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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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검사가 살인청부, 혈서로 맹세했다"…조폭 김태촌이 말한 그날의 진실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9.15 11:37 수정 2023.09.15 12:54 조회 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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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4일 방송된 '조폭의 고백-N호텔 살인청부의 진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류현경, 진구, 김응수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주먹계의 대부 김태촌

오늘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조폭의 대명사'라 불리는 남자의 이야기야. 이 남자를 모티브로 해서 대박이 난 영화, 드라마들이 굉장히 많아.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때는 1986년 7월, 강남의 한 고급 안마시술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오셨습니까 형님!"이라며 한 남자를 향해 소리를 쳐. 잠시 후 이 곳에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들어서. 그리고 곧바로 아까 그 '형님'이 들어간 VIP룸으로 들어가. 먼저 와있던 형님이 벌떡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해. 이 VIP 룸에는 형님과 중년 남성, 둘 뿐이야. 이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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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형님의 부름에 밖에 있던 사내들이 칼과 종이를 가져왔어. 형님이라는 남자가 먼저 칼을 들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그어.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그 피로 종이에 글씨를 쓰기 시작해. 맞은편에 있던 중년 남자도 같은 행동을 해. 혈서를 쓰는 거야. 아주 중요한 맹세를 하거나 거래를 할 때, 그 증거로 혈서를 남기잖아? 이날 두 사람도 아주 중요한 거래를 했어. 바로, 살인 청부야. 뒤에 들어온 그 중년 남성이 처음에 들어왔던 형님이란 남자한테 사람을 죽여달라 한 거야.

부탁을 받은 형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 제안을 수락해. 그리고 서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혈서를 쓰자고 한 거야. 은밀하게 이뤄진 두 남자의 은밀한 거래. 이 두 사람의 사진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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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형님'이라 불리는 남자, 김태촌이야. 70~80년대 대한민국 주먹계를 평정한 서방파의 두목이야. 서방파가 다른 조직을 제압한 방법은 무시무시했어. 최초로 '칼'을 사용했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깡패들은 '싸움에도 낭만이 있다'고 믿던 시절이라, 주먹으로만 싸웠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김태촌이 회칼, 낫, 도끼 등 흔히 '연장'이라 불리는 것들을 들고 나타난거야. 심지어 김태촌은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끊는 걸로 악명이 높았어. 상대가 다시 활동을 못하도록 만드는 거야. 김태촌은 이런 잔혹한 방법으로 내로라하는 주먹계 선배들을 다 정리했어.

이런 김태촌과 함께 있던 사진 속 오른쪽 중년 남성은 누구였을까? 대한민국 검사였어. 심지어 그냥 검사가 아니라, 서울고등검찰청의 박 모 부장검사. 김태촌은 훗날 이 박 검사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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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를 어떻게 썼고 무슨 약속을 했고, 내가 왜 이렇게 18년동안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 이제는 정말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김태촌, 2005년 당시

김태촌은 박 검사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수기로 남겼는데, 이 안에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릴 엄청난 내용들이 담겨있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검사와 조폭의 부당거래. 지금부터 들려줄게.

▲ 신민당사 습격 사건

김태촌은 195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어.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전라도 광주로 이사를 가. 거기가 바로, 광주시 서방면이야. '서방파'라는 이름을 거기서 따온거야. 일찌감치 건달생활을 시작한 김태촌은 17살때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려. 소년원에서 서울 출신 깡패들을 만나 친분을 쌓은 김태촌은 출소 후에 그 형님들을 따라 상경해서 본격적으로 깡패 생활을 시작해.

김태촌이 26세가 된 1976년 봄. 운명을 바꿀 엄청난 제안을 받게 돼. 당시 모 국회의원의 사위였던 선배가, 깡패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오라는 거야. 김태촌은 곧장 광주로 내려가서, 무려 300명을 모았어. 그리고 1976년 5월 22일. 김태촌은 8대의 버스를 끌고, 서울의 한 건물 앞에 도착해. 바로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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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의 당사야. 김태촌의 명령에 쇠파이프, 각목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함성을 지르며 건물로 뛰어 들어갔어. 이들은 유리창을 부수고 책상을 엎고 의자를 집어 던졌어. 사무실에 있던 국회의원들을 마구잡이로 때리기도 했어. 신고도 못하게 전화기도 부수고, 순식간에 정문 셔터까지 내렸어. 백주대낮에, 대한민국 제1야당 당사가 괴한들에게 점거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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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은 당사를 점거한 후 "김영삼 어딨어? 김영삼 나와!"라고 외쳤어. 당시 신민당의 총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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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영삼 총재는 3층 총재실에서 다른 의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어. 이 위험한 곳에서 얼른 벗어나야 하는데, 건물의 문이란 문은 죄다 깡패들이 지키고 있고 총재실은 3층이라 도망칠 방법이 없어. 바로 그때, 한 직원이 가리킨 곳은 창문이야. 보니까 창문 아래쪽에 옆 건물의 지붕이 있어서, 뛰어내려도 크게 다치지 않을 거 같았어. 이리로 도망치자니까 김영삼 총재는 이렇게 반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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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들이 왔습니다. 총재님 피하십시다. 하니까 '내가 왜 피하냐? 내가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김덕룡 전 의원, 당시 김영삼 총재 비서

