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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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명동 다방서 일어난 인질사건 비극…50년 만에 털어놓은 한 인질의 고백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8.18 12:47 수정 2023.08.18 13:03 조회 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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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7일 방송된 '인연과 악연 사이, 어느 인질의 고백'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뮤지컬 배우 신영숙, 가수 겸 방송인 하하, 그룹 마마무 멤버 문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재벌가 삼남매 차량 습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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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4년 5월 20일 월요일 오전 7시. 서울 구의동의 한 가정집은 아침부터 삼남매의 등교 준비로 정신이 없어. 이 삼남매는 서울 ㅇ호텔 근처 부촌에 살았어. 삼남매의 아버지는 당시 잘나가던 회사의 대표야. 교복, 자전거를 주로 만드는 기업이었는데, ㅇ호텔까지 인수했어.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이 된, 그 S그룹 맞아. 50년 전 그날, 이 재벌집 삼남매는 함께 등굣길에 나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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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운전기사가 집 앞에 차를 대고 대기 중이야. 삼남매가 탈 차는 '포드 20M'으로, 당시 가격이 184만 6000원이였어. 요즘 시세로는 1억 4천만원 정도야. 74년도에는 차가 있는 집 자체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 운전기사가 차로 등하교를 시킨다는 건 진짜 부자라는 이야기야. 그렇게 삼남매가 탄 차가 출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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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언덕을 내려오는데, 웬 남자들이 도로를 막고 서있어. 총 세 사람인데, 두 사람은 사복 차림이고 한 사람은 군복을 입은 채 총도 들고 있어. 운전기사는 근처에서 민방위 훈련을 하나, 생각하며 일단 차를 멈췄어. 총을 든 군인이 차 앞으로 다가오더니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해. 기사가 창문을 내리자, 갑자기 그 남자가 기사를 향해 총을 겨눠. 총을 겨눈 군인은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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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모 이병, 나이는 23세. 방위병, 즉 출퇴근 하는 군인이야. 부대는 천호동에 있었어. 이날 새벽 5시, 부대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이원모 이병은 조용히 무기고로 가서 카빈총 2자루, 실탄 500여발을 챙긴 후 부대를 유유히 빠져 나왔어. 무장 탈영이었어. 부대 밖에선 두 명의 민간인이 이원모 이병을 기다리고 있었어. 윤찬재와 최성환, 스무살 동갑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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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이원모 이병과 구의동에서 함께 자란 동네친구들이야. 재벌집 삼남매가 사는 그 구의동인데, 환경은 완전히 달랐어. 호텔 저 아래, 빈민촌에서 자랐거든. 삼남매가 탄 차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이들의 목적은 뭐였을까? 돈? 사회와 재벌을 향한 분노? 그런데 기사를 겨누던 소총이, 뒷좌석의 아이들을 향했어. 그러더니 아이들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했어. 삼남매는 부들부들 떨며 차에서 내렸어. 일촉즉발의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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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당들은 삼남매를 그대로 놔둔 채 차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운전기사한테 "당장 경부고속도로 타. 우린 지금 포항으로 간다"라고 말했어. 이들의 타깃은 아이들이 아닌, 차를 훔치려 한 거야. 이때가 오전 7시 50분. 무장 탈영병이 재벌집 차를 습격한 초유의 상황이야.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곧바로 전국에 차량 수배가 내려져. 74년에는 CCTV가 없었지만, 예상 외로 범인들이 탈취한 차량을 쉽게 찾을 수 있었어. 이 차가 국내에 몇 대 없어 눈에 띄었거든. 범인들의 위치가 확인된 건, 사건 발생 불과 15분 후인 오전 8시 5분경이었어.

