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대구 학교폭력'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코요태 멤버 빽가, 가수 존박, 음악감독 김문정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갑작스러운 막둥이의 죽음
때는 2011년 대구, 중학교 2학년인 권승민 학생은 엄청 밝고 흥이 많아. 당시 인기였던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좋아했어. 어릴 때 꿈은 개그맨이었대. 승민이는 집에서 막내였는데, 조용한 편이었던 가족들은 막둥이 승민이 때문에 웃음이 끊이지 않아. 특히 엄마한테는 승민이가 최고의 연예인이야.
"동글동글 똘망똘망해서 우리가 '애기'라고 불렀어요. 워낙 귀여웠어요. 살갑고 딸 같은 아들이라고 해야하나. 좀 피곤해 하면 와서 웃긴 얘기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개그 같은 것도 해주고. 투머치 토커예요. 팔을 만지면 말랑말랑 해요. 냄새도 맡아 보고. '엄마 냄새' 이러면 저도 맡으면서 '우리 애기 냄새' 그러면서. 중학교 때까지 그랬어요."
-임지영, 권승민 군 어머니
승민이 부모님은 주말부부였어. 아빠는 타지에서 근무해 평일엔 집에 안 계시고, 형은 고등학생이라 공부한다고 엄청 바빠. 자연스럽게 승민이랑 엄마랑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만큼 엄마랑 승민이는 사이가 끈끈했어.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2011년 12월 20일 아침. 승민이 엄마는 이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일찍 출근을 해야 했어. 승민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엄마. 그런데 엄마가 직장에 도착하고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승민이 학교 담임선생님한테 연락이 왔어. 승민이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대. 승민이는 평소에 지각 한 번 해 본적 없는 아이였어. 이상한 느낌을 받은 엄마는 곧장 승민이한테 전화를 걸었어.
엄마 휴대폰에는 가족들의 전화번호가 단축번호로 저장돼 있었어. 승민이의 단축번호는 4번. 엄마는 휴대폰의 숫자 4를 꾹 눌러 막둥이 승민이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휴대폰에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세요"라는 응답이 나와. 당황한 엄마는 다시 휴대폰을 들고, 이번에는 단축번호가 아닌 승민이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눌러 전화를 걸었어. 다행히 신호가 갔는데, 전화를 안 받아. 아무래도 불안해. 엄마는 서둘러 직장을 나와 집으로 차를 몰았어. 집으로 향한 엄마는 오만 생각이 다 들어. 그 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어.
"이게 뭐지? 그러다가 경찰한테 전화를 받았거든요. 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전 교통사고라 생각했어요. 아파트 앞으로 오라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죠. 가니까 이미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어요."
-임지영, 권승민 군 어머니
엄마는 천천히 아파트 위를 올려다 봤어. 딱 한 곳의 베란다 창문이 열려있는데, 바로 승민이네 집. 엄마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어.
"아니라고 다시 보라고, 막 이랬더니. 사망 확인했다고 얘길 하시더라고요. 애를 안았는데, 아직 따뜻해요. 그래서 아니라고. 이렇게 따뜻하다고. 그래서 그 때, 소리를 지르면서 울었거든요. 바닥에 주저 앉아서. 정말 아니라고 하면서. 그 때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임지영, 권승민 군 어머니
엄마는 모든 게 믿기지 않아. 아침에 잘 다녀오라고 배웅 인사까지 한 애가, 갑자기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니. 승민이의 시신은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어. 그런데 정신 없는 엄마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승민이 시체를 살펴 봐달라 했어. 따라가보니 시체 검안소야. 검시관이 천천히 흰 천을 걷어내고 승민이의 맨몸이 드러나. 그런데 엄마가 승민이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어. 얼굴만 빼고, 온통 노랗고 시퍼런 멍투성이이야. 팔, 다리, 배, 엉덩이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어.
"이 멍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색깔이 변합니다. 그러니까 이 멍들은, 오랫동안 승민이에게 지속된 구타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대체 누가 승민이를 때린 걸까. 그건 승민이가 남긴 유서에 고스란히 담겼어. 승민이는 A4 용지 4장을 빼곡하게 채워 글은 남겼어. 이제부터 그 유서에 적힌 내용들, 승민이가 꼭 전하고 싶었던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해 줄게.