김 총재가 악을 쓰며 버티는 그 순간, 김태촌이 총재실 문 앞에 도착했고 도끼로 문을 부수기 시작해. 그런데 그때, 문 안쪽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 바로 김영삼 총재야.

"당시 같이 있던 황낙주 의원이 '총재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거의 떠밀다시피 해서 그 밑에 옆의 지붕 위로 뛰어내리는데, 그 건물은 1층 건물인데 슬레이트 지붕이었다고 합니다."

-김덕룡 전 의원, 당시 김영삼 총재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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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의원들이 김 총재를 창 밖으로 떠민거야. 근데 옆집 슬레이트 지붕이 구멍이 나면서, 김 총재의 한쪽 다리가 빠진 거야. 같이 뛰어내린 의원들이 김 총재를 겨우 빼서 병원으로 데려갔어. 이 모습을 본 김태촌의 반응은? 사실 김태촌의 목표는, 김영삼 총재가 아니었어. 김태촌은 뭔가를 빼앗기 위해 이 당사를 습격한 거였어. 바로, 총재가 당 대표로 의사결정을 할 때 쓰는 도장인 '신민당 직인'이었어. 이 날의 습격사건은 'YS 낙선공작'이었어. 며칠 뒤에 신민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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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영삼 총재와 이철승 의원, 이 두 사람이 유력한 총재 후보였어. 그런데 누군가가 김영삼 총재를 떨어뜨리기 위해 모든 일을 꾸민 거야. 김 총재가 재선에 성공해도 직인이 없으면 당선 인정을 못 받거든. 그래서 김태촌을 시켜 이 엄청난 일을 꾸민 거야. 그럼 이건 이철승 의원 측의 공작이었을까?

"김영삼 총재는 이제 투쟁하는 야당,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겠다' 하는 그런 선명 야당이었고, 이철승 씨는 '우리가 참여해서 개혁을 해야지 투쟁해서 되겠느냐' 이렇게 협력하는 야당. 말하자면 그 당시 사쿠라(야당 내에서 정권과 손잡고 일하는 걸로 여겨지던 정치인을 비하하던 용어) 야당이니까. 정권 입장에서는 사쿠라 야당을 만들어줘야 되겠다,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과 그 당시에 제 2인자라고 할 수 있었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중심이 되어가지고 공작을 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김덕룡 전 의원, 당시 김영삼 총재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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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분열을 위해 청와대 경호실장이 관여했다는 주장이야. 김태촌의 주장도 비슷해. 그의 수기에 적혀있는 내용이야.

"우리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과 이철승 의원이 사람만 죽이지 않는다면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태촌 수기 중

그래서 이렇게 김태촌 패거리는 직인을 찾기 위해 늦은 밤까지 사무실을 뒤졌어. 하지만 직인은 찾지 못했어. 5월 22일 밤 11시, 결국 김태촌 패거리는 스스로 당사를 걸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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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청년들. 100여명의 청년들이 줄줄이 종로경찰서로 연행됐어. 현직 국회의원들을 폭행하고 당 총재까지 다치게 만든 혐의인데, 이 청년들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졌을까? 전원 훈방조치로 다 풀려났어. '사람만 죽이지 않으면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거야.

풀려난 김태촌 패거리는 종로의 한 여관으로 향했어. 왜 광주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머물렀을까? 3일 뒤에 있을 신민당 전당대회를 습격하기로 한 거야. 근데 이번엔, 김영삼 총재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아. 그 쪽도 서울 깡패 300명을 동원했어. 김태촌 쪽 깡패 300명, 김영삼 측에서 부른 깡패 300명이 전당대회에서 맞붙게 됐어. 전당대회? 투표? 이런 거 아무 의미 없어. 이 주먹싸움에서 승리하는 쪽이 신민당의 차기 당권을 쟁취하는 거야.

