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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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1984 서울 대홍수, 더 큰 참사 막은 숨은 영웅들

강선애 기자 작성 2023.10.13 12:45 수정 2023.10.13 13:16 조회 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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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2일 방송된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1984 서울 대홍수'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엘즈업 예은, 소녀시대 효연, 축구선수 조현우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서울이 물에 잠겼다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했던 1cm,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그 1cm에 관한 이야기야.

때는 1984년 9월, 서울이야. LA올림픽이 막 끝났던 시점인데,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6개나 따며 종합 순위 세계 10위에 올랐어. 혹시 '대한유도학교'라고 들어봤어? 지금은 '용인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어. 당시엔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 유도 금메달리스트가 나오며 학교가 난리났어. 메달리스트를 꿈꾸는 학생이 가득이야. 3학년 호룡이도, 그 중 한 명이었어.

그런데 9월 1일 토요일 아침. 훈련 시간에 맞춰 눈을 뜬 호룡이는 깜짝 놀랐어. 밤사이 비가 꽤 쏟아지는 것 같더니, 기숙사 밖을 보니까 저 아래 본관 건물이 1층까지 잠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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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부터 비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기숙사에 밤늦게까지 비가 계속 오는데 낮이 되면 비가 엄청 와서 넘치겠다 싶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본관 2층 높이까지 물이 찰랑찰랑하더라고요."
-이호룡, 당시 대한유도학교 3학년

외출을 나갔다 돌아오던 조교 도준이는 공포감마저 들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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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입구에서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갈 때는 발목 정도가 물이 찰랑찰랑하게 찼었는데, 순식간에 30~40분 사이에 정강이 있는 데까지 올라오더라고요. 물이라는 게 순간이에요. 트레이닝장 잠기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물이 그냥 보이더라고요. 술술 들어가는게. 아 물이 정말 무서운거구나…"
-김도준, 당시 대한유도학교 조교

물이 차츰 차츰 밀려오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건물을 하나씩 삼키더래. 도준이는 빗속을 헤치고 일단 기숙사로 올라갔어. 기숙사가 그나마 지대가 높았거든. 사실 이날 오전 6시엔, 서울 전역에 '호우경보'가 발효된 상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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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경보가 언제 내려지는지 알아? 지금은 3시간 강우량이 90mm 이상 예상될 때 호우경보를 내려. 그런데 이때 1984년에는 조금 달랐어. 24시간 강우량이 150mm 이상이 예상될 때 호우경보를 내렸어. 그날 오전 6시부터 시간당 강우량이 40mm를 넘었어.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시간당 40mm 이상이면 앞을 보기 힘든 수준이야. 근데 이때가 9월이라 장마도 이미 지났는데,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건, 바로 태풍 때문이었어. 태풍 '준'이 우리나라를 지나가면서 비를 뿌렸거든.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 국립의료원 외과 레지던트 장윤철 씨는 토요일이라 모처럼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길에 올랐어. 차에 시동을 걸고 병원이 있는 을지로에서 집에 있는 성내동으로 향했어. 유도대학이 있는 풍납동 바로 옆이야.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을 하며 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한강 유역에 홍수주의보가 발효됐습니다. 하천 지역 출입을 삼가고 차량 이용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속보가 흘러나와. 호우경보에 이어 홍수주의보까지 내렸어. 비가 많이 와서 하천이 범람할 수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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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 씨는 다행히 집에 거의 도착했어. 그런데 집 근처 도로가 꽉 막혔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내밀어 보니, 저 앞에 있는 차들 바퀴가 물에 푹 잠겼어. 바로 그때, 윤철 씨의 차 아래로 물이 출렁출렁 하는가 싶더니, 푸슈슈 하며 시동이 꺼져버렸어. 다시 키를 돌려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를 갓길에 밀어두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

그런데 동네에 들어서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동네가 이미 물바다야. 사람들은 바지며 치마며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우왕좌왕 뛰어다녀. 조용필 브로마이드를 소중히 안은 여중생도 있고, 어깨에 쌀가마니를 진 어르신도 있어. 사람들뿐만이 아니야. 강아지, 닭, 돼지들도 다 밖으로 나왔어. 다들 높은 곳으로 대피 중이야. 왜 이렇게 물바다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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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동 아래로 성내천이라는 하천이 하나 있어. 여기 동네가 가뜩이나 저지대라 침수에 취약한데, 집중호우에 성내천이 넘쳐버린 거지. 윤철 씨는 첨벙첨벙 발을 떼면서 다급히 집으로 갔어. 3층짜리 연립 주택이었는데, 1층 입구까지 물이 찰랑찰랑해. 혼비백산 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갔어. 집이 1층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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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들고 다니던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거의 배꼽까지 차는 물을 헤치고 집에 가면서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겁니다. 집에 와서 보니까 이미 지하는 침수가 다 됐고 1층 입구가 물이 찰랑거릴 정도였습니다."
-장윤철, 당시 국립의료원 외과 레지던트, 성내동 거주

아내는 아기를 업은 채 짐을 싸고 있었어. 윤철 씨도 급히 옷가지와 책들을 묶어서 2층 계단으로 옮기기 시작해.