▲ 그날의 진실
시간을 9개월 전으로 돌려 2011년 3월초. 승민이는 새 학년 새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어. 새로 배정 받은 교실로 들어간 승민이는 반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재우를 만났어. 반가운 마음에 재우와 대화를 나눴는데, 너무 잘 통해. 특히 두 사람은 당시 최고 인기 게임이었던 '메이플스토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어. 게임 레벨이 친구들의 레벨로 여겨지던 시절, 승민이는 '고렙' 유저였어. 그걸 알게 된 재우는 승민이에게 "네가 잘하니까 내 캐릭터 레벨 좀 올려주면 안돼?"라고 부탁했어. 승민이는 재우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고, 승민이 대신 열심히 게임을 해줬어.
그런데 얼마 후, 승민이가 열심히 키워 온 재우의 게임 캐릭터랑 아이템이 싹 사라지는 일이 발생해. 원인은 해킹이었어. 당시 게임 해킹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했어. 당연히 승민이의 잘못이 아니야. 그런데 재우는 승민이에게 따져 물으며 책임지라고 말해. 승민이를 부려 먹으려고 작정을 한 거야. 게다가 재우는 "우리 형 뭐하는 줄 알아? 조폭이야. 말 안 들으면 가만 안 둬"라고 협박까지 해. 이런 협박을 무시할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되겠어. 승민이는 재우의 협박이 무서웠어. 이 때부터야. 둘 사이는 철저하게 '갑을 관계'로 바뀌어. 그런데 그 정도가 아주 심각해.
이건 승민이의 힘든 시간이 담긴 2011년 달력이야. 4월 24일은 승민이가 재우의 아이디로 처음 게임을 대신 해준 날이야. 그 날 이후로, 승민이가 재우 대신 게임을 해준 날이 무려 162일이야. 주말도 없이, 아침 7시에도 밤 11시에도, 승민이는 재우를 대신해 게임을 해야만 했어. 그냥 하는 시늉만 할 수도 없었어. 재우는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24시간 승민이를 감시했거든.
"니 지금 메플하나? 안했나? 디졌다"
"니는 안하면 못 잔다"
"지금 가서 샤워하고 잠깨라. 그리고 바로 게임ㄱㄱ"
"전화해도 말도 안 하고 문자도 안 하제"
"XXX야 지금 니집 간다. 닌 오늘 개 때려준다"
이런 문자를 계속 보내는 거야. 승민이는 주변에 말하고 싶었지만, 재우의 협박이 두려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어. 승민이는 그저 재우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어. 그러자 재우는 점점 더 선을 넘기 시작해.
승민이의 통장 내역을 보면 몇 년째 차곡차곡 모아온 돈이 2011년 5월부터 갑자기 빠져나가기 시작해. 승민이가 돈까지 빼앗긴 거야. 심지어 승민이는 이 통장의 돈을 인출하는 것으로 모자라, 돈을 벌어야 했어.
"종이를 주우러 다녔대요. 그래서 벽에 붙어있는 종이도 떼고 이렇게.. 그것도 참…"
-임지영, 권승민 군 엄마
재우는 돈을 뺏기 시작한 이후로 폭력까지 휘두르기 시작해. 승민이 같은 학폭 피해자들 중에 절반은 피해 사실을 숨긴대. 이유는 다양해. 일이 커질까봐, 보복을 당할까봐, 알려지는 게 창피해서. 그 모든 이유 뒤에는 '두려움'이 있어. 한 때는 친구였던 재우가, 이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돼버린 거야.
그런데 다행히 승민이한텐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었어. 윤호라는 아이인데, 승민이와 같은 신세였어. 이 둘은 재우에게 겪는 아픔을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했어. 그런데 어느날, 이 윤호가 재우의 오른팔 행세를 하기 시작한 거야. 윤호한테 다 의지하고 서로 아픔을 나눴는데. 졸지에 승민이를 괴롭히는 아이가 두 명이 된 거지.
승민이를 향한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심지어는 도구도 사용해. 권투 글로브, 단소, 목검 등 이런 걸로 시도때도 없이 승민이를 구타했어. 승민이의 마지막 모습이 멍투성이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제 알겠지?
