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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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30년만에 잡힌 이춘재 "살인은 불나방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어"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6.16 12:00 수정 2023.06.16 12:17 조회 1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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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살인 12+2, 악마의 고백'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이용주, 배우 윤시윤, 가수 치타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제보전화, 다시 시작된 수사

때는 2019년 5월, 경기남부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 장기간 미해결인 사건을 수사하는 이 팀에는 수많은 제보가 들어와. 어느날, 19년차 베테랑 이성준 형사가 제보 전화를 하나 받았어. '범인이 동네에 사는 지인 같다. 근데 여기는 미국이다'라는 제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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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가 미국에서 왔어요. 미국에 갈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확인해야 되나…"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現수원남부경찰서 강력팀

당장 미국에 갈 수 없다고 제보를 무시할 수도 없어. 이 형사는 일단 그 사건의 기록부터 찾아 봤어. 낡은 캐비닛을 열고, 서류 더미 속에서 사건 파일을 찾았어. 이 형사가 경찰이 되기 전인 1990년에 벌어진 사건이야. 2019년에서 2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사건을 살펴볼게.

1990년 11월, 아주 스산한 가을날. 해가 저물어 깜깜한 동네를 랜턴 불빛으로 비추며 사람들이 누군가를 찾고 있어. 바로 13살 고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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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 고은이가 집에 안 돌아온 거야. 고은이 학교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분명 같이 하교까지 했는데 친구와 헤어진 후 감쪽같이 사라졌어. 밤새도록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고은이는 안 보여. 다음날 날이 밝고, 고은이 삼촌은 마을 바깥쪽 야산을 뒤지기 시작해. 그러다 수풀 사이, 뭔가 시커먼 형체를 발견했어. 고은이가 입고 있던 교복 자켓이야. 떨리는 손으로 그 교복을 들췄는데,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 참혹해. 두 손과 두 발은 뒤로 꺾인 채 묶여 있어. 입고 있던 교복과 가방, 노트, 도시락통은 주변에 흩어져 있어. 누군가 열세살 고은이를 잔혹하게 살해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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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 결과는 더 충격적이야. 고은이는, 성폭행을 당한 후에 목이 졸려 사망했어. 게다가 범인은, 칼로 가슴 부위를 난도질 해놨어. 경찰은 범인을 잡으려 수사에 나섰어. 하지만 범인은 안 잡혔고, 그렇게 고은이 사건은 30년 가까이 미제수사팀 캐비닛 속에 묻혀 있었어.

다시 2019년, 고은이 사건 기록을 본 이 형사는 당시 사건 현장에 남아있던 증거품을 찾았어.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고 하잖아?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과학 수사가 발전했으니, 당시에는 못 찾았던 범인의 흔적을 이제는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이 형사는 증거품을 찾아오라고 했어.

"저희가 2016년부터 미제사건을 수사하면서 현장 유류물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다 재감정을 올렸어요. 그 당시에는 감정이 안 됐던 게, 다시 재감정을 하면 나올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現수원남부경찰서 강력팀

관할 경찰서 서른 군데를 샅샅이 뒤졌어. 그런데 고은이 사건의 증거물을 못 찾았어. 하필 그 때, 오산에서 백골 시신이 나왔다는 또 다른 사건이 터졌고, 이 형사는 일단 오산으로 갔어. 오산에 가서도 이 형사의 머릿속에는 '증거품이 어디 갔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해결됐어.

"회의 시작하기 전에, '미국에서 제보가 들어와서 확인을 해야 되는데 맞춰볼 것도 없고 답답하네'라는 식으로 툭 던졌어요. 과학수사팀 그 분하고 같이 옆에 나란히 앉은 거예요. 이 분이, '그 증거물 우리 사무실에 있는데' 하더라고요. '그게 거기 있었어? 우리 창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니'"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기막힌 우연이였어. 그렇게 찾아 헤맸던 증거품이 오산경찰서 과수팀에 있다는 거야. 이 형사는 곧장 과수팀으로 달려가서 고은이 사건의 증거품 박스를 찾았어.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넘겼어. 감정 의뢰를 받은 사람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강필원 과장. 30년 가까이 DNA 분야를 연구한 베테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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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30년 넘는 감정물을 많이 다뤄본 상황은 아니라서. '우선 감정물을 보자' 했죠. 많은 기대는 사실 못했습니다. 왜냐면, 사건이 너무 오래됐었고, 감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
-강필원 소장, 前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 現국방과학수사연구소

