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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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탈출 위해 불 지른 소녀들…40명 사망한 비극, 어떤 학원이었길래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5.05 12:38 수정 2023.05.05 15:18 조회 1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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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4일 방송된 '새벽 2시의 라이터-사라진 소녀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박선영 아나운서, 배우 김미경, 래퍼 한해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수상한 건물, 사라진 소녀들

때는 1995년. 용인군 마북리에 위치한 이 곳에는 붉은색 지붕의 하얀 건물 두 세 동이 붙어있어. 인적은 없고 수풀이 무성해. 건물 유리창은 다 깨져 있어. 그리고 건물 중앙에는 '믿음, 사랑, 소망'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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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 곳에는 이상한 게 또 있어. 이 건물 강당 안에 초록색 슬리퍼가 산처럼 쌓여있는 거야. 슬리퍼에는 저마다 이름이 적혀있는데, 공교롭게도 다 여자 이름이야. 그런데 이 슬리퍼의 주인들이, 한날 한시에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해. 도대체 이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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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꼬꼬무'가 이번 취재를 시작할 때는 슬리퍼의 주인을 단 한 명도 찾지 못한 상태였어. 그래서 이 주인을 찾기 위해, '꼬꼬무' 최초로 제보를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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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드디어 연락이 왔어. 첫번째 슬리퍼의 주인공은, 신화정(가명) 씨야. 그 때 그 사건을 입 밖에 내는 건 28년만에 처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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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한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가끔 포털사이트에 뉴스를 찾아보곤 했었는데요. 너무 어릴 때 있었던 일이라, 방송 보고 제보 받는다는 거 보는 순간 너무 떨렸어요. 워낙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꼬꼬무'에서.. 방송에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근데 '한번쯤 나왔으면' 하는 생각 많이 했어요."
-신화정(가명), 당시 16세

본명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인터뷰에 응한 화정 씨. 아직도 당시 이야기를 꺼내기가 불편하다는 거지. 그래도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오늘의 이야기는, 화정 씨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할 거야. 그만큼 많은 슬리퍼의 주인들이 용기를 내서 '꼬꼬무'에 연락을 해줬어.

▲ 어딘가로 잡혀 온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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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슬리퍼의 주인공들 이선옥(가명) 씨와 강금선(가명) 씨. 당시 나이는 중학교 3학년인 16살이었어. 이 둘은 어딜 가나 꼭 붙어 다니는 영혼의 단짝이야. 여름이 시작되던 6월의 어느날, 두 친구는 붉은 지붕 건물 앞에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어. 선옥이가 무섭다며 집에 가고 싶어 하자, 금선이는 "선옥아 괜찮을 거야"라며 달랬어.

그 순간 거대한 철문이 열렸고, 두 친구는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어. 둘러보니 건물도 깨끗하고 운동장도 넓어. 게다가 당시는 90년대인데 야외 수영장이 있어. 두 소녀의 긴장이 풀리려던 찰나, 그 때 여자 직원이 한 명 나타났어. 그 여자 직원은 두 소녀의 가방을 휙 뺏어서 저쪽으로 던져 버렸어.

"사회에서 가져온 건 다 압수야! 지금 입고 있는 옷, 싹 다 벗어!"

그리고는, 생필품이 담긴 바구니를 건넸어. 바구니에는 세면도구, 단체복, 초록색 슬리퍼 등이 담겨 있어. 여기서는 이 옷만 입고 이 물건만 써야 한대. 여긴 규칙이 있어. 절대로 입을 열면 안돼. 그것도 무려 두 달이나. 그 누구하고도 얘기를 하다가 걸리면 엄청난 징벌이 있다는 거야. 금선이랑 선옥이는 얼떨떨 했어. 근데 그 다음 질문이 더 충격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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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경험있지? 남자랑 자봤잖아!"

이해하기 힘든 이 곳의 규칙과 상황들. 그 직원은 두 친구를 데리고 옆 건물인 생활관으로 이동했어. 이제부터 두 사람은 여기서 먹고 잘 거래. 선옥이는 1층, 금선이는 2층 방을 배정 받았어. "저희 같은 방 아니에요?"라고 묻자 "대화 금지! 입 안 다물어?"라는 호통이 돌아왔어. 그렇게 선옥이는 1층, 금선이는 2층으로 헤어졌어. 도대체 여기 뭐하는 곳일까?

"창문 밖으로 산이었는데요. 거기에 개를 풀고, 남자들이 누굴 잡으러 다닌 기억이 있어요. 그냥 밖에 보이는 곳은 다 쇠창살이 돼 있었고요. 안에서 사감이 문을 잠그고. 밖에서 경비 아저씨들이 문을 잠갔어요. 제가 가보진 않았지만 교도소 같은 곳이었다고 생각해요."

