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해.

어머니는 이 모든 증거 자료들을 경찰에 넘겼어. 결국 경찰은 성형외과 의료진과 간호조무사를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해. 의사들한테는 업무상 과실치사보다 의료법 위반이 더 무섭대.

업무상 과실치사, 즉 의료 행위를 하다가 과실, 실수로 환자가 사망을 해도 의사 일은 계속 할 수 있다는 거야. 의료 사고를 몇 번을 일으켜도 상관없어. 그래서 '의사 면허는 방탄면허다'라는 말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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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떻게 보면 여사님한테는 가장 중요한 그런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당시 의료법에서 사람이 사망하는, 그러니까 아드님이 사망하는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으로는 아무리 중형이 선고되더라도 의사 면허에는 영향이 없어요. 근데 의료법 위반, 무면허 의료행위 같이 의료법 위반, 이런 범죄로 금고형 이상의 선고가 나오면 의사들의 면허가 취소될 수 있으니까…"
-박호균, 피해자 측 변호사

그래서 의사들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걸 더 무서워 한대. 대부분의 의료소송은 의료법 위반 여부가 쟁점이야.

2019년 11월 27일. 의료진을 고소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검찰로부터 연락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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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소이유통지'였어. 의료법 위반 혐의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이 나와 불기소한다는 거야. 담당검사가 업무상 과실치사만 인정하고, 의료법 위반 혐의는 기소하지 않겠대. 유/무죄를 따지기도 전에, 아예 기소조차 안 한다는 거야. 검찰은 성형외과의 행위가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어.

의사들이 수술실을 비운 사이에 간호조무사가 혼자 30분간 지혈했어. 의사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어. 다시 말해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한 거야. 간호조무사는 물론, 지혈하라고 지시한 의사들도 모두 의료법 위반에 해당이 돼. 어머니는 이 문제를 전문기관에 감정을 의뢰했어. 그리고 이런 회신을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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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6개의 전문기관에 12차례 문의를 해 봤어. 그 결과 모두 의료법 위반이라 답했어.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도, 의료법 위반으로 판단했어. 대법원 판례도 있어. 그런데 담당 검사만 이걸 인정하지 않은 거야.

"제가 영상도 다 줬고 녹음해 놓은 녹취록도 다 줬고. 그것만 봐도 혐의가 있는데. 검사가 왜 그렇게 하는지 난 이해를 못 하겠다…"
-이나금, 어머니

그 이유를 찾던 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돼. 담당 검사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한 뉴스 기사에 의외의 인물과 함께 등장하는 거야. 원장 장 씨의 변호사였어. 검사와 변호사, 서로 상대방으로 싸워야 하는 이 두 사람이, 공통점이 많았어.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 같은 해에 사법고시를 패스해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해. 오래전부터 친구사이였어. 물론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이라면, 이 사람들이 친해서 덮어준다고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

어머니는 무릎 꿇지 않고, 고등검찰에 항고했어. 담당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다시 살펴봐달라고. 하지만 결과는 기각이었어. 검사의 불기소처분, 아무 문제 없다는 거야. 마치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거 같아. 이대로 가면, 이 성형외과 의료진은 의료법 위반에 대한 재판조차 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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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권력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이런 권한이 있는 거잖아요. 기소하는 데 권력이 있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더 큰 권력은 기소를 하지 않는 권한. 불기소 처분할 수 있는 데에서 더 큰 권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박호균 변호사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어. 마지막 수단이 남았거든. 바로 '재정신청'이야.

"처벌받아야 될 범죄자에 대해서 기소 자체를 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판 자체가 깔리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이걸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데, 이게 바로 재정신청 제도예요. 그러니까 검찰이 부당하게, 혹은 불합리하게 불기소 처분을 했을 때 그것을 법원에서 판사님들이 심리해서 이건 기소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이건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유죄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해 버리면서 공소 제기를 명하는 결정을 하게 돼요. 원래 기소할지 말지는 검찰이 결정하는데 이건 법원이 공소제기를 결정하는 명령을 하게 되면, 검찰은 어쩔 수 없이 기소해야 하는 거예요."
-박호균 변호사

▲ 마지막 희망

어머니는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어. 이게 받아들여지면 검사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를 해야만 해. 어머니에게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야. 그런데 문제가 있어. 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이 아주 희박해. 바로 전년도인 2019년 재정신청 인용률은 0.3%였어. 1000건 중 3건만 받아들여진 거야. 기소는 검찰의 고유 권한이니, 그걸 법원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야. 그야말로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야.