그렇게 고은이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증거품 상자가 국과수에 도착했어. 증거품은 보존상태가 제일 중요해. 드라마를 보면 경찰들이 증거품을 비닐 봉투에 담지? 그런데 실제로는, 완전히 마른 경우라면 상관없지만 습기가 있다면 종이 봉투에 넣어야 부패되지 않고 오래 보존할 수 있대. 고은이의 증거품은 어디에 보관됐을까? 다행히, 종이봉투에 보관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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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증거물치고는 상태가 양호했어요. 대체적으로 누군가 정성스럽게 잘 말려서 보관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황정희 연구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증거품은 잘 보관됐고, 분명 증거품 어딘가에는 혈흔, 침, 피부 세포 같은 범인의 흔적이 남아있을 거야. 강 과장과 팀원들은 현장 재구성을 했어. 사건 현장 사진을 보며,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 추리해 봤어. 그러다 증거품들 중 피해자의 속바지에 주목했어.

"DNA 세포가 어느 부분에 집중적으로 묻어 있을까? 아무래도 상식적으로 의류를 잡았을 경우에, 피해자는 저항을 했을 것이고. 또 피의자는 강력하게 잡아서 실랑이가 있었다면, 아무래도 (내의) 허리 부분에 집중돼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강필원 소장, 前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 現국방과학수사연구소

강 과장은 조심스럽게 속바지의 허리 라인을 자르고, 약품과 장비로 DNA를 추출했어. 그런데 30년 전 사건의 증거품이라, DNA가 남아있더라도 너무 소량이라 식별이 어려워. 하지만 이 DNA를 증폭 시키면 확인이 가능해. 이 과정이 2주 정도 걸렸고, 드디어 증거품에서 한 남자의 DNA가 검출됐어.

▲ 살인범의 DNA, 이춘재의 등장

"남성의 DNA를 확보했는데, 이 사건의 진범의 DNA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죠.
-강필원 소장, 前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 現국방과학수사연구소

사람마다 DNA는 다 달라. 이게 누구의 DNA인줄 알려면, 대조를 해봐야해. 곧장 DNA데이터베이스와 대조 작업을 진행했어.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구속되거나 수감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DNA를 검사하고, 그게 DNA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 강 과장은 절차대로 DNA 대조를 의뢰하고 퇴근했어.

"퇴근하면서 저희들이 농담으로, '혹시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거 아닐까?' 라고 하면서 '설마요' 하면서 퇴근했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는데, 동료 직원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일치건이 나왔다'고…"
-강필원 소장, 前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 現국방과학수사연구소

"제가 담당자라서 제가 올렸으니까, 제가 제일 처음 들었어요. 수형인에 대한 코드번호가 있는데, 어떤 코드번호의 수형인과 일치한다는 회보를 받았죠."
-황정희 연구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일치하는 DNA가, 현재 교도소에 수감자 중 나왔어. 이 엄청난 사건은, 뉴스 보도로 연일 쏟아졌어. 너도 분명 본 적 있는 뉴스야. 사상 최악의 미제 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0년만에 특정됐고, 그 용의자가 교도소에 수감 중인 50대 이 모 씨라는 뉴스. 고은이는 바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9번째 피해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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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야. 그 중 8차 사건은 범인이 검거되면서 '모방범죄'로 결론이 났어. 이 사건들이 연쇄살인으로 묶였던 이유는, 범인의 '시그니처'인 매듭 때문이야. 피해자들의 시신은 입고 있던 스타킹이나 속옷 등으로 묶여 있었어. 범인은 살해할 때도 피해자의 물건들만 사용했어. 고은이의 몸도, 고은이의 필통에 있던 커터칼로 훼손했어.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의 물건만 사용한 범인. 이 잔혹한 연쇄살인 사건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경찰 인력이 투입됐어. 한 해 투입된 경찰만 205만명, 추려낸 용의자도 3000명이 넘어. 하지만 범인은 잡히질 않았어.