-신화정(가명), 사건 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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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을 막고 있는 쇠창살. 2층으로 된 생활관의 내부는 개미굴을 연상시켜. 각 층마다 출입구가 있고,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 각 층은 좁은 복도에 방이 10개씩 있어. 이 비좁은 방 안에는 소녀들이 7~8명씩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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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가 되니, 각 층의 사감이 건물 안에서 출입문을 한 번 잠그고, 밖에서 쇠사슬을 걸어 또 한 번 잠갔어. 건물 주변에는 가시철조망까지 둘러싸 있어. 그리고 중간에는 경보기가 달려 있는데, 철조망이 움직이며 울리는 이 경보기의 경보음은 마치 개구리 소리 같았어. 여긴 청원 경찰만 11명이 지키고 있어. 이쯤 되면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진짜 궁금해지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곳. 그럼 아이들은 어떤 이유로 여길 들어오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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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방황을 많이 했어요. 이혼 가정에서 새엄마가 있었고. 친엄마를 못 만나게 하는 이유도 컸고, 그래서 가출도 하고. 그 뒤로 (아빠한테) 잡혀서 가게 됐어요. 새엄마의 아는 동생이 거기에서 자격증을 따고 와서, 그래서 알고 있었거든요. 기술학원이 있다는 걸요."

-신화정(가명), 당시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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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정식 이름은, '경기도 여자기술학원'이야. 화정이 아버지는 화정이를 잡아다가 여기로 보냈어. 선옥이랑 금선이도 가출했다는 이유로 여기 들어오게 된 거야.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나 배워'라며 부모들이 보낸 거야. 그런데 부모님이 보낸 애들만 있는 것도 아니야. 고아원 출신인데 형편이 너무 어려워 고등학교를 못 가고, 말그대로 진짜 기술을 배우러 온 애들도 있었어.

황당하게 들어온 애들도 있어. 그냥 모르는 아저씨들한테 잡혀서 왔다는 거야. 그 시절, 서울이랑 경기도 시내에는 '청소년 선도 위원회'라 해서, 가출 청소년 단속반이 있었어. "너희 가출했지? 너네 집 어디야?"라고 물어 답변을 못하면, 강제로 잡아서 차로 실어 온 거야. 물론, 가출이라는 것이 잘못된 행동은 맞지만, 그래도 불법도 아닌데 강제로 잡아온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근데 수상한 건 또 있어. 이건 원생 연령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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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이 입소 당시 전체 원생이 138명. 최저 연령 13세부터, 33세 성인까지 있어. 10대 비행청소년만 잡아왔다고 하기엔, 연령대가 이상하지.

▲ 기술학원의 운영 규칙

화정이는 입소 이후 일주일 내내 울었어. 왜냐, 이 곳의 생활은 군대보다 더 엄격했고, 폭력이 난무했거든.

새벽 6시 30분, 꼭두새벽에 일어난 소녀들. 이들은 아침, 저녁으로 방마다 인원 보고를 했어. 칼같이 이부자리 갠 후 줄 맞춰 세면실로 이동해. 그 후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데, 원생 138명의 밥은 직접 지어. 애들이 직접 다 해야해. 가장 힘든 건, 학원 안에 항상 깔려 있던 공포 분위기야.

함께 입소한 단짝 선옥이와 금선이. 선옥이가 가장 힘들었을 땐, 금선이를 마주칠 때였어. 서로 마주쳐도 말을 못하니까. 선옥이가 '꼬꼬무'로 당시 이야기를 글로 보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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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이는 침착하게 절 달래주고, 금방 나가게 될 거라고 위로 했었는데, 그냥 둘이서 아는 척도 못하게 해서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밥 먹으러 갈 때는 만났어요. 말을 주고받을 수 없어 몰래 편지로 얘기했어요. 몰래 주고받은 편지라 손바닥 안에 잡힐 정도로 접어서 식사 시간에 마주치면 걸리지 않게 스치면서 주고 받았어요."

