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화)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아픔을 연기하지만, 따스한 봄을 닮은 배우 정수빈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3.22 09:14 수정 2023.03.22 15:22 조회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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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빈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마치 봄이 걸어 들어오는 듯했다. 아직 바깥 날씨가 쌀쌀했던 날, 노란빛 봄을 닮은 옷을 입고 한껏 밝아진 스타일링으로 상큼한 매력을 뽐내며 걸어오던 배우 정수빈. 작품 속에서 어둡고 아픈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그녀인데, 실제의 만남에서는 이른 봄의 향기를 느꼈다.

98년생으로 만 24세, 앳된 얼굴의 정수빈은 실제 나이에 맞게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역할들을 연기해 왔다. 그런데 그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넷플릭스 '소년심판'의 소년범 백미주, 디즈니 플러스 '3인칭 복수'의 복수를 꿈꾸는 학교폭력 피해자 태소연, 티빙 '아일랜드'의 데이트 폭행 피해자 이수련, SBS '트롤리'의 비밀을 품은 김수빈까지, 어둡고 무겁고 아픔을 지닌 캐릭터들이었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지 고작 2~3년이 된 신인이라, 배우 정수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들만 연기하다 보니, 왠지 정수빈 본체도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는 달랐다. 밝은 웃음 너머에 진중함이 깃들었고, MZ세대답게 당당한 말투 속에는 고뇌의 흔적이 엿보였다.

은은하게 전해지는 볕의 기운에 살포시 미소가 번지는 것처럼, 정수빈은 그런 봄날의 따스함을 닮은 배우였다.

정수빈

▲ 갑작스러운 합류, 운명 같은 만남

정수빈은 지난해 5월 '트롤리'의 대본을 처음 받고 2주 정도 후에 바로 현장에 투입돼 약 6개월 정도 촬영을 진행했다. 보통 배우들이 촬영 전 준비에만 몇 달을 소비하는 것과 달리, 정수빈은 급하게 촬영에 합류했다. 그가 연기한 김수빈 캐릭터를 원래 맡기로 했던 배우 김새론이 음주운전 사고 논란으로 드라마에서 갑자기 하차하며, 정수빈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이다. 신인인 정수빈에게는 큰 기회이자, 동시에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그 당시 부담을 안 느꼈다고 하면 솔직하지 않죠. 그래도 저한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어요. 처음에는 혼자라고 생각해 겁이 나고 어려웠는데, 촬영장에 가니까 다들 먼저 '수빈아 안녕' 하고 반겨주셨어요. 제가 수빈이란 역할로 의문스럽게 찾아온, 어쩌면 방청객 같은 느낌이었을 텐데, 선배님들은 정말 따뜻하게 반겨주셨어요.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하나가 되어 함께 하는 힘이 이렇게 크구나, 누군가한테 마음을 열면 그 안에서 응원을 얻을 수 있구나, 그런 배움을 얻었어요."

갑자기 찾아온 캐릭터지만, 운명 같은 만남이다. 정수빈이 김수빈을 연기하게 됐다. 같은 이름이다 보니,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수빈이란 친구를 만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갑작스럽게 만날 줄은 몰라 저도 신기했어요. '트롤리'의 수빈이는 따뜻한 아이예요. 그래서 더 애정이 갔고, 수빈이의 진심을 조금 더 잘 표현해주고 싶었어요. 사랑을 받지 못해 표현 방법이 서툰 친구인데, 그런 지점에 있어서 제가 더 사랑을 해주고, 나아가 보시는 시청자 분들한테도 따뜻한 사랑을 받았으면 했어요. 같은 이름의 수빈이로서,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트롤리' 속 인물들은 저마다 비밀이 많다. 정의롭고 소신 있는 정치가인 줄 알았던 남중도(박희순 분)는 성폭력 가해자였고, 과거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고향을 떠나야 했던 김혜주(김현주 분), 남중도를 철두철미하게 보필하는 보좌관이지만 아들 남지훈(정택현 분)의 죽음은 방관했던 장우재(김무열 분)까지, 누구 하나 투명한 사람이 없었다.