그렇게 영원히 미제로 남을 거 같던 대한민국 최악의 연쇄 살인사건이 33년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어. 이 DNA가 일치하는 그 사람, 이름은 이춘재. 부산교도소에서 2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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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난리가 났죠. 별도 사무실 공간에 캐비닛을 넣어서 그 서류를 다 정리해 두었는데, 양쪽으로 해서 거의 10미터 정도 되는, 위아래 2층으로 캐비닛을 짜서. 인화하는 사진, 그런 기록도 남아있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수사를 하고 있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 거죠."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2019년 8월, 이성준 형사는 부산교도소로 연락해 이춘재 면담을 신청했어. 그런데 돌아오는 교도소의 답이 의외야.

"아, 그 사람은 1급 모범수인데. 무슨 일이시죠?"

이춘재가 그 교도소에서 독실한 불교 신자로 지내온 1급 모범수라는 거야. 이성준 형사는 '쉽지 않은 조사가 되겠구나' 직감했어. 그리고 이춘재의 과거 기록을 살펴봤는데, 심상치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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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10차 사건 이후 3년 뒤, 1994년 1월 청주. 공터에서 젊은 여자의 시신이 발견됐어. 둔기에 맞은 뒤 목이 졸려 살해됐는데, 성폭행의 흔적이 있고 온몸은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어. 부검 결과, 저항한 흔적이 없고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어. 면식범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일 가능성이 커서 담당 형사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탐문했어. 그 때 미심쩍은 사람이 보였어. 가족들은 다 슬퍼하는데, 딱 한 명 덤덤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어. 피해자의 형부였던 이춘재야.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도, 마지막으로 다녀간 곳도, 형부인 이춘재의 집이었어.

곧바로 이춘재를 잡아들여 추궁했어. 그는 "처제를 안 죽였습니다. 우리집에 온 건 맞는데, 약속이 있다며 금방 나갔어요"라며 부인했어. 근데 단서들이 나오기 시작해. 이춘재 집 화장실에서 처제의 혈흔이 나온 거야. 그리고 "그 집에서 아침까지 쫙쫙 물 뿌리는 소리가 나던데요"라는 증언도 나왔어. 담당 형사는 증거를 들이밀며 추궁했어. 그러자 이춘재는 아내가 가출을 해서 홧김에 처제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어.

이춘재는 "둔기로 네 번 내리쳤다"며 갑자기 진술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해. 처제가 집에 오면 늘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시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고 계획적으로 주스에 수면제까지 타놓은 거야. 그런데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며, 이춘재의 태도가 돌변해. 자기는 처제를 안 죽였고,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로 자백했다고 진술을 뒤집었어. 결국 1심과 2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춘재는, 최종 선고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 받았어.

이런 이춘재가, 화성 사건에 대해 쉽게 자백할까?

▲ 연쇄살인마와의 두뇌 게임

"이춘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까. 순순히 얘기할지 아니면 아예 조사를 받으러 안 나올지. 어떻게 얘기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가서 상황을 보자.."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이성준 형사는 복잡한 마음으로 부산에 내려갔어. 9월 18일 수요일, 부산교도소 접견실. 이 형사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어. 이춘재를 어디에 앉혀야 표정이 잘 보일지, 위치를 잡고 구도를 정한 후 이춘재를 불렀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와. 덤덤한 표정에 키도 작고 왜소한 체격의 이춘재를 마주했어. 이 형사는 자신을 경기남부청에서 나온 형사라고 소개하고, 밝게 인사를 하며 커피도 한 잔 건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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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주고 싶진 않지만 친절하게 해준 거죠. 얘기하다가 불편하다고 나가버리면 끝이니까. 강압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이춘재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머리는 백발에 가깝지만 피부도 깨끗하고, 56살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어. "저희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아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이춘재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어. "화성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때문에 왔습니다"라고 하니 이춘재는 "난 모르는 일"이라며 남의 일 얘기하듯 덤덤하게 말했어. 이 형사는 질문을 몇 개 더 던졌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습니다"야. 일단 이 형사는 조사를 끝냈어. 어차피 이게 하루 안에 해결될 일이 아니야.

다음날, 다시 이춘재를 만났어.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어. 현장 증거물에서 이춘재 당신의 DNA가 나왔다며, 화성 사건에 대해 정말 모르겠냐고 물었어. DNA 얘기가 나오자, 순간 이춘재의 표정이 싹 굳었어. 그런데 "고향이 화성이니 사건은 알지만, 저랑은 상관없습니다"라며 여전히 모른다고 말해. 이런 상황에서 더 애가 타는 건 이 형사 쪽이야.