군대보다도 더 엄격한 규칙. 만약 누군가와 말하는 게 목격됐다면? 원생들의 증언을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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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하는 시간이 있어요. 선생님 한 분이 체조하는데 어떤 친구가 다른 친구랑 인사를 웃으며 했다고, 오자마자 뺨을 때리고 나서, 심한 욕을 했었는데. 그 때 딱 생각이 들었던 게, 여기는 진짜… 친구보고 웃었다고 저렇게 때리는 걸 보면, 그냥 저희를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대했던 거 같아요."
-최주영(가명), 당시 원생

경기도 여자기술학원은 국가세금으로 운영됐어. 이곳의 운영 목표를 보면, '1인 1기 기술 교육에 의한 기능공 양성' '정신 교육에 의한 인간 재생'이란 말이 있어. '인간 재생'이란 말, 이 어린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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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는 기술보다 훨씬 더 강조한 두 가지가 있었어. 바로 '칫솔과 성경책'이야. 이 학원은 국가에서 운영했지만, 실제 운영은 한 기독교 재단이 위탁 받아 했어. 종교의 자유는 당연히 없지. 매일 성경 공부를 두시간씩 해. 주기도문, 사도신경은 그냥 툭 치면 나올 정도가 돼야해. 아침저녁으로 검사하거든.

그럼 칫솔은? '청소'를 말해. 방, 강의실, 화장실, 세면실, 창틀, 복도 등을 전부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야 해. 그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공포의 쇠닦기'라 불리는 계단청소였대. 계단의 모서리 쇠 부분을 칫솔로 번쩍번쩍 광이 나게 닦으래. 왜 이렇게 청소에 집착한 걸까? 청소 말곤 할 게 없으니까.

물론 기술학원이니 매일 3시간씩 기술수업을 하긴 했어. 그런데 수업의 질이, 너무 형편 없어. 60-70년대에나 배울 법한 것들을 가르치는 거야. 컴퓨터, PC통신이 보급되던 1995년도인데, 컴퓨터 수업 같은 건 없어. 애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미술, 글쓰기, 그런 것도 꿈도 못 꿔. 바깥 세상에선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리가 났는데, 이 곳의 10대 친구들은 TV도 못 봐. 아이스크림, 과자, 라면 같은 것도 못 먹어. 이 소녀들은 이 생활을 얼마나 해야 했을까? 기본 입소기간이 10개월이야. 그런데 규칙을 어기면, 최대 2개월까지 연장이 돼. 교도소 같은 이 생활. 아이들은 정말 미칠 지경이야.

아버지 손에 보내진 화정이 또한 마찬가지야. 화정이는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어. "저 여기 생활이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빠 데려가 주세요"라고. 하지만 소식이 없어. 아버지는 화정이를 버린 걸까? 그 때 화정이는 몰랐지만, 먼저 입소한 아이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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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보내기 전에 사감 선생님한테 들렀다가 가요. 만약에 기술학원에 대한 욕을 했거나 나쁘게 썼거나 하면 그 편지를 없애 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편지가 집으로 간 줄 알고 있는 거죠. '집에서 왜 답장이 안 오지?' 하며 기다리는 거고…"
-임재선(가명), 당시 원생

그런데 얼마 후, 누가 화정이를 면회 왔대. 화정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면회실로 갔어. 면회를 온 사람은 화정이의 친엄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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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엄마가 면회를 왔거든요. 친엄마가.. 엄마가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많이 울었어요. 저희 친엄마는 아빠가 절 어디로 보냈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제가 거기 갔단 이야기를 듣고,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했을 때, 잘 안 가르쳐 주더래요 위치라든지 그런걸. 근데 다시 전화 걸어서 '내 딸도 속 썩여서 좀 보내려고 한다' 했더니, 너무 자세히 알려 주더래요. 그때 엄마한테 '나가겠다'라고 했던 거 같아요. 근데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신화정(가명), 당시 원생

친엄마는 재혼을 하셔서 화정이에 대한 친권이 없었어. 친엄마도 자신을 그 곳에서 빼낼 힘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정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대. 그런데 진짜 비극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 사망자 40명, 끔찍한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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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여자기술학원에서 불이 났습니다. 기숙사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은 오늘 새벽 두시쯤이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바깥 쇠창살을 들어내고 화장실 안으로 진입했을 때는 (원생들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불은 곧바로 베니어판으로 된 개인 사물함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1996년 8월 21일 월요일 뉴스 中

기술학원 생활관에 불이 난 시각은 월요일 새벽 2시야. 수십명이 다치고, 무려 아이들 40명이나 숨졌어. 119 화재 신고가 접수된 건 새벽 2시 6분경. 7분만에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어. 그런데 베테랑 소방관들 눈에, 불이 난 현장이 다소 이상해 보였대. 생활관에서 불이 난 곳은, 2층의 12호, 14호, 20호, 19호, 그리고 1층의 4호, 8호, 9호. 이상하지? 발화 지점이 한 군데가 아니야. 새벽 2시에 불길은 1층 2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타올랐어. 계획된 방화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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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직후 60여명의 아이들은 병원으로 실려갔어. 그럼 나머지 80명은? 학원 강당에 모였어. 경찰은 이 아이들을 상대로 조사를 시작했어. 불이 어떻게 난 거냐고 추궁하니 아이들은 눈물만 뚝뚝 흘려. 그 중 한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형사님, 제가 라이터로 불을 붙이긴 했는데요"라고 말해. 그러자 이번엔 저쪽에서 한 아이가 "옆방에서 오늘 밤에 불 지른다고 했어요"라고 해. 그날 오후, 무려 17명의 방화범을 찾았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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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학원 원생 18살 박모양 등으로부터 학원을 탈출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입니다."
-당시 방송 뉴스 내용 中