▲ 정치와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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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25일, 대망의 신민당 전당대회 날. 새벽부터 시민회관 앞에 김영삼 측 깡패들이 진을 치고 서있어.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김태촌 쪽 깡패들이 몰려 오며 시민회관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 승리한 쪽은, 김태촌이었어. 김영삼 쪽 깡패들은 완전히 초죽음이 됐어. 김태촌은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거든. 바로 피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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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을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들고 간 거야. 전당대회에 무기를 들고 가면 경찰한테 제지를 당할 테니, 피켓을 들고 간 다음에, 널빤지를 떼버리고 각목 부분을 무기로 쓴 거야. 맨손으로 온 김영삼 측 깡패들은 속수무책으로 두드려 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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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결과는, 이철승 의원의 승. 이 전대미문의 습격 사건은, 훗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어. 드라마 '모래시계' 알아? 거기서 최민수가 청년들과 버스를 타고 이동해 피켓을 들고 전당대회장을 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이 신민당 사건이 모티프가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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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김태촌의 서방파는 단번에 국내 3대 조직으로 급부상했어. 70~80년대의 조폭 3대 조직은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야. 이 세 조직의 공통점은, 전부 호남 출신 조직들이라는 것. 왜 서울에 유독 호남출신 깡패들이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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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정권이 어디입니까? 힘이 있는 곳, 권력이 있는 지역. 그러다 보니 없는 전라도만 (소외돼서) 광주 뿐만 아니라 전북도 먹고 살기 힘들었고."
-이현수, 전 서방파 조직원

경부고속도로부터 포항제철까지, 70년대 굵직굵직한 규모의 국가 사업들이 대부분 영남지방에 집중됐어. 그래서 영남지역 깡패들은 지역을 벗어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했대. 그런데 호남 쪽 깡패들은 먹고 살 기반이 없어. 그러다가 서울로 진출한 깡패들이 성공하는 걸 보고, 호남의 청년들이 상경하기 시작한 거야. 조폭이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쓴다는 이미지가, 바로 그 시기에 만들어졌어.

"김태촌 큰형님, 조양은 큰형님 같은 형님들이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죠. 서울에서도 조직원을 많이 차출을 했었고."
-이현수, 전 서방파 조직원

호남 깡패들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조직들이 거대해지고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게 돼. 그리고 이 때부터 언론에 '조직폭력배'라는 단어가 등장했어. 그렇게 80년대 조폭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는데, 그 중에서도 김태촌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았어. 나이트클럽, 호텔, 오락실,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하고, 점점 몸집을 키우더니, 1986년 주먹계의 삼국통일을 이뤄내. 당시 김태촌의 나이, 36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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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에 김태촌이 대한민국 주먹계를 평정한 비결은, 바로 이거야. 박 검사와 함께 찍은 사진. 보통 검사와 조폭은 대척점에 있지. 검사가 조폭을 잡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김태촌은 검사와 인연을 맺었어. 어떻게?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줄게.

▲ 조폭과 검사의 인연

김태촌이 전국을 평정하기 1년 전인 1985년. 그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야. 출소가 얼마 안 남아서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진 속 박 모 부장검사가 김태촌을 찾아왔어. 이때 까지만 해도 김태촌은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대. 고검의 부장검사가 서울에서 지방 교도소까지 그냥 올 리가 없잖아. 김태촌은 잔뜩 긴장한채 접견실로 들어갔어.

그런데 부장검사가 너무 반갑게 김태촌을 맞았어. 자신의 고향도 광주라며, 교도소 생활은 어떤지,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 그래도 김태촌은 경계를 풀지 않았어. 바로 그때, 부장검사가 뭔가를 내밀었어. 자신이 존경하는 의원님의 자서전인데 읽고 본받으라며, 출소하면 착하게 살라고 책을 선물하러 왔다는 거야. 이날 박 검사는 정말 김태촌에게 책만 전해주고 갔어.

부장검사가 다녀간 뒤부터, 이상한 일이 생겨. 김태촌을 대하는 교도관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어. 심지어 김태촌의 누나가 면회 올 때마다 찝쩍대는 교도관이 있었는데, 이 부장검사가 다녀간 뒤부터 누님을 깍듯하게 모셨대. 김태촌은 박 검사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뭐든 간에, 이런 든든한 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렇게 출소 후, 김태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김태촌은 출소하자마자 바로 박 검사부터 찾아가. 두 사람은 같이 술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그러면서 친형제만큼 막역한 사이가 됐어. 그런데 박 검사는 부장검사 말고, '새마을 축구회 회장님'이란 직함도 가진 사람이었어. 이 새마을 축구회, 회원만 무려 83만명이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5공 실세부터, 정치인, 사업가까지. 조기축구회 라인업이, 무슨 국제포럼 수준이야. 당시 새마을운동협회의 수장은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였어. 박 검사 덕에 김태촌도 어마어마한 인맥을 얻게 됐지. 한 번은 김태촌이 서화전시회를 열었는데, 유명 인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대.