"그때 계속 DNA 감정이 진행중이었어요. 전체 감정을 다 하지는 못했고. 공식적으로는 2개, 실질적으로는 3개가 나왔던 상황이었죠. DNA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몇 건에서 나왔고 어떤 사건인지 알려주면 DNA가 있는 것만 인정하고, 없는 건 인정 안 할 수도 있잖아요. DNA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 정말 이춘재가 범인이 맞는지를 판명하려면, 스스로 얘기를 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유도를 해서 자백을 받으면 안되잖아요."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증거품에서 이춘재 DNA가 나오긴 했지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모든 사건에서 다 나온 건 아니었어. 이 당시까지, 고은이 사건인 9차, 그리고 5차, 7차. 이렇게 세 사건의 증거물에서만 DNA가 검출됐고, 나머진 아직 증거가 없는 상태야. 이 사건들의 범인이 전부 이춘재라는 걸 입증하려면, 자백이 필요해. 그것도 범행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자백이.

반대로, 이춘재의 입장은 어떨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006년에 모두 만료됐어. 그럼 이춘재 입장에서는 조사에 협조할 이유도, 자백할 이유도 없어. 이춘재는 화성 사건은 자신과 관계 없는 일이라 계속 주장했어. 이 형사는 일단 이춘재가 얘기하는 대로 들어주고, 간단하게 조사를 마쳤어. 이 형사는 조사를 마치는 듯 하다가, 슬쩍 "혹시 프로파일러와 편하게 이야기 나눠볼 생각이 있으세요?"라고 던졌어.

"처음에 접견을 시작했을 때는 프로파일러들을 바깥 의자에 대기를 시키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프로파일러들이 다 여자예요. (이춘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돌발적으로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이춘재가 들어올 때 프로파일러들을 봤거든요. 이춘재가 급 호기심을 보였죠."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이춘재는 프로파일러들을 만나겠다고 했어. 이때부터 프로파일러와 이춘재의 대화가 시작됐어. 프로파일러는 "지내기 불편한 건 없냐", "식사는 했냐", "음식은 입에 맞냐" 같은, 사건과는 상관없는 일상적인 얘기를 이춘재와 나눴어. 서로 공감하면서 친밀감을 쌓는, 일명 '라포' 형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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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수사팀이 접근했을 때, 자신과 범죄는 무관하다고 부인하기 시작했었죠. 이때 프로파일러들이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냐면 사건과는 별개의 이야기들을 전개합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성장환경이라든지, 그가 갖고 있는 성격적인 특성. 이런 것들을 찾아내는 여러가지 대화들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라포, 소위 친밀감을 형성함으로써 범죄자의 지금 상태를 분석하게 됩니다. 이 범죄자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그리고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려서 자백을 하게 만드는가..."
-권일용 교수, 국내 1호 프로파일러

한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접견을 마치려는데, 갑자기 이춘재가 돌발행동을 했어. 쓱, 손을 내밀더니 프로파일러들, 형사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하기 시작해. 악수를 제안하는 걸로 봐선, 일단 이춘재가 수사팀에게 호의적인 걸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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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접견을 신청했어. 그런데, 조사를 진행해도 되냐는 형사의 질문에, 이춘재의 표정이 떨떠름해. 그럼 프로파일러들과 대화 나누겠냐고 묻자, 그렇게 하겠대. 조사는 싫지만, 대화는 괜찮대. 그렇게 다시 대화가 시작됐어.

이번 대화에서 이춘재는 어릴 적 죽은 동생 이야기를 하는 등,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표정도 전보다 밝아졌어. 그 때 이 형사는 군대 얘기로 주제를 돌렸어. 군대 얘기를 하자 이춘재가 눈을 반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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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얘기를 했었어요. (이춘재가) 탱크를 몰았대요. 훈련을 나가면 자기가 제일 선두에 서서 자기가 딱 우위에 서서 선두에 서서 가는게 자기는 그게 너무 좋았대요."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근데 화성 사건 이야기를 꺼내면 표정이 싹 변해. 자신이 원하는 대화에만 응하는 이춘재. 결국 이날도 조사는 못하고 끝났어. 헤어지면서 "그럼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하니, 이춘재가 어김없이 악수하려 손을 내밀었어.