남중도-김혜주의 집에 죽은 남지훈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찾아가는 김수빈도 마찬가지다. 수빈의 등장은 드라마 '트롤리' 속 인물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숨기는 게 많은 미스터리한 캐릭터인 만큼 철저한 분석이 필요했지만, 정수빈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짧은 기간 치열하게 수빈에 파고들어야만 했다.

"처음에 8부까지 대본을 받았는데 저한테 1~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어요. 수빈이라는 인물을 처음 봤을 때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았고, 수빈이가 하는 어떤 말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이해가 필요했어요. 또 수빈이가 겪는 상황들이 순차적인 게 아니라, 시간에 따라 사건전개를 정리하는 것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수빈이가 언제 임신을 했고 임신 주기가 어땠는지, 마치 한국사 연도순 쓰듯이 정리해 봤어요. 저한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수빈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정수빈

▲ 정수빈이 김수빈이 되어간 과정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수빈의 임신과 관련한 것이다. 임신에 대해서도 무지한데, 유산을 겪는 상황까지 표현해야 하니, 반드시 공부가 뒤따라야 했다. 그러면서 행여나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나아가 그들이 마음 편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첫 촬영이 6화 산부인과 장면이었는데, 제가 임신에 대해서도, 유산의 아픔에 대해서도 너무 무지하더라고요. 그래서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찾아보니, 정말 많은 여성분들이 유산을 겪는데 그 아픔을 숨기고 있더라고요. 그게 혼자만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건데, 그 경험을 온전히 누군가와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빈이를 통해, 그분들도 마음 편하게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정수빈은 수빈이에 대해 의문스러운 지점들은 스스로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갔다. 수빈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수빈이가 어떻게 혜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했어요. 수빈이는 돈도 없고, 어디 의지할 데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 머리에 돈 쓸 여유가 없어 타고난 머리를 유지할 거라 생각했어요. 당시 '3인칭 복수' 촬영을 한 후라 제가 머리를 하얗게 탈색했었는데, 수빈이 때문에 다시 검게 염색을 했죠. 수빈이는 착한지 나쁜지, 여러 가지 의심을 하게 만드는 아이라, 그렇다면 어떤 색이든 담을 수 있는 무채색이 어울릴 것 같아 의상도 그런 콘셉트로 갔고요. 수빈이가 남에게 금전적인 요구를 하며 나쁘게 살았을 때는, 거칠게 표현하고 싶어 가죽 옷도 입었어요. 또 상대가 무서운 마음을 자신이 강해 보이는 걸로 숨기려던 수빈이의 마음은, 서툴지만 세 보이려 한 화장으로 표현했고요. 마지막에 수빈이가 해피엔딩을 맞을 땐,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어 따뜻한 소재의 의상을 입었어요. 그렇게 전반적으로 수빈이란 인물이 속에 담고 있는 진심을 더 얘기할 수 있도록, 계속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봤던 거 같아요."

극 중 수빈이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쁜 짓도 저지른다. 어릴 적 이혼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후 거칠고 외롭게 자라왔고, '좋은 어른'이란 존재를 경험하지 못한 성장사가 수빈을 엇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량해 보이는 겉과 달리, 속은 선하고 따뜻한 아이였다. 정수빈은 그런 수빈을 표현하고 싶었다.

"수빈이의 말은 남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아요. 속내를 굳이 반대 언어로 표현하는 친구예요. 수빈이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영화 '헤어질 결심'이 큰 도움이 됐는데, 수단으로써의 언어와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싫어'라는 말이 싫다는 의미로서 수단도 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거, '사랑받고 싶어요', '당신이 좋아요'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죠. 그런 지점에 있어서, 수빈이란 인물의 말 한마디 한마디, 그 이면을 잘 담아서 이야기하고자 노력했어요."