수배 차량이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달리는 중인 게 파악되고, 인근 경찰들은 모두 비상 대기했어. 수원 톨게이트에서는 35세의 베테랑 교통경찰인 김장식 순경이 탄 고속도로 순찰 차량이 대기 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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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식 순경이 무전을 듣고 숨 죽인 채 도로를 살피고 있는데, 범인들이 탄 검은색 포드 차량이 지나갔어. 김 순경은 바로 따라붙었고, 영화에서 볼 법한 추격전이 경부고속도로에서 벌어졌어. 김 순경이 범인들에게 차를 멈추라 했지만, 그럴수록 범인들은 더 흥분해. 속도를 더 내라고 운전기사를 협박해. 이 상황에 운전이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 운전기사의 손발이 미친듯이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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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경찰차가 포드 앞을 가로막는데 성공했어. 김 순경이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범인들의 차로 다가갔어. 그런데 갑자기 벌컥 차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급히 내려 도망가. 운전기사였어. 잡혀있던 인질이 도망갔으니, 김 순경은 안심하고 잽싸게 조수석을 덮쳤어. 이원모 이병의 총을 뺏으려고 한 거야. 이 이병은 강하게 저항했어. 김 순경과 이 이병이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하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렸어. 뒷자리에 있던 최성환이 앞쪽에 총을 쏜 거야. 김 순경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어.

당황한 범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 그렇게 1km 정도 갔을까. 범인들은 다시 머리를 맞댔어. 그리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서울로 다시 올라가자. 거기서 다 폭로하고 끝장을 보자"라고 결정했어. 이들의 원래 목적지는 포항이었고, 거기서 일본으로 밀항하려 했어. 그런데 지금 그 계획이 변경된 거야. 이들이 폭로하려는 게 뭐길래, 이러는 걸까.

▲ 고속버스 탈취, 목적지는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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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오전 8시 50분. 김 순경을 쏜 지 30분이 지난 시각이야. 범인들은 다시 한번 총을 겨눴어. 이번엔 고속버스를 향해서. 또 다시 차량을 탈취한 거야. 그렇게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로 향하던 고속버스를 탈취했어. 그 안에 타 있던 승객은 무려 46명이었어. 범인들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남자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어. 나중에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 남자 승객들은 가족들을 인질로 남겨둔 채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어. 당시 여자 승객들은 총 14명이었어.

버스 맨 뒷자리엔 이원모 이병이 앉고, 운전석 바로 뒤엔 총을 둔 최성환이, 버스 복도 가운데에는 윤찬재가 섰어. 여자들 14명만 있는 이 버스 안은 공포로 가득해.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 범인들은 운전기사한테 의외의 장소로 가자고 했어. 바로 명동이었어. 50년 전 당시 명동은 서울의 유일한 번화가였어. 뭔가 폭로할 게 있는 이들이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을 찾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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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반포를 거쳐, 제3한강교를 지나고 있어. 지금의 한남대교야. 그런데, 다리 끝에 다다르자 버스는 멈출 수 밖에 없었어. 길이 바리케이드로 막혔고, 그 뒤로 총을 든 군경들이 쫙 깔려있어.

당장 인질들을 풀어주고 자수하라 했지만, 범인들은 자수는 커녕, 총을 난사하기 시작해. 군경도 공포탄으로 대응 사격을 했어. 총격전은 5분간 이어졌어. 그러다 갑자기, 고요해져. 버스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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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버스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내려. 인질로 잡혀있던 여자들 중 한 명이야.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걸어나온 그 여성은 안간힘을 쓰며 바리이드를 치우기 시작해. 범인들이 머리를 쓴 거야. 군경은 이 광경을 그냥 눈 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어.

바리케이드가 반쯤 열리자, 버스는 그대로 다시 내달려. 그리고 결국 목적지인 명동에 도착했어. 범인들은 각각 한 명씩, 총 세 명을 인질로 데리고, 바로 앞 건물로 들어갔어.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풀려났어. 당시 풀려난 인질 중 한 명의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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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있잖아요. 그걸 두 사람이 하나씩 들었어요. 칼빈이요. (총을) 많이 쐈어요. 오다가요. 한 20발쯤? 그 정도 쐈어요. 오면서. 오면서 그러는데, 3명만 인질로 끌겠다고 그래요. 버스 안내양을 빨간 옷 입은 사람이 인질로 데려갔었거든요. (끌려간) 인질은 총 3명이요. 여자들이에요 다."
-당시 버스 안에 잡혀 있던 인질

▲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극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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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이 버스에서 내려 들어간 건물은 명동에 있는 '유네스코 회관'이었어.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는 그 유네스코 맞아.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가 여기 있었어. 1967년에 준공됐는데, 지하 1층, 지상 13층이야. 74년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어. 은행, 백화점, 스카이라운지까지 갖춘, 명실상부 명동의 랜드마크였지. 그런 곳에 무장 탈영병들이 들어선 거야.