"이들은 엄격한 수용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1개월 전부터 탈출 모의를 시작했다. 신호조, 출입문 파손조, 경비원 차단조, 방화조 등 4개 조로 나뉘어 탈출에 사용할 각목, 담요, 라이터 등을 미리 준비해놨다. 외부와 연결된 전화선을 끊고, 30분간 욕설과 함께 사감을 집단 구타했다."
-당시 신문 보도내용 中

학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아이들. 아무리 철이 없어도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17명의 방화범 중 막내는 13살이었어. 형사 미성년자인 막내만 빼고 나머지 16명은 구속됐어. 혐의는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 및 치상'. 사람이 현존하는 건조물에 불을 내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라는 거야. 이런 방화는 고의성이 있기 때문에, 실수로 불을 낸 것보다 훨씬 강한 처벌을 받아. 여론은 어땠을까? 철없는 10대 비행 소녀들을 모아놨더니 저런 일을 저질렀다고, 비난이 마구 쏟아져. 근데, 이 사건에는 반전이 있어.

이 16명의 아이들이 구속되고 며칠 후, 유치장에 한 남자가 찾아와. 김칠준 인권변호사야. 김변호사는 첫 만남에서 뭔가 감춰져 있단 생각이 들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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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남았던 강렬한 인상은 '정말로 가슴 아프다'. 한꺼번에 2층에서 쭉 모아놓고 접견을 하는데, 한 아이가 아니에요. 다 엉엉 울면서 '변호사 아저씨, 내가 내 친구를 죽인 게 맞나요? 내 친구가 저희 때문에 죽은 게 맞나요?'가 첫 질문이었어요. 그 아이들이 아직, 법에 대해서 알 리도 없고, 방화치사로 만약 유죄가 인정되면 몇 년형 받을지 알지도 못하지만, 거기에 관심있었던 게 아니라, 자기들이 친구를 죽인 죄로 구속됐단 걸 알기 때문에. 정말 자기가 친구 죽인 게 맞냐고, 울면서 하는 얘기가 제일 가슴 아팠어요."
-김칠준, 당시 사건 변호인

김변호사는 사건을 파면 팔수록 뭔가 좀 이상했어. 아까 소방관들이 이 화재가 특이하다고 했잖아? 이날 화재는 1시간 만에 진화가 됐어. 그럼 건물 크기 대비 규모가 큰 화재는 아니었어. 그런데 40명이나 사망했잖아. 화재 규모에 비해 사상자가 크게 발생했어. 그 방화의 미스터리를, 풀어볼게.

▲ 소녀들은 왜 방화계획을 세웠나

구속된 16명의 방화범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어. 모두 다, 1층 원생이란 점이야. 대부분의 사상자는 2층 화장실에서 나왔어. 발화점은 1층과 2층의 방 7곳으로, 불은 동시다발적으로 붙었어. 그런데 1층 아이들은 무사히 구조됐고 2층에서만 사망자가 40명이나 나왔어. 1층과 2층의 운명을 가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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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기 하루 전인 8월 20일 일요일. 아이들은 "21일 새벽 2시, 신호음, 불"이라 쓰여진 쪽지를 몰래 주고 받았어. 아이들이 새벽 2시에 불을 내기로 작전을 짠 건 사실이야. 이 위험한 계획이 아이들 사이에서 퍼지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어.

사실, 학원에선 가끔 끔찍한 사망사고가 있었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원생들이 종종 있었던 거야. 얼마 전에도 한 아이가 장롱 안에서 자기 손목에 상처를 입히며 극단적인 시도를 하다가 발견됐어. 그런데 학원에서 이 아이한테 한 조치는 손목에 밴드 하나를 붙여주는 것 뿐. 이걸 보고 원생들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어. 하지만, 이게 결정적인 방화의 계기는 아니야.