정수빈

▲ '함께' 하는 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기

드라마 '트롤리'는 '트롤리 딜레마'를 주제로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 전차가 달려오는데, 선로 위에는 다섯 명의 사람이 있다. 기차선로를 바꾸면 다섯 명은 살지만, 다른 쪽에 있는 한 명의 사람이 죽는다. 당신에게 선로를 변환시킬 힘이 있다면, 트롤리의 진행 방향을 바꿀 것인가'라는 딜레마와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다. 정수빈은 이번 작품을 하며, 그런 '트롤리 딜레마'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작품을 하며 '트롤리 딜레마'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수빈이란 인물로서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이렇게 작품이 끝나고 돌아보니, 혼자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옆에 누군가가 있고 다 같이 하는 힘이 있다면 아예 전차를 멈출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굳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 전차가 아무리 빨라도 여러 사람들이 도우면 멈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수빈이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건, '트롤리'를 함께 만든 선배 배우들, 자신을 믿어준 감독, 작가, 스태프들 때문이다. 혼자라면 못 해냈을 '트롤리'의 김수빈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끝마쳤기에, 정수빈은 '함께'라면 '트롤리 딜레마'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는 배우 김현주가 있다. 김수빈에게 김혜주가 마음을 열게 해 준 '좋은 어른'이듯, 정수빈에게도 김현주가 그런 선배였다.

"혜주란 어른을 통해 수빈이의 얼어붙은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려야 하는데, 혜주의 어떤 지점이 어른으로 느껴졌기에 수빈이의 마음이 열렸을까, 제가 이걸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좀 많았어요. 그런데 현주 선배님이랑 있으면 선배님 자체가 좋은 어른이라, 제가 어떠한 연기를 한다거나 굳이 거짓됨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 순간을 그 자체로 담으면 됐죠. 선배님이 그런 분으로 계셔 주신 게 너무 감사했어요. 배우로서 대면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으로서 정말 좋은 분이란 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덕목으로 삼고 싶은, 그런 배우셨어요. 많은 분들이 선배님께 의지했는데,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사람들이 내는 음을 정말 예쁘게 연주해 주셨어요. 이렇게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걸, 느끼게 해 주신 분이에요."

배우 박희순을 만나기 전에는 강렬한 전작들의 이미지 때문에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박희순의 순수함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연기 열정은 정수빈을 감탄시켰다.

"영화 '경관의 피' 이미지를 생각해서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만나보니 정말 착하고 순수하고 매 순간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선배님이세요. 선배님은 캐릭터를 연구한 대본을 봐도, 연습하는 공간에서도, 여전히 신인처럼 느껴져요. 선배님의 집중으로 인해, 많은 스태프들도 함께 그 공간에 몰입하는 경험들을 했어요. 선배님이 그 위치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 건, 그런 피나는 노력 때문이란 걸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그런 힘을 잃고 싶지 않아요."

정수빈

김무열을 통해서는 '눈'의 힘을 배웠다. 배우가 진심을 표현하는 데 있어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전 배우로서 사람의 진심을 잘 담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늘 궁금해했어요. 그 정답을 김무열 선배님과 연기하며 찾았어요. 선배님과 촬영할 때 '눈빛이 멋져요'라고 제가 툭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게 정답 같았어요. 배우가 진심을 표현하는 소통의 창구가 눈이지 않을까, 나도 눈에 뭔가 많은 걸 담고 싶다, 눈빛이 주는 힘이 이렇게 크구나, 나도 언젠가 선배님처럼 진심에 닿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 배우로서 확신을 찾은 거 같아요."

연기력도 인성도 훌륭한 선배들과 함께 하며 많은 것을 배운 정수빈. 무엇보다 정수빈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한 걸음으로 '트롤리'를 선택한 선배 배우들의 진심에 깊이 감동했고, 그 마음을 본받고 싶다고 밝혔다.

"선배님들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좋은 뜻으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라고 알고 있어요. '트롤리'에서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공소권이 폐지가 돼서 수사가 종결되고, 그러면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없는 상황에 오히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는 경우가 그려져요. 이 작품은, 공소권이 폐지가 돼도 피해자가 진실을 이야기했을 때 그걸 믿어주는 세상, 피해자가 아픔을 공유해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게 트롤리의 전차를 멈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한 것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라 생각해요. 선배님들은 이런 작품의 의도에 공감해 출연했고, 전 그런 선배님들을 통해 배우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정수빈

▲ 연기에서 찾은 행복,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연이어 작품마다 아픔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정수빈은 "제가 사연이 남다른 있을 거라 보시는데, 전 아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공교롭게 그런 서사가 있는 인물들을 맡고 있지만 실제 자신과는 거리가 멀고, 아픔 있는 캐릭터의 성장기를 연기하며 자신도 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긍정적인 부분을 설명했다.