이들이 향한 곳은, 외부에서 가장 접근이 어렵고, 내부 상황을 절대 알 수 없는 곳. 바로 건물 지하였어. 그럼 유네스코 회관 지하에는 뭐가 있을까? 다방이 있었어. 일명 '유네스코 지하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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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이었지만, 다방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어. 테이블에선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한쪽에선 DJ가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 음악을 틀어. 그 시절엔 다방마다 신청곡과 사연을 틀어주는 DJ가 있었어. 서울 최고의 핫플레이스, 유네스코 지하다방의 DJ는 당시 21살 남도영 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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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엔 도영 씨가 선곡한 노래, 카펜터스의 'Yesterday Once More'가 흘러나오고 있었어. 노래처럼 다방 안은 아주 평화로워. 그땐 꿈에도 몰랐어. 곧 지옥이 펼쳐질 거란 걸. DJ 도영 씨는 그날을 평생 잊을 수가 없대. 긴 설득 끝에 도영 씨가 '꼬꼬무'에 출연했어. 처음으로 꺼내 놓는 50년 전, 그날의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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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죠. 처음에 음악실에서 문을 보는데, 맨 앞에 어떤 사람이 사냥총을 들고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그때 사냥총인 줄 알았죠. 카빈총인 줄 몰랐어요. 다방에 카빈총을 들고 오는 사람은 없을 거잖아요. '다방에 무슨… 사냥총까지 들고 오는 사람이 있어?' 속으로 약간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있다가 사람들이 꾸역꾸역 안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막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그때 이상한 기운을 느꼈죠."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오전 10시. 다방에 있던 31명이 모두 인질로 잡혔어. 거기에 버스에서 끌고 온 사람까지 합치면 총 34명. 역대급 규모의 인질극이야. 그것도 서울 도시 한복판, 가장 화려한 명동에서. 밖은 난리가 났지. 완전 전시상황이야. 군경 300여 명이 쫙 깔렸어. 현장에 급파된 기자들도 그 긴장감에 압도당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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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이 굉장히 번화하고 사람들이 가장 모인 곳이거든요. 그런데 거리를 통제해서, 명동 거리가 쥐 죽은 듯한 상황이었죠. 그리고 카빈총을 든 군인들이 군데군데 서있고. 또 앰뷸런스가 서있고.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였어요. 비상사태처럼 느껴졌죠.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가 100여 명 될 거예요. 유네스코 회관 건물 건너편에 다들 앉아서 안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이병훈 사진기자, 당시 사건 현장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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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당시 다방의 내부야. 범인들은 들어오자 마자 양쪽 출입문 중 한쪽을 의자와 테이블로 막았어. 그리고 인질들은 남녀로 나눠서 벽 쪽에 몰아놨어.

오전 10시 30분. 상황이 정리된 후 이원모 이병이 주변을 쭉 둘러보더니 인질들에게 "내 말만 잘 들으면 해치지 않는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DJ 도영 씨를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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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DJ를 찾았던 것 같아요. 불러서 나가니까, 범인들이 보기에는 나이도 자기들과 비슷해 보이고 그러니까. 심부름 같은 걸 나한테 맡긴 거죠."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DJ 도영 씨는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하고, 문 밖까지 오가며 군경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어.

▲ 어머니와 여자친구, 그리고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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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질극 1시간 가량이 지났을 오전 11시 무렵. 다방 전화기가 울려. 첫번째 통화 협상이야. 이원모 이병이 전화를 받았어. 수화기 너머 서울 중부서장은 이원모 이병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어. 그러자 이원모 이병은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어. 일단 자수하라고, 자수하면 국방부 장관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설득하니 이 이병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이냐"며 전화를 확 끊어버렸어.

흥분한 이원모가 천장에 총을 마구 쐈어. 천장 파편들이 인질들 머리 위로 쏟아져. 얼마나 무서웠을까. 총소리가 그치자 다방 안은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 그런데 이원모는 왜 국방부 장관을 만나려 했을까?