시발점이 된 건, 화재 이틀 전인 8월 19일에 일어났어. 철조망을 건들면 나던 개구리 경보음 소리. 그런데 이 경보 장치는 비가 오면 작동을 잘 안 한다는 약점이 있었어. 이날은 비가 억수로 내렸어. 그날 원생 몇 명이 도망치자고 결심했어. 생활관이 봉쇄되기 직전에, 두 명이 철조망을 넘었어. 그리고 실제로 탈출에 성공해. 성공한 두 명을 본 남아있는 원생들 중 뒤늦게 6명의 원생들도 뛰어 나왔어. 철조망을 뛰어넘으려는 그 순간, 청원경찰이 개를 풀어 잡으러 온 거야. 도망가다 붙잡힌 아이들은, 죽도록 맞았대. 우산으로 맞고, 발길질에 뺨까지. 거기에 교육기간은 60일이나 연장됐어. 이걸 지켜본 원생들은, "해도해도 너무한다", "우리가 범죄자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권리로 저러냐"며 들끓었어.

"그럴 때 아이들이, '주눅이 들 거냐, 격분할 거냐?' 이런 거죠. 근데 그 때는, 여기 아이들이 다 격분했다는 거잖아요. '쟤네들이 벌 받을 짓을 했어'가 아니라, '저건 부당해'라고 느꼈다는 거죠."
-김칠준, 당시 사건 변호인

참고 참았던 게, 결국 터졌어. 놀라운 건, 그날의 방화 계획을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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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에 불이 날 거다'라는 걸 다 알고 있었거든요. 잠이 안왔어요. 정말 나갈 수 있을까. 정말 불이 날까. 무서우면서, 기대한 거 같아요."
-신화정(가명), 당시 원생

"자기 혼자 알지는 않고, 지나가면 또 여기 전달하고. 이렇게 해서 (방화계획은) 다 알았던 것 같아요. 만약에 성공해서 다 도망 잘 가서 살면 다행이고. 안 되면 안 되는 건데… 그냥 반반?"
-임재선(가명), 당시 원생

"어느 순간부터 애들이 되게 많이 흥분돼 있었어요. 1층 애들과 2층 애들이 공모를 해서 연기만 조금 나면, 밖에서 문 열어주겠지. 그럼 우리 다같이 도망가자, 이런 생각을.. 다 나가자."
-최주영(가명), 당시 원생

애들 생각은, '불이 나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그 틈에 이 지옥 같은 학원에서 도망쳐야겠다'는 거였어. 위험천만한 계획이었지만, 꽤 많은 아이들의 마음이 동한 거야. 그렇게 방마다 동참하기로 하고, 아이들의 작전이 개시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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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아이들은 손에서 손으로 라이터를 넘겼어. 취사반에서 쓰던 라이터야. 밖에서 공수해온 것까지 모아서 방마다 나눠 가졌어. 그리고 저녁 9시 점호 시간. 모두들 가슴이 미친듯이 뛰어. 다들 잠자리에 드는 척 하다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준비를 시작해. 문이 열리면 재빨리 도망칠 수 있게 우선 운동화를 챙겨 신은 후에, 공책과 베갯잇, 이불솜을 막 찢어. 불쏘시개가 필요하니까. 아이들 계획은, 밖에서 연기가 보일 정도로만, 작게 불을 내는 거야.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 때라도 이 위험한 계획을 멈췄어야 했어. 하지만, 작전시간이 다가오니까, 조금씩 흥분하는 아이들이 생겨. 불이 더 잘 붙게 하기 위해 베이비 오일도 꺼내왔어.

새벽 2시가 됐어. 아이들 몇 명이 사감 방으로 달려가. 손에는 이불을 들었어. 몇 명이 사감한테 이불을 씌우고 붙잡었어. 계획이 빨리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어. 바로 그때, 어디선가 발 구르는 소리와 창문 깨지는 소리가 나. 신호야. 결국 아이들은 불을 지르고, "불이야! 불이야!" 밖에서 다 들리도록 소리를 쳤어. 아이들을 출입문 앞으로 달려갔어.

여기까진 아이들이 계획한 대로야. 그런데, 뭔가 이상해. 자기들 비명소리 말고는, 주변이 잠잠해. 건물에 불이 났으니 화재경보기가 작동해야 하는데, 천장에 달려 있는 그게 울리지 않아.