정수빈이 이토록 건강한 사고를 지닌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성실했던 학창 시절을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수빈은 늘 공부를 열심히 하고, 3년 내내 반장을 할 만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아파도 등교해 학교 보건실에 가서 쉬어라"고 할 만큼 학교생활을 중요시 여겼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학업에 임했다. 그런 정수빈이 연기에 꿈을 갖게 된 건, 고2 때 우연히 본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때문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아마 삶에 있어서의 '고도'가 뭘까 라는 궁금증을 가질 거예요. 저는 어차피 고도는 모르고, 그 고도를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행복하려면 뭘 해야 될까를 생각했죠. 무대 위 50~60대 배우들이 3~4시간 엄청 열정적으로 열연을 토해내는 걸 보는데, 거기서 뭔가 행복이 느껴졌어요. '저거 하면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에, 그렇게 막연히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 이전에는 연기라는 꿈을 단 한 번도 꾸지 않았던 사람인데 말이에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저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죠."

당연히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성실히 공부만 해오던 딸이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젊었을 때 배우를 꿈꿨던 아버지는, 완강한 반대보다는 딸의 꿈을 응원하는 길을 택했다.

"아버지의 원래 꿈이 배우셨는데, 경제적인 부양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셨죠. '고도를 기다리며'도 아버지가 그 꿈을 시작해보려 할 때 산울림 극장에 가서 봤던 작품인데, 제가 똑같은 장소에 가서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한 거예요. 아버지는 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본인이 꿈꿨던 그 지점과 맞닿은 제 꿈을 응원해 주고 계세요. 전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고 믿어요. 저희 아버지가 정말 좋은 사람이시거든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언젠가 한 번쯤 그 꿈을 펼쳐보셨으면 좋겠어요."

정수빈

연기에 꿈을 품은 정수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진학했다. 고3 때 1년 준비해 우리나라 연기 지망생들의 꿈의 학교라는 곳에 당당히 합격했다. 정수빈은 '노력'을 그 비결로 꼽았다.

"한예종이 특출한 사람을 뽑는다기 보단,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를 보는 거 같아요. 고3 때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전 어떤 동작이 안 되면 백 번 천 번씩 했고, 그렇게 하니 됐어요. 그런 노력을 하는 친구를 뽑았다고 생각해요. 한예종 안에서는 노력의 크기를 더 키울 수 있었어요. 그냥 하나의 개인이었다면 내가 노력하는 크기에서 그칠 텐데, 그 안에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저 또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노력하는 크기를 키우는 과정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땐 몰랐는데, '트롤리'란 작품을 통해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난 후, 그때도 저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선생님들도 있었고, 연습실에서 같이 하자고 했던 친구들도 있었죠. 그 의미를 이제 와서 알게 됐어요. 지금의 내가 나 혼자된 건 아니구나, 그런 배움을 얻은 게 너무 행복해요."

'트롤리'를 통해 배우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한층 성장한 정수빈은 궁극적으로 자신도 그런 좋은 어른,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놨다.

"'트롤리'를 통해 배우로서 '함께 하는 힘'을 배운 게 가장 컸어요. '좋은 어른이라는 게 뭘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지금 제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건, 좋은 어른들, 좋은 선생님들이 계셔서 가능했더라고요. 저도 그런 바통을 넘겨줄 수 있는 좋은 선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배우로서 다른 사람들의 삶의 찰나를 살고 있는데, 다들 너무 대단하다고 느끼고 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 존경심이 생겨요. 그렇게 겪고 느끼는 점을, 배우로서 잘 표현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더 좋은 사람이 돼서, 그런 게 느껴지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인간 정수빈과 배우 정수빈이 맞닿았으면 좋겠어요. 시작점은 다르겠지만, 그 둘이 결국 하나였으면 해요."

[사진=백승철 기자]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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