다시 주말이 지나 월요일. 이 형사와 조사팀은 약속한 날 일부러 안 갔어. 이춘재의 심리를 이용해보기로 한 거야.

"토요일, 일요일에 수사본부 회의를 했을 거 아니에요. (이춘재가) 프로파일러와의 면담에 관심 보이니까 월요일날 가기로 했지만 월요일날 가지 말자. 약간 애달프게 해보자, 화요일에 가자…"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9월 24일 화요일. 접견장에 수사팀이 도착하고, 이춘재도 나왔어. 이춘재는 첫 마디부터 "어제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어제 안 왔습니까?"라고 물었어. 이춘재가 수사팀을 기다린 거야. 이제 수사팀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 형사는 뒤로 빠진 채 프로파일러만 들여 보냈어. 이춘재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려고. 그러자 이춘재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어.

"혹시 내가 입을 열면, 당신들 승진도 하고 좀 그럽니까? 그럼 제가 이야기 좀 해줄까요? 내가 모든 걸 말하면 많이 놀랄 겁니다. 곤란해질 수도 있는데…"

진실을 밝히면 경찰이 곤란해진다는 의미의 말. 프로파일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누가 곤란하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진실을 전부 이야기해주시는 거예요"라고 설득했어. 그러자 이춘재가 프로파일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 그리고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거기에 뭔가를 적었어. 이게 실제 이춘재가 쓴 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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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12+2, 강간 19, 미수 15' 구체적인 범행 숫자가 적혀있어. '살인 12+2'를 본 프로파일러는 "화성에서 2건, 다른 지역에서 2건의 살인이 더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어. 그러자 이춘재는 "12건은 화성에서 한 거고, 2건은 청주입니다"라고 대답했어.

알려진 화성 사건 10건에 2건이 더, 결혼하면서 이사간 청주에서 또 2건의 살인을 저질렀대. 그리고 처제 살인사건까지 포함하면, 살인만 총 15번이라는 거야. 여기서 끝이 아니야. 그 밑에 강간 19, 미수 15. 무려 49건에 대한 폭탄 자백을 한 거야.

"이미 머릿속에 정리를 한 거예요 사건들을. 살인 사건 뿐만 아니라 강간 사건까지. 사건 건수, 범행했던 지역 그런 것까지 정확하게 정리를 하고 왔었어요.
-이성준 형사, 前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

▲ 살인의 추억

이춘재는 이때를 기점으로 진술을 막 쏟아냈어. 고은이가 피해자인 화성 9차 사건에 대해 물으니 이춘재는 "기억합니다. 풀이 마른 상태가 아니었으니, 가을 정도 같네요. 쌀쌀했던 느낌이 나요"라고 대답했어. 9차 사건은 1990년 11월 15일 발생했어. 실제 사건 발생 시기와 대답이 일치해.

"논의 이삭의 색깔이 어땠는지, 이런 것들을 떠올려서 '논의 이삭이 누렇기 때문에 3월 정도 됐을 거다', '날이 더웠기 때문에 여름 정도 됐을 거다' 이런 식으로 기억을 더듬더라고요."

-이성준 형사, 수원남부경찰서 강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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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림을 그리듯 그날을 떠올리며 얘기해. 사건 현장을 직접 그리기도 했어. 이 형사도 놀라울 정도였대.

"범행을 하는 장면을 묘사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피해자를 조우했고 어떻게 제압해서 어디로 끌고 가서 어떻게 범행을 하고. 이런 것들을 이제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들을 덤덤하게 하는 거죠. 남 얘기하듯이. '인간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이춘재가 악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이성준 형사, 수원남부경찰서 강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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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접견만 50번을 넘게 이어갔어. 그 사이, 화성 3,4차 사건 증거품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어. 나머지는 증거품이 없거나 증거품이 안 나왔지만, 이춘재의 자백과 진술이 있어. 수사팀은 모든 건에 대해 자백을 받는데 성공했어. 심지어, 범인만 알 수 있는 세부적인 진술까지. 근데, 이춘재는 왜 자백을 했을까?