다시 시간이 지나 오후 1시. 다방 전화가 또 울려. 두번째 통화 협상이야. 이번에도 이원모가 받았어. 이번 통화 상대는, 이원모의 어머니였어. 인질범들이 멘탈을 흔들기 위한 전략이야. 하지만 어머니와의 통화에도 이원모는 단호해. 어머니의 설득도 통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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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방 문이 열리고 누군가 걸어 나왔어. 인질 중 한 명이었어. 40대 여성 최 씨 혼자 걸어 나온 거야.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최 씨가 심장병이 있다며 총소리 때문에 죽을 거 같다고 호소하자, 범인들이 그냥 나가라고 했다는 거야. 아프다고 인질을 풀어주는 인질범이라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

경찰은 최 씨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었어. 인질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있다는 거야. 한 명이 자수하자고 했지만, 나머지 두 명이 반대하고 있대. 자수하자고 한 사람은, 군복을 입은 사람이래. 그럼 이원모 이병이잖아? 아무래도 어머니를 불러 통화를 시킨 게, 그래도 효과가 있었나 봐. 이원모 이병, 분명 흔들리고 있어. 그래서 군경은 새로운 카드를 꺼내. 범인들 마음을 더 열기 위해, 안에 햄버거를 넣어주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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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 맥도널드 같은 햄버거 프렌차이즈가 없던 시절이야. 주로 빵집에서 햄버거를 만들었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대. 이때 시간이 오후 3시, 한창 배가 고플 시간이지. 중부서장은 다시 다방에 전화를 걸어서, 배고프지 않냐며 햄버거와 빵을 좀 넣어주겠다고 했어. 범인들은 이 제안을 받아 들였어. 그럼 이 햄버거, 누가 갖고 다방으로 들어갔을까? 가족보다 더 가까울 수 있는 사람, 바로 이원모의 여자친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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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다방 문이 열리고 여자친구는 햄버거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어. 조금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인질들도 범인들도 햄버거로 배를 채웠어. 눈치를 보던 여자친구가 이원모에게 애원했어. 자수하면 선처해준다니 여기서 나가자고. 그런데 그 순간, 이원모의 눈빛이 다시 싸늘해졌어. 여자친구는 이원모를 설득하지 못했고, 그대로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잠시 후, 뜻밖의 일이 벌어져. 범인들이 식사 제공에 대한 답례라면서, 인질 8명을 풀어준 거야. 주로 고령이거나 몸이 약한 사람들이었어. 인질극 6시간 만의 일이야. 정말 이 인질범들, 예측할 수가 없지. 이제 유네스코 지하다방 안에는, 25명의 인질이 남아있어.

▲ 인질과 인질범으로 만난 또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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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인질극이 벌어진 지 8시간 째야. 다방 안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어. 음악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어. 인질극이 벌어지는 곳에서 음악이라니. 범인들이 DJ에게 음악을 틀어달라 한 거야. DJ는 존레논의 'Imagine'을 틀었어. 범인들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이 노래가 뭔지 정보를 묻기도 했어. 분위기가 많이 유해지자, DJ 도영 씨가 조심스럽게 "국방부 장관은 왜 만나려 하는 거냐" 물었어. 범인들, 순순히 얘기를 해줬을까?

"그때 그 친구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이 조금 차분해졌던 거는 사실인 거 같아요. 그 사람들 하고 대화를 해보니까, 부대 안에서 부대장하고, 기간병들… 현역들이죠. 돈을 모아서 (그 사람들에게) 방위병들이 상납하면 그때는 편하고, 근데 이제… 만약에 그때 돈을 제대로 상납을 안하면 그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기합도 받고 그런다는 거예요."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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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내에서 폭행과 갈취가 있었다는 거야. 이게 방위병이라서야. 출퇴근을 하는 방위병들에게 매일 1,500원씩 뜯어 갔대. 지금으로 따지면 10만원이 넘는 돈이야. 군인한테 그만한 돈이 어디 있겠어. 못 주는 날이 많았고, 그럼 구타를 당했어. 심지어 인질극을 벌이기 전날에도 고참들한테 심하게 맞았대.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던 도영 씨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라는 걸 느꼈어. 도영 씨 절친도 방위병이었는데, 얼마 전에 똑같은 일을 당했다고 했거든. 그래서 돈이 없다는 그 친구에게 도영 씨가 상납금을 보태주기도 했어. 도영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천호동에 있는 부대라고 했죠? 그럼 혹시, 박창모라고 아세요?"라고 물었어. 그러자 이원모 이병이 "당신이 창모를 어떻게 알아?"라고 답했어. 알고보니, 도영 씨의 절친이 이원모와 같은 부대 동료로 아주 친한 사이였던 거야.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의 친구였는데, 인질범과 인질로 만나게 된 것이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