"개막식 때엔 유명 인사들이 테이프를 끊었다. 정치인, 법조인, C그룹 이 회장님 등 사업가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인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림 몇 점씩을 구입해 갔다. 200여점 전시한 그림은 순식간에 다 팔려 나갔고, 대성공이었다."
-김태촌 수기 중

이뿐만이 아니야. 김태촌이 조폭 단합대회를 열었는데, 박 검사 뿐만 아니라, 전직 국회의원까지 와서 축사를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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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소위 주먹들이 모여서 사람 죽이지 않고 패싸움하지 않기로 단합대회를 연다는 거야. 그날 나도 축사를 와서 해달라는 거예요. 좋은 일하고 화합한다고 하니까, 좋다고 하고 내가 거기 가서 축사를 한 번 해줬어."
-전 국회의원

김태촌은 작은 기업에 투자까지 해. 조폭 두목이 아니라 어엿한 사업가로 신분을 포장하고, 잘나가는 인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거지. 박 검사를 만난 후 김태촌의 인생이 만사형통이야. 딱 하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박 검사는 왜 나를 찾아왔을까?' 하는 것. 출소 후에도 뭔가를 부탁하는 건 늘 김태촌 쪽이었거든. 이 때까지만 해도, 박 검사는 작은 부탁 하나 한 적이 없었어.

▲ 혈서로 맺은 '신의'

그러던 어느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박 검사인데 자신의 검사실로 와 달래. 조직의 보스를 굳이 보는 눈도 많은 검사실로 부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김태촌은 급히 검찰청으로 들어갔어. 한참 뜸을 들이던 박 검사는, 김태촌에게 처음으로 부탁을 하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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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인천에 있는 한 호텔이야. 객실이 44개, 나이트클럽까지 갖춘 규모가 꽤 큰 호텔이야. 박 검사의 초등학교 동창인 황 사장이 운영하는 곳인데, 박 검사도 여기에 4,800만원을 투자했어. 공직자 신분이라 차용증도 없이 그냥 믿고 맡겼대. 근데 이 호텔이 적자가 나면서, 이자는 커녕 원금도 받지 못해. 명색이 검사 신분에 직접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잖아. 박 검사 혼자 3년 넘게 끙끙 앓고 있었다는 거야.

김태촌은 도와주겠다고 나섰어. 바로 애들을 끌고 황 사장을 찾아가 협박했어. 잔뜩 겁 먹은 황 사장은 돈을 갚겠다고 약속했어. 그런데 며칠 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이 꼬이기 시작해. 박 검사가 김태촌을 다시 부장검사실로 불렀는데, 박 검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늘 점잖던 박 검사가 "내가 말이야 태어나서 이런 모욕은 처음이야!"라며 노발대발 난리가 난 거야.

알고 보니까 김태촌이 다녀간 뒤에, 황 사장이 검찰에 진정서를 넣었어. 박 검사가 깡패를 동원해서 자신을 협박했다고. 그 일로 박 검사는 감찰과에 불려가서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한테 조사까지 받았대. 분노에 찬 박 검사가 한참을 씩씩대더니,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어.

"박 검사가 다급히 얘기했다. 어떤 조건도 다 들어주겠으니 조급히 황 사장만 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황 사장의 머리카락을 살해했다는 증거로 몇 개만 뽑아 오라는 것이다. 황 사장 머리카락이라도 씹어서 삼켜버리면 분이 풀리겠다는 것이다."
-김태촌 수기 중

김태촌은 고민에 빠졌어. 황 사장이 깡패한테 협박 당했다고 진정서를 넣었잖아. 이 상황에서 황 사장이 살해를 당하면, 경찰은 협박한 김태촌을 의심하겠지. 김태촌이 망설이자, 박 검사가 "너도 날 배신하겠다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 "너 다시 내가 잡아 넣을 수도 있다"고 협박도 하기 시작해. 살인은 최하 징역 5년이지만 폭력단체 조직은 최하 징역 10년이라면서 겁을 줘. 김태촌은 박 검사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어. 단, 몇 가지 조건을 달았어.