"일단 제가 볼 때 이춘재는 자신이 이 범죄, 화성 살인사건의 범인이란 게 밝혀진 이후에, 사람들의 반응이나 자신만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충격을 주고 놀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기대치가 높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쯤이면 내가 자백을 하는 것이, 너희들을 훨씬 더 충격 속에서 내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판단하기 때문에 자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권일용 교수, 국내 1호 프로파일러

이 형사와 접견 때, 이춘재는 이렇게 말했대.

"처음 접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도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경기도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경기도라면 화성 사건 밖에 없으니, 그때부터 왜 왔는지 알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었대.

"몇 년 전 교도소에 있을 때 입안 점막에서 DNA를 채취해 갔어요. 그 때 곧 저를 잡으러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좀 늦게 오셨네요."

이춘재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미리 알았다고, 근데 생각보다 좀 늦게 왔다며, 자신이 경찰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말한 거야.

▲ 살인범으로 몰린 억울한 사람들

근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 '살인 12+2'라면, 화성 사건 10건에 추가 4건을 자백했다면, 숫자가 안 맞아. '모방범죄'로 결론난 8차 사건이 있잖아. 그 사건은 범인이 잡혔어. 8차 사건을 제외하고 총 9건이 돼야 하는데, 이춘재는 "8차 사건도 제가 저지른 겁니다"라고 말했어.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자기가 하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살인 횟수를 부풀려 진술한 적이 있어. 연쇄살인마에겐 이상한 과시욕이 있다지. 그럼 이춘재도 그런 걸까? 화성 8차 사건의 진범은 누구일까?

꼬꼬무

8차 사건은 1988년 한 가정집에서 벌어졌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 딸 선옥이가 여전히 일어나지 않고 이불을 덮은 채로 꿈쩍도 안해. 엄마가 가까이 가보니, 자는 줄 알았던 딸이 사망해 있었어. 목이 졸린 흔적이 있고, 성폭행 당한 뒤 옷이 다시 입혀졌어. 당시 선옥이는 불과 13살이었어. 이 때까지 화성 사건 피해자 중 가장 어렸어. 당시 사건의 충격은 어마어마했어.

열 달이 지난 어느날, 범인이 잡혔어. 범인은 22살 윤성여 씨. 동네의 농기구 수리공이야. 경찰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있던 성여 씨를 급습해서 끌고 갔어. 경찰이 내민 증거는, 체모였어. 피해자 집에서 범인의 걸로 추정되는 체모가 발견됐어. 당시 그 체모로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이란 걸 했어. 체모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분석하는 거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는 중금속 성분이 많았어. 그래서 경찰은, 직업상 중금속을 많이 다루는 용접공, 기계수리공, 공장 노동자의 체모를 수거해 분석했어. 근데 사건 현장의 체모와 윤성여 씨의 체모의 감정 결과가 비슷한 거 같대.

그리고 당시 화성 사건은 'B형 남자 잔혹사'라고 불렸어. 그때까지 벌어진 사건 현장의 증거품으로 범인의 혈액형을 추정했는데, 'B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거든. 마침 윤성여 씨가 딱 B형이었던 거야. 근데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는 O형이야.

따지고 보면 '체모도 비슷한 것 같다', '혈액형은 B형일 거 같다'는 식이야. 윤성여 씨가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어. 그런데 죄 없는 성여 씨가 한순간에 범인으로 몰렸어. 경찰서에 끌려온 성여 씨한테 고문과 가혹행위가 가해졌어.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백번 시켰어. 윤성여 씨는 소아마비 장애로 다리가 불편해. 한쪽 다리가 가늘고 짧아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게다가 잠도 안 재우고 물도 안 줘. 이러면 버틸 수 있겠어? 결국 성여 씨는 강압수사를 못 이기고 허위자백을 했어.

"친구들하고 그날 일을 마치고요. ㅇㅇㅇㅇ라고 놀리는 바람예요.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 집이 딱 보이더라고요. 원래는 죽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 집의 담을 넘다 보니까 문고리가 하나 있더라고요..."

-윤성여, 1989년 7월 검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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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성여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억울한 옥살이가 시작됐어. 이렇게 억울한 피해를 입은 건 성여 씨 뿐만이 아니었어.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4건의 사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어.