근데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이 지경이 되도록, 반 친구들도, 선생님도, 아무도 승민이가 학폭에 시달리는 걸 알지 못했어. 주변에서는 왜 아무도 몰랐을까?
"학교에서도, 뭔가 눈에 띌만한 그런 괴롭힘 장면이나 그런 걸 목격한 적이 없어서. 아무도 그런 생각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도 생각 못했고. (가해자들이 평소에) 사건사고도 없었고, 그냥 조용하게 잘 묻어가던 친구들이었어요. 오히려 친구들이 좋아했던, 그런 장난을 많이 쳤던… 그 사건 전에는 다들 좋은 친구로 알고 있었어요."
-최범석, 권승민 군 친구
재우와 윤호는 사람들 앞에선 착한 척 하는, 앞뒤가 다른 아주 영악한 아이들이었던 거야. 게다가 아무도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있었어. 승민이를 괴롭혔던 장소가 남달랐어. 보통 학교 폭력의 80~90%는 학교내에서 일어난다는데, 얘들은 달랐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승민이를 괴롭히기 좋은 장소를 찾아낸 거야. 바로 승민이의 집이었어.
승민이네 아파트 CCTV 영상을 보면, 재우와 윤호가 앞장서 가고 그 뒤를 고개를 숙인 승민이가 뒤따라. 약삭빠른 재우와 윤호는 승민이 집에 아무도 없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어.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놀러왔는데 갈수록 횟수가 늘어나. 승민이가 죽기 전 두 달 동안은 무려 30번, 이틀에 한번 꼴로 승민이네 집을 드나 들었어. 심지어 승민이네 집 현관 비밀번호도 자기들이 입력하고 들어갔어.
승민이네 집에 들어서면, 일단 승민이 엄마가 몇 시에 귀가하는지 확인부터 해. 그리고 두 사람은 승민이에게 라면을 끓이도록 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아이들이 라면을 먹고 냉장고까지 터는 사이, 승민이는 이 아이들의 숙제나 게임을 대신 해. 제대로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집에 있는 도구들로 무차별 폭행을 당해. 옷으로 가려지는 부분만 골라서.
엄마가 귀가하기 전, 재우와 윤호는 승민이네 집을 떠나.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난 뒤 승민이가 집에서 한 일은 맞은 흔적들 지우기. 이걸 감추느라 바빴어. 혹시 엄마가 알게 될까봐 설거지도 했어. 이 때 집에서 겪은 일을, 승민이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어.
"제가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제 친구들이라 했는데 재우하고 윤호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물로 고문하고.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권승민 군 유서 내용 中
이날 재우랑 윤호가 문자메시지로 나눈 대화를 보면 "물에 쳐넣자", "벌 세워놓고 단소로 (때리자)" 등의 말이 나와. 이런 충격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글 끝마다 'ㅋㅋㅋ'를 붙여 웃어. 승민이를 괴롭히는게 그냥 이 아이들한테는 놀이인 거야. 남은 가족들은 승민이가 집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게 씻을 수 없는 한이 됐어.
"우리 가족들이 정말, 그때는 사는 게 사는게 아니었죠. 우리 큰 애는, 자기 동생이 그렇게 됐는데, 아무것도 못 도와줬다는 죄책감. 남편은 남편대로, 멀리 있으면서 아이를 못 봤다는 죄책감. 엄마가 가지는 죄책감은, 그건 뭐라고 말할 수가 없거든요. 내가 내 아이를 못 지켰으니까. 어떻게 중학교 교사라는 게 자기 아들 저러는 거 몰랐냐고… 눈물이 다 말랐는 줄 알았는데…"
-임지영, 권승민 군 엄마
승민이 엄마는 중학교, 아빠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야. 당시 부모님 직업을 듣고 놀란 사람이 말아. 이런 말을 많이 들었대. "어떻게 부모가 선생인데, 애가 그렇게 되도록 모를 수가 있냐"라고. 이 말을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승민이 엄마, 자기 자신이야. 얼마나 스스로를 많이 자책했겠어.