"1. 절대 사표를 쓰지 말 것. 현직 검사로 남아 사건을 수습할 것.
2. 행동대원 2명을 곧바로 자수 시킬 테니, 3년 정도의 징역형을 보장하고 매월 생활비와 옥 수발비를 대줄 것.
3. 만일 내가 구속된다면, 석방되는 그날까지 매달 가족 생활비를 대줄 것.
4, 이 약속을 지킨다는 증표로 혈서를 쓸 것."
-김태촌 수기 중

김태촌의 수기에는 박 검사가 이 조건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혈서를 쓴 거라고 나와있어. 그럼 두 사람은 혈서에 뭐라고 적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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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義(신의). 믿음과 의리. 과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켰을까?

▲ 호텔 사장 피습 사건

1986년 7월 26일 새벽 4시. 황 사장은 평소처럼 자신의 호텔 201호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려. 황 사장의 친척이자, 호텔 책임자야. 황 사장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방문을 열었어. 그 순간, 낫을 든 괴한이 밀고 들어오더니, 그대로 황 사장을 침대로 넘어뜨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어. 그런데 황 사장, 전직이 깡패야. 괴한들이 휘두르는 낫을 맨손으로 잡아낸 황 사장. 그러자 뒤에 있던 또 다른 괴한까지 합세해서 공격해. 곡괭이로 황 사장의 다리를 무참히 내리찍어. 황 사장의 양다리가 으스러지고 뼈도 다 부러졌어. 그래도 황 사장은 끝까지 낫을 놓지 않았어. 결국 괴한들은 도망쳤고, 황 사장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어.

그 시각, 부하들의 연락을 받은 김태촌은 박 검사의 집으로 향했어. 사전에 약속했어. 작전에 성공하면 '동해안에 해가 떴다', 실패하면 '서해안에 해가 졌다' 이런 둘 만의 암호를 정한 거야. 김태촌은 초인종을 누르고 '동해안에 해가 떴다'라고 말했어. 비록 황 사장을 죽이지 못했지만, 평생 걸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생각했던 거지. 박 검사는 신이 나서, 아침부터 김태촌과 소주를 마셨대. 이날 두 사람은 완전 범죄를 자신했어. 행동대원 두 명을 자수시키기로 한 것도, 하지 않기로 했어. 충격을 먹은 황 사장이 경찰에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열흘 뒤, 김태촌이 부하들과 같이 호텔 커피숍에 있는데, 경찰 수 십명이 들이닥쳐. 김태촌이 도망을 가야하나 주변을 살피는데, 현장에 박 검사가 나타났어. 박 검사는 경찰들을 세워놓고 한참을 얘기해. 잠시 후 김태촌은 박 검사와 함께, 경찰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나와. 박 검사가 잠시 할 말이 있다면서 김태촌을 데리고 나온 거야. 약속한 대로 뒷수습을 해준 거지.

두 사람은 아직까지는, 서로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완벽한 한 팀이야.

그러면 이들의 바람대로, 황 사장 사건은 이렇게 조용히 묻혔을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게 돼. 심지어 이 사건, '꼬꼬무'에서도 다뤘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조폭들의 집단 살인사건,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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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사장 피습 사건이 있고 20일 후, 서울의 한 룸살롱에서 조폭들끼리 싸움이 붙었어. 서울 목포파 VS 맘보파의 싸움인데,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어. 맘보파 행동대장이 고향 선배를 보고 인사를 안했다는 이유로 서울 목포파 조직원의 뺨을 때린 거야. 이때부터 양 조직원들이 우르르 나와 싸우기 시작해. 그런데 그때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발목에서 칼을 꺼냈고, 순식간에 룸살롱은 아비규환으로 변해. 맨손으로 싸우던 맘보파 조직원 7명 중 4명이 사망했어. 물론 그 전에도 조폭간에 싸움은 있었지만, 이렇게 잔혹한 살인사건은 처음이었던 거야.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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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건이 김태촌과 무슨 상관이었을까? 이날 패싸움을 벌인 맘보파가 바로, 서방파의 하부 조직 중 하나였거든. 맘보파의 배후로 김태촌의 이름이 보도되기 시작했어. 이 뉴스를 보고 눈이 번쩍 뜨인 한 사람, 바로 황 사장이었어. 황 사장은 병실로 기자들을 불러 인터뷰를 진행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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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고 나가면서 문을 여니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바람에 제가 힘이 없으니까 뒤로 떨어졌죠. 몸은 뒤로 뒤집어지고 다리가 위로 가니까 (낫으로) 다리를 찍은 거죠. 두 번을 낫으로 찍고. 그래서 내가 살려고 낫만 붙들어 잡은 거예요."
-황 사장, 당시 N호텔 사장