같은 시각, 서울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관련 기관은 모두 비상이 걸렸어. 특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곳이 있어. 바로, 한강홍수통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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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가 내리면 하천 인근의 피해가 크잖아. 그래서 한강 유역을 집중 관리하는 기관을 만들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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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 하천의 수위가 상승하는 거라든지 강우 예측자료를 받아서 예측된 자료를 가지고 미래에 일어날 수위를 예측해서 알려줘야 하는 그런 특수성이 있다 보니까 하천 제방에 대한 안전성 이런 것들 순찰도 하고 '예방 활동을 해라'라는 정보를 처음으로 알려주는 게 홍수통제소의 업무입니다."

-조효섭, 금강홍수통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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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주의보를 내린 곳도, 한강홍수통제소야. '인도교'의 수위가 심상치 않았거든. 인도교는 용산구와 동작구를 연결하는 지금의 '한강대교'야. 아주 오래전부터 수위를 측정할 때, 인도교의 어디까지 물이 찼는지를 지표로 삼았어. 인도교가. 8.5m까지 잠기면 경계수위, 10.5m까지 잠기면 위험수위로 봐. 경계수위에 가까워지면 홍수주의보, 위험수위에 육박하면 홍수경보를 내려.

오후 3시. 한강의 수위는 8.62m야. 홍수주의보가 발효된 이후에도 수위는 계속 오르는 중이야.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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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에 한 시간에 평균 50mm라고 하는 장대와 같은 빗줄기가 중부지역을 강타했습니다. 미처 피해 볼 여유도 없이 우리의 보금자리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해버렸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이 한밤중 홍수의 기습으로 서울 지역에서만 41명의 아까운 생명이 사라져 갔고…"
-당시 뉴스 보도 中

'화재는 재라도 남지만 물은 흔적도 안 남는다'는 말이 있어. 그 정도로 물의 힘이 무서워. 서울이 잠기고 있는데 특히, 하천을 끼고 있는 망원동, 풍납동, 성내동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어. 이때가 40년 전이야. 반지하 주택도 많았고, 배수시설도 안 좋았어. 피해가 아주 컸겠지? 1984년 9월 1일, 서울은 완전 재난 상황이야. 오늘 밤이 고비야. 밤사이 물이 더 불어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야.

▲ 소양강댐에 닥친 위기

그런데 이때, 서울의 운명을 쥐고 있는 곳이 있었어. 오늘 밤을 버텨내느냐, 아니냐가, 이곳에 달려있어. 바로 춘천의 소양강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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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규모가 어마어마해. 사력댐 중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대. 그 많은 물로, 수도권 전 지역에 물과 전기를 공급하고 있어.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역할, 바로 '홍수조절'. 한강 상류에서 물을 가둬둠으로써, 하류인 수도권의 홍수피해를 줄이는 거야. 그런데 지금, 소양강댐 사무소의 분위기가 아주 심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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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만 한 200mm가 4~5일 동안 왔단 말이에요. 9월 1일 260~270mm 이 정도가 또 하루에 새로 온 거죠. 그러다 보니까 급격한 수위 상승이 있었고 그때 여기만 그런 게 아니고 하류, 특히 수도권에서 침수가 많이 돼서 비상사태인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유의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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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면 전 직원이 대기 상태예요 다 사무실에. 거기서 청원 경찰부터 전 직원이 다 퇴근도 안하고 못하고 있는 거죠. 그런 사태가 날지는 모르지만 만약을 위해서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죠."
-신금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서울뿐만 아니라 춘천 지역에서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거야. 그래서 지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어. 소양강댐이 물을 가두고 있는데, 비가 오면 그 양이 늘어나겠지? 게다가 상류에서 흘러내린 물까지 소양강댐으로 모이면, 수위는 계속 높아질 거야. 이런 상태로, 물을 무한정 가둬둘 수 있을까? 그러다 물이 넘칠 수도 있어. 그 전에, 댐에 있는 수문을 열어서 물을 빼내야 해. 그래서 직원들이 비상근무를 하며, 물이 넘치지 않도록 수위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소양강댐의 수문이 열리는 일은 거의 없어. 웬 만큼의 물은 다 받아둘 수 있거든. 1984년은 소양강댐이 생긴 지 11년이 된 해인데, 그동안 수문을 연 게 딱 두 번이야. 게다가 그 중 한 번은 시험 삼아 연 거였대. 그만큼 수문 개방은 이례적인 일이야. 그런데 바로 오늘이, 수문을 개방하는 세번째 날이 될 지도 몰라.