사실 승민이 엄마는 승민이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 적이 있었어. 어느날, 하루아침에 간식 창고가 텅 비어진 게 이상해서 물었더니 승민이는 "친구들이 와서 같이 먹고 놀았어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때 잖아요"라고 답했어. 자꾸 용돈을 더 달라고 할 때도 "친구들이랑 같이 사먹으러 다니는데, 같이 다니려니 용돈이 부족해요"라고 했어. 승민이가 이렇게 말하니 엄마는 별 의심없이 용돈을 더 줬어. 그 때 아이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던 거지. 그렇게 승민이가 죽기 전날인, 12월 19일이 찾아와.
▲ 승민이의 마지막 하루
사람들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하느라 분주하던 시기. 이날 저녁, 승민이도 계획을 하나 세웠어. '내일 아침에 모든 걸 끝내자'고. 그동안 잘 버텨온 승민이가 왜 그날 그런 결심을 했을까. 끝내 참지 못한 어떤 순간이 있었던 거야. 승민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정적인 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서에 남아 있어.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했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전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전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거 같아요."
-권승민 군 유서 내용 中
전깃줄로 목이 묶인 채 끌려 다니면서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던 거야. 그것도 자기집 안방에서. 하지만 승민이가 결코 참을 수 없었던 건, 사진을 보면서 가족을 욕했다는 거.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던 승민이에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거야. 그날 밤, 승민이는 참담한 심정으로 유서를 써 내려갔어.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들,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 그리고 간절한 마지막 부탁까지 담아 A4 종이 4장을 가득 채웠어.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예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든 척 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 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일지도 몰라요. 매일 남몰래 울고, 매일 맞던 시간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권승민 올림.
P. 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저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애들이 알고 있어서, 제가 없을 때도 문 열고 들어올 지도 몰라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말 죄송해요."
-권승민 군 유서 내용 中
세상을 등지면서까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 승민이가 남긴 마지막 부탁은 도어키 번호를 바꿔 달라는 거였어. 그 녀석들이 다시는 집에 올 수 없게. 승민이는 이 말을 유서 곳곳에 세 번이나 적었어. 그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으면 그랬을까.
승민이가 이렇게 긴 유서를 적은 후, 또 한가지 한 일이 있어. 엄마의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번호를 지웠어. 그래서 엄마가 단축번호 4번을 눌렀을 때 없는 번호로 나온 거야.
"승민이는 저를 잘 알잖아요. 저랑 늘 같이 있었고,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내가 지우는게, 엄마가 힘들어서 못 지우고 있을까봐' 자기가 먼저 지워준 게 아닐까. 지금도 제 휴대전화에는 (승민이 번호가) 저장돼 있어요. 다시 입력시켰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승민이는 제 아들이거든요. 제가 죽을 때까지."
-임지영, 권승민 군 엄마
그렇게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승민이는 몰랐던 거지. 끝까지 가족을 생각했던 승민이. 이 끔찍한 학교 폭력의 고통을 스스로 끝낸 거야. 괴롭힘이 시작되고 9개월만이었어. 승민이는 이제 세상에 없어. 하지만 '꼬꼬무'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 장난으로 괴롭혔다는 아이들
2011년 12월에 일어난 이 사건 때문에 온나라가 발칵 뒤집혔어. 경찰은 두 학생에 대한 전면 수사를 시작해. 그런데 피해자인 승민이도 세상에 없고, 목격자도 없어. 가혹행위에 대한 증거도 없어. 하지만 재우와 윤호는 학교폭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어. 승민이와 이 아이들이 주고받은 문자가 복원된 거야. 그 내용을 봤더니, 너무 기가 막혀.
"내일 죽일거니까 니 혼자 디지지 마라", "전화해도 말도 안하고 문자도 안하제. XXX야 지금 니 집 간다" 이런 지시와 명령, 욕설이 쉼없이 쏟아져. 그런 막말이 하루에 40~50통씩 총 273통이나 돼. 승민이한테 왜 이렇게까지 했냐 물으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어.
"장난으로 한 일인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모든 게 장난이었대. 기가 막히지. 이들은 어쨌든 승민이를 괴롭히고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며, 후회와 반성의 모습을 보였어. 그런데, 이 모습이 과연 진심이었을까? 승민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때 이 아이들이 어떻게 했는지. 승민이가 떠난 그 날 당일로 시간을 다시 돌려볼게.