▲ 틀어진 계획

당직 선생도, 청원 경찰도, 아무도 안 와. 어느새, 방안의 연기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어. 당황한 아이들은 겁이 나기 시작해. 누군가 복도에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었어. 레버를 누르는데, 안 나와. 소화기는 빈 통이었어. 그 순간, 전기도 나갔어. 어둠 속에선 이제 울음과 비명 소리만 울려 퍼져. 연기 때문에 숨도 못 쉬겠어. 누군가 소화기로 출입문 유리를 힘껏 내리쳐. 그런데 유리문이 꿈쩍도 안해. 생활관 출입문은 두께 8mm의 강화유리로 되어 있었거든. 반대편 비상구로 미친듯이 가보지만, 이 곳은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어. 그새, 화염은 점점 커져. 아이들은 이제, 불길에 완전히 갇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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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좀 그렇게.. 많이 번질 때쯤, 그때 누군가, 세면실로 오라고 소리쳐서 갔어요. 다 물 틀어놓고 거기 있는 대야로다가 창문이랑 막 두드렸죠. 살려달라고. 왜 안오지? 왜 문을 안 열어주지? 이러다 다 죽는거 아닌가."
-신화정(가명), 당시 1층 원생

"수건 짜서 코와 입을 막고, 살려달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나중에 남자 한 분이 2층으로 올라갔어요. 열쇠 꾸러미를 갖고 올라가는 걸 제가 봤단 말이에요. '왜 저희(1층)는 안 열어주고 2층부터 가요?' '저희도 살려주세요 문 열어주세요' 이 말을 한 기억이 확실하게 남았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2층에 올라갔다가 오래 있지도 않아요. 한 1분 있다가 내려온 거 같아요. 그리고 저희 문을 열어줬어요. 그리고 나서 애들이 막 뛰어나갔어요."
-최주영(가명), 당시 1층 원생

1층 아이들은 미친듯이 밖으로 뛰어나가. 얼굴은 숯검댕이에 눈물 콧물 구토까지 나. 그 순간, 선옥이도 누군가를 급히 찾았어. 친구 금선이. 근데 뭔가 이상해. 2층 아이들이 한 명도 안 보여. 2층 아이들이 아직 건물 안에 있어. 금선이와 60여명의 아이들이.

사실 불이 난 상황은, 2층도 1층과 다를 바 없어. 동시다발적으로 났으니, 불을 내고 문을 열어주길 기다렸지. 근데 아무도 오지 않자, 2층 아이들은 문을 부수려 했어. 문은 안 열렸고, 2층 아이들은 출입문 바로 옆, 화장실로 도망쳤어. 60명이 한꺼번에 몰린 거야. 그 때 그 화장실에서 살아남은 아이가 있어. 바로 재선이.

꼬꼬무

"숨은 꽉꽉 막히고, 연기는 자꾸 오는데… 막 뒤에서 머리 잡아당기고 살려달라고 이렇게 하고. 화장실 유리창을 깼거든요. 그 쇠창살만 계속 잡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선 누가 왔는데, 그 벽에 쇠창살을 뜯어내고 그러고 나서 나왔는데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화장실 창문이 좀 커서 여러명이 다 이렇게 붙어있었으면 좋겠는데 (제가 잡고 있었던) 이쪽만, 그나마 숨쉴 수 있는 공간이니까. (뒤에 있던 원생들이) 막 세게 잡아당긴 것 같은데. 또 힘이 없어지면서 손이 쓱 이렇게 내려가는 느낌도 있고."
-임재선(가명), 2층 화장실 생존자

극도로 공포스러웠을 그 시간. 119가 도착했지만 2층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어. 그걸 한참만에 뜯어내 겨우 몇 사람이 빠져나왔는데, 구출된 건 그게 전부였어. 화장실 뒤편에 있던 아이들은 대부분 질식으로 목숨을 잃은 거야. 그 중에 선옥이의 단짝, 금선이도 있었어.

목숨을 잃은 친구들 중에는 퇴소를 코앞에 둔 친구도 있었어. 당시 16살 양승실 양이야. 학원에서는 조용히 모범적으로 생활했던 아이였대. 승실이는 이 곳에서 1년을 보내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거야.

꼬꼬무

"사실 이제 눈물도 안 나왔어요. 어이가 없으니까. 원망은 크게 안 해요. 그 당시에는 했지만은, 그 당시는 애들이 어리잖아요. 열다섯 열여섯짜리 애들이 뭘 압니까?"
-양환균, 故양승실 양 아버지

▲ 2층의 비극은 왜 일어났나

1층과 2층의 엇갈린 운명. 왜 그랬을까? 1층 생존자들의 말 중에, '직원이 열쇠꾸러미를 들고 2층 먼저 올라갔다'고 했잖아? 그럼 2층이 먼저 탈출했어야지. 또 하나 이상한 점, 이날 60명 가까이 사상자가 나왔는데, 1층 사감은 물론, 2층 사감도 멀쩡히 탈출했어. 다치거나 숨진 건 원생들 뿐이야. 사상자 중 기술학원의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어.