의균 씨는 수문이 열리는 걸 앞서 경험한 적이 있어. 그런데 오늘은 그 때와 분위기가 영 딴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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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6월 1일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한달 정도 근무한 상태에서 7월 12일에 소양강댐 첫 방류를 하게 됐어요. 퇴직하기 전까지 아니면 살아생전 (소양강댐) 방류하는 걸 다시 볼 수 있겠느냐 이런 농담을 좀 했거든요."
-유의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소양강댐은 준공 후 1978년 8월 28일 처음으로 수문을 개방했고, 의균 씨가 입사한 후 1981년 두번째로 수문이 열렸어. 그때는 막 큰 행사라면서 취재 카메라가 쭉 늘어서고,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잔뜩 구경을 왔었대. 폭우 때문에 수문을 열긴 열지만, 상황이 아주 심각한 건 아니었거든.

그런데 이번엔 달라. 서울에 이미 물난리가 난 상황이잖아. 지금 소양강댐 수문을 열면, 그 물이 한강으로 흘러가 서울에 아주 큰 위험이 닥치게 될 거야. 그럼 언제까지 수문을 열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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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의 높이는 해발 203m, 여기에 최대로 저수할 수 있는 한계선은 그보다 5m 아래인 198m야. 198m까지 물을 채웠을 때 물의 양은, 무려 29억 톤. 상암에 있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600개나 채울 수 있는 양이래. 수도권 시민들이 1년 이상 쓰고도 남을 정도의 물이야. 근데 198m는 그야말로 최대치이고, 평상시엔 193.5m가 제한수위야. 홍수기인 6월에서 9월 사이엔 제한수위가 더 내려가. 비가 와서 수위가 올라갈 것을 대비해서, 물그릇을 평소보다 비워두는 거야. 그래서 제한수위는 190.3m.

1984년 9월 1일 오후 3시, 소양강댐의 수위는 188.52m야. 홍수기의 제한 수위에 육박할 만큼 물이 차올랐어. 소양강댐의 수위 데이터는 한강홍수통제소로도 전송되고 있어. 댐 수문을 열려면, 홍수통제소와의 공조가 필요하거든. 홍수통제소 상황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어.

바로 그때, 홍수통제소로 전화가 걸려 와. 소양강댐에서 수문을 열겠다고 요청해 온 거야. 그런데 서울은 이미 난리가 났잖아? 인도교 수위가 위험수위를 향해 계속 오르는 중이야. 상황실 벽면 커다란 방안지에 쉴 새 없이 수치가 적혀가고 있어. 위성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한강 수위를 예측하는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래프가 계속 상승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 한 두 개가 아니잖아. 수위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 지금 믿을 건, 소양강댐 뿐이야. 한강홍수통제소는 소양강댐 방류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는 지침을 내렸어. 안 그러면 서울이 위험하니까.

"(방류를 미룬 건) 종합적인 판단인 거죠. 서울에 있는 하천들의 지류들이 좀 빠져야 위에서 방류가 시작되면서 밑에 피해를 덜 주지 않느냐, (서울의) 피해를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한 거죠."
-조효섭, 금강홍수통제소장

▲ 진퇴양난

오후 5시, 소양강댐 수위는 189.9m. 홍수기 제한 수위인 190.3m를 40mm 앞두고 있어. 수위가 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소양강댐 직원들은 초긴장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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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서서 온다는 표현을 해요. 물이 그냥 이렇게 쭉 (완만하게) 내려오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가파르게) 수위가 올라가요. 수위가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니까, 물이 서있는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신홍섭, 당시 수자원공사 본사 근무

소양강댐에서 홍수통제소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다급히 연락했지만, 홍수통제소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했어. 그러자 소양강댐 사무소는 수문을 여는 대신 발전기라도 돌리겠다고 했어. 수력발전을 위한 발전기를 돌린다는 거야. 발전시설을 돌려도, 물이 조금은 빠져나가거든. 수문을 여는 거에 비하면 미세한 양이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해.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발전기가 움직이기 시작해. 이때부터 초당 200톤 정도의 물이 빠져나가.

그 사이 한강 상황은 더 나빠졌어. 오후 6시, 홍수주의보가 홍수경보로 격상됐어. 인도교 수위는 9.22m. 위험수위인 10.5m엔 미치지 않았지만, 12시간 안에 위험수위에 도달할 게 확실해.

홍수경보가 내려지는 건 지금도 아주 드문 일이야. 이때도 무려 12년 만에 홍수경보가 내려진 거였어. 심지어, 한강홍수통제소가 생긴 이례 처음 있는 일이였어. 서울 시민들은 이제 긴급 대피까지 해야할 수준이야.

퇴근길에 차가 잠겼던 윤철 씨의 집. 물은 어느새 1층 윤철 씨 집 전체를 집어삼켰어. 윤철 씨 가족은 3층에 살던 이웃집으로 대피했어.