"괴롭힘 당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저하고 이제 친밀감이 생긴 거죠. 친구의 친구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인연도 그런 인연이 없는 거예요. 넓은 명동에서, 그렇게 찾아온 곳이, 친구의 친구가 근무하는 다방으로 찾아온다는 것이, 그런 인연이 어디 있겠어요."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그때부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내 친구의 친구면, 나한테도 친구인 셈이야. 뭔가 대화도 잘 통해. 얘기를 계속 나눠보니, 뜻밖의 사실도 알게 됐어. 범인들은 애초에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대. 범인들의 원래 계획은 일본 밀항이었잖아. 돈을 안 바치면 구타 당하는데, 더 이상 돈은 없고, 벗어날 방법은 한국을 뜨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야. 그렇게 치기 어리고 허술한 범행 계획이 시작됐어. 그런데 포항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우발적으로 경찰을 쏘고, 일이 틀어지자 완전 무리수를 두게 된 거지. 국방부 장관을 만나 군 부조리를 알리자고, 그렇게 명동까지 와서 인질극을 벌이게 된 거였어.

이원모와 친구가 된 도영 씨는 그 뒤로 무한 특혜를 받았어. 자유롭게 다방 안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거야. 그러다 보니, 인질들도 긴장이 조금 풀렸어.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인질들은 조심스럽게 범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어.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자수하자", "내가 변호사인데, 자수하면 변호해주겠다"며 설득했어. 실제로 변호사는 아니었는데, 사칭까지 하면서 인질범들을 안심 시키려고 노력한 거야.

범인들이 조금씩 흔들리는 거 같았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또 돌변해. 이원모 이병이 총을 막 천장으로 갈겼어. 천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대. 지금 범인들의 감정이 완전 롤러코스터야. 종잡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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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와 탄환을 가진 인질극이란 건, 어떤 형태로 발전될지 모르는 정말 무서운 사건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긴장에 긴장이 계속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문창석, 당시 사건을 취재한 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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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조금씩 공포감을 느끼는 거죠. 인질로 잡혀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범인들이) 마음을 잘못 먹으면 여러 명이 사상을 당할 수가 있으니까요."
-이병훈, 당시 사건 취재한 사진기자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야. 안에서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밖에서 인질들의 가족들이 공포에 떨고 있어. 피가 마를 지경이야. 다방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군경과 기자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어. 제발 모두 무사해야 할 텐데.

▲ 인질범을 속이기 위한 가짜 신문

그날 저녁, 각 신문사마다 문의전화가 빗발쳤어. 당시 연락할 방법이 딱히 없으니, 내 가족이 거기 있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인질 구출을 위한 아이디어를 전하는 전화들도 쏟아졌어. 이 정도로 당시 국민들의 관심은 명동 유네스코 지하다방에 쏠렸어.

그 때, 처음으로 다방 쪽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무한 특혜를 받는, 인질 도영 씨였어. 도영 씨는 아주 결정적인 정보를 경찰에 전달했어.

"이 친구들이 자꾸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차피 경찰관까지 우리가 죽였는데… 나가서 우리가 무사하겠느냐'고. 그래서 제가 '그 경찰관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모르지 않느냐' 그러니까 범인들은 경찰관이 죽었을 거라는 거예요. 전화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으니까, 전화를 해서 '지금 이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한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만약 경찰이 죽었다면, 범인들은 자수해도 소용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거야. 인질범이 쏜 총에 맞은 김장식 순경은 어떻게 됐을까? 당시 신문 기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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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순경은 앞좌석 범인의 총을 뺏으려다, 뒷자리에 탄 사복 차림 범인의 총격 네 발을 가슴과 등, 왼쪽 겨드랑이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김 순경은 상오 8시 40분께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 中

안타깝게도 김 순경은 순직하고 말았어. 그런데 범인들은 김 순경의 생사를 몰라. 다방에 TV도 라디오도 없었으니 알 수가 없지. 만약 범인들을 속일 수 있다면, 김 순경이 살아있다고 믿게 한다면? 그렇게 경찰은 기발한 작전을 기획해. 김 순경이 생존했다는 가짜 신문을 발행하는 거야.

