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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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부천서 성고문 사건 진실 밝힌 '빵원짜리 변호사' 조영래…알고 보니 '전태일 평전'의 저자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3.03.17 05:53 수정 2023.03.17 09:00 조회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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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빵원짜리 변호사 조영래의 그날 이야기가 공개됐다.

1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나의 변호사'라는 부제로 조영래 변호사를 조명했다.

지난 1986년, 서울대를 중퇴한 권인숙은 신분을 위조해 공장에 취업했다. 그리고 이것이 발각되어 경찰서에 끌려갔다.

공문서, 사문서 위조를 인정한 인숙, 하지만 그는 풀려날 수 없었다. 경찰은 인숙이 붙잡히기 직전 일어난 5.3 인천 시위의 주동자들의 이름을 끌어내기 위해 인숙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였던 것.

곳곳에서 민주 항쟁이 일어나던 당시 정권의 탄압은 날로 강해졌고, 정권은 경찰에 민주 항쟁의 주동자를 검거하면 특진 및 표창의 보상을 하겠다고 했고 이에 경찰들은 주동자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건과 무관한 인숙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경찰의 신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경찰은 부천서 경장 문귀동에게 권인숙에 대한 특별한 수사를 지시했다. 문귀동은 인숙에게서 듣고 싶은 이름들을 듣기 위해 성고문을 했던 것.

문귀동은 처음에는 성적 수치심을 주는 모욕적인 언사를 시작으로 최후에는 자신의 개인 조사실에서 노골적인 성추행을 했다. 공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고문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

수치심과 모멸감에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있는 인숙, 그럼에도 당시 인숙은 단 하나만 생각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것. 본인이 침묵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처참한 짓을 또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인숙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고 그렇게 조영래 변호사와 만났다.

서울대 전체 수석, 1년 만에 사법고시 합격 등 천재 중 천재였던 조영래 변호사는 늘 거대 권력에 맞서는 소시민들의 변론을 자청했다. 그리고 공익을 위한 사건이라 판단되면 수임료는 무료로 해주는 이른바 "빵원짜리 변호사"였다.

그런 그는 인숙의 이야기를 듣고 문 경장과 사건에 가담한 경찰들을 수사해 달라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는 5공 정권에 대한 정면 대결이었다.

이후 진행된 수사에서 가해자들은 당당하고 뻔뻔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며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꼬리가 밟혔고, 급기야 경찰 중 한 명의 자백으로 인숙의 진술이 진실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주범인 문 경장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언론은 진실을 외면한 채 정권의 보도지침에 따라 왜곡된 진실을 보도했다.

이에 결국 조영래 변호사가 나섰다. 그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고발장을 작성했고 이를 10만 부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그리고 이 고발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분노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인숙의 용기가 조변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며 세상을 변화하게 한 것.

그리고 시작된 인숙에 대한 공판, 조영래 변호사는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검사에 맞서 변론을 시작했다. 그는 죄의 소명이 아닌 인간 권인숙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이야기했고 이는 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애쓴 행동이었다.

이것은 권인숙을 위로했고, 이에 재판장의 방청객들도 울렸다. 그리고 조변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조변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공문서 사문서 위조죄로 인숙에게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이후 조영래 변호사는 성고문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를 집요하게 요청했다. 166명의 변호사 이름이 담긴 재정 신청서를 제출한 조영래 변호사. 이후 민주화 운동에 불을 지피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결국 1988년 4월 문 경장이 구속됐다.

그리고 한 달 후 성고문 사건의 첫 공판이 진행됐다. 그러나 문 경정은 뻔뻔하게 성고문에 대한 모든 혐의를 부인했고 심지어 자신은 상관의 지시로 죄를 뒤집어쓴 속죄양이라고 주장했다. 후에 문 경장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터무니없이 부족한 처벌에도 인숙은 자신의 진실을 인정받은 것으로 기뻐했다.

인숙을 만나기 전 조영래 변호사는 어떤 일에 몰두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접했고, 그가 꼭 갖고 싶었던 대학생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고 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전태일의 일기를 읽고 또 읽고 가족들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평화시장 여공들과 노동자들의 이야기까지 듣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만에 완성된 전태일 평전, 하지만 출간은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 먼저 발간된 책에서 조영래는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

그리고 1983년 한국에서 발간된 책에도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됐고 1987년에 이르러서야 금서 해제가 되었다.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는 늘 침묵했던 조변은 자신이 전태일 평전을 썼음에도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0년 10월, 향년 43년 지병 폐암으로 사망한 조영래 변호사. 사망 한 달 후 드디어 그의 이름이 박힌 전태일 평전이 발간됐다.

검사 시보 시절부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의 중함을 알고 되새겼던 조영래 변호사는 세상을 바꾸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전했다. 그리고 변호사로 일하던 7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수많은 일들을 해냈고, 그의 이러한 노력은 지금의 세상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날 방송 말미에는 그가 아들에게 남긴 엽서가 공개됐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진이 박힌 엽서에 그는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라며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느끼고 또 남에게도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바람을 드러내 그의 성정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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