"저녁 한 8, 9시경 되니까 물이 거의 1층을 다 채울 정도가 됐습니다. 한 10시경에 쿵쿵 소리가 나길래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가서 봤더니 안방에 장롱 같은 게 물에 뜨면서 넘어진 겁니다. 소리가 나서 가슴까지 차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려고 했더니, 문이 막혀서 열리지 않는 겁니다."

-장윤철, 84년 성내동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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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은 잠겨서 지붕만 빼꼼 내밀고 있어. 내 집이 잠기는 걸,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몰려들고 있어.

서울홍수통제소와 춘천 소양감댐 사무소,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양쪽 다 긴박해. 발전기를 돌렸지만 소양강댐의 수위는 계속 오르고 있어. 상류에서 계속 물이 내려오니까, 발전기만 돌려선 답이 없는 거야. 수문을 열 수는 없지, 물은 계속 차오르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야.

그때, 몇몇 직원들이 "상류로 가서 유속이라도 확인해 보겠다"고 나섰어. 유속을 알아야, 앞으로 물이 얼마나 들어올 지 예측할 수 있잖아. 직원들은 상류인 인제 쪽으로 향했어. 비 때문에 도로가 유실돼서 가는 길이 아주 험난해. 겨우겨우 인제에 도착했는데, 물줄기가 어찌나 세찬지 마치 물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거 같더래. 직원들은 그대로 발이 묶여 버렸어.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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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자정이 지나고 새벽 1시. 소양강댐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어. 수위가 193.89m까지 도달한 거야. 홍수기 제한수위는 이미 넘었고, 댐이 버틸 수 있는 한계인 198m에 가까워지고 있어. 만약 물이 한계수위를 넘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상상 이상의 대재앙이 벌어져. 이 거대한 댐이 붕괴되는 거야. 왜 물이 흘러 넘치는게 아니라, 댐이 붕괴되는지 이유를 알려면, 소양강댐 건설 당시로 돌아가야 해.

소양강댐이 착공된 건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대 국책 사업 중 하나였어. 나머지 두 개는, 경부고속도로와 지하철 1호선이야. 당시엔 댐을 만들 기술이 없어서, 일본 기술자들의 자문을 받게 돼. 그 결과 소양강댐은, 콘크리트 댐이 적합하다는 결정이 났어. 그런데 콘크리트 댐을 지으려면, 시멘트와 철근이 많이 필요한데, 그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야해. 수송할 장비며 도로도 마땅치가 않아.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 잘살아보겠다고 하는 사업인데, 지출이 너무 큰 거야. 그 때, 이 사람이 등장해. 바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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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 시공을 현대걸설에서 맡았는데, 정 회장이 "소양강댐을 사력댐으로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어. 사력댐, 즉 모래와 자갈로 댐을 짓자는 거야. 마침, 수자원공사에서도 같은 의견을 냈어. 소양강 주변에 널린 게 모래와 자갈이야. 이렇게 설계를 바꾸면, 비용을 무려 34억이나 줄일 수 있어. 당시로선 엄청 큰돈이었어. 게다가,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까지 해결돼. 바로 '안보'. 만약 이 댐이 폭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콘크리트댐이라면 폭격으로 균열이 생기면서 한순간에 무너지게 돼. 그런데 사력댐은 폭격당한 그 자리만 파이지, 댐이 붕괴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은 사력댐으로 바꾸는 걸 찬성했어. 그렇게 소양강댐은 설계를 바꿔서 사력댐으로 완성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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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력댐은 한가지 단점이 있어. 만약 물이 댐 높이를 넘어서면, 물만 흘러내리는 게 아니야. 댐을 이루는 자갈과 모래도 같이 흘러내려.

"댐이 넘쳤다하면 그건 재앙이니까. 사력댐은 넘치면 끝이에요. 콘크리트 댐은 물이 살짝 넘쳐도 괜찮은데, 사력댐은 넘쳤다 하면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신홍섭, 당시 수자원공사 본사 근무

만약 소양강댐이 무너지면, 29억 톤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잖아. 한계선인 198m는 무조건 사수해야 돼. 소양강댐에선 홍수통제소 쪽으로 계속 전화를 걸었어. 소양강댐 측은 "지금 방류하지 않으면 댐이 무너질 수 있다, 진짜 수문을 열어야 한다"고, 홍수통제소 측은 "인도교도 위험수위다.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양쪽 모두 팽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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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댐을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방류를 해야 된다. 지금 해도 늦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해야지만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수도권 서울 이쪽 피해가 엄청 심하기 때문에, 그 방침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좀 버텨줘라' 했어요."
-유의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줄다리기 좀 하죠. 왜냐하면 줄다리기를 할 수 밖에 없는게, 수자원공사 입장은 댐을 지키고 싶죠. 댐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당연히 안전이 우선이죠. 근데 여기 통제소는 하류 하천도 지켜야 하잖아요. 두 개 다 지켜야 되는데, 그게 어려운 거죠."
-조효섭, 금강홍수통제소장

양쪽 상황이 다 이해가 가. 댐을 먼저 지키느냐, 서울을 먼저 지키느냐. 소양강댐 사무소와 홍수통제소, 물러설 수 없는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어.

