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신호수 의문사 사건…"내 아들은 어떻게 죽었나?" 37년간 진실 찾아 헤맨 父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5.19 04:56 조회 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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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내 아들은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나.

1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아들을 찾아서 - 동굴 속 죽음의 비밀'이라는 부제로 진짜 답을 찾아 헤맨 한 아버지의 그날을 조명했다.

1986년 전남 여수의 신정학 씨는 한밤중 걸려온 조카의 전화에 무너졌다. 23살의 아들 호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정학 씨는 다음 날 곧바로 아들이 가스배달부로 일하고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아들의 직장에 도착한 정학 씨는 직원들에게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 이에 동료들은 호수 씨가 사라진 지 열흘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정학 씨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동료들은 호수 씨가 사라진 열흘 전 그날 세 명의 남자들이 회사를 찾아왔고, 그들이 호수 씨의 허리띠를 풀고 허리춤을 움켜잡아 승용차에 싣고 떠났다는 것. 또한 그들은 호수 씨를 차에 태우기 전 빨간 봉투 하나를 내밀었고 이를 본 호수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얼굴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무전기가 부착된 회색 포니 2를 타고 등장했던 세 남자들, 그들은 대체 누구이며 호수 씨를 어디로 데려간 것일까.

정학 씨는 경찰서로 달려가 아들을 찾아 달라며 수사를 부탁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 정도의 단서로는 수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결국 집으로 돌아간 정학 씨. 그런데 며칠 후 여수 경찰서에서 호수 씨를 찾았다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곧장 경찰서로 간 정학 씨. 그에게 경찰은 아들의 행방대신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속옷 차림에 흰 천을 두른 목, 피로 물든 흰 양말을 신은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이에 경찰은 호수 씨가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했다.

정학 씨는 직접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찾아갔고, 올라가는 것조차 힘든 바위산에 더구나 좁디좁은 동굴 안 쪽에서 아들이 발견됐다는 이야기에 정학 씨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적 같은 우연으로 근처를 지나가던 방위병들에게 발견된 호수 씨. 아들의 죽음이 자살이라 판단한 경찰, 하지만 호수 씨의 아버지 정학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신이 발견된 것은 무려 8일 전, 경찰은 가족들에게 연락도 없이 호수 씨를 매장했다. 동굴에서 함께 발견된 신분증을 비롯한 물건들은 불에 탔고, 이에 지문만으로 신분을 찾아내느라 가족에게 연락이 늦었다는 경찰. 그들은 자살이 확실하기에 호수 씨를 매장했다고 했다.

치밀하게 계획된 자살이라는 경찰, 그러나 정학 씨의 생각은 달랐다. 정학 씨는 아들의 죽음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아들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남자들을 찾아 나섰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한 정학 씨. 그리고 국가는 그에게 세 형사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었다.

호수 씨와 함께 사라진 남자들은 서부 경찰서 대공과 소속의 경찰들. 이들은 전단을 갖고 있던 호수 씨를 연행했고, 그가 휴가를 위해 전단을 모았다는 진술에 단 3시간 만에 호수 시를 훈방 조치했다고 알렸다.

또한 이들은 호수 씨가 자신이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학 씨는 여전히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경찰서에서 가혹 행위를 당하고 숨져 경찰이 이를 숨기기 위해 시신을 유기하고 자살로 위장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들 시신의 부검 결과는 타살 혐의점 없음, 자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집요한 진상 규명 요구와 5공 정권의 몰락으로 공개된 문서들, 장흥 공작에 대해 쓰인 문서를 통해 정학 씨는 세 형사를 상해 치사, 독직폭행, 사체 유기로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역시 타살혐의점 없음, 다시 한번 호수 씨가 자살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생계도 포기하고 아들의 사건에만 매달린 정학 씨는 독재정권에 자식을 잃고,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한 열사들의 부모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아들을 추억하며 단 한 번도 울지 않고 진상을 밝혀달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1999년 12월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되며 호수 씨가 사망한 지 16년 만에 또다시 부검이 시작됐다.

국과수, 서울대 법의학부, 도쿄 의과대학 세 기관에서 실시된 부검. 도쿄 의과대학의 교수는 호수 씨의 무릎에 묻은 가루의 성분과 발목에 난 상처를 토대로 그가 동굴 근처에서 고문이나 폭행을 당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자살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과수와 서울대는 자살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미 시신은 크게 훼손되었고 골절도 발견되지 않아 타살 혐의점을 밝힐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시신이 발견될 당시의 현장 사진이 없는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답을 전달받은 정학 씨. 그는 아들 호수 씨를 다시 땅에 묻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진실 규명의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당시 조사관들에게도 부담스러웠던 호수 씨의 죽음. 이에 조사관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했다.

당시 호수 씨를 수사한 형사가 아닌 동료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것.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적인 진술들이 등장했다.

특히 호수 씨가 연행된 당일 3시간 만에 훈방 조치 된 것이 아닌 3일가량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에 사망 추정 날짜에 경찰서 내부에 있었을 가능성이 밝혀졌다.

이에 진화위는 "신호수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경찰서의 공권력 내에 존재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장흥공작을 통해 신호수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신호수가 사망에 이르자 이를 자살로 위장했던 것으로 판단한다"라며 사망 23년 만에 자살이 아닌 다른 답을 그의 아버지에게 전했다.

이에 호수 씨 아버지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호수 씨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알기 위한 이 소송에서 법원은 경찰의 불법체포와 구금, 국가의 진상규명 노력 부족을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의 가혹행위 여부는 인정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질문은 거기서 멈추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아버지는 모든 것을 그만하기로 한 것.

최근 치매 진단을 받아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호수 씨의 아버지.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아들과 아들의 이름 석자는 또렷했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호수 씨의 아버지 정학 씨가 호수 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간 모아 온 서류들을 공개했다. "내 아들이 왜 죽음에 이르렀나"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진짜 답을 듣기 위해 달려온 아버지.

마지막으로 방송은 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질문을 던져야 했던 가족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한 명들이 주변에 있음을 상기시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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