당시 한국일보가 긴급 협조 요청을 받아들였어. 인질범의 자수를 유도하려고 가짜 신문을 만든다는 건, 세계 언론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야. 한국일보 측이 제시한 조건은 단 하나였어. 그 신문을 오직 범인만 보게 해달라는 것. 그래서 지금은 그 가짜 신문을 찾을 수가 없어. 대신 '꼬꼬무'가 그 자료를 취합해서, 똑같이 재현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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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식 순경 생명 지장 없어"
"김장식 순경은 범인들이 쏜 카빈총에 옆구리를 맞아 부상을 입고 입원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엔 지장이 없는 걸로 보인다."

이 가짜 신문을 DJ 도영 씨가 밖으로 나와서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어. 그 때 시각이 밤 12시, 인질극이 시작된 지 14시간이 지난 시점이야. 도영 씨는 신문을 건넸고, 이원모 일병이 천천히 신문을 읽어 내려갔어. 기사를 읽고 좀 안심하는 눈치야. 그런데 옆에 있던 최성환이 신문을 들여다보면서, "이거 가짜야"라고 확신했어. 총을 쏜 장본인이니까, 총을 네 발이나 맞고 살았을 리 없다고 생각한 거야. 결국 이 역사적인 가짜 신문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어.

▲ 도라지 위스키와 '작은 새'

범인들은 배신감에 다시 흥분하기 시작해. 이원모는 전화기를 아예 부쉈어. 그리고 허공에 총을 막 갈기더니, 주방으로 가서 뭔가를 들고 나왔어. 그걸 본 인질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이제 정말 죽었구나' 했어.

꼬꼬무

"다방 안에 있는 LPG통 있잖아요? 그게 3~4개가 있었는데 그걸 다 모아서 다방 정 중앙에 다 모아 놓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사실 사람들이 다 겁에 질리게 됐죠. 그 프로판 가스에다가 만약에 총을 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다 타죽게 되잖아요. '어쩌면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공포스럽고 그랬죠."
-남도영,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한순간 욱하면, 모두가 끝장이야. 범인들은 다방 한 쪽 구석에 의자와 테이블을 쌓아 작은 공간을 만들어 인질들과 공간을 분리했어. 마치 최후를 앞두고 자기들끼리 정리할 게 있다는 듯이. 잠시 후, 범인들이 "DJ, 여기 술 있으면 한 병만 갖다 줘라"고 말했어. 도영 씨가 술을 꺼내왔어. 바로 이 술, '도라지 위스키'야.

꼬꼬무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도 등장하는 도라지 위스키. 국립조세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실제 도라지 위스키를 특별히 '꼬꼬무'에 대여해줬어. 사실 이 술은 진짜 도라지로 만든 건 아니고, 일본 위스키 도리스를 모티브로 만든 거래. 진짜 양주도 아니야. 에탄올에 위스키 향과 식용 색소만 넣은 거야.

새벽 1시. 고요한 다방에 홀짝홀짝 술 마시는 소리만 들려. 인질들은 그 소리가 너무 불안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술김에 가스통에 총이라도 쏘면 모든 게 끝나니까.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그 때, 범인들이 도영 씨에게 "노래나 한 곡 틀어봐"라고 했어. 도영 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어니언스의 '작은 새'라는 노래를 틀었어.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 곳에는. 길 잃은 새 한 마리 집을 찾는다"라는 가사의 곡이야. 그런데 이 노래를 듣던 범인들이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어.

꼬꼬무

"만약에 이제 범인들이 이런 사건에 휘말리지만 않았으면 그냥 편안하게 이런 음악 듣고,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런데 바깥에 나가면 이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 안에서 마음도 심란하고 한편으로는 '인생 이제 다 끝났다'라는 생각도 들 테고, 한편으론 '내가 왜 이렇게 후회할 짓을 했을까'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이 들었겠죠"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끝을 알 수 없는 인질극. 어느덧 새벽 4시가 됐어. 그때, 인질범들 옆에 있던 도영 씨의 눈이 순간 번뜩여. 총을 든 이원모가 졸기 시작한 거야. 윤찬재는 이미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고, 총을 든 최성환도 눈이 감겨. 초긴장 상태로 꼬박 하루를 보내고 독한 술까지 마셨으니, 졸리는게 당연해.