그날 학교에서는 1교시부터 교실이 술렁했어. 한번도 결석한 적 없는 승민이가 학교에 안 왔으니까. 담임 선생님은 승민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소문은 재우와 윤호 귀에도 들어갔어. 학교가 끝나고 둘은 서둘러 승민이네 집으로 향했어. 둘은 자연스럽게 승민이네 문을 따고 들어가서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어. 그리고 나와서 아파트 주위를 살피다가 경비아저씨한테 물어봤어. "혹시, 여기 사는 친구가 떨어졌어요?"라고 확인을 한 거야. 본인들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미 알았다는 거지. 결국 두 사람은 승민이의 죽음을 알게됐어. 그 순간, 둘이 나눈 대화가 있어.
"샘한테 혼나면 머라카지?"
"몰라 그냥 인정하지 머ㅋㅋㅋ"
"감방가게?"
"안간다ㅡㅡ 내일 이야기 하자"
반성, 후회, 당황, 죄책감, 그런 건 찾아볼 수 없는 대화야. 이들이 이렇게 당당했던 이유, 가해자들이 믿는 구석은 '촉법소년'이란 거였어.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상 미성년자인 촉법소년은 형법에 따른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게 돼. 처벌이 아니라 처분이야.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교도소에 안 가. 그런데 얘네들,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었어. 둘 다 생일이 지났거든. 그래서 둘 다 만 14세로 촉법소년에 해당이 안 돼. 이제 형사처벌은 피할 수 없어.
재판을 기다리던 승민이 엄마는 가해자들을 용서하지 않고 법으로 죄를 묻겠다고 다짐했어. 그런데, 재판을 앞두고 주위에서 '가해자들의 처벌이 가벼울 거다'라는 불안한 이야기가 들렸어. 학생이고 초범이면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는 거야. 실제로 승민이 사건 전에 충주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 4년간 지속된 집단폭행에 아파트에서 여고생이 투신한 사건인데, 그때 가해자들은 장기 8개월, 단기 6개월의 형량, 대부분 단기형을 선고 받았어. 그럼, 재우와 윤호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첫 공판날, 연녹색 수의를 입은 두 아이가 들어왔어. 검사가 두 아이의 죄목을 읽어 내려갔어. 공갈, 강요, 협박, 갈취, 폭행 등 끝도 없이 죄목이 나와. 그때 검사가 나열한 증거가 무려 96가지. 고개를 푹 숙인 두 아이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어. 보통 이런 식이야. 죄를 인정한다, 반성하고 있다, 초범이다, 그렇게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는 거지. 승민이 엄마는 불안해져. 그래서 진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해. 유족이 재판에서 진술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래.
2차 공판날, 엄마가 막상 진술하려니 승민이가 받은 고통을 입 밖으로 꺼내는게 너무 힘들어.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울음만 나와. 그래도 엄마는 힘을 냈어.
"우리 아들은 이 아이들이 실수를 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 자기가 쉬어야 할 집에서 고문과 폭행을 당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가해한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흉악한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진술을 요청했습니다."
-권승민 군 엄마 임지영 씨의 진술 내용 中
드디어 선고공판 날, 재판부는 이런 판결을 내렸어.
"피고인들은 범행 당시 14세 중학생으로서 아직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고 이 모든 책임을 오로지 피고인들 개인에게만 지울 수 없다는 주장도 경청할 만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집에 거의 상주하며 피해자의 모든 일상생활을 파괴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 점,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아무 죄책감 없이 행하였던 점. 피해자가 사망하기까지 한 본 건의 경우에 형벌 외의 관대한 처분을 하는 것은 지나친 관용이라고 보이므로 피고인들에게는 실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중략)…주문, 피고인 이재우에게 장기 3년 6개월, 단기 2년 6개월, 피고인 정윤호에게 장기 3년, 단기 2년에 처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낮은 형량이지만, 그래도 앞선 사건들보단 형량이 커. 사실 당시 학폭으로는 이게 최고 형량이었대. 재판부가 나름 엄정한 판단을 내린 거야. 그런데 가해자들은 그나마도 죗값을 받을 생각이 없어. 형량이 너무 많다며 항소했어. 재판은 2심으로 이어져. 그런데 2심에선 뜻밖의 증언자가 등장해.