한 달간 묻혀있던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시작해. 게다가, 김태촌과 함께 박 검사까지 수사선상에 올라. 심지어 이런 기사까지 보도됐어.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OO호텔 커피숍에서 김 씨 및 윤 모씨, 손모 씨 등을 검거하려 했으나, 김 씨가 때마침 커피숍 안에 있던 박 모 서울고검부장검사와 '할말이 있다'며 옆방으로 들어간 뒤 그대로 도주했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냈다."

꼬꼬무

박 검사가 김태촌의 도주를 도왔다는 사실까지 보도된 거야. 경찰은 즉시 수배령을 내리고, 김태촌 앞으로 현상금도 걸어. 그리고 검거하는 경찰에게는 1계급 특진도 약속했어. 그런데 보름 가까이 전국을 다 뒤졌는데도, 김태촌의 머리카락 하나도 못 찾았어. 그럼 박 검사는? 경찰은 박 검사를 소환하지도 못했어. 검찰 측에서 조직적으로 막았거든. 이건 검찰 내부의 일이니까, 자기들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한 거야.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그럼 검찰 조사는 제대로 이뤄졌을까? 검찰은 박 검사를 딱 한 번 불러 조사했어. 그런데 박 검사가 혐의를 부인하니까, 그냥 돌려보냈다는 거야. 겨우 반나절 동안의 일이야.

그 시각 김태촌은 제주도의 한 파출소 앞에 나타났어. 잘 아는 형님이 숨을 은신처를 마련해줬는데, 그게 파출소 옆집이었대. 매일 파출소 옆을 지나다녀도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심지어 서울에 있던 여자친구까지 불러 함께 지냈어. 수배 중에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 박 검사라는 든든한 빽이 건재했으니까.

▲ 박 검사의 배신

그런데 며칠 후, 신문을 보던 김태촌이 깜짝 놀라. 박 검사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제출했다는 거야. 언론에서 황 사장 피습 사건을 계속 물고 늘어지니까 버티기 힘들었는지, 혼자 살겠다고 김태촌과의 약속은 저버렸어. 김태촌은 일단 박 검사를 만나야겠다 생각해서 바로 서울로 향했어. 그런데 박 검사를 만나지 못해. 제주도에서 몰래 배를 타고 오다가 경찰에 검거됐거든.

경찰은 붙잡힌 김태촌에게 황 사장 피습사건에 박 검사가 연루되어 있는지부터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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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사장과 내가) 사업을 동업하기로 하고 약정서를 작성을 했는데 개업한 지 한달 만에 약속을 파기하고 (내가) 전과자라는 점과 (황 사장이) 처남에게 빌린 돈을 안 주기 위한 작전과 나를 호텔 사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작전으로 (황 사장이) 모든 일을 와해시킨 것 같습니다."
-김태촌, 검거 직후

함께 호텔 사업을 하던 황 사장이 동업자인 자신을 몰아내려고 거짓 신고를 했다는 거야. 그러면서 박 검사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끝까지 잡아뗐어. 김태촌은 훗날, 박 검사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모든 십자가를 지었다고 주장했어. 정말 그 '신의'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박 검사라는 빽이 사라진 김태촌은 징역 5년,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아. 혼자 다 뒤집어쓰고 또 다시 감옥에 가게 된 거지. 게다가 2년 후에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돼. 김태촌이 폐암 선고를 받은 거야. 사람들은 박 검사에게 배신 당하고 화병을 얻은 거라고 했어. 권력에 빌붙은 조폭의 비참한 말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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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태촌은 형집행정지로 감옥에서 나오게 돼. 암이 심장벽까지 전이돼 왼쪽 폐를 통째로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거든. 김태촌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어. 그럼, 새 삶을 얻은 김태촌은 이제 좀 달라졌을까?

김태촌은 평생 반성하는 마음으로 착하게 살겠다며, 경기도의 한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모임을 만들어 주먹계 후배들과 봉사활동을 다니고, 각종 모금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부도 했어. 그런데 1년 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혀.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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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범죄와의 전쟁은 지속될 것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범죄와의 전쟁'(10.13 특별선언), 노태우 대통령이 헌법에서 부여한 모든 권한을 동원해 폭력조직을 전면 소탕할 것을 선언한 거야. 동원된 경찰만 16,000여명. 2년간의 치열한 검거 끝에 274개의 조직, 조직원 1,421명이 검거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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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검거된 조폭 명단에 김태촌의 이름이 있었어. 알고보니, 폐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조금 살만해지니까 바로 일을 꾸민 거야. 종교에 귀의한 척 하면서 뒤로는, 국내 유명 호텔들의 도박장 운영권을 강탈하고 다녔던 거야.