▲ 방류의 시작

새벽 2시, 비는 계속 오고 있어. 소양강댐 직원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있어. 그런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 폭우 때문에 발전소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 거야. 이러다 전기가 나갈지도 몰라. 전기가 나가면, 진짜 큰 일이 벌어져. 수문을 열 수가 없어. 발전소 안 버튼으로 수문을 열고 닫을 수 있거든. 근데 전기가 나가면 다 먹통되는 거야. 그래서 수문 개방 담당자인 신금철 씨가 나서야 했어. 금철 씨는 수문이 있는 댐 초소 쪽으로 다급히 걸음을 옮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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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m 선 거의 다 가도록 물이 차오르는 거예요. 비가 막 쏟아져도 (수위가) 보이니까. (수문으로) 올라가는데 물은 계속 올라가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수문 여는 것 밖에 없잖아요. 난 저기 초소, 여수로에 와 있었어요. 만약의 경우 저기서 (자동으로) 안 열리면, 우리가 수동으로 열기 위해 대기를 해야 하잖아요. 수문 하나에 (수동으로 여는) 작동 기계가 하나씩 붙어있어요."
-신금철, 당시 소양강댐 수문개방 담당

혹시 버튼이 먹통이 되면 수동으로 열 수 있게, 수문 바로 위쪽에서 대기한 거야. 당시 댐 책임자였던 이순혁 부장은, 홍수통제소로 곧장 전화를 걸어. 그리고 최후의 통첩을 날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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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홍수통제소로) 전화를 해서 수문을 다 열든지 댐을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됩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박명학,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홍수통제소의 대답은 여전히 "안된다"였어. 댐 상황이 급한 건 알지만, 서울도 사수해야 하잖아. 조금 더 지켜보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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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류량과 방류 지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죠. 거의 뭐 재앙 수준이었다 비가 오는 게 그 당시에. 그리고 이미 한강은 다 물이 차서 범람을 이루고 있었고. (소양강댐은) 그 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죠. 방류하면 안 되니까."
-조효섭, 금강홍수통제소장

그 사이, 소양강댐 사무소는 거의 눈물바다야. 수위가 194m를 돌파했거든. 분초 단위로 수위를 예측하던 홍수통제소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어. 초당 700톤까지, 방류 허가가 떨어졌어. 소양강댐에는 총 5개의 수문이 있어. 초당 700톤을 맞추기 위해서, 가운데 있는 3번 수문을 먼저 열기로 해. 드디어 물에 잠긴 발전소에서 버튼을 눌렀어.

수문은 잘 열렸고, 거대한 폭포가 쏟아지듯이 새하얀 물줄기가 컴컴한 새벽을 가로질러. 123m의 수로를 따라 물이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어. 그 광경을 지켜본 직원들은, 정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걱정이 돼. 방류된 물이 흘러서 서울로 갈 테니까.

이순혁 부장은 당시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어. "문을 열 때의 괴로움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지옥의 문을 여는 기분이었어요"라고.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가운데 3번 수문에 이어, 옆에 있는 2번과 4번 수문도 열었어. 물줄기가 한껏 굵어진 채로 쏟아져 내려. 소양강댐은 차차, 초당 3600톤까지 방류랑을 늘렸어. 최대가 초당 5500톤이니까, 꽤 많은 양의 물이 방류되기 시작한 거야. 그럼, 서울은 괜찮았을까? 소양강댐 수문을 열면, 그 물이 곧장 한강으로 갈까? 아니, 시간이 좀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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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상하류에 있는 댐의 위치야. 소양강댐 아래 의암, 청평, 팔당댐이 있잖아. 이 댐들은 홍수 조절용이 아닌, 수력발전을 위한 댐이야. 그래서 비가 오면 물을 담아두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역할만 해. 소양강댐에서 초당 3000톤을 방류했을 때, 이 댐들을 거쳐 한강 인도교까지 가는 데는 16시간 정도 걸려. 물론 여러 변수를 고려하긴 해야해.

소양강댐 수문을 연 게 새벽 2시경이니까, 방류된 물은 저녁 6시부터 한강에 도착하기 시작할 거야. 소양강댐이 버텨준 덕분에 시간을 꽤 벌었어. 비가 그치고 인도교 수위가 잡히길 바라야 해.