기술학원 직원의 주장에 따르면, 불이 난 뒤 2층 문을 먼저 열어줬대. 그리고 다시 내려와 1층 문을 개방했다는 거야. 이 주장은 사실 같아. 2층 사감이 탈출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화장실에서 아우성 치던 아이들은, 이 출입문이 잠깐 열렸던 걸 전혀 몰랐어. 무슨 이유에선지, 2층 사감이 빠져나간 직후에 이 문이 다시 잠겨버린 거야. 이건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출입구가 굳게 잠겨 있었다"고 증언한 걸로도 확인이 돼. 사감이 나갈 땐 열렸던 문이, 아이들 앞에선 다시 닫혔다? 말이 안 되지. 그리고 직원 중 그 누구도 아이들을 구하거나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해. 이유가 뭘까? 1층 원생들 증언을 들어보면, 짐작되는 게 있어. 2층 아이들을 구해야 하는 그 순간,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거든.

꼬꼬무

"정말 진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우리보다 먼저 (직원이) 2층을 올라갔는데 2층 애들이 죽었지? 이 생각도 들었었어요. 1층 애들이 아악 하고 나왔는데, 밖에 청원경찰이 있었어요. 청원경찰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나. 저희한테 욕을 하면서, 빨리 강당으로 들어가라고. 그런데 애들이 그 욕을 듣고, 도망가는 사람 없이 다 강당으로 간 거예요."

-최주영(가명), 당시 1층 원생

꼬꼬무

"2층은... 제가 그 때 당시 원생들이 하는 이야기로 들었을 때는, 사감 선생님만 나가게 해 놓고. 다시 문을 잠갔다 라고 들었거든요."
-신화정(가명), 당시 1층 원생

불이 난 건물에서 아이들이 간신히 나왔는데, 청원경찰이라는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어. 먼저 나온 1층 아이들이 도망칠까봐. 사감이 빠져나온 후, 2층 문이 저절로 잠긴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도망갈까봐 일부러 잠근 건지, 그것 역시 경찰 수사에서 안 밝혀졌어. 이유는? 방화범들은 이미 잡았으니까. 아이들이 범인이니까.

"이 사람들이 인명피해 구조보다는 탈출을 막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대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던 걸 못 살렸던 거 아니냐. 원인이 무엇인지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조사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관해서 진상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유아무야 됐다…"
-김칠준, 당시 사건 변호인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불을 지른 아이들에게 무거운 책임은 있어. 하지만, 불이 이렇게 크게 날 줄 알았다면, 출입문이 열리지 않을 줄 알았다면, 아이들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 사건이 안 일어났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들이 드러났어. 소화기 38개 중에 25개는 소화액이 다 굳은 폐품이었어. 화재경보기는 사고 며칠 전 직원이 일부러 꺼놨대. 왜? 시끄러워서. 그런데도 학원 관계자들은 이렇게 항변했어.

-쇠창살은 왜 설치했습니까?
"학원 주위가 산으로 싸여 있어서 외부로부터 보호를 하고 과격한 애들은 뛰어내리는 예가 있어서 방지하려고 설치했습니다."
-2층 구조는 왜 하지 않았습니까?
"살려달라는 소리를 전혀 못 들었는데요."
-치약으로 복도와 화장실 청소를 강요했습니까?
"그건 애들이 자기들끼리 깨끗하게 지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한 겁니다."

"이 아이들을 10개월간 착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가 인권을 유린했다고요?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 전직원들은 정말 동생같이, 친자식같이 정말 사랑으로 소녀들을 대했습니다."

▲ 요보호 여성

이 여자기술학원은 과거에는 경기도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하나씩 있었어. 그런데 원생들의 인권 유린 폭로가 이어지면서 다른 곳은 다 문을 닫았어. 경기여자기술학원은 이 사건 전까지 끝까지 버티고 버틴 곳이야.

여자기술학원은 1950년대부터 존재했어. 처음 입소할 때, 성관계 경험 물었던 거 기억나? 20, 30대 원생들도 있었잖아? 사실은 이 여자기술학원이 윤락여성을 수용하는 부녀보호소였어. '성매매'로 성을 사는 남성들은 대부분 선처해주고, 성을 팔던 여성들을 강제입소 시킨 거야. 그런 여성들은, '요보호 여성' 이라 불렀어. 보호가 필요한 여성, 선도하고 갱생시켜야 할 사회악이라는 거야.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어. 성매매 단속이 어려워진 거야. 업주들의 로비도 심해지고, 더욱 음성화되면서, 잡아올 요보호 여성이 부족해진 거야. 그 빈자리를 가출 소녀들로 채웠어. 138명 원생 중에 성매매 혐의로 들어온 사람은 10명도 안돼.