도영 씨의 심장은 막 뛰기 시작해.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 도영 씨는 이 순간을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도영 씨는 몇몇 인질들에게 조용히 사인을 보냈어. 총을 뺏을 테니 같이 달려보자고. 실패하면 모든 게 끝나. 기회는 단 한 번, 목표는 이원모 이병이야. 도영 씨는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다가가기 시작했어. 이원모 이병이 혹시나 깰까, 불안한 마음에 도영 씨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밖으로 소리가 들릴 지경이야.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한걸음씩 다가가니, 어느새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까지 왔어. 드디어, 도영 씨는 이원모에게 달려들었어. 과연 어떻게 됐을까?

꼬꼬무

[속보]유네스코 지하다방을 점거, 인질극 난동을 벌이던 이원모 이병 등 세 명의 범인은 21일 오전 6시, 다방 안에 용감한 인질 시민과 군 돌격대의 협공으로 검거됐다. 범인 검거에 수훈을 세운 것은, 다방 디스크자키 남도영 군…
-당시 뉴스 내용 中

도영 씨가 이원모의 총을 뺏어서 멀리 던지자 마자 서너명의 인질들이 소리를 지르며 남은 두 명한테 달려 들었어. 밖에 있던 기동대도 그 소리를 듣고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왔어. 그 시각이 새벽 6시 5분. 범인들이 일망타진됐어. 인질극이 터진 지 20시간만에 인질들은 무사히 가족들의 품에 돌아왔어. 명동거리에서 뜬 눈으로 기다린 가족들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어.

꼬꼬무

▲ 무장 탈영병의 인질극, 처음이 아니었다

도영 씨는 취재진에게 둘러싸였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인질범을 잡은 영웅 도영 씨에게 쏟아졌어. 하지만 도영 씨는 기자들 질문을 다 사양했어. 사실 도영 씨는 지난 50년 동안, 그날 겪은 일을 숨겨 왔어. 심지어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한 번도 얘기를 한 적이 없대. 그런데 '꼬꼬무'와 인터뷰하며 처음 밝히는 거야. 왜냐하면, 이 사건의 진짜 결말을 알리고 싶으니까.

꼬꼬무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 다음날, 도영 씨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어. 사진을 보니, 표정이 밝지 않고 덤덤하지?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런 말을 했어.

"범인들의 범죄 동기가 어떠하든 어른들이나 상급자들은 청소년이나 부하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줘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범인들의 속사정을 대신해서 말해준 거야. 특히 범행 동기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촉구했어. 도영 씨는 사건 이후, 다시 한 번 범인들을 마주한 적이 있대. 그때 심정을 들어볼게.

"이 사람이 범인이 맞느냐 누가 확인을 해줘야 될 것 아니에요? 그때 이제 제가 대표로 가서 한 거죠. 보니까.. 온몸은 다 묶여서 얼굴이고 머리고 할 것 없이 완전히 그냥… 다 만신창이가 돼 있더라고요. 그때 그냥.. 약간.. 눈물이 왈칵했어요. 왜 범인을 잡았으면 됐지 왜 이렇게 사람을 때리냐… 반은 동료애처럼, 그런 것들이 저도 모르게 속마음에 있었던 거 같아요."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 DJ

분명 인질범들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건 맞지만, 그 속사정을 알기에 도영 씨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거야. 같이 듣던 그 노래 가사처럼, '길 잃은 작은 새들'처럼 보였던 걸 아닐까.

얼마 뒤 군에서 사건조사 결과를 발표해.

"범인들을 검거한 육군 모 부대 헌병대장은 '범인들은 평소 소행이 불량한 전과자들로 여자관계가 복잡했으며 총을 훔쳐 강도짓을 해 일본으로 달아나기로 모의,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들이 군대 부조리 운운한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불량한 전과자들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뿐, 군대 내 부조리는 동기가 아니라는 거야. 더 큰 문제는 덮은 채 개인의 일탈로 처리했어.

꼬꼬무

유네스코 지하다방 사건이 벌어진 1974년 5월, 그 전에 군대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여럿 일어났어. 1월 1일, 무장 탈영한 '조 하사'가 동대구역에서 인질극을 벌였어. 보름 후 금산, 육군 모 부대 '최 일병'이 무장 탈영해 다방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자수했어. 같은 날, 포천의 '정 하사'도 수류탄을 들고 다과점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다가 검거됐어. 2월엔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월엔 부평에서, 비슷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어. 유네스코 지하다방 사건이 일어나기 전, 무장 탈영병이 벌인 인질극이 그해에만 무려 5번이 있었어.