▲ 절망 속 희망의 구조활동

운명의 시간이 흘러 다음날인 9월 2일 일요일. 눈을 뜬 윤철 씨는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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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는데 비도 안 오고 날씨는 개다시피 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까 망망대해인 겁니다.
-장윤철, 84년 성내동 거주

윤철 씨가 있는 3층 집은 그야말로 섬이 됐어. 고립된 신세야. 도준이와 호룡이가 있는 유도학교도 완전히 잠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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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흘러들어오는 냉장고 있지 않습니까?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 내놓고 파는 냉장고. 그런 것도 떠내려오고 뭐 별게 다 떠내려오죠 거기서."
-김도준, 당시 대한유도학교 조교

윤철 씨는 일단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 아내,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탈출하나 고민하다가, 피서 갔다가 동서 형님한테 맡겨 놓았던 보트가 떠올랐어. 형님한테 빨리 전화를 해야하는데, 전화기는 물에 잠겼어. 공중전화기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야 해.

"우선 빨리 나가야겠다. 여기서 가족들을 그냥 고립시켜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빨리 나가야겠다 하고는 나갈 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이제 막 옷가지들 중에 찾아보니까, 제가 군에서 입던 전투 수영복이 있었고, 잠수할 때 쓰는 잠수 슈트가 마침 있었습니다."
-장윤철, 84년 성내동 거주

물이 건물 2층 높이까지 출렁이는 상태였지만, 윤철 씨에게는 문제가 없어. 윤철 씨는 특전사 군의관 출신이였어. 공수훈련과 해상훈련도 받았어. 게다가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전투력이 현역급이야. 얼른 잠수 슈트를 챙겨서 입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어. 살이 쪄서 잠수 슈트가 안 맞더래. 결국 슈트를 가위로 이리저리 자른 뒤 몸을 구겨 넣었어. 그리고, 풍덩! 물이 차오른 도로로 몸을 던졌어.

늘 걸어 다니던 동네를 헤엄치는 기분. 윤철 씨가 지붕 사이를 헤치면서 길을 찾는데, 헤엄치는 손에 뭐가 닿아. 신호등이었어. 신호등 바로 밑에까지 물이 차올랐던 거야. 이런저런 황당한 경험을 하면서 한 4~500m쯤 나가니까, 안전한 곳이 있는 거야. 가까운 슈퍼에 들어가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보트 좀 가져다 달라 요청했어. 형님은 보트를 가져오란 말에 어리둥절했어. 형님은 논현동에 사는데, 그리 멀지 않은 그 곳은 홍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거야.

잠시 후, 윤철 씨는 무사히 보트를 받았고, 위풍당당하게 노를 저으며 동네로 돌아왔어.

"특전사 군의관으로 근무해 물개가 무색할 정도의 수영실력을 갖고 있는 장 씨는 이날 아침 10시부터 동서와 함께 물속에 잠긴 주택가를 돌며 구조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강동구 풍납동 성내동과 강남구 반포동 일대 주민 1백여 명을 자신의 고무보트로 구출했다."
-1984. 9. 16. 주간여성 기사中

윤철 씨는 가족만 구한 게 아니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구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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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하신 분은 할 수 없이 제가 보트에 서서 난간을 붙잡고 제 등을 밟고 내려와야 되거든요. 한 번에 조심해서 태우니까 한 네 분 정도 태우겠더라고요. 물결이 심하고 그런게 아니니까, 비교적 안정되게 조심스럽게 해서 다시 노 저어서 나오고…"
-장윤철, 84년 성내동 거주

그리고 침수 지역 곳곳에서 민간 구조대가 활약했어.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도왔던 수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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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뗏목을 만들기도 했어. 이 때 도준이와 호룡이가 있던 유도대학에 뗏목 동호회가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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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식당하고 씨름장 사이에 뗏목을 밑에 묶어놓은 걸 제가 알고 있어요. 저걸 건지면 드럼통 떠다니는 걸 묶어서 뗏목 만들 수 있겠다, 저는 그 때 가서 수영하고 잠수해서 뗏목을 찾아서 두 개 두 개 건저 올려서 뗏목을 만들었죠."

-이호룡, 당시 대한유도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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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사시는 분인데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그래서 갔어요. 갔더니 '임산부가 있다' 그래서 뗏목을 여기서 움직이니까 대야 있죠. 김장 대야 가지고 여기 타시라고 해서 밀면서 수영해서 나왔어요 그냥. 많이 구출했어요. 우리가 인원수를 세어보지 않았지만, 손이 노를 얼마나 저었는지 물집이 잡힐 정도로. 푹 찔러서 꾹 누르면 물이 쭉 올라왔어요. 그렇게 노를 저었어요."

-김도준, 당시 대한유도학교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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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구조대들의 활동으로 희망도 느껴졌던 재난 현장.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었어.

천만다행으로 오전 8시엔 호우경보가 호우주의보로 하향 조정됐어. 드디어 비가 그칠 기미가 보여.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도 끊이지 않았어. 새벽 사이 내린 폭우에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했어. 이틀이 걸친 폭우로 사망자가 무려 189명, 실종자는 150명. 재산피해는 2,500억원에 달했어. 수도권 지역에서 2만 채가 넘는 집이 침수되고, 이재민만 20만명 넘게 발생했어.

