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30년 만에 밝혀낸 진실, '분홍보따리'의 기적…'낙동강변 살인사건' 조명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5.26 01:53 수정 2023.05.26 09:23 조회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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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두 남자의 잃어버린 30년 세월을 추적했다.

2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낙동강변 살인사건-분홍보따리의 기적'이라는 부제로 동익 씨의 그날을 조명했다.

1990년 1월 부산의 낙동강변에서 한 여성의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낙동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남녀가 강도 살인 사건을 당한 것. 살해된 여성과 동승했던 남성은 겨우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33세 장동익 씨와 30세 최인철 씨가 바로 범인이었다. 경찰은 이들이 검거된 후 스스로 혐의를 자백했다고 했다.

또한 사건 현장에 있던 손수건에서 나온 혈흔은 AB형, 최인철의 혈액형도 AB형. 그리고 당시 겨우 목숨을 건진 목격자도 두 사람이 자신이 본 범인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자백과 증거, 목격자 진술까지 모든 것이 갖춰지자 사건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동익 씨와 인철 씨의 가족들은 도무지 이를 믿을 수 없었다.

동익 씨의 아내는 사건 당일을 떠올려 보았다.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집으로 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내와 같이 잠이 든 남편, 그리고 다음 날도 그는 멀쩡히 출근을 했다. 그런 동익 씨가 범인이라면 아내 몰래 새벽에 집 밖으로 나가 범행을 했다는 것.

하지만 조사 결과 이런 알리바이에도 불구하고 범행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익 씨가 체포되고 한 달이 흐른 날 드디어 면회 허락이 떨어졌고, 가족들은 구치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족들은 몰라보게 야윈 동익 씨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자초지종을 묻는 어머니에게 동익 씨는 한숨을 쉬며 자신은 여자를 죽인 적도 강간을 한적도 강도를 한 적도 없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1991년 11월 8일,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경찰차에 오른 동익 씨. 뒷자리에는 그의 친구 인철 씨가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다짜고짜 이들을 폭행했고 유치장에 가뒀다.

유치장에 갇혀 나흘이 지난날 경찰은 동익 씨의 눈에 테이프를 데리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리고 낙동강변 살인 사건에 대해 추궁했다. 혐의를 부인한 동익 씨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은 그를 일명 통닭구이 자세로 매달아 고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고문까지 하며 자백을 유도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한 동익 씨.

그런 그의 앞에 경찰은 인철 씨를 끌고 왔다. 경찰서에 끌려온지 5일 만에 만난 두 사람. 경찰은 이번에는 인철 씨에게 범행을 추궁했고, 그는 본인이 그랬다며 자백했다. 동익 씨보다 더 오래 더 심한 고문을 당한 인철 씨는 허위 자백을 하고 말았던 것.

결국 검찰로 송치된 두 사람. 이들은 검찰에서 자신들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 주장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대로 재판에 넘겨졌다.

목격자의 진술, 증거, 자백이 있는 이 사건이 검찰에게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없는 사건이었던 것. 이에 이들은 혐의를 벗기 위해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확인해 줄 증인들을 찾았다.

당시 함께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을 수소문했고 그중 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증언을 들었다. 그럼에도 재판에서 고문은 인정되지 않았다. 수감자는 들은 내용을 진술했고, 더구나 범죄자의 진술이기에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이에 동익 씨와 인철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그리하여 당시 인권 변호사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변호를 부탁했고, 문 변호사는 시력이 안 좋아 초등학교도 중퇴한 동익 씨의 시력으로 캄캄한 밤에 범행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무죄 입증에 자신이 있었던 문 변호사. 그럼에도 재판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현재 시력이 나쁜 것은 인정하나 2년 전에는 좋았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의 중심에는 동익 씨의 회사 동료 증언이 있었다.

총무과 직원인 증인은 동익 씨가 일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으나 신발 검사과에서 일한 동익 씨의 시력이 나빴을 리 없다고 증언했던 것. 그러나 사실은 좋지 않은 시력으로 실수가 잦아서 쫓겨날 상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인의 말만 믿었고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고문 행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의 부상이 고문으로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이들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고 결국 무기징역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아들의 무죄를 믿는 어머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음에도 도움이 될 만한 곳은 다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분홍 보따리를 내밀었다. 그 분홍 보따리에는 어머니가 변호사들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해 한 장 한 장 모두 복사해서 모은 아들의 수사 기록이 모아져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매주 한 번씩 아들이 있는 진주 교도소로 찾아갔고, 다른 교도소의 인철까지 만나러 가서 두 사람을 응원했다.