재정신청을 하고 어머니는 대희가 잠든 곳을 찾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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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 납골당에 매일 갔어요 제가. 매일 가서 대희한테 울면서 매달렸어요. 엄마 도와달라고… 자식이 죽어도 엄마가 너무 힘이 없어서 너의 그 억울한 진실을 엄마가 밝힐 수가 없다. 네가 하늘에서 엄마를 도와줘라. 쟤들이 너무나 돈과 권력으로 힘이 세서 엄마는 미안하다. 엄마가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엄마 도와줘 하면서. 매일 가서 대희한테 울면서 매달렸어요."
-이나금, 어머니

그렇게 매일 같이 대희를 만났던 어머니는, 거리로 나갔어. 국회 앞, 검찰청 앞, 법원 앞에서, 계속 1인 시위를 하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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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검사님. 의사 면허가 국민 생명보다 더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피는 내 아들의 생명인데 내 아들의 피 3500cc를 밀대로 닦아서 버리고. 통에 담아서 갔다 버린 원장 장 모 씨와 유령의사 신 모 씨 구속시켜 주십시오."

416일간 이어진 어머니의 1인 시위. 평범했던 한 어머니가 거리의 투사가 됐어. 그리고 마침내, 재정신청 결과가 나왔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에 의료 행위를 할 수 없으며, 간호조무사는 간호나 진료의 보조 업무만을 할 수 있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동하여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였다. 피의자에 대한 공소제기를 명한다."
-재정신청 결과문 中

법원은 검찰에 공소제기를 명령했어. 0.3%의 확률을 뚫고, 기적을 만들어 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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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께서 유족의 피눈물을 닦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한 많은 어미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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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송하면서도 늘 대희가 엄마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고 했지만 재정신청 인용이 되고 나니까 기적이 일어난 거잖아요. 아, 대희가 엄마 옆에 항상 있었구나. 대희가 도와줬다고 생각하니까 애가 보고 싶은 거예요. 보고 싶고, 그립고, 눈물밖에 안 나더라고요."

재정신청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성형외과 의료진들이 의료법 위반이라는 건 아니야. 법정에서 다퉈보라는 거지, 아직 유죄가 인정된 건 아니야. 갈 길이 멀어.

▲ 어머니의 7년

2021년 8월 19일. 권대희 사망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돼. 대희가 사망한 지 무려 5년 만의 일이야.

재판부는 원장 장 모 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과 벌금 5백만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어. 재판부는 장 씨가 '공장식 수술라인'을 돌리느라 대희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고, 그로 인해 대희가 숨지는 중대 결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어. 의료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다 인정된 거야. 판사는 판결문에 이런 말을 적었어.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의 어머니가 증거자료인 수술실 CCTV를 수집하고 그를 바탕으로 수술 관계자들의 행적을 분 단위, 초 단위 시각까지 세밀하게 확인하여 사망한 아들의 사인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는 지난 수년간의 처절하고도 고난한 행적이 느껴지는데, 이런 피해자 어머니가 처벌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음."
-판결문 中

재판부도 어머니의 처절함을 느낀 거 같아.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어. 일부 혐의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되지 않았고, 병원장 장 씨는 징역형이었지만, 마취의사 이 씨와 유령의사 신 씨는 의료법 위반인데 벌금형만 내려진 거야. 의료법 위반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야 의사 면허가 취소돼. 그래서 이 두 명의 의사는 의사를 계속 할 수 있어. 어머니는 합당한 처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이듬해 항소심이 열렸어. 그 결과, 병원장 장 씨는 징역 3년에 벌금 1천만 원, 벌금액이 1심보다 늘었어. 하지만 마취의사와 유령의사는 벌금형이 유지됐어. 어머니는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1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혐의들이 인정돼서 그나마 위로를 받으셨대. 하지만 이번엔, 피고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어.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과실은 인정할 수 없다는 거야.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어.

2023년 1월,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내려져. 지난 7년간 이어온 어머니의 싸움은, 단 한 줄로 마무리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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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그렇게 피고인들의 형이 확정됐어.