김태촌은 결국, 서울의 한 사우나에서 검거됐어. 검거 당시 김태촌은, 1억원 수표 2장, 100만원 수표 18장, 엔화에 달러까지. 현금만 무려 2억 1,800만원을 가지고 있었대. 사우나 가는데 현금 2억원 가량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경찰은 당시 그의 재산이 20억원 가까이 될 거라고 추정했어. 폐암 수술을 받고 불과 1년 4개월 만에 이 엄청난 재산을 모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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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은 황 사장 사건으로 받은 5년에, 추가로 10년을 더해서, 무려 15년 형을 선고받았어. 사건을 혼자 뒤집어 쓰며 재기를 노렸는데, 결국 김태촌에게 남은 건 3배로 늘어난 형기 뿐이었던 거지. 이때 김태촌의 나이가 마흔이었어.

▲ 한때 '신의'였던 두 사람의 진실공방

2004년도에 김태촌은 또 뉴스에 나와. 18년간 입을 꾹 닫고 있던 김태촌이, 86년 황 사장 폭행사건이 당시 박 검사의 살해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폭로한 거야. 김태촌의 폭로를 최초로 보도한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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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말경에 김태촌 씨의 누나가 저를 찾아왔어요. 김태촌 씨가 정희상 기자에게 진실을 폭로할 게 있다. 무슨 얘기인가 하고 들어봤더니, N호텔 피습 사건이 사실은 현직 검찰 간부가 살인 교사한 것을 그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살고 있다는. 상당한 쇼킹한 얘기 아닙니까.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찰 간부가 그랬다고 그러니까. 당시에 현직 검찰 간부가…"
-정희상 시사in 기자, 김태촌의 폭로를 최초 보도

이후 김태촌은 정 기자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해. 무려 6개월 동안. 그 편지를 모아놓은 것이, 바로 '김태촌 수기'야. 그럼 김태촌은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까? 당시의 김태촌의 입장을 들어볼게.

꼬꼬무

"아주 한 많은 사연이 있으니까 그렇죠. 18년간 (침묵)했다는 것 자체가 인제 와서 증거 인멸할 것도 없고. 나만이 갖고 있는 한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한을 풀어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진실을 밝히자. 이게 내 뜻이었어요."
-김태촌, 2005년 당시

죽기 전에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싶다는 거야. 그 무렵 검사직을 관둔 박 검사는 사무실을 개업해 변호사 일을 하고 있었어. 정 기자는 당사자한테 확인하기 위해 박 검사를 찾아갔어. 박 검사는 인터뷰에 응했어. 박 검사도 18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연 거야. 그런데, 김태촌이 말한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

정 기자: 김태촌 씨가 인천 N호텔 피습사건은 박 변호사가 현직 고검부장검사 시절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맞나요?
박 전 검사: 황당 무계합니다. 김태촌은 보호감호 재판부에 '동정해달라' '억울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박 검사는 살해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어. 사실 김태촌이 살인청부를 주장한 타이밍이 좀 애매하긴 했어. 그때가 출소를 딱 한 달 앞둔 시점이었는데, 김태촌에게는 보호감호가 7년이 남아 있었어. '보호감호제도'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재소자들을 감호소에 머물게 하는 제도로, 지금은 폐지됐어. 박 검사는 김태촌이 보호감호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두 사람이 주장이 또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돈을 받았다는 부분이야. 김태촌은 "살인 청부를 폭로하기 몇 해 전, 박 검사가 병원으로 찾아와서 내게 2,000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했어. 여기에 박 검사는 이렇게 말했어.

"김태촌이 돈을 받았다고 시인하던가요? 기억이 안 나는데. 시인을 했다면 돈을 줬겠죠. 김태촌이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도와달라고 하길래, 내가 돈 일부를 줬습니다. 그 2,000만원 준 것 외에는 기억도 안 납니다."