"여고생 피살체 발견. 논바닥 볏짚단 속에서 김 모 양이 스타킹으로 양 손이 뒤로 묶이고 목이 졸린 채 숨져있는 것을 발견"
"여 국교생 실종 12일째. 김현정 양(9세)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실종"
"10대 여공 피살 채 발견. 콘크리트 흉관 속에 17세 박모 양이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목졸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부 셋방에서 피살 채로. 김 모 씨가 양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흉기에 가슴을 찔려 숨져있는 것을 남편 김 모 씨가 발견했다"

이게 다, 이춘재가 밝힌 4건의 살인 사건이야. 이 사건들은 왜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묶이지 않았을까? 먼저 청주 2건은, 범행 수법은 비슷했지만 지역이 달라서 제외됐어. 경찰서 간의 공조가 제대로 안 된거야. 그리고 6차와 7차 사이, 수원 화서동에서 벌어진 여고생 살인 사건은 이춘재 말고 윤성여 씨처럼 무고한 용의자가 또 있었어. 바로 16살 이 모 군. 이 군도 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심지어 사망했어. 이 군이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가 됐어.

꼬꼬무

8차 사건 범인으로 윤성여 씨가 잡혔을 즈음, 9살 현정이가 하굣길에 사라졌어. 이 사건은 단순 실종 사건으로 처리됐어. 왜냐, 시신을 찾지 못했거든. 근데 이춘재는 "산길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숲으로 데려가 죽였다"고 자백했어. 사체를 어디에 뒀냐 물으니, 산 뒤쪽 건물 근방에 옮겨놨다고 했어. 생사라도 알고 싶었을 가족들. 이제라도 늦게라도 그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야. 경찰은 대대적인 시신 수색에 나섰어. 근데, 뼛조각 하나 안 나왔어.

사실, 현정이가 실종되고 몇 달 후, 경찰은 산에서 뭔가를 발견했어. 현정이의 가방과 부패된 양손 뼈였어. 심지어 양손은, 줄넘기로 묶여 있었어. 근데 경찰은, 이 사실을 어디에도 알리지 않고 은폐했어. 심지어 현정이 가족한테도 숨겼어. 이 때가 윤성여 씨를 검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야. 모방범이라도 잡았다고 사람들은 안심했고, 경찰들도 모처럼 기세등등 했어. 특히 윤성여 씨를 잡은 경찰들은 특진까지 했어. 이 상황에서 또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들이 곤란해지지. 결국 현정이 살인사건은 실종사건으로 은폐됐어.

▲ 재심, 그리고 '그 놈 목소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윤성여 씨는 무려 20년 동안 옥살이를 했어. 억울한 옥살이도 옥살이인데, 어린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왔다고, 교도소 안에서도 시선이 차가웠대. 22살 청년이었던 성여 씨는 2009년 42살이 돼서야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어. 출소 후 애써 과거는 잊고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대. 그러던 어느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나왔다는 뉴스를 본 거야. 그걸 본 윤성여 씨는 덜컥 겁부터 났대.

꼬꼬무

"내 사건(8차 사건)만 터지지 말아라. 내 사건만 안 나오길 바란 거야. 내 사건이 나오면 내가 이슈화 되니까. 이슈가 되면 난 갈 데가 없어요. 이 세상을 떠나든가 한국을 떠나야 돼."
-윤성여, 화성 연쇄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겨우 안정적인 삶을 일궜는데, 그게 무너질까봐 두려웠던 거야. 하지만 결국, 터질 게 터졌어. 소식을 듣고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가 성여 씨를 찾아갔어. 성여 씨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기로 했어.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어. 박 변호사가 봤을 때, 재심의 이유는 충분했어.

꼬꼬무

"불법체포감금, 폭행, 가혹행위, 서류의 허위 작성. 수사기관의 절차상의 위법이 있고,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 진범 이춘재의 등장과 구체적인 자백. 실체와 절차상의 문제를 함께 제기할 수 있었던 사건입니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고 당시 박 변호사는 성여 씨가 잡혀간 상황부터 다시 조사했어. 그리고 불법체포와 가혹행위를 밝혀냈어. 성여 씨가 잡혀간 결정적 증거, 체모를 분석한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서에 오류가 있다는 것도 밝혀냈어. 당시 용의자를 특정할 근거로는 부족한 데다가, 그 수치마저 조작된 거였어.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어. 이춘재를 증인으로 요청하는 거야. 가장 확실하게 무죄를 밝혀줄 진범이니까.