▲ 모두 같이 목숨 걸고 지킨 소양강댐

한편, 방류를 시작한 소양강댐은 다시 비상이 걸렸어. 방류를 시작한 새벽 2시, 댐의 수위는 194.3m였어. 그런데 오전 7시 수위는 196.21m. 수문을 열기 전보다 2m나 올랐어. 수문 개방 후, 나가는 물은 초당 3,600톤인데, 들어오는 물은 초당 12,000톤이었어. 상류 지역에서 유입되는 물의 양이 너무 많은 거야. 당연히 수위가 오를 수 밖에 없지. 소양강댐의 최대 수위까지는 2m도 채 남지 않았어. 게다가, 수문을 열면서 쏟아진 물 때문에 발전소 건물의 전기가 나가버렸어. 완전 아수라장이야. 발전소는 잠기고 있는데, 전기도 끊겼어. 나갈 수도 없어. 얼마나 막막하고 불안해.

딸 쌍둥이 아빠였던 의균 씨는, 전화선이 다 끊기기 전에 사택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어. 집에 별일 없냐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애들이랑 높이 산으로 올라가라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사를 남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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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또 가족은 가족대로 살아야 되니까. 전화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애 데리고 급한 거, 어린 아기가 있으니까 사택에 같이 움직일 때 산 쪽으로 (올라가라)."
-유의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소양강댐 발전소를 버리고 갈 순 없어. 서울의 안전이 여전히 이 곳에 달려있으니까. 그리고 그 때, 댐 수위가 197m를 넘겼다는 보고를 받았어. 최대 수위까지 1m도 안 남았어. 이때가 오전 10시. 지금 속도라면 198m가 되는 건 시간 문제야. 최후의 결정은, 최대 수량 방류. 소양강댐 수문 5개를 최대로 다 여는 거야.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수문 전체를 다 열겠다고 홍수통제소에 연락했어. 몇 시간의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허가가 떨어졌어. 오후 5시, 마침내 소양강댐 수문 5개가 완전히 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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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수문을 통해 초당 5,500톤의 물이 빠져나갔어. 물줄기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낙하했어. 근데 진짜 공포스러운 건 따로 있었어. 최대 방류를 시작한 이 때의 수위는, 무려 197.79m. 최대수위까지 단 21cm를 남긴 시점이었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라졌을지 몰라. 그럼, 이제 수위가 잡혔을까?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수문을 다 풀로 오픈한 상태인데도 수위가 떨어지지 않고 수위가 상승하는 거예요. 저희가 그 데이터를 보고선 참 상당히 황당하다고 해야 되나."
-유의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수문을 최대치로 열었는데, 수위가 떨어지질 않아. 이순혁 부장은 직원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는 "수위가 198m가 넘으면, 다들 어떻게든 여기에서 빠져나가라. 내가 끝까지 여기 남겠다"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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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가 (198m) 넘어가면 너희 다 나가라 내가 지키겠다… 참, 힘들었죠."
-박명학,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댐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어, 그렇다고 남는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렇게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만 하는 거야.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오후 6시. 수위 그래프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직원 얼굴이 벌개졌어. 수위가 딱, 1cm 떨어졌어. 가슴을 졸이던 소양강댐 직원들은,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어. 그 1cm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어.

현재 수위는 197.78m. 또 한시간이 지나니 197.77m. 1cm씩 점점 수위가 내려가는 거야.

"수위가 상승되다가 어느 시점 돼서 딱 그 한시간 동안 수위 상승이 안 되고 멈출 때, 직원들이 다들 환호성을 치면서 '이제 살았다' 이렇게 한 것이 지금도 생생해요."
-유의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그때가 저녁 8시였어. 서울은 어땠을까? 인도교 수위는 무려 11.02m를 기록했어. 현재까지 역대 네번째로 높은 수위야. 소양강댐에서 방류한 물이 합류한 거야. 하지만 별 피해는 없었어. 미리 예측하고 방류했잖아. 위험수위를 넘긴 했지만, 한강이 범람할 정도는 아니었어. 최대한 버티다 물을 방류해서, 더 큰 피해가 없었던 거야. 그럼,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걸까?

소양강댐 직원들은 다시 사색이 됐어. 발전소가 물에 잠긴 거야. 3층에 모여있던 직원들은 깜짝 놀랐어. 1층 전체에 물이 출렁거리고, 심지어 물이 계속 들이쳐. 수문을 열며 초당 5,500톤의 물이 빠르게 쏟아지니까, 주변에 커다란 물보라가 일고 물이 엄청나게 튀어 올라. 떨어지는 힘이 줄지 않고 그대로 솟구쳐 오르니까, 발전소 쪽까지 물이 들이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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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방재 자재를 갖다가 막 다 꺼내가지고 마대 포대 같은 걸로 다 해서, 흙이 없으니까 정원에 있는 잔디 같은 걸 마대에다 담아서. 또 변전소에 있는 자갈 퍼다가 담아서 현관 막고 자바라 있는 문 다 막고 했는데도 역부족이었죠."