"기각이라는 소리 듣고 나니까 내가 그 소리 들으려고 7년 동안 생업 전폐하면서 여기까지 왔나 싶은 게, 그리고 내가 진짜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습니까. 잠도 못 자고 긴장해 가면서. 그리 생각하니까 그렇게 눈물이 나는 게 막 통곡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이나금, 어머니

"집도의가 실제로 실형이 확정됐다는 점에서 그래도 뭐 조금이나마 피해자 측에서는 어느 정도 위로가 됐다면 됐다고 볼 수 있고. 나머지 의사들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선고를 했으니까 이런 부분은 피해자 측에서는 또 아쉬운 부분일 수 있을 거 같아요."
-박호균 변호사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모든 걸 내던지며 싸워 온 어머니의 7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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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7년간 매일 기록한 일정표야. 행여 놓치는 게 있을까 봐, 소송, 1인 시위 관련해 모든 걸 빠짐없이 기록했어. 어딜 방문해서 무슨 말을 들었고, 누구랑 통화했는지까지 다 적어뒀어. 7년간의 고생이 고스란히 기록된 일정표. 그 7년간 까맣던 머리가 하얗게 변했어.

▲ 아들의 버킷리스트

아직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이 있어. 7년 전 대희의 장례를 치른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뭔가를 발견했거든. 버킷리스트였어. 대희는 자기가 이루고 싶었던 꿈들을 하나하나 적어뒀던 거야. '유럽여행', '외국인 인구 사귀기', '착한 여자랑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기' 등 소소한 꿈들이 적혀있었어. 그중에 어머니 눈에 한 가지가 들어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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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 버킷리스트에 15번이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흔적 남기기'가 있었거든요. 저는 대희가 엄마한테 남기고 간 숙제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나금, 어머니

7년 간의 소송을 거치며 어머니는 사회단체의 대표가 됐어.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를 만드신 거야. 그리고 또 하나 만들어진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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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안면윤곽수술 도중 과다출혈 상태로 방치됐다 숨진 故 권대희 씨.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국회 논의 아홉 달 만에 보건복지위원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뉴스 보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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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하는 시점에서 저희가 권대희 님, 그리고 이나금 어머니께 저희가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대희의 죽음은 수술실 CCTV 영상이 없었다면 진실을 밝힐 수 없었을 거야. 더 이상 유령수술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거야.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강하게 반대했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건,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관계를 깨뜨린다는 거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지 말라는 거지.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찬성하는 입장이야.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면 오히려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가 더 생길 거래. 아이러니 하지. 한쪽은 신뢰가 깨진다고 하고, 또 다른 쪽은 신뢰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어.

이 법은 의사협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어. 그리고 2023년 9월 25일부터 정식 시행되고 있어. 한 어머니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의료법을 바꾼 거지.

"보통 이제 제도가 개선되려면 되게 힘들어요. 이렇게 한 피해자의 어머니 한 분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부터 법원 검찰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자료 만들고. 이런 한 개인의 노력으로 제도 개선의 어떤 시발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정말 대단하시다. 이렇게 한 분 한 분의 노력들이 모여서 제도가 개선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그런 사건이었던 거 같아요."
-박호균 변호사

이 법은 '권대희법'이라 불리게 돼. 세상에 내 이름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다던 대희의 버킷 리스트. 그 꿈을 어머니가 이뤄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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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희법' 해서 이름이 남은 것 같아요. 원래는 본인이 살아서 훌륭하게 성공해서 이름을 남기려고 했던 버킷 리스트가 의외로 또 그렇게 됐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지금 많이 부실하거든요. 이게 좀 개정이 됐으면 좋겠어요. 허용 범위라든지 보존 기간이라든지. 이런게 좀 개정이 돼서 정말 그 피해자들이 '권대희법이 있어서 혜택을 봤다' 이렇게 떠올려줄 수 있게끔. 많은 피해자나 피해자 유족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나금, 어머니

'권대희법'을 비롯해 '태완이법', '윤창호법', '민식이법' 등 누군가의 이름이 붙여진 법들, 이 법들은 누군가가 사망한 후에 만들어진 거야.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세상에 남긴 흔적이라는 걸. 잊지 말아 줬으면 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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