수감 생활 10년 후, 모범수로 감형을 받은 동익 씨는 가족 합동 접견에서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음에 들떴다. 그러나 합동 접견 며칠 전 어머니가 못 오신다는 연락을 받은 동익 씨.

사실 동익 씨의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는데 아들의 구명을 위해 항암 치료를 받으며 버텨왔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아들의 감형 소식도 듣지 못한 어머니, 그리고 장례식이 끝난 후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동익 씨의 사연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0년이 또 흐르고 2013년 4월 26일 동익 씨는 21년 6개월여 만에 출소했다. 33살의 청년이 56살의 중년이 되어 나온 것. 20여 년을 사회와 격리되어 살다 나온 동익 씨는 적응이 쉽지 않았고, 특히 너무나 그리워하던 딸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동익 씨에게 그의 동생이 분홍 보따리를 건넸다. 분홍 보따리를 본 동익 씨는 억울함을 풀고 당당해지기 위해 재심을 결심했다. 이에 인철 씨를 만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분홍 보따리가 늘 이들과 함께 했다.

3년이 흐른 2016년 서울역 앞, 새내기 기자 문상현 기자를 만난 두 사람. 문상현 기자는 이들이 들고 있던 분홍 보따리에 흥미를 가졌다.

밤새 자료를 살펴본 문 기자는 확실히 이 사건이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너무 바쁜 박 변호사에게 분홍 보따리만 겨우 전한 문 기자. 그리고 다음 날 박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료들을 봤는데 이들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

박 변호사는 "이상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고문, 서류 조작, 서류 은폐 모든 것이 개입된 사건이었다"라며 이들의 재심 사건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박 변호사는 그 알팀과 함께 사건의 단서들을 수집했다.

사건 자료에서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포착했고, 손수건의 혈흔에서 검출된 혈액형은 AB형이 아닌 A형과 B형의 혼합으로도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허위 자백에서 범행 도구로 지목한 각목과 주먹만 한 돌로는 피해자의 상흔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피해자를 들어서 옮겼다고 진술한 두 사람의 이야기와 달리 피해자의 등에는 끌려서 이동된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이는 범인이 2명이 아닌 1명일 수도 있다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렇듯 이들의 자백은 모두 조작되었던 것.

이에 재심을 청구한 박 변호사. 그러나 2년 넘게 무소식이었다. 재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신청한 검찰 과거사위에서 해당 사건을 오랫동안 면밀히 조사를 해 시간이 계속 지연되었던 것.

그리고 과거사위는 "사건은 고문으로 인해 범인이 조작된 사건으로 보인다"라며 고문 행위를 인정했다.

재심 청구 3년 만에 재심 개시가 결정되고 동익 씨와 인철 씨는 무죄 판결을 받기도 전에 재심이 시작됐다는 사실만으로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2021년 2월 4일 재심 재판 결과,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 발생 3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동익 씨는 판결 직후 부모님이 계시는 납골당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분홍 보따리를 들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애쓴 어머니에게 "엄마 기록이 있었기에 진실이 밝혀졌다"라며 이제 아무 걱정 없이 편해지시라고 기도했다.

고문한 경찰,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검사는 모든 것을 부인하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였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동익 씨와 인철 씨는 형사보상금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금을 청구했고, 아주 다행히도 전액을 보상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보상금 중 일부로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여기에는 박 변호사도 뜻을 함께했다.

30년에 결백을 밝히고 다시 웃게 된 두 사람, 이들을 다시 웃게 만든 것은 분홍 보따리에 담긴 어머니의 힘, 어머니의 사랑이었을 것.

두 사람은 무죄를 밝혔지만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은 낙동강변 살인 사건,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조작할 시간에 조금 더 수사에 매진해 진범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면 진짜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동익 씨는 "열 사람의 도적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더라. 우리와 같은 억울한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들면 안 된다. 저희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라며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는 이들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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