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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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이상한 나라의 철수 리, "난 천사도 아니지만 악마도 아냐"…살인 누명 쓴 이방인 청년 조명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9.08 06:18 수정 2023.09.08 10:18 조회 2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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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이상한 나라의 철수 리,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철수 리'라는 부제로 이철수 사건을 조명했다.

1973년 6월 11일 샌프란시스코 경찰국, 목격자들에게 범인을 고르게 하는 라인업에서 목격자 중 3명은 6명의 동양인 중 한 남성을 지목했다.

이들은 일주일 전 일어난 차이나타운 살인사건의 용의자들이었다. 중국인 갱단의 간부를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로 스물한 살의 한국인 청년 이철수가 지목된 것.

이에 이철수는 차이나타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후, 이철수가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 부활한 사형법에 따라 그가 10년 만에 첫 번째 사형수가 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지역에 살고 있던 유재건 변호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사건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유재건 변호사는'형사 콜롬보'라 불리는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경원 기자를 만나 이 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이경원 기자는 철수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고, 이에 두 사람은 철수를 직접 만나러 갔다.

25살이 된 이철수는 이들의 면회를 거부했다. 그동안 도와주겠다던 한국인들 중 누구도 진짜 도움을 준 이는 없었고, 이에 도움을 주겠다는 이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던 것이다. 또한 스스로 포기한 상태라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에 두 사람은 진정으로 돕고 싶다고 설득했고, 철수의 마음도 달라졌다.

한국 전쟁 당시 태어나 생일이 8월 15일, 광복절인 철수는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가 몹쓸 짓을 당해 출산한 아이였다. 그런 철수가 미웠던 것인지 그의 어머니는 이모에게 철수를 맡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철수가 12살 때 다시 돌아온 어머니는 그에게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고 이에 철수는 어머니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이철수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4년 전 차이나타운 살인 사건부터 모든 것이 잘못된 것.

사건 며칠 전 집에 있던 철수는 동료에게 빌렸던 총을 만지다 오발을 했고, 경찰에 오발임을 밝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갱단을 살해한 총알과 철수가 오발한 총알의 크기가 같아 두 사건이 연관됐다고 판단한 경찰은 다음날 철수를 체포했다.

잘못이 없으니 살인 혐의가 무혐의일 거라고 생각했던 철수, 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이들은 없었다. 2,3초 본 것이 전부임에도 자신들의 잘못된 기억으로 철수를 지목한 목격자들. 이에 철수는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이후 악명 높은 트레이스 교도소에 수감된 철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였다. 그런 그를 보던 백인 갱단 소속의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위험인물은 그를 위협했고, 철수는 자신이 살기 위해 그가 꺼낸 칼을 빼앗아 찔렀다. 그리고 위험인물 모리슨은 그 길로 그대로 사망하고 만다.

철수는 자신을 돕겠다는 유 변호사와 이 기자에게 자신의 친구 란코 야마다를 만나보라고 했다. 일본인 이민 3세였던 란코는 친구 철수를 위해 혼자 증거를 모으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

자신이 아는 철수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란코는 철수에게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아선 안 된다는 신념과 정의감으로 시작한 란코는 철수 사건의 변호사 수임료를 위해 모금 운동까지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위해 변호해주지 않았고, 이에 란코는 스스로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로스쿨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유재건 이경원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 이에 란코 까기 셋이 의기투합하고 이들은 오로지 '철수를 구하자'는 목적으로 함께한다.

란코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철수 구출을 위한 작전을 펼쳤다. 그 첫 번째는 이경원 기자가 작성한 기사였다. 그는 새크라멘토 유니언에 철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상한 나라의 철수라는 타이틀의 기사는 6개월간의 취재 끝에 작성된 것으로 재판과정의 문제를 공론화하며 미국 사법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한인 교민 사회도 일어나서 구명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한국에서도 이 소식이 전해지며 구명 운동이 시작됐고 우리의 아들이라는 마음으로 동참한 이들은 진정서를 보내 그의 구명을 도왔다. 그렇게 늘 혼자라고 느꼈던 철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던 것.

언론을 향해 "나는 천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으로 감옥에 가두는 건 정당하지 않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힌 철수. 그의 이야기는 소수민족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이들은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었던 철수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구명을 위해 나섰다. 그리고 이는 범아시아적 인권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미국 전역에 철수의 사건을 가사로 만든 노래까지 울려 퍼지고 그의 결백을 밝히기 위한 재심 청원에는 미국의 유명 인권 변호사도 합류했다.

변호인단은 사라진 목격자를 찾아내어 그로부터 철수는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증언을 받아냈고, 제판 과정에서 철수를 범인으로 조작했던 정황도 포착했다.

그 결과 재판부는 이 전 재판의 불공정함 인정하고 재심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교도소 내의 살인 사건에 대한 유죄, 사형이 선고되고 변호인단은 또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그가 수감된 지 9년이 지나고 철수는 이 시간에 대해 "제가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은 그저 낭비된 것이 아닌 아시아인들에게 우리가 원하면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교훈을 준 것"이라고 평했다.

또 시간이 흐르고 철수 사건을 맡은 변호인단에는 새로운 변호사가 한 명 합류한다. 이는 바로 철수의 친구 란코. 란코까지 합류한 변호인단은 재심 판결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법원으로 향했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오고 이들은 철수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낯선 땅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이들은 이를 불가능을 이겨낸 승리라고 자평했다.

그럼에도 두 번째 재판이 끝나지 않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간 철수, 그는 제대로 자신의 무죄를 축하할 시간도 없이 두 번째 사건에 대한 재심을 준비했다.

그리고 철수 구명 위원회는 촛불 시위를 시작으로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1983년 두 번째 사건 항소심에서 2심 원심이 파기되었고, 사형수 신분을 벗어난 철수는 유변호사와 란코의 부모님이 자신들의 집을 담보로 한 보석금으로 진짜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83년 3월 석방된 철수는 무려 10년 만에 바깥공기를 마시게 된 것. 그는 자유를 찾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 전하며 진짜 미소를 지었다.

이후 검찰 두 번째 살인사건에 대한 형량 협상 제안을 철수는 수락했고, 우발적 살인을 인정하는 대가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차별과 저항의 상징 철수 리는 자신을 위해 싸워준 이들에게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시간은 영혼이 망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철수는 일자리도 갖고 적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는 결국 술과 마약에 빠졌고 이는 그를 믿었던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 후 그는 범죄 현장에서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고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상한 후에서야 방황을 멈추었다.

방황을 멈춘 철수는 남은 생애 동안 마약 퇴치 등 사회 운동에 힘썼고 2014년 2월,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철수에 대해 란코는 "끝에는 그도 행복한 사람이었다"라며 회상했다.

하지만 철수는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되는 운명으로 씁쓸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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