"판사님, 이 아이들은 일진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중학생이 저지른 일인 만큼 교화와 교육이 더 중요시돼야 합니다. 형이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감형을 부탁드립니다."
이런 증언을 한 사람의 정체는 재우, 윤호의 담임선생님이야. 승민이의 담임 선생님이기도 한 그가 가해자들을 위해 나선 거야.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승민이 가족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증언이었어.
"담임 선생님이 그냥 손잡아 주고 '죄송하다 아이를 좀 더 살폈으면 좋았을 텐데요' '끝까지 사건이 잘 해결되도록 학교에서 돕겠습니다' 저는 그게 사과거든요. 근데 그런 일이 없었어요. 그게 끝이었어요. 그리고는 가해 학생들 변호하러 담임 선생님이 재판장에 가셨어요."
-임지영, 권승민 군 엄마
2심에서는 원심판결이 파기되고, 이재우는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 6개월, 정윤호는 징역 장기 2년 6월, 단기 2년를 선고받았어. 감형이 된 거야. 이것도 과하다며 가해자들은 또 상고를 냈어. 그렇지만 더 이상의 감형은 없었어. 재우와 윤호는 그렇게 소년교도소에 수감됐어.
승민이 엄마는 가끔, 재우와 윤호의 소문을 들으신대. 소문은 '이름을 바꿨다더라', '의사가 됐다더라', '해외에 있다더라' 등의 내용들이야. 물론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 잘살고 있다는 내용이야. 하지만 승민이 가족들은 아직도 상처로 아파하고 있어.
"저는, 죽을 것처럼 힘드니까. 성당에 갔는데, 제가 그 얘기를 했어요. 용서가 안 돼서 주의 기도를 바칠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용서 안 해도 된다고, 용서는 나중에 하라고. 지금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근데 그게 진짜 위안이 됐어요 저한테."
-임지영, 권승민 군 엄마
▲ 지금도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또 다른 승민이에게
학교에서 친구가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 보통 어떻게 하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책상 위에 국화꽃도 놓아주고, 같이 슬퍼하고 위로하고 그러잖아? 그런데 당시 승민이 친구들이 기억하는, 이 학교의 특별 조치가 있었어. 첫째 '절대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말 것', 둘째 '승민이 책상에 꽃을 올리지 말 것'. 학교는 승민이의 죽음을 조용히 지나가고자 한 거야. 심지어 당시 학교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한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어.
"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습니까? 다른 애들이 멋있게 보고 따라서 뛰어내리면 어떡할 겁니까?"
결국 아이들은, 떠난 친구를 위해 꽃 한송이 올려놓지 못했어. 승민이의 손때 묻은 사물함도 학교에서 싹 정리해버리고, 재적 처리도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처리됐어. 승민이의 흔적은 학교에서 그렇게 서둘러 지워졌어.
이해할 수 없는 학교의 대처. 그런데 알고보니, 학교가 감춘 충격적인 비밀이 하나 더 있었어. 승민이가 다니던 이 학교엔, 승민이처럼 지워진 아이가 한 명 더 있어. 이름은, 김희정. 승민이가 투신하기 불과 5개월 전, 희정이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투신했어. 그것도 같은 아파트에서.
희정이의 반에도 학폭 가해자, 피해자가 있었어. 학폭 피해에 괴로워하는 친구를 보다 못한 희정이는, 이 친구를 위해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 친구가 어떤 괴롭힘을 당하는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장문의 편지를 써서, 다른 친구들 몰래 교무실에 갖다 놓은 거야. 이 제보 편지를 받은 선생님은 어떻게 조치했을까?