꼬꼬무

"그 아이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한 아주 망나니 같은 아이들입니다. 윤락녀로 전락할 수도 있어요."
-경기도청 담당 공무원

방황하고 가출한 아이들은, 잠재적 윤락여성으로 치부됐어. 그럼, 성매매 여성이라고 해서 감금시키는 건 합당할까?

이 참사 후, 시설은 바로 폐쇄됐어. 남은 원생들은, 곧바로 집으로 보내졌어. 그래서 학원에는 아이들의 소지품, 초록색 슬리퍼만 무더기로 남게 된 거야. 그럼 구속된 16명의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꼬꼬무

법정에 선 아이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 저희 잘못이에요. 죽은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학원과 사회에 피해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했어.

그리고 학원 원장과 직원도 재판에 넘겨졌어. 하지만 비난과 책임은 아이들쪽으로 쏠렸어. '문제아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윤락녀 시설이라니, 남사스럽다'면서. 이런 학원이 왜 존재해야 했는지, 어떤 인권 유린이 있었는지, 왜 그날 2층 문이 다시 잠겼는지, 이런 의혹은 하나도 결론을 내지 못했어.

김칠준 변호사는 모두가 손가락질 했던 16명의 아이들을 위해 최후 변론을 남겼어.

"피고인들은 특별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자녀일 뿐입니다. 단지 공부를 못해서 가정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것만으로 특별한 아이들이라 재단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말로만 대책을 세우며 오히려 이들을 격리시켰습니다. 가족과 사회 역시도 당연한 이들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그저 수용시설에 맡겼다는 것만으로 부모 일 다했다는 부모들의 책임과 주입식 교육을 강요한 경기여자기술학원의 책임 그리고 대형 사고가 발생한 후 여전히 별다른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은 우리 사회의 책임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아이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나아가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어른들의 오류를 함께 평가하는 재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치열한 공방 끝에 판결이 났어. 원장과 직원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어. 그리고 16명의 소녀들은, 소년부 송치로 결정됐어. 형사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교화를 위한 조치를 하겠다는 거야. 1층 원생들이 참사의 모든 책임을 지는 건 잘못됐다고 재판부가 본 거야. 아이들의 사정을 어느 정도 헤아려 준 거지.

▲ 소녀들의 반성문

28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원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느덧 40~50대 어른이 됐어. 그리고 10대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도 있지. 이 사건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 분들은 꽤 오랫동안 반성문을 써왔어. 단짝 금선이를 잃은 선옥 씨가 그동안 써온 반성문이야.

꼬꼬무

"거의 10년은 8월 21일 새벽에 비가 왔었어요. 그때마다 친구가 하늘에서 운다고 생각했었어요. 30대 초반까지 8월 21일 혼자 제사상 차려서 기도하고 했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이제 그만 금선이 놓아줘도 된다고.. 지금에서야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음 생에도 절 용서한다면 다시 친구가 돼줄 수 있냐고. 그리고 많이 그립고 미안하다고…"

근데, 이게 다른 분들도 다 같은 마음이야. 어렵게 이 분들이 제보를 해주신 이유는, 하나였어.

꼬꼬무

"(죽은 아이들에게)미안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나는 어쨌든 살아서 욕 먹어도 되지만. 그 아이들은 명예 회복이 되어야 하잖아요. 지금이라도.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다고. 착한 애들이었다고.."
-최주영(가명), 당시 1층 원생

"'야!'가 아닌, 그냥 이름으로 불러줬었으면, 그 어른들이 귀를 조금만 기울여줬으면 우리한테. 그렇게 힘들다고 이야기했는데…"

-곽현주(가명), 당시 1층 원생

꼬꼬무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었으면, 다시 만나서 볼 수도 있는데 너무 빨리 간 게 안쓰럽고. 혼자만 살아서 미안하다.."

-임재선(가명), 당시 2층 생존자

꼬꼬무

"평생 못 잊는 일이긴 하지만, (살아남은 원생들이) 죄지은 사람처럼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힘들게 살았다면 조금 내려놓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신화정(가명), 당시 1층 원생

비행청소년, 불량소녀, 문제아로 불린 아이들. 정말 사회악이었을까. 적어도 '꼬꼬무'에 연락을 주신 분들은, 그동안 남들처럼 정말 열심히 사셨어. 부끄러운 과거 같아서 평생 비밀로 해오신 분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꼬꼬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고맙다고 하셨어. 물론 오래 전 그날, 아이였던 시절 본인들의 계획은 잘못된 게 맞지. 그때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번만 이해해 달라고. 그땐 너무 어려서, 미처 하지 못 했던 아이들의 말을, 지금이라도 듣고 제대로 기억해 달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대.

꼬꼬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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