박 검사가 김태촌에게 2,000만원을 줬다는 건 인정한 셈이야. 다소 애매한 박 검사의 답변. 그래서 수소문 끝에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를 직접 만나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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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총 세 번 봤습니다. 병원에서 그 때 당시 두 번 보고, 형님 병원에서 잠깐 나오셔서 전체 식구들 식사를 누나가 하자고 해서 식사했을 때, 박 검사 소개할 때 (봤어요) 박 검사가 좀 미안한 투로 많이 이야기한 것 같더라고요. 지금 기억해 보면. 그 사람 가고 나서는 (김태촌이) 좀 짜증스러운 표정도 많이 하고. 그런데 이제 (박 검사가) 누나한테 용돈 좀 챙겨줬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형님은 이렇게 얼마 주는데 안 받으니까 누나한테 줬을 거 아닙니까. 얼마 들어있는지는 우리는 사실 모르고."
-이현수, 전 서방파 조직원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박 검사는 굳이 왜 김태촌을 찾아가 돈까지 줬을까. 김태촌을 입막음 하고자 한 걸까? 누가 진실을 말하는 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 다 원하는 바를 이루진 못했어. 박 검사의 바람과 달리 김태촌은 모든 걸 폭로해버렸고, 김태촌의 바람과 달리 그의 보호감호 재심 청구는 기각이 됐어. 18년 만의 이 진실공방은 그렇게 허무하고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으로 끝이 났어.

그리고,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은 게 하나 더 있어. 두 사람이 함께 썼다던 그 혈서. 황 사장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데, 박 검사는 혈서를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김태촌은 끝까지 혈서를 공개하지 못했어. 혈서에 썼던 '신의'. 애초에 이 두 사람 사이에 그 신의가 있긴 했을까?

▲ 김태촌의 비망록

근데 김태촌의 주먹을 산 사람이, 박 검사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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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태촌의 비망록이야. 전부 김태촌과 검은 거래를 한 사람들이야. 국회의원, 경찰, 군인, 의사, 교수, 연예인, 심지어 안기부까지. 대체 이들과 김태촌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갔던 걸까. 이 비망록을 직접 쓴 사람을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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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 기도원 안에 세계 선교 센터가 있습니다. 거기 있으면서 형 집행 정지인데 때때로 내가 운전을 많이 했죠. 그 당시에 제일 놀랐던 건 안기부. 태촌이 형이 외국에서 뭐 사들고 들어올 때 전혀 검문 안 거치고 지금 말하면 출입국 심사를 안 거치고 바로 들어오는 사건 같은 거. 군인들이 태촌이하고 같이 최전방에 가서 김일성 별장까지 들어갔다 오는 걸 보면서 군인들이 별(계급)자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부탁하는구나. 그 당시에 높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솔직히 말해서 건달들한테 이런 것까지 부탁해야 하는가 할 정도로 그런 마음을 느꼈던 건 사실이고요."
-구상열 목사, '김태촌 비망록' 작성

당시 김태촌의 별명은 '밤의 대통령'이었어. 대한민국에 김태촌의 힘이 안 닿는 곳이 없었대. 비망록엔 김태촌에게 힘을 쥐어준 사람들의 이름, 전화번호, 심지어 오고간 돈의 액수까지 세세히 적혀 있었어.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비망록의 내용을 인정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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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터무니없는 소리! (그런 적) 전혀 없습니다. 걔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지.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거야 저하고 같이. 그러면 이 사람을 안다고 사진을 가지고 다니고 그러더라고."

-전 국회의원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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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거짓말이 많구만 그런 일이 없다고. 내가 김태촌한테 용돈 달라고 해본 일이 없어. 김태촌이 조직폭력배로 구속되고 그래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그전엔 모르지."
-전 국회의원 B씨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태촌에게 10원 한 장 받은 게 없다고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어. 거물급 인사들은 조사조차도 하지 않았어. 비망록에서 하단 구석에 적힌 몇몇 공직자들만 옷을 벗었대. 그래서 한 검찰 관계자는 "언제까지 지난 일을 문제 삼아야 합니까"라는 말까지 했어.

꼬꼬무

2013년 1월 5일. 김태촌은 결국 폐렴과 심장질환으로 사망했어. 63년을 살면서 그가 자유의 몸이었던 시간은 고작 30년 남짓이야.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거야.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회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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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 이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희는 이렇게 되지 말아라. 조직폭력이란 의리고 뭐고 이게 소설에서나 나오는 거지. 내 일생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면서 나 같이 되지 말아라.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 잘못 선택하면 영화나 소설에서 미화시킨 걸 믿지 말아라. 정말 불행하고 가장 나쁘게 되는 것이 조직폭력이다."
-김태촌

김태촌은 말년에 청소년을 선도하는 강연에 다니며, 조폭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그저 권력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호소했어. 적어도 이 말은, 진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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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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