"그건 재심 청구할 당시부터 예정한 사실입니다. 이춘재는 법정에 불러야 된다. 여전히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그래서 자백이 임의적이고 믿을만하다는 걸 법정에서 부각하는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춘재의 증언이 필요했고."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2020년 11월 2일,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날. 법원 앞에는 기자들이 쫙 깔렸어. 이춘재도 법원에 왔어. 비밀통로를 거쳐서 법정에 들어섰어. 연녹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쓴 이춘재가 등장하는 순간, 방청석이 술렁였어. 수십년간 세상을 공포로 떨게 한 살인마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이야. 진범을 마주한 윤성여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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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내가 이춘재를 봤을 때. (분노가 머리 끝)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끝까지 올라왔어요. 그걸 참느라 힘들었지. 솔직히 말해서. 그때 심정 같으면 있잖아요. 몇 대 때리고 싶어 그냥."
-윤성여, 화성 연쇄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법정에서는 박준영 변호사의 신문이 시작됐어. 이춘재는 범행장소, 범행방법, 범행과정 등 진범만이 말할 수 있는 여러가지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다 진술했어. 재심 재판 당시, 실제 이춘재 증인신문 내용이야.

꼬꼬무

박준영) 범죄를 하기 전에 증인이 어떤 생각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이춘재)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을 죽이고 나서 순간적으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거는 그냥 한순간에 지나가는 그런 짧은 생각일 뿐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 후에도… 불을 보고 찾아다니는 불나방처럼 그냥,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끔 제가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박준영) 증인이 공식석상에서 증인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아요. 하고 싶은 말 해보세요.

이춘재) 제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의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장시간 수형생활의 고통을 겪은 윤모 씨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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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이야기를 들은 윤성여 씨는, 한 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대.

"그 사람때문에 20년을 손해 봤지만, 그 사람이 자백을 했기 때문에 내가 누명을 벗을 거 아니에요. 내가 그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거예요."
-윤성여, 화성 연쇄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2020년 12월 17일. 마침내 윤성여 씨에게 무죄가 선고됐어. 윤성여 씨가 누명을 벗는데 무려 31년의 시간이 걸렸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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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피고인은 무죄. 이상 재심 재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화성 8차 사건 재심 담당 박정제 부장판사

그럼 이춘재는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총 14건의 살인, 9건의 강간 혐의가 인정됐어. 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어. 애초에 죄를 물을 수 없는 사건이었던 거지. 오직 진실을 밝히기 위해 1년동안 수사가 이어진 거야.

33년만에 화성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고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됐어. 그간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려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도 밝혀졌어. 그 수가 무려 20명이 넘어. 늦었지만, 그 분들에 대한 보상 절차도 지금 진행 중이야.

누명을 벗은 윤성여 씨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범인의 DNA를 찾아낸 강필원 소장을 만나 고마운 마음을 전했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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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덕분에 무죄도 밝혀졌고. 남부경찰청이나 소장님이나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항상 우리 소장님이나 경찰들이나, 고생하시는 분들을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그 당시 경찰들이 잘못했다고 해도 지금 경찰들은 잘하고 있으니까. 저는 거기에 감사드리고…"
-윤성여, 화성 연쇄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늦게라도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수사팀의 끈질긴 노력, 과학 수사의 힘, 무엇보다 진실을 밝히려는 절실한 마음이 한데 모여 이뤄낸 성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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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10차 사건을 우리나라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DNA 분석을 의뢰했었습니다. 그 결과도 신통치 않고. 그래서 우리나라 수사에서도 DNA 수사를 해야되겠다, 그거 때문에 제가 입사를 하게 됐고요. 30여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돌고 돌아서 저 있을 때 감정물이 의뢰가 되고, (화성 사건에) 남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정밀하게 감정물에 접근할 수 있었죠."

-강필원 소장, 이춘재 DNA 분석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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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미제사건을 해결하고 싶어서 많이 뛰어다녔어요. 끝까지 묻혀가지 않고 이게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는 이제라도 해결이 되기 위해서 나온 거 같아요. 아마 그게 순리이지 않나 생각해요. 결국엔 드러나고 확인이 된다는 게 순리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성준 형사, 이춘재 접견 조사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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