제보자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색출해 선도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은 황당하게도 "전부 책상 위로 올라가서 무릎 꿇고 눈 감아. 친구를 괴롭히면 돼 안돼?"라며 집단 체벌을 했어. 선생님한테 알린 사람이 희정이란 건 금방 밝혀졌어. 희정이는 눈 앞이 깜깜했어. 이제부터 어떻게 학교에 다니지, 내일부턴 내가 타깃이 되는 건가, 걱정이 한가득이야. 게다가 학폭 가해자들 뿐만 아니라, 같은 반 모든 아이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어. 당장 내일이 두렵고 막막해진 희정이는, 결국 모든걸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 그런 희정이의 바지 주머니에선 이런 쪽지가 발견돼.
"날 해친 아이들 김XX, 이XX, 박XX. 그리고 우리반 거의 모두."
희정이에겐 그게 유서 대신이었어. 희정이 가족들이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자, 학교는 "저희가 어떻게 진상규명을 합니까. 저희한테는 자살 사건을 조사할 권한이 없어요"라고 둘러댔어. 물론 경찰서도 찾아가봤지만, 경찰서도 고개를 저어. 희정이가 괴롭힘을 당한 구체적인 정황이 없다는 거야. 결국, 희정이가 말한 '날 해친 아이들'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그렇게 희정이 사건은 마무리됐어. 친구를 돕고 싶었던 한 여중생이 그렇게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졌어.
승민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고 난 후에야 희정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어. 그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중에, 사건의 진실을 아는 친구가 거의 없어. 학교가 원하는대로, 잘 은폐된 거지. 만약 그 때 학교가 쉬쉬하지 않고 가해자들에게 적극적인 조치를 했다면, 재우와 윤호도 괴롭힘을 멈췄을 수도 있고, 승민이가 몸을 던질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손을 놓쳤을까. 친구의 괴롭힘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아이들에게, 승민이 어머니가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대.
"어딘가 숨어있을 승민이들에게. 이런 말 하기 미안한데, 학교 그만둬도 괜찮아요. 학교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생명이거든요. 힘든 일 있으면 어른한테 꼭 얘기해서, 해결책을 찾는 게 저는 가장 옳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도와주는 분들이 많을 거거든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하지 말고, 바른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임지영, 권승민 군 엄마
학교폭력의 역사는, 승민이 사건 전과 후로 나뉘어. 전화번호 '117'은 학교폭력신고, 상담 번호야. 승민이 사건을 계기로 긴급번호로 지정됐어. 여기로 접수된 누적 신고 건수가 최소 60만건(2022년 기준)이야. 2012년에는 학생들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8.5%가 있다고 털어놨어. 한 반에 두 세명 꼴이야. 그럼 10년이 지난 2022년엔 어떨까? 1.7%야. 많이 줄었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거야. 관심을 가지냐 아니냐의 차이야. 학교와 사회가 집중해서 예방하고 단속한 지난 10년간, 눈에 띄게 피해가 줄어든 거야.
승민이네 가족은 지금도 승민이가 떠난 그 집에 살고 있어. 승민이 어머니는 여전히 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셔. 나름의 사명이 있으시대. 교육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거. 100년이든 1000년이든, 가족을 기다리겠다는 승민이를 떳떳하게 만나기 위해서.
승민이 엄마는 추모공원에 가서 승민이의 26번째 생일을 맞았어. 승민이의 공간에는, 생전 좋아했던 TV프로그램 관련 물건들, 좋아하는 노래를 담은 MP3가 놓여있어. 아직도 승민이가 매일 보고 싶다는 엄마는 아들에게 이런 인사를 전했어.
"우리 애기. 엄마는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고,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너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한다. 엄마는 너 낳고 너무 행복했어. 즐겁고. 엄마 갈 때까지 잘 있어. 엄마 정말 열심히 살다가 돌아갈게 너에게. 사랑해 우리 애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 이 사진 본 적 있어? 엘리베이터에 주저앉아 눈물을 닦는 아이의 뒷모습. 이 사진 속 아이는 승민이가 아닌데, 승민이로 잘못 알려져 인터넷에 퍼져있어. 이 아이는, 2012년 6월에 학교폭력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대구의 한 고등학생이야. 이 아이는 이날 오전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고민하다가, 결국 7시간만에 15층에서 뛰어 내렸어. 승민이 어머니는꼭 전해달라고 하셨어. 이 아이는 승민이가 아니라,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소중한 아이라는 걸.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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