-박명학,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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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여기까지 찼는데 허리까지 차는데, 물속으로 걸어서 저쪽에 펌프를 확인하고 오는 거야. 아휴, 그럴 때 나중에 아주 울고 싶어요. 물속이니까 다니는 게 제일 불안한 게요, 어디서 전기가 들어왔다면 즉사예요."
-신금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겨우 한숨을 돌렸는데 다시 비상이야. 그래도 다들 다시 힘을 냈어. 옷을 벗어서 문틈을 막고, 마대자루를 쌓아 올리면서 어떻게든 물을 막았어. 하지만 물은 점점 차오르고, 밖으로 나가는 길도 모두 막혔어. 직원들은 점점 발전소에 고립되고 있어. 또, 발전소만큼이나 지옥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어. 바로 사택에 있던 가족들. 발전소에서 1km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발전소가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어.

"집에서도 서로 붙들고 울고 난리가 났었대요. 우린 나가지도 못하고 연결도 안되지 전화도 안되지.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택 안에서 다 직원들이 한 데 모여 사니까. 연락이 안 되니까 서로 붙들고 막 울고, 다 죽은 걸로 인정했었대요 사택에서는."
-신금철, 당시 소양강댐 사무소 근무

발전소를 삼키려는 물, 그 물을 막으려는 사람. 몇시간 동안 고군분투한 결과, 다행히 들이치던 물이 잠잠해졌어. 직원들은 정말 온 몸에 힘이 다 빠졌어. 사력을 다했으니까. 다들 이틀 내내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어. 바로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어. 유속을 확인하러 갔던 직원들이 도로 상황이 나아지면서 발전소로 돌아온 거야. 그들 손에는 라면 한 박스가 들려 있었어. 물을 끓일 수도 없던 상황. 다들 모여서 생라면을 오드득 오드득 부숴 먹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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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소양강댐 수위도 잡혔고 침수도 막았는데, 직원들은 퇴근을 안 했어. 수문도 닫고, 발전소 재정비도 해야하니까.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다들 일터를 지킨 거야. 소양강댐은 이후 서서히 수문을 닫기 시작했어. 9월 4일 오후 2시, 4일간의 수문 방류를 끝내고, 모든 수문이 닫혔어. 언제 그랬냐는 듯, 소양강댐은 다시 잔잔해.

▲ 1984 서울 대홍수가 남긴 것

각지에선 수해복구 작업이 이어졌어. 학생들은 길가에 쫙 책을 펼쳐서 말리고, 주민들은 떠내려간 가전제품들을 찾느라 여념이 없어. 기업들도 가전제품을 무료로 고쳐주고, 못 먹게 된 과자나 조미료를 새것으로 교환해 주는 등 경쟁적으로 나서서 힘을 보탰어. 수재민을 위한 모금도 이어졌어. 위기의 순간, 다들 한마음으로 단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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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은 어땠을까? 큰물이 빠져나간 다음, 뜻밖의 선물이 쏟아졌어. 바로 물고기 풍년. 근처 하천마다 낚시꾼이 몰려들어. 사람들이 신나게 낚시하는 사이, 발전소에 지침이 떨어졌어. 100일 만에 모든 시설을 복구하라는 것.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요한 시설이니까. 직원들이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100일이 되기도 전에 수해 이전으로 발전 시설을 복구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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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남북역사에 한 페이지가 쓰이기도 했어. 당시 수해가 꽤 컸잖아, 이 소식을 들은 북한이 우리나라를 돕고 싶다고 밝혔어. 우리의 대답은 예스. 9월 29일부터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의 쌀과 옷감 등이 우리나라로 건너왔어. 북한이 우리에게 물자를 보내온, 유일한 때이기도 해. 그리고 이 때의 평화 무드는 다음해, 분단 이후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지게 돼. 대한민국을 뒤흔든 물난리가, 역사까지 바꾼 거야.

1984년 대홍수를 계기로 달라진 게 또 있어. 경각심이 생긴 거야. 만약의 사태에 더 철저히 대비하자는 거지. 사상 초유의 상황을 겪은 소양강댐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보조 여수로를 만들었어. 만약에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더 많은 양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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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1985년, 우리나라 두번째 규모의 다목적댐인 충주댐까지 준공되면서, 홍수 조절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요즘엔 '스마트 댐 안전관리'라고 해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댐의 안전을 지키고 있대. 또 수자원공사에선 물 관리 종합 상황실을 24시간 가동해. 이렇게 위기 속에서 한 걸음 또 나아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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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소양강댐 준공 50주년이야. 기후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우리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많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해. 위기의 순간이 오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기 어렵지. 하지만 인간의 힘이 모이면,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내기도 해. 위기의 순간,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뭘 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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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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