범행 동기는 모두 비슷했어. 부대 내 폭행과 금품 갈취. 근데 탈영병들의 진술은 매번 묵살됐어. 정상참작을 하자는 게 아니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꼭 조사가 필요했어. 그랬다면, 군대 부조리는 줄어들고, 유네스코 지하다방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어. 방관과 외면이 불러온 인질극이야. 서슬퍼런 그 시절에는, 범죄를 예방하는 것보다 처벌이 더 우선됐어.

▲ 인질범들의 마지막, 그리고 유가족의 용서

사건 20일 후인 6월 10일. 인질범 세 사람은 모두 군복을 입고 군 법정에 세워졌어. 최성환과 윤찬재는 민간인이었지만 군사재판을 받게 됐어. 세 피고인의 죄목은 같았어. 살인, 살인미수, 근무이탈, 초소침범 등 9가지 죄목이었어. 온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재판은 전국에 방송됐어. 재발 결과는 이렇게 나왔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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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으로서 적을 격멸하는데 사용해야할 총탄을 선량한 시민에게 무차별 난사함으로써 귀중한 인명을 살상케 하고 사회 불안을 조성한 행위는 추호도 용납할 수 없으며 다음과 같이 판결을 선고한다. 피고인 이원모, 동 윤찬재, 동 최성환. 피고인 등에 대하여 각 사형에 처한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범인들은 한참을 고개 숙여 울었어.

꼬꼬무

사형선고에 묻혀 군대 내 부조리 문제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어. 인질사건 그 뒤에 자리잡은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어. 사실 당시에도 이 판결에 대해 논란이 많았어. 이원모 이병은 군법에 의해 처벌받는다고 해도, 나머지 두 명은 민간인이었잖아. 무리한 재판이라며, 두 사람만이라도 일반 법정에 세워달라는 재정 신청이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됐고, 사형이 확정됐어.

이원모 이병은 사형을 선고 받고 어머니께 이런 편지를 보냈어.

"자식 된 도리와 사람 구실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마지막까지 여러 사람 가슴에 못을 박아 놓은 불효자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경솔한 한 번의 실수로 스물셋 어린 나이에 저 세상으로 하직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허무하고 슬프기만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이나마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용서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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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재는 사형 전에 본인의 안구 기증을 유언으로 남겼어. '죽더라도 사회에 좋은 일 하나는 남기고 싶다'는 말과 함께.

사형선고 후 1년도 안 지난 1975년 8월, 세 사람은 군법에 따라 한 날 한 시에 총살됐어.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범인들의 부모에게 위로의 찬송가를 보낸 사람이 있어. 이 사건의 유일한 사망자, 김장식 순경의 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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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남편을 잃고 어린 세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오히려 범인들의 부모를 위로했다는 거야.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김 순경의 둘째 딸, 학화 씨와 연락이 닿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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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 중의 한 명의 부모님께 사형 집행 후에 (어머니가) 찬송가를 보내주시고 위로를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찬송가 책을 보내주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원망보단 이겨내시고, 용서를 하신 거 같아요. 저희 삼형제도 그래서, 아버지가 희생하신 것과, 어머니가 용기있게 용서하신 행동 때문에, 그걸 마음에 새기고 살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크게 어긋나거나 잘못되지 않고 그래도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당시) 범인들은 지금 제 자식보다 어린 나이더라고요.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거나, 사회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그들이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김학화, 故김장식 순경의 둘째 딸

도영 씨는 이 세 사람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대. 지난 50년 동안, 인질범을 잡았다는 걸 한 번도 자랑삼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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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다가 결국 이제 그렇게 해서 총을 뺐었으니까 묘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환경만 조금 달랐다면, (나와)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 사람들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어느 누구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안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우정 아닌 우정이랄까, 그런 것들이 나름대로 생기는 거죠."
-남도영, 당시 유네스코 지하다방DJ

세 청년, 이원모 최성환 윤찬재, 그리고 남도영. 똑 같은 시절을 살던 청년들이었어. 그날 유네스코 지하다방에서 인질과 인질범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 친구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럼 좋은 음악 한 곡 들으면서, 도라지 위스키 한 잔 기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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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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